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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의 마리오네트-70화 (70/162)
  • 70화

    “황명입니다, 공작전하. 아무리 전하라 하신들 간섭하시는 건 중죄입니다.”

    “네이밍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지. 나는 지금 더 큰 죄를 고발하려고 하는데.”

    “…….”

    “실은 황궁에 폭탄이 깔려 있단 말을 들었거든.”

    뭔 소리야.

    족히 수백 년은 버텨 온 황궁에 폭탄에 대한 방비도 안 되어 있으려고.

    황당하다는 기색을 읽었는지 크루엘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실은 내가 해 뒀다네.”

    “오…….”

    “지금 장난하실 때가 아닙니다, 전하.”

    “원한다면 증거를 보여 줄까. 제대로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 말과 함께 크루엘로가 손가락을 튕겼다.

    퍼엉!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공교롭게도 딱 황궁 쪽이긴 했다.

    보네티저부터 거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무언가 터졌을 때, 이 정도 소리가 날 것 같기도 한데.

    “…….”

    오늘도 크루엘로가 그다운 거짓말을 한다며, 제대로 듣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건 기사단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나는 슬쩍 물었다.

    “……진짜예요?”

    아니지? 페이크지?

    크루엘로는 들은 척도 않고 기사단을 향해 한 걸음 걸었다.

    그러면서 뒤로 돌린 손으로 내 반지들을 돌려주었다.

    게이트 반지…….

    주는 의도가 너무 확실해서 다소 머뭇거렸으나 받아 들었다.

    “자수까지 했는데 범인을 내버려 둘 생각인가. 이후의 책임을 경들이 어찌 감당하려고?”

    “……그렇다 하더라도 시오라 보네티 또한 동행해야─.”

    에휴, 모르겠다.

    뒷수습은 얘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더 듣지 않고 반지를 문질렀다.

    시야가 뒤집혔다.

    ***

    “그래서.”

    지끈지끈 두통이 인다.

    황태자는 머리를 짚고,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한숨을 흘려 냈다.

    황궁의 대전.

    황제를 대신하는 몸으로서, 그 어떤 자리에서보다 위엄을 지켜야 했지만 그녀는 도통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하늘색 머리칼의 사촌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황태자는 그 뒤에 선 황실 기사들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데려오라고 한 사람은 잡아 오지도 못한 주제에 골칫덩이나 떠안고 오다니.

    그러나 지금은 부하들을 추궁할 때가 아니었다.

    “로비에르 궁이 터진 게 자네 때문이란 말인가, 공작.”

    크루엘로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하도 안 쓰시길래 철거해 드렸습니다. 인명 피해는 없는 듯하니 다행이네요.”

    “크루엘로, 이건 황실의 행사다. 아무리 너라고 한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그러면 잡아넣으시지요. 아, 증거가 부족하시려나.”

    크루엘로는 구태여 손을 한 번 더 튕겼다.

    어디선가 또 건물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태자는 저 빌어먹을 손가락을 언젠가 잘라 버리겠노라 중얼거렸다.

    “안 잡아가십니까?”

    사내는 도발적으로 양손을 펼쳤다.

    그러나 그에게 검을 들이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바로 뒤에 도열한 기사들이 있었음에도.

    황태자가 신음하듯 말했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시오라 보네티를 죽여서 데려오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조사일 뿐이야.”

    “…….”

    “제보가 들어온 이상 조사는 해야 해. 그 과정은 반드시 공정하고 깨끗할 걸세. 내가 책임지지.”

    “종교 재판으로 넘어가게 될 텐데 무슨 수로?”

    “그래서 알자마자 기사들을 보낸 걸세. 황실에서 서둘러 재판을 열어 버리면 항의를 받을지언정, 이쪽 소관이 될 테니까.”

    “전하께서는 일이 그리될 거라 장담하실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들은 직후, 황태자는 그가 제게 시비를 걸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란 건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고 알 수 있었다.

    “그럴 능력이, 있으십니까?”

    눈, 그 선명하고 붉은 눈동자.

    평소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던 그 눈빛은 어느 때보다 흉흉했다.

    바싹 수축한 홍채 주름 때문에 열린 동공이 짐승의 것을 연상시킨다.

    여상한 태도에 가려져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지만, 정말로 미치광이 같은 눈빛이다.

    황태자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여자에 미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설마설마했거늘.”

    “하하, 딱히 ‘여자’라 미친 건 아닙니다. 잃어 본 게 두 번인데 세 번째도 지키지 못하면 그건 천치가 아닌가요.”

    “날 못 믿겠다는 말인가?”

    “모든 게 전하의 뜻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니까요.”

    크루엘로는 웃었다.

    처음에는 엷게, 그러나 곧 폭소로 이어졌다.

    대전이 미친 듯한 사내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 외의 사람 모두가 질린 표정을 짓는데, 돌연 웃음이 멈추었다.

    “너도 알잖아, 폴라리스.”

    크루엘로는 황태자의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그래, 어린 날에는 서로를 이렇게 불렀다.

    그리 가깝지 않을지언정 그들은 사촌이었고 공유한 유년도 있었으니까.

    그는 느리게 걸음을 옮겨 폴라리스에게 다가갔다.

    “내가 이렇게까지 방만하게 굴어도 네가 날 잡아가지 못하는 것도.”

    크루엘로가 황좌에 달린 장식물 하나를 떼어 냈다.

    “온갖 곳에 노골적으로 심어 둔 눈과 귀를 어쩌지 못하는 것도.”

    도청용으로 깔아 둔 마도구.

    파삭, 힘없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그의 손에서 짓뭉개졌다.

    그 잔해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털어 내며 그는 비죽 입꼬리를 틀었다.

    “내가 왜 시오라를 보내지 않았는지도, 모두 같은 이유라는 걸.”

    황태자는 의자의 팔걸이를 힘주어 쥐고 어둑한 눈으로 크루엘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그것뿐.

    “참 애잔해, 너나 나나 말이야.”

    용건을 마쳤다는 듯이 크루엘로가 몸을 돌렸다.

    도열해 있던 기사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직 태자전하의 말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보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결의를 증명하려는 듯 그들이 검을 뽑았다.

    용기는 참 가상하다만.

    크루엘로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구태여 검날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날에 베이는 일은 없었다.

    “무, 무슨!”

    몸을 피한 건 크루엘로가 아니라 검 쪽.

    한둘뿐 아니라 모든 이가 쥔 검이 그랬다.

    크루엘로가 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감히 검을 들이대지 못한다.

    그야말로 희극이 아닌가.

    그 우스운 광경을 조롱하듯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다가 불현듯.

    “아, 선물을 하나 전하고 가겠습니다.”

    크루엘로는 기사 하나가 쥔 검을 빼앗아 들고는 다른 기사를 향해 휘둘렀다.

    누가 말릴 새도 없었다.

    “크루엘로!”

    갑작스러운 상황에 공격당한 기사는 저항도 못 하고 쓰러졌다.

    황태자가 대경하여 소리쳤으나 그다음 순간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이의 얼굴이 변했다.

    명백히, 자객이라는 의미였다.

    쨍강, 크루엘로는 그 위로 한 번 쓴 검을 버렸다.

    “이걸로 내가 네 목숨을 구해 준 게 몇 번째더라.”

    하기야, 네 목숨은 네 것이 아니니 감사할 일도 아닌가.

    독설을 남기고 크루엘로는 시원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아무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

    ***

    “어려운 걸 요구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시오라 보네티가 신전에서 어떤 수상한 언행을 했는지만 증언해 주십시오.”

    마믹은 불안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녀의 앞에 있는 사람은 황실에서 나온 기사였다.

    그는 중요한 일이 있다며 만남을 청하고는, 대뜸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시오라 보네티가 검은 뱀 교단의 교인이었다느니.

    레카논의 폭도들 사건도 신전의 신뢰를 얻기 위해 짜고 친 거라느니.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마믹은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시오라는 딱히 흑마법사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나 정치적인 결정에 있어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마믹에게 있는 선택지는 황실의 줄을 잡느냐, 잡지 않느냐뿐.

    그러나 그녀는 이미 신관 쪽을 택했기에 굳이 다른 권력에 기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씀드린 게 전부예요. 시오라 신도님께서는 신전에서 수상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옹호라고 하기에도 옹색한, 그야말로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믹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그걸 보고 조금만 더 위협하면 원하는 답을 얻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황실 기사가 인상을 험악하게 바꾸었다.

    “설마 흑마법사에게 동조─.”

    “그만하십시오.”

    기어이 로 블루가 검을 뽑았다.

    “로 블루 경!”

    “성녀님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객은 받지 않겠습니다. 돌아가십시오.”

    “검은 뱀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경고는 한 번뿐입니다. 다음에는 휘두르겠습니다.”

    신전과 직접적으로 척을 질 생각이 없는 기사들은 이를 갈며 물러났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마믹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성녀님?”

    “괘, 괜찮아요. 고마워요, 로.”

    그녀는 로 블루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보다 그분이 검은 뱀이라니,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검은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마믹은 어쩐지 필요 이상으로 안심하고 말았다.

    시오라 보네티와 대단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음에도, 진실한 본모습을 털어놓을 게 그녀뿐이었으니까.

    ***

    내가 반지를 이용해 온 곳은 크루엘로의 정보 길드였다.

    뭐, 이 와중에 다 무너진 교단의 본거지에 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당분간은 길드 건물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개판을 치랬다고 정말 개판을 쳐 놨네.”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 그 비밀 조사관에게 난장판을 벌여 크루엘로를 부르라는 말을 한 게 다름 아닌 나이긴 했다.

    하지만 문짝도 남아나지 않는 건 심하지 않나?

    문짝은 다 부서졌고 온갖 곳에 그을린 자국이 났다.

    도저히 숨어서 쉴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다른 곳을 찾아야겠다.

    하지만 그전에.

    “뭔가 괜찮은 게 있을지도.”

    나는 자연스럽게 공간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왜! 뭐!

    내 수중엔 지금 땡전 한 푼 없다.

    돈 없이 무슨 도피 생활이람.

    크루엘로는 반지가 아니라 돈을 쥐여 줘야 했어.

    그러나 온갖 곳을 탈탈 털어도 동화 하나 나오지 않았다.

    대신하여 발견한 건 웬 메모였다.

    「수페르 광장 우측 세 번째 골목, 푸른 지붕의 이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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