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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의 마리오네트-60화 (60/162)
  • 60화

    “크루엘로, 처리할 수 있겠어요?”

    “여기선 마법 저항력 때문에 좀 힘들어요. 혹시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결박 주문은 속도가 느렸다.

    다른 신성 주문을 써서 공격하려고 해도 곤란했다.

    즉사시키려면 고위 주문을 써야 했는데 성력을 모으는 동안 들켜 버릴 게 뻔했다.

    마법 저항력이라도 없는 곳으로 가려면 아레스를 미행해야 할 텐데 저렇게까지 예민하면 그것도 어렵다.

    “꾀어낼 미끼라도 있으면 나았겠지만.”

    나는 쿨쿨 자고 있는 딜런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봤다.

    “예? 인질이요? 이거 봐, 신전 인간들도 똑같다니까. 그렇게 고상한 척하더니 인질 놀으음?”

    “실언이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으음? 아뇨, 아레스 님은 가족도 친구도 없는 천상 외톨이십니다. 그나마 저와는 말을 좀 섞으셨지만, 전형적으로 인생 잘못 산 인간이죠.”

    “……저기, 왜 그렇게 노려보시는지?”

    생각하니 열받네.

    사람이 바쁘게 살면 가족도 친구도 없을 수도 있지.

    나이젤리아부터 시작해서 검은 뱀 교단은 하나같이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지들도 친구 없으면서!

    아무튼 간에 곰 사냥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곧 해가 뜨겠네요. 일단 돌아가요.”

    크루엘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자고 있는 딜런을 그의 집무실에 도로 처박고 철문을 나왔다.

    그러고는 크루엘로가 열어 준 게이트로 쏙 들어가면 내 침실이 짠!

    그러면.

    “어디 다녀와?”

    미뉴엣도 짠.

    “허어억!”

    나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살면서 제일 놀랐어!

    “미, 미, 미뉴엣? 네가 내 침실에는 왜?”

    “방금 게이트 마법, 전하께서 열어 주신 거지? 이 새벽에 뭘 하다 왔을까. 전하와 데이트를 하고 온 건 아닐 거고.”

    미뉴엣이 쭈그려 앉으며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다정한 미소가 괜스레 섬뜩하여 고개를 돌린 순간, 이번에는 가보트와 눈이 마주쳤다.

    “가보트!”

    그는 그저 침실의 문턱에 서 있기만 했지만, 나는 2차적으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피아니시모도 없는데 왜 저렇게 기척이 옅어!

    정령 닮아 가나.

    “뭔 꿍꿍이를 꾸미는 건 좋은데 일찍 좀 다녀라. 그 자식을 어떻게 믿고 이 시간까지 쯧.”

    “그러게 말이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싶네. 휘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말이야.”

    “무무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 사과할 일이 하나 있어, 시오라. 미안한데 네가 소몬 후작에게 받았다는 선물이 너무 궁금해서 좀 열어 봤어. 가족이니까 용서해 줄 거지?”

    망할.

    교인의 옷과 패를 이미 봤다는 이야기다.

    이어 미뉴엣의 시선이 손에 낀 반지로 향했다.

    크루엘로가 준 거 말고, 뱀이 휘감고 있는 나이젤리아의 반지.

    미뉴엣이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역시 나는 얘가 제일 무서워.

    나는 울면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

    아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아레스는 아니었다.

    어이, 꼬마, 길고양이, 새끼 도둑.

    불리는 호칭은 많았으나 이름은 없다.

    그냥 언제부턴가 길거리에 내던져져서는 악을 쓰며 살아갔다.

    아레스의 인생이 달라진 건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를 돌봐 주던 형은 용병의 돈주머니를 훔치다가 맞아 죽었다.

    갓 성인이 된 나이였다.

    그 비참한 모습을 보며 아레스는 벌벌 떨었다.

    분노보다 슬픔보다 절망보다, 그 무엇보다 공포가 컸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건 아레스의 평생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몸을 사리며 살아가기에 아이는 가진 것이 없었다.

    위험을 무릅써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럴수록 공포는 거대해졌다.

    그러던 중, 또래보다 월등한 아이의 근골을 보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보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해 주마.”

    “저는, 저는 죽기 싫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오, 세상에.”

    아레스는 아직도 그 미소를 기억한다.

    입꼬리가 길쭉이 찢어지며 만들어 낸 형상은 마치 기괴한 가면 같았다.

    “너는 정말 그분의 아이로구나.”

    그렇게 아레스는 교단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 으리으리한 곳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교단의 교리 또한 그의 영혼을 꿰뚫었다.

    죽음을 정복하라, 그건 진정으로 아레스가 바라는 일이었다.

    하나 온정으로 거둬진 게 아닌 만큼, 그의 삶은 이후로도 순탄치는 않았다.

    검은 뱀 교단에서는 재능 있는 고아를 모아 서로 경쟁시켰는데, 마법에 재능이 없는 아레스는 검을 배웠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아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아레스의 생존 욕구를 눈치챈 교단에서는 일부러 그의 공포를 자극했고 몰아붙였다.

    그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기어이는.

    “이야, 식사하고 검만 휘두르더니 기어코 살아남았네. 제일 어린 게 독하기도 해라.”

    “닥치고 꺼져라, 너 따위와 나눌 대화는 없다.”

    “뭐라는 거야, 꼬맹아. 네가 닥쳐야지. 내가 이제부터 네 상급자인 거 몰라?”

    살아남은 이들은 원로가 되었다.

    그게 큐딜이고 아레스였으며, 지금은 무덤에 파묻힌 많은 이들이었다.

    원로가 되어서도 언제 갈아 치워질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지만, 이쯤에는 아레스도 자신감이 붙었다.

    거사가 이뤄질 때까지 살아남을 거라는, 끝내 그분의 강림을 지켜보고 영생을 얻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수확제. 약혼식. 휘슬까지.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써 버렸다.

    큐딜이 사라졌고 교단에서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분께서 내리시는 시련이다.’

    마음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 불안이 답답하도록 폐를 채웠다.

    어린 아레스가 싹틔우고 교단에서 물을 주어 기른 그 공포는 그의 삶을 쥐고 흔들 만큼 강력했다.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선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야 했다.

    그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딜런을 협박해 신전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정보를 캐내서 교단의 일을 돕는 데 그친 것만은 아니었다.

    아레스는 잊을 수가 없었다.

    휘슬에 내려가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허락받았단 기도실.

    신전에 단 하나뿐인 석상 앞에서 기도드리며 그분의 말씀을 듣길 바라는 그 기분을.

    그에겐 계시가 필요했다.

    제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교단에 바쳐 왔다.

    그리고 바야흐로, 결실이 찾아왔다.

    [동이 트는 새벽, 뱀의 독샘이 흐르는 동굴로 향하라. 그곳에 바라는 결과가 있을지어다.]

    머릿속을 꿰뚫듯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텔레파시 마법은 아니었다.

    신성한 공간에서 그런 섬세한 마법을 쓸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아레스에게는 당연히 텔레파시 마법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남의 존재가 느껴지던 그 불쾌한 이질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악마의 목소리는 의외로 깨끗하고 맑았으며 기이한 신뢰감을 주었다.

    기도를 마친 아레스는 눈을 떴고, 곧바로 두 눈에서 눈물 줄기가 흘러내렸다.

    아레스는 울면서 웃었다.

    ‘나는 그분께 버림받지 않았다.’

    아아, 그토록 바라던 확신이 그의 곁에 있었다.

    뱀의 독샘이 흐르는 동굴.

    그게 어딘지, 아레스는 곧바로 알았다.

    세력이 약하던 시절, 교단에는 많은 은신처가 필요했고 그 동굴은 개중 하나였다.

    아레스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으나 위치쯤은 외워 뒀다.

    수도 근방, 미네르바 후작령에 있는 아테나 산맥.

    깎아지른 절벽에서 3m쯤 내려오면 절벽에 뿌리내린 나무가 있다.

    그 나무에 가려진 동굴이 바로 목적지였다.

    일반인은 그 존재를 알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험지였지만, 아레스는 손쉽게 동굴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동굴은 아레스가 별로 선호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서늘하고 습한 데다가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환희에 들떠 있었다.

    그래서 낯선 감각이 그 즐거움을 망쳤을 때 아레스는 진심으로 짜증을 느꼈다.

    “누구냐.”

    동굴의 중반쯤 들어섰을 때, 아레스는 걸음을 멈추며 느리게 검을 뽑았다.

    검이 검집을 나오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진다.

    그 안에는 사내의 섬뜩한 분노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감히 어떤 자가 신성한 계시를 망치려 드는가.

    “어차피 끝은 막다른 길이다. 당장 모습을 드러내.”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위협에 곧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울렸다.

    뚜벅, 뚜벅, 뚜벅.

    동굴의 안쪽에서 후드를 깊이 눌러쓴 이가 걸어 나왔다.

    품이 큰 로브를 입었으나 체구가 크진 않다.

    정체 모를 이는 왼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헐렁한 소매가 그대로 미끄러져 단련하지 않은 손목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위에, 크고 신령스러운 새가 앉아 있다.

    형상은 독수리를 닮았으나 꽁지깃이 유려하게 길고 눈빛은 형형했다.

    ‘정령을 다루는 여자라면…….’

    아레스가 막 상대를 추정했을 때, 그녀가 후드를 벗었다.

    폭포수 같은 은발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가 무감하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미뉴엣 보네티.”

    이어 손등에 앉은 독수리를 날려 보내듯 손을 휘둘렀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왔어.”

    우아하게 날아오른 정령이 크게 날개를 흔들었다.

    아레스는 대검을 틀어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애당초 그건 사내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

    정령의 지휘 아래, 동굴 속에 갇혀 있던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소는 마치 아레스를 경계하듯 그의 주변에서 물러났다.

    단번에 숨을 빼앗긴 사내는 인상을 찡그리며 땅을 박찼다.

    “얕은 수작!”

    대검이 사정없이 허공을 갈랐다.

    독수리가 바람을 흩뿌려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아레스는 숨을 쉬지 않고도 족히 20분은 버틸 수 있었다.

    정령과 저 방해꾼을 찢어 죽이는 데 모자람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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