[1화]
일주일 전. 명원고 2학년 2반.
“최니, SNS 팔로워 수 올리는 방법 좀 알려 줘.”
맨 뒷자리에 앉은 태영이 교과서로 얼굴을 가린 채 짝꿍 해니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은 칠판 앞에서 침까지 튀겨 가며 열심히 수업 중인 물리 선생의 눈치를 살피며 수다를 떨었다.
“갑자기 팔로워는 왜?”
“나 이번에 명원시 청소년 기자단에 지원하려고. 근데 SNS 주소를 제출하래. 그게 무슨 뜻이겠어? 팔로워 수랑 게시 글 본다는 거지. 그걸로 서류 전형 거를 건가 봐.”
“근데 갑자기 청소년 기자단은 왜?”
“내 꿈이 기자잖아.”
“언제부터?”
“오늘부터.”
해니는 태영을 불쌍하게 쳐다봤다. 제 친구지만 너무 대책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탱, 너 이과야. 근데 웬 기자? 그거 글도 잘 쓰고 뭐 암튼 문과 아니야?”
“그니까 청소년 기자단에 들어가겠다는 거잖아. 그 경력이면 대학 갈 때 도움 될 거랬어.”
“누가?”
“있어. 내 멘토님.”
태영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본 이건욱 기자가 떠오른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건욱을 존경해 온 태영은 하루빨리 졸업해서 건욱처럼 훌륭한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맞다. 근데 최니 넌 팔로워 몇 명이야?”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태영이 슬며시 고개를 돌렸는데. 어라? 해니가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 태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니가 물리 선생에게 귀를 잡힌 채 서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얏! 아파요 아파. 쌤 살려 주세요.”
“모태영 너도 일어나.”
“넵!”
태영은 물리 선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섰다.
“너희 둘은 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어떻게 1초도 집중을 안 할 수가 있지? 커서 뭐가 될는지. 당장 나가서 손 들고 서 있어!”
결국 복도로 쫓겨난 태영과 해니는 창문 앞에 서서 손을 들었다. 태영이 해니의 빨개진 귀를 쳐다보며 미안해했다.
“쏘리, 많이 아파?”
“아픈 건 둘째 치고, 너 팔로워 늘리고 싶으면 저런 걸 찍어.”
“뭘 찍어?”
빨개진 귀를 문지르던 해니가 복도 창문 너머 운동장을 가리켰다. 그러자 태영이 까치발을 들고 바깥을 내다봤다. 그곳엔 남자애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서로 두 눈이 마주친 태영과 해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문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문에 딱 붙은 두 사람은 벌을 서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운동장을 구경했다.
“저기 농구하고 있는 애들을 찍으라고? 왜?”
“너 쟤 몰라?”
태영은 해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남학생을 유심히 쳐다봤다.
“모르긴 왜 몰라. 당연히 알지.”
명원고는 물론 명원시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녀석의 이름은 유일반.
세계로봇대회 수상 이력이 있는 글로벌 동아리 ‘프리무스’의 회장이자 이과 문과 통틀어 전교 1등인 수재.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수려한 외모. 큰 키와 다부진 몸매.
3점 슛을 넣고 환하게 웃는 유일반의 미소에 푹 빠져 버린 태영은 입까지 벌리고 헤 웃었다.
“모탱, 정신 차려.”
“어어. 왜? 뭐라고 했는데?”
“너 우리 학교에서 팔로워 수 제일 많은 계정 주인이 누군지 알아?”
태영이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해니가 혀를 내찼다.
“쯧. 넌 그런 것도 모르고 SNS를 한다 그러냐?”
“그러는 넌 알아? 누군데?”
“유일반. 무려 100만이 넘어.”
“뭐? 배…… 백만?”
태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동시에 부러움의 탄식이 쏟아졌다.
“와, 유일반은 유일반이네. 진짜 다 가졌다. 나한테 딱 오천 명만 떼어 주면 좋겠는데.”
“너 유일반이랑 맞팔 하면 오천이 아니라 오만 정도는 그냥 붙을걸?”
“어째서?”
“유일반이 관리하는 프리무스 계정과 맞팔 한 사람은 현재까지 0명!”
“근데?”
“근데는 무슨 근데야. 유일반이 너랑 맞팔 하는 순간 어떻게 되겠어? 너 뭐 하는 년인가 궁금해서 다들 니 계정 염탐하겠지. 그럼 팔로워 수 막 올라갈 거고. 넌 청소년 기자단에 합격할 거고.”
합격이라는 말에 태영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최니! 유일반이랑 맞팔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모르지. 가서 맞팔 해 달라고 해 보든가.”
“그럴까? 내 미래가 달린 일인데 나 정말 그렇게 해 볼…….”
“모태영!”
“옴마얏, 깜짝이야!”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고함에 태영과 해니가 동시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물리 선생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얼굴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들이 밖에서도 떠들어? 너희 둘, 당장 운동장으로 나가! 종 칠 때까지 뛴다! 당장!”
물리 선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영과 해니는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들고 냅다 복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 *
“으, 죽겠다.”
물리 수업이 끝날 때까지 대략 20분간 쉬지 않고 운동장을 달려야만 했던 태영은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한 칸 한 칸 겨우 올라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꺄르르 해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장 뒤를 돌아본 태영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더 이상 못 뛰겠다고 구역질까지 하던 해니가 남친 주유권과 팔짱을 끼고 중앙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우!”
태영은 새삼 해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역시 연애를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나 보다. 아니다. 연애를 하기 때문에 없던 체력도 막 생기는 걸까?
전자든 후자든 모쏠 태영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치이. 하나도 안 부럽다 뭐.”
태영은 다시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까보단 좀 더 힘 있게.
그렇게 성큼성큼 4층에 다다른 태영은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다 멈칫했다.
‘너 유일반이랑 맞팔 하면 오천이 아니라 오만 정도는 그냥 붙을걸?’
문득 해니가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태영은 뭔가 다짐한 듯 아주 다부진 얼굴로 다시 복도로 나가 1반으로 향했다.
다행히 복도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어 유일반을 불러 달라고 했다.
“유일반 걔 동아리방에 있을걸? 오늘 수업 안 들어오는 날이거든.”
아, 잊고 있었다. 수요일인 오늘은 유일반이 교실 수업 대신 동아리방에서 로봇 연구 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단, 체육 시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농구할 때 말이라도 걸어 볼걸. 벌서는 중이라 쪽팔려서 피한 게 괜히 후회되네. 좋은 기회였는데.
태영은 안타까워하며 다시 교실로 돌아가려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 마음먹은 건 무조건 저지르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결국 태영을 동아리방이 있는 옥상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괜히 기지개를 켜는 척 옥상을 빙빙 돌던 태영은 동아리방 쪽을 흘끔 쳐다봤다.
저쪽이 말로만 듣던 동아리 ‘프리무스’의 아지트군.
태영은 고민했다. 저곳은 아무나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공간이었다. 딱히 교칙으로 정해 놓은 건 아닌데, 그냥 어쩌다 보니 전교생의 암묵적 동의하에 금지 구역이 된 곳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학교에선 이번 세계로봇대회 준비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우승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다고 들었다.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일반이 어쩐지 좀 불쌍하게 느껴졌다.
부담감이 장난 아니겠지? 괜히 방해하지 말고 그냥 돌아갈까?
고민하던 태영의 시야에 하필 동아리방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이 포착됐다.
호기심이 발동한 태영은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했고,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봤는데.
“!”
바로 눈앞에 로봇이 보였다.
저게 세계 대회에 나갈 로봇인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와 세련된 디자인.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퀄리티였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태영은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실례합니다.”
태영은 개미 같은 목소리로 외치곤 안으로 들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 놀라웠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움직이는 거겠지?
놀라울 정도로 멋있는 로봇에 흠뻑 빠진 태영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찰칵.
세상에, 이리 찍어도 저리 찍어도 너무 멋지잖아!
와. 나 로봇 좋아하네?
태영은 새삼 자신의 새로운 취향을 깨달아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영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꺅!”
태영이 비명을 질렀다. 캐비닛 옆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느라 상체를 탈의한 유일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안한데 소리 질러야 하는 사람은 니가 아니라 나인 것 같은데?”
일반은 얼른 교복 단추를 잠그며 멋쩍게 웃었다.
“앗, 미안!”
태영은 두 손까지 모아 사과했다.
“정말 정말 미안해. 소리 질러서 미안하고, 멋대로 로봇 사진 찍은 것도 미안하고. 암튼 다다다 미안해. 사진은 당장 지울게.”
“아니야. 됐어. 대신 사진 좀 보여 줄 수 있어?”
일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영이 곧장 핸드폰을 넘겼다. 하지만 액정 속 사진을 보던 일반의 표정이 돌연 굳어졌다.
“너 진짜 실망이다.”
태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일반을 쳐다봤다. 그러자 일반이 장난이었다는 듯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망이야. 사진 다 흔들렸잖아. 다시 찍어도 돼.”
“진짜? 다시 찍어도 된다고?”
“응. 대신 잘 좀 찍어 줘. 실물보다 더 멋지게 담기는 어렵겠지만.”
“그러게, 실물이 더 멋진 것 같아. 나 이렇게 고퀄리티 로봇은 처음 봐.”
로봇을 보는 태영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런 태영을 일반은 귀엽다는 듯 쳐다봤다.
“아, 근데 사진 어디 올리면 안 되는 거 알지? 너만 보는 거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좀 찍어 볼게. 사실 나 기자 지망생이거든. 좋은 기자가 되려면 사진도 잘 찍어야 된다고 그랬어.”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태영은 앉았다 일어났다 다리까지 쫙쫙 벌리며 아주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일반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진을 다 찍은 태영은 일반이 저를 보고 웃고 있자 의아한 눈길로 바라봤다.
“왜 웃어?”
“귀여워서. 너 2반 모태영이지?”
“와, 어떻게 알았어?”
“모를 수가 없던데? 너 물리 시간에 맨날 복도에서 벌서고 있잖아. ‘모태영!’ 하는 물리 선생님 목소리가 우리 반까지 들리거든.”
태영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망할. 유일반에게 물리 시간에 맨날 벌서는 애로 찍히다니. 쪽팔려!
태영은 빨리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망한 이미지를 어떻게든 복구하고 싶었다.
“맞다! 너 나 기억 안 나? 왜 입학식 전날 우리 만났었잖아!”
“입학식 전날?”
전혀 모르겠다는 일반의 표정을 보며 태영은 괜한 말을 꺼냈나 싶었다.
“아아, 아니야. 기억 안 나면 말고. 그럼 난 이만.”
“모태영!”
태영이 후다닥 동아리방을 나가려는데 일반이 태영의 이름을 불렀다. 태영이 고개를 돌려 일반을 쳐다봤다. 그러자 일반이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방과 후에 시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