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에이미의 눈물에 크루엘로는 당황했다.
상처를 받은 적은 많았지만 주기는 처음이다.
괴물이 날 속이려고 거짓말하는 거야. 하지만 그런 게 아니면 어떡하지?
“좋아. 이렇게 됐으니 솔직하게 고백할게.”
“네가 몬스터란 걸……?”
“몬스터? 모온스으터어? 너 그거 신성 모독!”
에이미는 화를 삭이는 것처럼 입술을 꾹 깨물었다.
크루엘로는 털을 곤두세운 새끼 고양이처럼 긴장했다.
그 조그만 몸이 다 파묻히도록 소파에 등을 붙이고 에이미만 쳐다봤다.
전투 의지가 단번에 사그라진 소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난 괴물이 아니라 기억을 잃어버린 거야. 치료 받느라 몇 달간 못 왔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정 뭣하면 아버……. 음, 로열샌드 경에게 확인해 봐, 내가 기억 상실증이냐고.”
“왜 아버지를 그렇게 불러?”
“너도 네 아버지를 ‘공작전하’라고 부르잖아.”
“아버지가 아니라 숙부님이야. 아버진 돌아가셨으니까.”
크루엘로의 친부모는 그가 더 어릴 때 죽었고 그의 숙부가 공작 대리를 맡고 있었다.
제 말이 틀렸음에도 에이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가 맞는지 모르는 일이야.”
“거짓말.”
“나 사생아래. 엄마가 누군지 몰라. 어느 날 저택 앞에 편지랑 같이 놓여 있었다던걸.”
“그, 그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말이야?”
“넌 되고 난 안 돼?”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크로엘로가 우물쭈물하자 에이미는 이겼다는 듯 턱을 쳐들었다.
“아무튼 나는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 그러니까 책임져.”
“어떻게?”
“이제부터 매일 찾아올 거야. 찾아와서 음……, 널…….”
“나를?”
“마음대로 예뻐할 거야.”
소년의 말문이 턱 막혔다.
“참. 이름도 다정하게 불러야 한댔지. 뭐가 좋을까, 엘리? 로이?”
“……실례지만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착한 아이를 기르기 위한 100가지 선서〉.”
육아 책 아냐?
크루엘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라 얼어붙었다.
그 반응으로 제가 이상한 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 에이미는 재빨리 도망쳤다.
또 봐! 높다란 인사말과 함께 사라지는 모습이 날다람쥐 같았다.
쾅 닫힌 응접실 문.
그쪽을 바라보며 크루엘로가 입술을 우물거렸다.
“이상한 괴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머릿속에는, 에이미와의 대화가 의미 없이 떠다녔다.
그 뒤로 에이미 로열샌드는 정말 매일같이 크루엘로를 찾아왔다.
그 대신 독을 먹고 죽어 버리기 전까지.
***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내 앞으로 불쑥, 서류 한 장이 내밀어졌다.
그걸 내민 사람은 머리를 깔끔히 넘기고 안경을 썼으며 단색 셔츠 차림이다.
“감사합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내가 듣기에도 내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태어나 처음 와 본 정보 길드는…… 실망스러웠다.
실내는 밝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환하다.
직원은 검은 후드를 눌러쓰지 않았고 말투조차 평범했다.
요청한 자료도 언제쯤 다시 오란 말 없이 5분 만에 쑥 나왔다.
그냥 돈 많이 버는 사무원이잖아.
이쯤 되면 가면─극장에서 썼던 것─을 쓰고 검은 로브를 입고 온 내가 창피할 정도다.
놀러 온 것도 아니니 결과만 잘 나오면 괜찮겠지만.
나는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서류를 내려다봤다.
내가 처음으로 조사를 의뢰한 항목은 시오라 벨벳의 일생.
종이에 적힌 건 놀랍게도.
“……이게 다예요?”
「시오라 웬디 벨벳. 20.
양모 : 웬디 에릭 벨벳(사망).
양부 : 멜로스 그릭 벨벳(사망).
─전 사용인 한스의 방화 사건으로 전 재산 유실─상세 정보 열람 시 추가금 부과─.
─현재 파스피에 에일리 보네티(백작)─부레 안나마리아 보네티 부부의 차녀로 입양 대기 중.」
다섯 줄이 전부였다.
애써 내용을 늘이려고 글자 크기를 키우고 이름만 잔뜩 써 놓은 것이 어린애 숙제 같다.
진짜야? 그 와중에 추가금?
캐 봐도 나오는 게 없다고 미뉴엣에게 듣긴 했지만 돈 받아먹고 이건 아니지.
처음 온 티를 좀 냈다고 바로 뒤통수를 치다니.
나는 차가운 눈으로 직원을 노려봤다.
“당신 고소할 거야.”
미뉴엣이 추천해 준 길드였는데 그녀의 안목에 실망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잠시만요!”
사무적인 표정을 짓던 직원이 내 팔을 덥석 붙잡았다.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상해죄 추가.”
“아니, 제가 무슨 상해를 입혔다고 그러십니까!”
상대가 재빨리 손을 놓고는 아무 일도 없던 양 팔짱을 꼈다.
어쭈?
“증거 인멸죄 추가.”
“진짜 미치겠네!”
“위협 및─.”
“정말 진짜로 나오는 게 없어서 그래요. 의도적으로 정보를 은폐한 게 아니라요!”
“그럼 그 사정이라도 변명해 보든가.”
“보네티 백작이 양조카를 입양한다고 해서 그 아가씨 털어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런데요.”
“그런데 뭔가 알아낸 사람은 없어요. 탈탈 털어도 아는 사람이 없어. 그나마 그 집에서 일하던 사용인 몇?”
“…….”
“평생 벨벳 저택 밖으로 안 나갔대요. 대화도 안 했다고. 말도 안 되는데 정보가 그렇게 말한다니까.”
말도 안 되게 이상해?
평생 신전 밖으로 안 나오던 나는 화가 났다.
사람이 사정이 있으면 밖에 안 나가고 그럴 수도 있지.
“남 등쳐 먹으려는 당신이 더 이상해.”
“…….”
“정말 다른 정보는 하나도 없어요?”
“없어요, 없어. 벨벳 일가가 한스를 얼마나 개처럼 부려먹었는지는 있는데 그거라도 보실래요?”
“그러고서 추가금 받아먹으려고?”
“아니, 뭐. 벨벳 저택 방화 사건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건이잖아요.”
“내가 농담하는 거 같아? 진짜 고소합니다.”
“아, 좀 봐줘요!”
“그 말 재판관에게도 해 보시지.”
“진짜로……. 아! 미심쩍은 거 하나 있어요.”
“말해요.”
“그게……. 저택에 불이 났을 때 그 아가씨가 저택 밖으로 나왔단 말은 없었거든요?”
나는 멈칫했다.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직원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혼자만 멀쩡히 살아 있으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다친 곳도 없다던데.”
내막을 모르면 이상해 보일 법도 했다.
고대 신이 개입했으리라고 어떻게 짐작하겠는가.
그날 그 저택에서 시오라가 죽은 건 사실일 텐데.
“뭐.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비밀 통로라도 있던 거겠지만요.”
직원이 싱겁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간에 나도 양심 없이 돈 받은 건 사실이니까 절반은 돌려드릴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몸을 돌렸다.
볼 장 다 봤다는 듯 시원스러운 태도다.
이쯤에서 나는 미뉴엣의 조언을 떠올렸다.
“이 길드장 눈치가 정말 빨라. 인식 방지 목걸이를 줄 테니까 차고 가.”
“가면 쓰고 갈랬는데 그걸로 안 돼?”
“뭘 뒤집어쓰고 가도 네가 시오라 벨벳이란 걸 눈치챌걸.”
“아하, 그러면 여기 말고 다른 데서는 목걸이 찰게.”
“이상한 소문 붙이는 취미라도 있니?”
“아니, 정직도 테스트 좀 해 보려고.”
“저기요, 절반 말고요.”
미뉴엣의 말대로, 이 사람은 내가 시오라란 걸 눈치챘다.
굳이 시오라가 살아 있는 게 이상하다고 한 것도, 찔러 보려고 물어본 게 틀림없다.
능력도 없으면서 남 후려치는 것에만 능해서는.
“두 배로 주세요.”
“네?”
“방화 사건에 대한 정보도 주시고요.”
“아니, 그게─.”
“시오라 보네티가 자기 과거를 조사했다는 정보. 팔아 치우려 했잖아요.”
‘시오라 보네티가 자기 자신의 일생을 의뢰했다.’
왜? 기억을 잃었나? 다른 사람과 바꿔치기 됐나?
여러 가설이 나올 법한 정보다.
이걸 팔아 치우려고 희희낙락했겠지만.
“내가 이 길드의 정직도를 시험하려던 것도 모르고.”
이렇게 말하면 무용지물 되는 거지.
딱딱하게 굳은 직원 앞에서 나는 가면을 벗었다.
멋있게 보이고 싶었는데 정전기가 일어 잔머리가 뺨에 마구 달라붙었다.
슬프다, 이것도 기술이 필요하구나.
“가면 그렇게 막 벗으시면…… 안 되는데…….”
직원이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를 향해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정보는 그따위로 줘 놓고 외려 손님 정보를 팔아먹으려 하다니.”
“…….”
“두 배로 돌려받아야겠죠?”
망하기 싫으면 줘야 할 것이다.
***
쾅.
폭신한 금발의 여성이 길드를 떠났다.
제임스는 슬픈 얼굴로 닫힌 문을 바라봤다.
손님한테 정보비를 뜯기게 될 줄이야.
귀족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래도 시오라 보네티가 달라졌다는 건 알았으니까.”
제임스는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오라는 이제 저택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음습하고 우울한 소녀가 아니었다.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고 특히 그 눈이 묘했다.
남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짙고 선명한 보랏빛 눈동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호기심이 끓는다.
화이트데저트 공작과 엮이며 그녀의 정보값도 비싸졌으니, 한동안은 이쪽만 캐 봐도 지갑이 두둑해지겠다.
제임스가 표정을 바꾸며 웃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손님. 정보 길드 에렌티티아입니다.”
제임스가 기쁘게 새 손님을 맞았다.
상대는 새카만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하여튼 초짜 손님들은 도대체 뭘 봤는지 다 저러고 온다니까.
그래 봐야 인식 방지 마법이라도 걸지 않는 한 정체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체격, 걸음걸이, 후드 사이로 비집고 나온 머리칼.
속눈썹의 색, 목소리, 말투, 그 모든 걸 숨기더라도 어쩔 수 없는 습관까지.
자신을 드러내는 요소는 너무도 많다.
물론 제임스 정도의 눈치는 이쪽 업계에서도 상당히 드물었지만.
호칭은 ‘손님’으로 통일했으나, 제임스는 상대의 정체를 손쉽게 알아챘다.
화이트데저트에서 왔군, 이번에도 꽤 거물이다.
돈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하나.
“무엇을 도와읍!”
제임스의 미소는 곧바로 허물어졌다.
새 손님의 그림자가 길쭉이 길어지더니 그를 집어삼켰다.
“살……!”
형체가 없어야 할 그림자가 그의 사지를 옭아맸다.
공포에 질린 제임스가 발버둥 치는 모양대로 그림자가 울룩불룩 불거졌으나 저항은 점차 사라졌다.
짙은 어둠은 너무도 쉽게 사람 하나를 먹어치우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림자의 주인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에이.”
그가 구두코로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그림자가 울렁거렸다.
“별 얘기 안 했네.”
길드 위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그 소리마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