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결심한 직후부터 크루엘로는 마법을 익혔고, 은밀히 교단의 신전을 드나들었다.
부활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끌어모았다.
그러나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
답은 인간의 영혼에 있었다.
…….」
「…….
그 조그만 조각으로 육체 전체의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듯했다.
…….」
「…….
베아티투도를 이용하여 조각의 힘을 보충하기로 했다.
…….」
영혼 조각 없이는 부활의 진을 가동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크루엘로는 에이미 로열샌드를 온전히 보내 주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런 만큼 비가를 향한 집착은 더더욱 강해졌다.
“네가 바라지 않아도 상관없어.”
크루엘로는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휘슬에서 본 비가를 떠올렸다.
[그게 제가 정말 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알잖아요, 전부 소공작님의 욕심이에요.]
[정말 저를 위하신다면 그냥 다 잊어버리세요. 무덤을 파헤치지 말고.]
엄밀히 말해 그건 환각이었을 뿐, 비가가 내뱉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크루엘로는, 비가가 살아 있었다면 그런 말을 했을 거라는 걸 안다.
연고지 없는 하녀.
기가 죽는 게 당연한 환경임에도 그녀는 도무지 눈치를 보는 법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했고 틈만 나면 엇나가는 크루엘로의 등짝을 두드려 댔다.
그가 세상 사람들을 다 에이미로 볼 때, 정신 차리라며 그를 혼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그의, 첫사랑이었다.
핏방울이 맺히도록 입술을 깨문 사내는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품에 넣어 둔 병을 꺼내 내용물을 바닥에 흘려보냈다.
액체는 크루엘로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비가를 중심으로 부활의 진을 그려 냈다.
이제 필요한 건 육신과 영혼 조각. 그리고 조각의 힘을 부풀릴 에너지원.
조그만 조각이 부풀어 되살아나는 이가 온전히 비가일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부활의 진은 한 번도 사자를 되살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있는 건 오로지 이론뿐이었으니.
그러나 그 파편이라도 좋았다.
그거라도 손에 쥐어야겠다.
크루엘로는, 그러기 위해 살아왔다.
“네가 뭐라고 말하더라도.”
멋대로 행동하다 죽어 버린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나 그의 다짐이 마냥 단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혹여나 이상을 눈치채고 저를 쫓아올까, 장례식장에 묶어 둔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이 저를 망설이게 했다.
시오라 보네티를 만나고 그녀와 가까워지고 마음이 물들면서, 크루엘로는 꽤 오래도록 망설였다.
제가 그릇된 일을 벌이려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망설임에 정점을 찍어 준 이 또한 시오라 보네티였다.
스스로의 목숨이 가볍냐는 질문에 그녀가 내뱉은 답, 표정, 태도.
크루엘로의 고백으론 개중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었다.
“진지해지지 말아요, 이제 열쇠 모으기도 거의 끝나 가는데 뭐 어때요.”
그래, 기어이 무슨 짓을 해서든 모리온을 없애야겠단 말이지.
제 목숨 같은 건 숭고한 사명을 위한 도구란 말이지.
크루엘로는 시오라의 의지를 이해했다.
결심했다.
그 손에 모리온이 닿을 일은 없을 거라고.
비가를 되살린 후엔 이 거대한 에너지원을 스스로 없애 버릴 거라고.
설사 그러며 제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긋지긋한 꼴을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자조하며 크루엘로는 손을 뻗었다.
마침내 그가 모리온에 닿았다.
우우웅, 부활의 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
“……없어.”
헌화하며 눈을 부릅뜨고 살폈으나 대원로의 시신에서 열쇠를 찾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인 척하면 세 번 더 꽃을 올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쯤 되니 확신이 들었다.
열쇠는 이 할아버지한테 없다.
밖에 빼놓은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찾는담.
“에휴.”
테타니오에게 면회라도 가 볼까.
크루엘로와 논의하고 싶었으나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기다릴 수도 없기에 일단은 보네티로 돌아가기로 했다.
또 연락이 오겠지.
괜스레 남는 미련에 나는 관 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입구 쪽에서 작게 소란이 일었다.
연갈색 장발의 사내가 부축을 받아 들어오고 있었다.
“……에덴?”
테타니오는 잡혀 갔는데 시체가 걸어 다니네.
에덴의 몰골은 그대로 관에 들어가도 이상치 않을 정도였다.
그가 실신해 버려서 크루엘로가 장례를 주관한다고 했었지.
이제는 깨어났나 본데.
에덴은 곧장 관으로 다가갔고 나를 지나갈 때는 묵례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대원로의 관 앞에 도착해서는 기어이 엎어져 오열했다.
보네티 백작에 이어 이번에도, 악인의 죽음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박탈감이 섞인 것 같기도 했다.
진짜 내가 죽을 때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텐데.
시신을 수습해 줄 후인조차 없으니 신전에 방치된 채로 영영…….
“저 사람 누구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상념을 찢고 들어왔다.
휙 고개를 돌리자, 잘못 들은 게 아니란 듯 말끔한 얼굴이 보였다.
검은 옷 때문에 유독 더 희어 보이는, 미뉴엣이었다.
“미뉴엣? 왜 여기에 있어?”
“잠깐 다녀온다는 애가 영 소식이 없길래 데리러 왔어. 또 다쳤나 해서.”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그것참 다행이네.”
미뉴엣이 퍽이나 믿긴다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군데. 너랑 인사했잖아.”
“누구. 아, 에덴?”
그녀가 가리키는 사람을 쳐다봤다가 퍼뜩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미뉴엣이 그걸 왜 물어보지? 잠깐만.
원로회와의 기 싸움 때문에 미뉴엣한테 약혼자는 없다.
화이트데저트에 미의 신의 가호라도 흐르는지 에덴의 얼굴은 퍽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절대 안 돼, 미뉴엣.”
“뭐?”
“젊어 보여도 나이 차이가 얼만데! 결혼 경력까지 있는데 네가 뭐가 아쉬워서!”
허, 눈썹을 까딱한 미뉴엣이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분명히 실소였다.
“너, 내가 파혼하라고 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내 혼사에 관심이 많네.”
“아니, 이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같아.”
“그래서 진짜로 관심 있다는 거야? 왜! 내가 다른 사람 찾아볼게. 어떤 사람이 좋은데. 우는 남자가 취향이야?”
“장례식장에서 실례야.”
그…… 건 그렇지.
죽은 게 악당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으나 표정이 부루퉁해지는 건 어쩌지 못했다.
그녀는 조금 전과 다른 느낌으로 웃었다.
“관심 있어서 본 거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뭐라고 할까.”
“따지자면?”
“기분이 나빠서.”
응?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어, 그거…….”
나도 그런데.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불쾌한 감각이 목덜미를 붙들었다.
억지로 영혼이 끄집어내지듯 감각이 분리되었다가 심해에 처박힌 듯한 충격이 일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추락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허억!”
불이 깜박이는 것처럼 오감이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잠깐 잃어버렸다가 되살아난 감각은 폭력적일 만큼 생생해서 호흡이 드나드는 것조차 괴로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벌벌 떨었다.
이게 뭐야. 방금 건 대체?
가까스로 그 충격을 이겨 내고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새하얀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모양새 좋은 손과 푸른 소매까지.
“내 옷이…….”
원래 이랬던가.
말을 다 내뱉을 필요도 없었다.
성대를 울리는 목소리는 시오라의 음성이 아니었다.
서둘러 고개를 들자 시야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한 건물에 높게 치솟은 기둥들.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거대한 여성체 신상.
페불라의 신전이었다.
내가 일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나의 집.
또 꿈인가?
문득 얼마 전에 꾼 꿈을 떠올렸으나 그럴 리 없었다.
그렇게 믿기엔 조금 전의 감각이 너무도 생생했으니까.
나는 정말 내 몸으로, 페불라의 신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왜?”
허망한 물음이 뻑뻑하게 갈라진다.
꿈이 아니라면 왜 이렇게 된 거지? 설마 또 죽었나?
목덜미를 끌어당기던 종전의 감각이 살해당하는 순간이었을까.
내가 죽은 거면, 그러면 바깥은 어떻게 되는 거지.
열쇠는 거의 모았고 크루엘로가 그 힘을 취할 리는 없다.
그러니 언젠가 세월이 흘러 모리온이 부활하더라도 당장은 무사할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건가?
아니지, 돌아간다는 말조차 이상했다.
나는 원래, 여기의 사람이었으니까.
“아, 잠깐. 잠깐만.”
마른세수를 하는데 손이 내 것 같지 않게 떨렸다.
침착해, 무겁게 생각하지 마. 별일 아니야.
감정을 덜어 내는 건 수십, 수백 번도 더 해 봤으니 이번에도 할 수 있다.
짝 소리가 나게 양 뺨을 내리치자 정신이 들었다.
설사 그 순간 시오라 보네티가 죽고 내 역할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납득할 수 없다.
누구라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말을 받아들이진 못할 것이다.
바깥의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냥, 네 번째 몸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돼.”
나는 곧장 달렸다.
어릴 적, 선배 신도들이 모조리 죽고 부모님마저 목숨을 끊은 이후.
이 신전이 아주 지긋지긋해진 적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신전 전체를 쏘다니며 출구를 찾았다.
외부와 격리되어 지낸다고 한들 이곳 자체도 결국 대륙의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테니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있으리라 믿었다.
어렸던 나는 끝내 그 문을 찾지 못했고 결국 마지막 신도로서의 삶을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단 한 군데, 의심 가는 곳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