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의 마리오네트-123화 (123/162)
  • 123화

    흥미로 가득한 얼굴에 피가 식었다.

    멋대로 미뉴엣의 몸을 차지하고는 그 애의 목숨을 인질로 삼는다.

    이렇게 해서 에덴이 얻는 게 뭐지?

    감정이 한도를 넘어서니 외려 머리는 차가워졌다.

    “……너, 대체 바라는 게 뭐야.”

    “뭐일 것 같아?”

    처음에는, 에덴이 그저 방해물을 제거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점점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서들이 늘어났다.

    내가 페불라를 의심하도록 그렇게 공을 들일 필요가 있었나.

    구태여 미뉴엣을 삼킨 게 겨우 나와 크루엘로를 이간질하기 위해서라고?

    그건 이미 실패했잖아.

    어차피 다음 몸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살려고 발버둥 친다는 추측도 어긋난다.

    가장 이상한 점은 그래, 그가 여전히 성력을 쓰고 신앙을 입에 담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페불라를 마음 깊이 섬기고 있어. 너희의 어설픈 신앙에는 비할 바 없이 신실하지.”

    나는 에덴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미뉴엣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웃는 그 표정은 어느 광신도의 것을 닮았다.

    “너를 진정 마지막 신도로 남기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란다.”

    내 부모님.

    그들은 사랑도, 이득도 없이 오로지 나를 낳기 위해 맺어졌다.

    당신들의 혈육이 페불라의 마지막 신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신도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어차피 사라질 이름이라면 적어도 그 마지막만은 손에 쥐길 바랐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오롯이 페불라를 위해 살아왔기에 생긴 욕망이었다.

    그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 믿었기에.

    처음, 다른 신도들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신도의 대부분은 노인이었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 어머니 외 리나뿐이었으나, 그녀조차 제법 나이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리나가 아이를 품었다는 착각이 내 부모님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참사가 벌어졌다.

    어떻게 그런 무가치한 이상을 위해 가족 같은 이들을 베어 내고 스스로의 생명까지 포기한 걸까.

    나는 내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보았던 그 눈빛, 다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맹목적인 신앙이 내 눈앞에도 있었다.

    이제야 나는 에덴에게 느꼈던 불쾌한 친근감의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대답이 없네. 아무래도 짐작 가는 게 없는가 봐.”

    뒤늦은 깨달음이 새로운 지침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

    상식과 감정으로는 에덴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와 나눈 대화를 되짚었다.

    비가로 죽기 직전, 그가 입에 담은 말들이 조각조각 머릿속을 떠다녔다.

    페불라의 신도를 만나 반가웠다. 호의를 베풀었다. 형편없었다. 실망했다.

    신을 의심하길 바랐다. 다음엔 더 자연스럽게 판을 만들겠다.

    그 말대로라면 내가 페불라를 의심하도록 한 건 그의 호의였다.

    어떻게 그게 호의가 될 수 있을까?

    “두 분은 파문되실 거예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상관없다. 우리는 그것으로 너를 마지막 신도로 만들었으니까.”

    “그러니 너는 견뎌 내기만 하면 돼. 이게 네 마지막 시련이라고 생각하거라. 그 끝엔 더없는 영광이 널 기다릴 테니.”

    “……시련.”

    무심코 내뱉은 말에 에덴의 표정이 변했다.

    확신이 들었다.

    “너는 날 시험한 거야.”

    그는 내 신앙심을 확인했다.

    잠깐만.

    시험이라는 키워드에 흘러가듯, 마믹이 건네준 자료가 떠올랐다.

    「성자께서 레카논의 성물을 전해 주셨다.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를 함께 주셨는데 그것이 의아하여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해 주셨다.

    ‘저는 고대신의 성력이 어디까지 변형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면 교단이 품을 수 있는 교인 또한 늘어날 테니까요. 정령은 개중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당시 에덴이 바란 건 교세의 확장.

    그러나 보네티의 위세가 약해지고, 검은 뱀에서 페불라의 이름이 사라진 걸 보면 뜻대로 되지는 않았나 보다.

    그러면 이후, 그는 무슨 일을 벌였나.

    에덴은 고대 교단을 짓밟았다.

    황제에게 목줄을 걸었다.

    그리고…… 모리온을 키워 냈다.

    교단의 네크로맨서들은 모리온을 삼킨 이가 악마가 될 거라 믿었다.

    〈운명〉에서 서술하길 그 악마는 현 신전을 짓밟고 세계를 망가뜨리고 문명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에덴은, 여전히 페불라를 섬기는 그는 무엇을 바랐나.

    그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교단의…… 부흥?”

    사람이 신을 찾는 순간은 절실한 때다.

    사방이 암흑으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희망을 찾고 구원을 바란다.

    나를 마지막 신도로 만들기 위해 신도들을 모조리 살해한 부모님처럼, 신의 존재를 돋보이려고 악마를 끌어낸 거라면.

    그걸 위해 대적할 만한 교단들을 모조리 정리했던 거라면.

    애초에 그 자료가 그저 에덴의 진심을 드러냈던 거라면.

    “제정신이 아니야.”

    몸이 떨린다.

    차라리 억측이길 바랐으나 에덴의 두 눈에 번진 것은 분명 희열이었다.

    내가 단편적으로 내뱉은 말만으로 내 생각을 알아차린 것처럼.

    하하, 그의 입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는 여전히 미뉴엣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그건 도저히 미뉴엣의 웃음소리로 들리지는 않았다.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에덴의 목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이나 부드러워졌다.

    등줄기를 타고 오싹, 소름이 돋았다.

    뒷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을 견디고 나는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개소리하지 마. 너 같은 걸 이해할 사람은 없어.”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눈을 휘어 웃었다.

    그러며 나온 말에는 즐거운 기색이 깊이 배어 있었다.

    “맞아, 너를 시험했지. 크루엘로가 통 말을 듣지 않아서 말이야. 세상엔 악역이 필요한데 그러기 싫다잖아.”

    나는 반사적으로 크루엘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모리온의 힘은 쓰고 싶은데 삼켜서 악마가 되긴 싫다며, 되지도 않게 욕심을 부리잖아.”

    지금 상황을 반절도 알아듣지 못했을 텐데도, 그는 침잠한 눈으로 에덴을 바라볼 뿐이다.

    “곤란했지, 내가 그 배역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그러면 선역을 맡을 사람이 없으니까.”

    배역을 대신한다는 게 설마, 크루엘로를 집어삼킨다는 말인가?

    모리온을 흡수하게 한 이후 그 힘을 뜻대로 통제하기 위해서.

    완전히 크루엘로를 도구 취급하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혐오감이 치솟은 그때, 에덴이 내 손을 붙잡았다.

    “아이야, 영웅이 되지 않을래?”

    분명히 주문에 당해 널브러져 있던 몸인데 악력이 믿기지 않게 강했다.

    지금 같은 몸 상태로는 도저히 그 손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네겐 자격이 있어. 페불라를 의심하도록 판을 깔아 두었는데도 강대한 성력을 쏟아 내는 걸 보면, 여전히 신을 믿는 걸 보면 말이야.”

    “이거 놔!”

    “내가 밉지? 나를 증오하지? 나를 죽이게 해 줄게. 그건 완전한 죽음이 될 거야. 내가 크루엘로를 집어삼키면 모리온이 내 성력을 근본부터 파괴할 테니까.”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에 내가, 시오라 보네티가 비쳤다.

    그는 입꼬리를 양껏 끌어 올리며 웃었다.

    “어쭙잖은 정을 잘라 내기만 한다면 돼.”

    정이라고?

    “새 시대의 불빛이 될 아이가 페불라 외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우습잖아?”

    “그 말…….”

    “크루엘로를 끊어 내는 건 내가 할게. 아니지, 네가 원한다면 저 아이인 척 흉내도 내 줄 수 있어. 나는 그런 걸 정말 잘하거든.”

    에덴은 내 손을 억지로 끌어당기더니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두 뼘가량 되어 보이는 단검.

    칼끝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

    “미뉴엣 보네티를 죽여.”

    속이 메슥거리고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를 뿌리치고 싶은데 몸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뱀은 속삭임을 멈추지 않는다.

    “가보트 보네티를 죽여. 그 외에 정이 붙은 이가 있다면 모조리 숨통을 끊어 내.”

    그러면 네게 전부를 줄 거야.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귀를 잘라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에덴이 내 손을 끌어당겼다.

    내가 억지로 쥐고 있는 칼 또한 딸려 움직인다.

    날붙이는 순식간에 미뉴엣의 목에 가까워졌다.

    “……놔.”

    안 돼. 하지 마. 내가 미뉴엣을 죽이게 하지 마.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나는 에덴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으나 그대로 굳어 버린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그 과정이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살갗을 갈라놓으려던 순간.

    “…….”

    투둑, 붉은색이 점점이 바닥을 물들인다.

    핏방울은, 크루엘로의 손바닥에서 나오고 있었다.

    단검을 가로막고 대신하여 꿰뚫린 그의 손에서.

    안도의 숨이 터졌다.

    “하아…….”

    크루엘로는 간단히 단검을 빼앗고는,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던졌다.

    에덴이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

    “물렁하긴.”

    그러나 그것으로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스르릉, 스산한 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크루엘로는 검을 빼 들고 무감하게 에덴을 내려다보았다.

    뭘, 하려고.

    도로 숨통이 조여들었다.

    “하기야 아직은 어린아이니까 어쩔 수 없지.”

    에덴은 제게 향하는 칼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거기서 잠깐도 시선을 떼어 낼 수 없었다.

    “네가 언제까지 남한테 떠맡기며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안 돼요, 크루엘로.”

    “어쨌거나 내가 바라던 대로 되었으니 눈감아 줄게.”

    “하지 말아요, 죽이지 마!”

    소리쳤으나 크루엘로의 검은 주저 없이 움직였다.

    에덴을 향해, 미뉴엣을 향해 날붙이가 날아간다.

    몸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 와 손을 뻗는대도 닿기엔 늦었다.

    그리고.

    “또 보자.”

    “제발, 로이!”

    퍼억!

    칼날 대신 칼등이 에덴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나,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다.

    내가 그리던 참상은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그러려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불식간에 내뱉은 이름 때문인지.

    에덴을 기절시키고 크루엘로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구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야.”

    “…….”

    “이 여자는 끝났어.”

    미뉴엣의…… 끝.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허세였어?”

    “……미뉴엣을 죽인다고 한들 의미 없는 것도 마찬가지야, 크루엘로. 어차피 다음 몸으로 넘어가면 그만이니 차라리 살려서 가둬 두는 게 낫잖아.”

    “몸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꼴 같은데.”

    “그건─!”

    “그냥 네가 그러길 바란다고 말하지 그래, 시오라.”

    아니지, 그는 문득 소리 내어 웃었다.

    “널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네.”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크루엘로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약간의 웃음기마저 서려 있었으나 그 이면엔 그림자처럼 검은 감정이 달라붙어 있었다.

    “거기서 왜 나온 거야.”

    “…….”

    “내가 너한테 많은 부탁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거 하날 들어주기가 어려웠어?”

    “……내가 안 나왔으면 전부 죽었어.”

    “그편이 나았을걸.”

    차라리 그가 나를 비꼬거나 조롱하려는 거라면 좋았을 텐데.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크루엘로. 왜 혼자 여기에 온 건지, 어째서 모리온을 쓴 건지.”

    “내가 가진 의문보다는 적네.”

    “크루엘로.”

    “궁금해할 거 없어. 나는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거든. 누가 죽는 꼴을 보느니 그편이 낫겠다고 판단했고 결론 난 대로 움직였을 뿐이야.”

    나는 무어라도 반박하려고 했으나 도로 입을 다물었다.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지내던 곳에 예언서가 떨어졌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