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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의 마리오네트-10화 (10/162)
  • 10화

    이렇게 주목받는 중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성력을 들키면 안 됐기에 쓸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었다.

    새하얀 힘이 몸 안을 은밀히 수색한다.

    독 기운은 포악스럽게 덤볐다가 힘의 차이를 깨닫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폐에 숨었던 게 올라간다. 기관지로, 척추를 감아 오르며 더 위로.

    목뼈를 지나 뇌로 파고들기 직전.

    ‘잡았다!’

    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녹았다.

    휴, 늦는 줄 알았네.

    성력을 조용히 회수하면 끝!

    나는 조심스럽게 봉지를 떼어 내고 땀을 닦았다.

    “휴우.”

    니나 홀메이즈와 눈이 마주쳤다.

    눈물 자국이 뚜렷한 얼굴, 그녀는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손이 저리도록 꽉 움켜쥔 채로.

    그 멍청한 얼굴이 재밌어 보여, 나는 씩 웃었다.

    “봐요, 안 죽었죠?”

    “……네.”

    “그러면 손 좀 놔줄래요?”

    제발요. 집중할 땐 몰랐는데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아.

    나는 니나가 놔준 손을 허공에 대고 탈탈 털었다.

    “세상에, 진짜로 나았어.”

    “봉지에 특별한 효능이라도 있는 건가요?”

    “저는 독에 당하신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나 보네요.”

    사람들의 감탄을 듣고 있으니 절로 콧대가 솟았다.

    개중 예리한 사람이 있어 움찔했으나 중요한 건 결과뿐이다.

    때마침, 미뉴엣과 함께 신관이 도착했다.

    그녀는 다급히 다가와 니나 홀메이즈의 상태를 살폈고, 이내 어리둥절한 얼굴로.

    “건강하십니다.”

    뭐, 안 들어도 안다.

    ***

    파티는 그대로 끝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미뉴엣이 양해를 구하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독극물 이야기는 미뉴엣이 배웅을 마치면 말하든가 하자.

    나는 의자 하나에 눕듯이 늘어졌다.

    “죽는 줄 알았네.”

    어떻게든 해내긴 했지만 시오라의 체력이 형편없어 두 배로 힘들었다.

    다른 몸이랑 비교해서도 좀 심한데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아직 여기 있었냐.”

    가보트가 다가왔다.

    그 또한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예쁜 옷이 땀범벅이다.

    나는 반갑게 소리쳤다.

    “동지!”

    “헛소리 말고.”

    그는 소리를 낮추고 엄지로 바깥쪽을 가리켰다.

    그 끝에 수상쩍게 움직이는 시종이 있었다.

    하하, 그 운동 오늘 다 하게 생겼네.

    나는 눈물을 참고 움직였다.

    ***

    ‘심장이 터질 것 같아.’

    하인, 레온은 쉴 새 없이 주위를 살피며 창고로 향했다.

    손으로는 레몬색 브로치를 꽉 움켜쥔 채였다.

    괜찮다.

    이 브로치에는 인식 방지 마법도 걸려 있댔으니 제 정체를 들키지 않았을 거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라, 그는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레온의 얼굴이 비쳐야 할 거울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후드를 푹 눌러쓴 청년.

    그를 보자마자 안도한 동시에 분노가 터져 나와 레온이 소리쳤다.

    “분, 분명히 설사약이라고 하셨잖습니까!”

    단단히 속아 넘어갔다.

    그와 만난 건 도박장에서였다.

    돈을 다 잃고 망연자실해하던 레온에게 정체 모를 청년이 다가왔다.

    “너, 보네티에 새로 들어간 하인이지?”

    그는 갑작스럽게 신분이 바뀐 시오라가 아니꼽다며 그녀의 파티를 망쳐 달라고 청했다.

    와인에 설사약을 타면 막대한 돈을 쥐여 주겠다고.

    도박 빚에 허덕이던 레온은 황금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또한 난데없이 등장한 신데렐라를 곱게 보지 않았기에 죄책감도 적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함정이었다.

    니나 홀메이즈가 괴로워하며 쓰러졌을 때가 되고야, 레온은 진실을 알아차렸다.

    [잡소린 됐고. 그래, 몇이나 죽었어?]

    “……말 안 합니다, 직접 알아보십시오!”

    [그러지, 뭐. 숫자가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말이야.]

    거울이 잠깐 뿌옇게 흐려졌다가 되돌아왔다.

    [너 아직 안 잡혔네?]

    “예? 그게 무슨……. 브, 브로치도 잘 들고 갔는데요?”

    [그게 진짜 마도구인 줄 알았어?]

    청년이 소리 높여 폭소했다.

    멍한 레온을 보며, 그가 검지로 제 머리를 두드렸다.

    툭툭.

    [머리 한번 확인해 봐. 뇌가 안 들어 있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

    그러고는 환영이 사라졌다.

    거울은 다시 레온의 멍청한 얼굴을 비추었다.

    “진짜가…… 아니라고?”

    그러면?

    인식 방지 마법 같은 건 없었다는 말이야?

    그때, 누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레온은 소스라치게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허어억!”

    “안녕.”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를 깔아보는 눈이 보였다.

    채도 높은 보랏빛 눈동자.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네.”

    속눈썹 모양대로 그늘진 시선이 레온을 꿰뚫었다.

    ***

    “저는 정말 몰라서 그랬습니다! 심각한 독인 줄은 몰랐습니다.”

    레온─이름을 몰라서 물어봤다─이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

    1. 도박 빚 때문에 누군지도 모를 사람한테 사주를 받아 독을 탔다.

    2. 독극물 감지 마법이 걸린 파티용 잔도 전부 바꿔치기했다.

    3. 아무도 안 죽었는데 봐주시죠?

    미뉴엣이 답했다.

    “처리해.”

    “네, 소백작님.”

    “살, 살려!”

    레온은 끌려 나갔다.

    덧붙이자면, 최종 검수를 안 하고 잔을 내보낸 책임자나 레온에게 추천장을 써 준 가문 또한 무사하지 못할 듯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차례.

    미뉴엣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네 파티를 개판으로 만들 뻔한 건 사과할게, 시오라.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으응?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아까 가보트랑 미친 망아지처럼 뛰어다녔지. 거기에 독이 든 걸 알았던 거 아냐?”

    그렇지, 그렇게 티 나게 뛰어다녔으니 안 들켰을 리는 없지?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난 그냥 뻔뻔해졌다.

    “몰라, 내 몸이 저절로 움직였어. 혹시 내가 그런 걸 공부했던 게 아닐까?”

    미뉴엣이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지만, 왜, 뭐.

    난 기억 상실이─라고 거짓말했─다.

    아, 모든 건 내 무의식에 있다고요!

    “……봉지는 왜 가져다 댄 건데, 그것도 네 몸이 그냥 움직여진 거니?”

    “그건 그냥 과호흡이라서.”

    “과호흡이 뭔데?”

    아, 그랬지.

    바깥은 신관이 늘어나고 신전 의존도가 커지면서 의학이 쇠퇴했다.

    의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의학 지식이 흔하진 않다.

    나야 뭐, 우리 신전엔 별의별 책이 다 굴러다니니까.

    음.

    “그러게, 그게 뭘까.”

    그래서 또 모르는 척을 했다.

    가보트가 날 바보처럼 쳐다봤다.

    얘는 내가 기억 상실인 것도 모르니 이 정도는 감수하자.

    “너, 지금 나랑…….”

    미뉴엣이 말을 잇다 말고 제 목덜미를 주물렀다.

    머리에 피가 쏠렸나?

    저런, 젊은 나이에.

    “시오라, 네가 주인공인 파티야. 누굴 노리고 그런 일을 벌였을까?”

    “나겠지?”

    “배후를 알아내지 못하면 다음에도 일이 또 터지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네가 입을 다물면 배후를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안 되겠지?”

    “알면서!”

    미뉴엣이 화를 내도 할 수 없다.

    어디서 벌인 일인지도 짐작하고 있다.

    화이트데저트의 원로회겠지.

    거기서 종종 몬스터 독을 쓰던 건 〈운명〉에도 나와 있었고.

    대원로는 노골적인 혈통주의자다.

    크루엘로가 승낙한 바꿔치기를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파담할 명분을 만들고 싶었나 보다.

    공격해 들어올 건 알았으나 예상치 못한 건 그 속도였다.

    약혼 전적이 많으니 좀 더 느긋하게 굴 줄 알았는데 쓸데없이 재빠르다.

    이번엔 크루엘로의 혼담에 진심인 건가.

    어쨌거나 범인은 확실하니까 굳이 미뉴엣에게 이거저거 알려 줄 건…….

    “사주한 건 줄리안 미네르바야.”

    네?

    가보트의 말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거울에 인식 방지 마법이 다 걸려 있던데.”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어, ‘뇌가 없는지 확인해 봐.’라고.”

    가보트가 어둑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갔다.

    “줄리안의 습관이야. 무의식중에 쓴 것 같지만…….”

    “근거로 삼기엔 부족해.”

    “나도 알아, 그래도 아예 모르는 것보단 낫잖아.”

    “저기.”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줄리안 미네르바는 누구?”

    “……내 아카데미 동기였어.”

    가보트가 답했다.

    동시에 체감온도가 0도쯤으로 고꾸라졌다.

    뭐지, 아카데미 동기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어두워질 일인가?

    나라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때.

    “아, 모두 같이 계셨군요.”

    베티!

    공기를 바꿔 줄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

    나는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화이트데저트 공작전하께서 찾아오셨어요.”

    “파티 다 끝났는데?”

    못 온다더니 왜 뒷북이래.

    베티가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게……. 몬스터 독 해독제를 한 상자 가져오셨어요.”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

    “범인은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난다.”

    나는 뚱하니 크루엘로를 노려봤다.

    “독 푼 거 전하예요?”

    “그런 걸로 해 두죠.”

    사내가 즉답했다.

    이게 뭔 소리야.

    ‘자기는 아니지만 말해 봐야 안 믿겠지.’ 뭐 이런 류의 대산가?

    그가 웃으며 다리를 바꿔 꼬았다.

    “실은 그러려고 해독제를 가져왔어요. 파티장이 난리가 났을 줄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말을…….”

    잠시만.

    크루엘로는 원로회에서 독을 풀 걸 알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난리가 날 거고 파혼할 명분이 생기니까.

    “본인이 친 사고로 위장해서 뒤집어쓰시겠다?”

    그러면 원로회고 나발이고 아무 말도 못 한다.

    허.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 사고를 예방하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요?”

    “이래 봬도 알자마자 온 거예요.”

    크루엘로가 슬픈 척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헛소리 말라고 하려다가, 그의 머리가 다 내려온 걸 보고 말았다.

    좋아, 참작해 준다.

    “해독제는 두고 갈게요. 어디에라도 쓸 일이 있겠죠.”

    “가시게요? 방금 와 놓고?”

    “일이 바빠서요, 서운한 마음은 알겠지만─.”

    “안녕히 가세요.”

    그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예의와 교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다 보니 문 앞까지는 배웅해 줬다.

    “그런데 달링.”

    응접실을 나가려던 크루엘로가 돌연 문을 잡았다.

    그의 눈이 기묘하게 빛났다.

    “누가 한 일인지는 안 물어봐요?”

    “됐어요.”

    “아나 보네?”

    “……짐작도 못 하면 바보죠.”

    흐음, 크루엘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어르신들은 어지간한 사람들한테는 평판이 좋은데 말이에요.”

    “누구 핏줄인지도 모를 여자아이가 어지간한 사람은 아닌가 보죠.”

    “자기 비하는 하지 말고.”

    그가 문에서 손을 떼어 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느릿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피아노를 치는 듯했다.

    “입적 축하해요, 좋은 밤 되시길.”

    문이 닫혔다.

    그러자마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축하할 거면 꽃다발이라도 들고 오든가.”

    속이 타서, 나는 남은 차를 마시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 없던 게 있었다.

    “어라.”

    화사한 꽃다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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