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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의 마리오네트-56화 (56/162)
  • 56화

    끼이익, 귀가 아프도록 시끄러운 소리가 울린다.

    침입자 발각용인가, 저번 비밀 통로의 그 철판도 그렇고 몰래 잠입하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내가 양쪽 귀를 틀어막는 동안, 크루엘로는 투명 마법으로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감추었다.

    곧, 적의 본거지가 완전히 아가리를 벌렸다.

    “근처엔 아무도 없나 보네요.”

    “그러게요. 있었으면 소리를 듣고 진작……. 크루엘로, 마법 풀렸어요!”

    안 보여야 할 형체가 또렷이 보인다.

    내 말에 크루엘로가 제 손을 내려다봤다.

    느리게 깜박이는 눈을 따라 속눈썹이 오르내렸다.

    “그러게요. 이쪽 계열의 마법을 막아 놨나 본데?”

    무언가 시험해 보려는 듯, 그의 마나가 다양한 형태로 변했다.

    이따금 전기가 튀어 오르고 허공에 물방울이 맺히며 가볍게 바람이 불었다.

    “공격 계열은 얼추 되네요. 바깥으로 나가는 이동만 가능한 것 같고.”

    “휘슬에서 봤던 그런 거예요?”

    “비슷해요. 이 거대한 공간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정도면 돈이 보통 깨진 건 아니겠어요.”

    “구체적으로 말해 봐요.”

    “제국 하나쯤은 살 수 있을걸요.”

    이쪽 교단은 부자구나.

    페불라는 가난한데.

    치솟는 박탈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결심했다.

    부의 재분배가 필요해, 귀중품 보이면 훔친다.

    “은신 계열이 다 막혔으니 옷부터 구해야겠어요.”

    “아하, 옷이요.”

    음. 딱히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겉에 입은 로브를 단단히 여미고 크루엘로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가 바람 소리가 나도록 실소했다.

    “안 뺏어요. 그 옷을 내가 입으면 여름용이 될걸요.”

    “그쪽은 별로 노출이 어울릴 것 같은 타입이 아니니 다른 걸 구해야겠어요.”

    “아닐걸. 몸에 자신 있어요.”

    “그럼 푹 파인 셔츠나 입든가!”

    문 너머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넓었다.

    아치형의 복도를 지나자 사각형 모양의 탁 트인 공간이 나왔는데, 그 크기가 작은 마을만 했다.

    천장에 빼곡히 박힌 마정석이 별처럼 빛났고, 바닥은 얼굴이 비치도록 반질반질했다.

    가운데 공간에는 예배를 볼 때 쓰는 길쭉한 의자가 늘어서 있고, 안쪽 벽면은 오색 찬연한 스테인드글라스로 가득 찼다.

    그 공간을 중심으로 날개가 펼쳐지듯 양옆에 여러 개의 문이 보였다.

    전체적인 색이 희지 않고 검다는 것만 빼면 영락없는 신전처럼 생겼는데, 대신전보다도 화려했다.

    “제국 하나 값이라는 게 진짠가 보네.”

    나는 살짝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가 입을 막았다.

    앞에 사람이 보이진 않았지만, 크루엘로가 위장하기 전에 들키는 건 곤란했다.

    툭툭, 누군가 어깨를 건드렸다.

    놀라서 휙 고개를 돌리자 장신의 사내가 보였다.

    검은 사제복에 로브, 얼굴에는 산양 가면까지 썼다.

    허?

    “가젤이 산양 흉내 내면 불법이에요.”

    “안 놀라네요.”

    실망한 척하며 크루엘로가 내게도 가면을 건넸다.

    “그쪽은 그 키가 신분증이에요. 누굴 속이려고.”

    나는 후드를 벗고 가면을 썼다.

    산양의 얼굴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터라 가면의 주둥이가 길쭉했는데 그 덕에 숨을 쉬기가 편했다.

    사자 가면보단 낫네.

    “그런데 이건 어디서 찾았어요?”

    “바로 옆에 탈의실이 있더라고요.”

    “탈의실? 그럼 나도 괜히 입고 왔네?”

    “패는 없었어요. 아, 푹 파인 셔츠가 아니라 아쉽네요. 가운데를 좀 찢어 볼까요?”

    “너덜거리는 사제복은 매력 없어요.”

    “달링은 취향이 참 확고하시네.”

    사제복에서 매력을 느끼라니, 나한테 그건 잠옷이나 다름없다.

    채비를 마쳤기 때문에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간의 크기에 비해 교인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이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끼고 있었으며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물론 그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진작 망했겠지.

    뭐, 특정 시기에만 모인다거나 그렇지 않을까.

    덕분에 잠입하는 입장으로서는 참 편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내부를 뒤적거렸다.

    한동안은 별다른 소득이 없었으나 어느 순간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도 다른 방보다 문이 컸으며, 무엇보다 그 앞에는 방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기는 했지만.

    ‘여기다!’

    분명 여기에 중요한 게 있어!

    나는 크루엘로와 눈짓한 뒤 그 앞을 스르르 지나갔다.

    그 순간, 크루엘로의 손끝에서 뻗은 마나가 문을 지킨 이를 은밀히 감쌌다.

    “흐아암.”

    늘어지는 하품, 곧이어 그가 스르륵 문에 기대듯 쓰러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덜그럭, 잠겨 있다.

    하지만 인상을 찡그리기도 전에, 나는 쓰러진 이의 허리춤을 보고 말았다.

    ‘열쇠!’

    벨트에 매달린 걸 서둘러 풀어내고 문고리 구멍에 밀어 넣자 곧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렸다.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자, 크루엘로가 경비를 들어 올린 채 따라 들어왔다.

    쿵, 문이 닫히고서야 나는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재밌다.”

    “재미?”

    “맞게 찾아온 것 같네요.”

    내부는 누가 봐도 권력자의 집무실이었다.

    가구는 얼핏 보기에도 다 최상급이었고 책장에는 책과 서류가 빼곡했다.

    벽면에는 오래된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안에 그려진 건 은발을 길게 기른 미형의 사내였다.

    이 방의 주인 같지는 않은데 교단의 높은 사람인가?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아차 싶어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크루엘로가 소파에 사내를 눕혀 놓았다.

    그걸 보고서 나는 성큼성큼 진열장으로 다가가 독해 보이는 술을 꺼냈다.

    “위장해 두려고요?”

    “갑자기 잠들었다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졸던 것만 봐도 성실한 사람은 아니니 속아 넘어갈 수도 있겠지.

    나는 널브러진 이의 입 주위에 술을 붓고, 카펫 위로도 좀 흘렸다.

    이러면 술을 마시다 취해서 뻗은 사람이 완성된다.

    그리고 남은 건……. 음, 내 입에 넣어 봤다.

    “무─!”

    “으엑.”

    뭐가 이렇게 써.

    비싼 것 같아서 먹어 봤는데, 나는 빠르게 후회했다.

    “……그게 뭔지 알고 마셔요?”

    “그냥 궁금해서. 으.”

    “술 좋아해요?”

    “맛없어요. 먹지 마세요.”

    “그럴 생각도 없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을게요.”

    이미 말해 놓고 무슨.

    크루엘로를 째려보자 그는 말없이 진열장 앞으로 가서 지키듯 섰다.

    더 마실 생각도 없거든.

    나는 휙 소리가 나게 고개를 돌리고 본격적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책상이었다.

    서랍을 다 열어 봤지만,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서류만 잔뜩 나왔다.

    실망하며 마지막 서랍을 열려 했을 때 덜그럭.

    “오호라.”

    잠겨 있단 말이지.

    자물쇠는 보이지 않았다.

    특수 잠금이거나 마법을 쓴 것 같다.

    이럴 때 쓰는 만능 도구가 있지.

    “크루엘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려 고개를 든 순간, 나는 그가 무언가를 읽고 있는 걸 발견했다.

    책장에서 뽑아낸 기록인 것 같은데 표정이 꽤 심각했다.

    가까이 와 보란 듯이 그가 내게로 손짓했다.

    “크루엘로? 중요한 거 찾았어요?”

    “음. 직접 보는 게 낫겠어요.”

    낱장의 양피지를 엮어 만든 기록이었다.

    겉장에 적힌 글자는 ‘엘리니아 G’, 사람 이름인 듯했다.

    고대 신어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쪽도 꽤 오래된 고어라 어지간한 학자쯤은 돼야 읽을 법한데, 크루엘로가 고어를 공부했나?

    나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뭔지는 알고 부른 거예요?”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불렀어요.”

    “아까 읽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는 글자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좀 읽어 줄래요?”

    미친 사람.

    어쨌거나 고위직의 집무실에서 나온 기록이란 귀한 것이었다.

    나는 겉장을 넘기곤 내용을 읽어 가기 시작했다.

    “사자 부활 실험 기록일지.”

    정말 검은 뱀 교단에서나 나올 법한 표제다.

    초반부는 별거 없었다.

    이렇게 해서 실패했고 저렇게 해서 실패했다는 패배자의 한탄뿐.

    “×월 ×일. 이번에도 실패했다.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는 걸까, 죽음은 정녕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일까.”

    하여간 마법사들이란, 왜 굳이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는 걸까.

    혀를 차려던 찰나, 나는 다음 부분에서 멈칫했다.

    “×월 ×일. 실마리를 찾았다……?”

    「…….

    답은 인간의 영혼에 있었다. 죽은 이의 영혼은 곧바로 육신을 떠난다. 가장 중요한 재료가 빠진 상태에서 사람을 되살리려고 했던 게 실수였다. 영혼을 구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월 ×일.

    많은 교인의 자원을 받았다. 베아티투도를 이용해 생자에게서 영혼을 뜯어내는 데 성공했다. 영혼의 일부를 떼어 냈을 때 기억의 일부가 소실되는 부작용을 확인했다. 그 충격 때문일까?」

    「×월 ×일.

    자원자를 두 분류로 나누고, 각각 생자와 사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을 때 결과를 살피기로 했다.」

    「×월 ×일.

    생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부활의 진을 발동시킨 순간, 영혼 조각은 생자에게 되돌아가 대상의 영혼에 도로 융합되었다. 사자를 대상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월 ×일.

    영혼 조각을 추출한 대상을 죽여, 사자를 대상으로 부활의 진을 발동시켰다. 실패했다. 잠깐 조각이 반응하는 듯했으나 곧 잘게 부스러졌다. 그 조그만 조각으로 육체 전체의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듯했다.」

    「×월 ×일.

    베아티투도를 이용하여 조각의 힘을 보충하기로 했다. 이론상, 현재 통제할 수 있는 양의 세 배가 필요하다.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으나 길이 있는 이상 가야 한다.」

    그 뒤로는 다시 실패의 기록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

    「×월 ×일.

    3g을 초과하는 베아티투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선 그분의 강림을 기다려야 한다. 실험은 여기서 종료한다. 언젠가 와 주실 그분을 기리며, 혹은 거사를 이어 줄 후사를 기다리며.」

    「베아티투도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엘리니아 G.

    저자의 서명을 끝으로 기록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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