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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41화 (34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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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5화

    [요…… 하…… 나…….]

    요하나.

    그 이름을 자꾸만 반복한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여러 감정을 담아서.

    올리버가 남긴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이제는 눈물처럼 보였다.

    [요……하나…… 요하…… 나…….]

    더는 불기둥을 내뿜을 필요조차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아무런 공격을 펼치지 않았으니까.

    그저 요하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름만 웅얼거릴 뿐.

    “날 알아요?”

    [요하나…… 페이지…….]

    “어떻게 알지? 난 당신 같은 괴물하고는 인연이 없는데.”

    요하나가 미심쩍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면서도 쏘아대던 불기둥은 일단 거뒀다.

    그녀의 목표는 많은 이들이 그랬듯 시간을 버는 것.

    상대가 공격하지 않으니, 지금은 힘을 비축할 차례였다.

    [나는…… 괴물…… 따위가…… 아니야…….]

    요하나의 물음에 놈이 대답했다.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했기에…….]

    굉장히 어눌한, 횡설수설하는 말투였다.

    이전까지의 그 음울하고 느릿할지언정 또박또박했던 말투와는 달랐다.

    [너를…… 우리를…… 모두를…… 위하여…….]

    과거의 자신과 처음 마주했을 때에도.

    올리버 레이우드와 처음 마주했을 때에도.

    눈먼 아버지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앞길을 가로막는 과거의 잔재를 치우고자 했다.

    그러나 요하나는 달랐다. 이전과 달리 상태가 매우 불안해 보였다.

    [나는…… 나는…….]

    마치 변명을 하는 것 같았다.

    왜,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자신의 딸한테, 아니, 딸이었던 아이에게.

    [우…… 우우…… 우……!]

    이런저런 말만 웅얼거리던 놈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왠지 그 소리가 울음처럼 들렸다.

    시뻘건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거대한 눈알.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가 울음소리를 멈췄다.

    [아니…… 아니지…….]

    그러더니 중얼거렸다.

    [너는…… 가짜일 뿐…….]

    나아가 요하나를 바라봤다.

    휘몰아쳤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하여 본연의 침착함을 되찾아가는 목소리였다.

    [그저…… 사라질…… 시간대의…… 모조품일 뿐…….]

    과거의 자신을 흡수한 뒤 미련 없이 지워 버릴 시간대.

    어제 곧 먼지처럼 사라질 가짜 세계의 모조품 아닌가?

    [나의…… 아이는…… 이제…… 없으니…….]

    나의 요하나.

    앞선 시간대의 요하나 페이지.

    그녀는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현실을 깨달은 눈먼 아버지가 낮게 경고했다.

    [비…… 켜라…….]

    비켜라.

    네 등 뒤에 있는 놈을.

    과거의 자신을 먹어치울 수 있도록.

    [어서……!]

    피눈물을 멈춘 커다란 눈알이 시꺼멓게 물들었다.

    그 안에서 도시를 증발시켰던 암흑 섬광이 꿈틀거렸다.

    “……싫어.”

    눈먼 아버지의 경고에도 요하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완강한 태도로 양쪽 팔을 활짝 펼쳤다.

    여기서 한 걸음도 비키지 않겠다는 무언의 손짓이었다.

    “못 비켜.”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저 암흑의 기운이 내뿜는 힘,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

    그건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마비될 만큼.

    로난 스승님께서 양보해 주신 격이라는 힘을 얻고 많이 강해졌다고 여겼건만, 그래 봐야 저 시꺼먼 기운 앞에서는 그저 벌레일 뿐이었다. 저 괴물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을 찢어 죽여야겠노라 판단한다면 그 자리에서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운명이라는 거다.

    ‘그래도 버텨야 해.’

    반대로 생각해 보자.

    그만한 힘을 갖춘 괴물이 어째서.

    요하나쯤이야 순식간에 치워 버릴 수 있는 괴물이 어째서 ‘부탁’을 하겠는가?

    지금 당장 힘을 발휘하면 될 것을, 가로막든 말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될 것을 왜?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저 괴물이 망설이고 있어.’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째서 망설이는 건지.

    어떻게 자신을 아는 건지.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니까.’

    지금은 그 정체불명의 관계를 활용해야 한다.

    저 괴물의 망설임을 어떻게든 오래 끌어야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아버지께 들으면 그만이잖아?

    ‘시간을 벌자. 어떻게든.’

    시간을 번다. 오직 그것뿐.

    요하나가 다시 한번 마음을 굳혔다.

    좌우로 활짝 벌린 두 팔에 힘을 잔뜩 줬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겠다면…….]

    그러나 요하나의 그 야심 찬 계획도 잠시일 뿐.

    눈먼 아버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잦아든 동요가 냉정함을 되찾았거든.

    [함께…… 지우는…… 수밖에…….]

    암흑의 섬광이 더더욱 짙어졌다.

    그 기괴한 꿈틀거림 역시 더욱 불어났다.

    마치 당장에라도 요하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부들부들 떨리는 요하나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 여기서 그녀의 어깨를 잡을 이는 오직 한 사람뿐일 터.

    “고생이 많았구나. 요하나.”

    고생이 많았다.

    그 말은 비단 지금 이 순간만을 뜻함이 아니리라.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방대한, 기나긴 세월이 담긴 말이겠지.

    “이제 비켜다오. 끝을 내야겠으니.”

    그렇기에.

    이번에는 달랐다.

    비켜달란 말에 순순히 따랐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버지.

    상아탑주, 위대한 마법사, 그의 목소리였으니까.

    우웅! 우우웅! 우우우웅 - !

    모든 준비는 끝났다.

    어느덧 완성되어 두둥실 떠 있는 커다란 모래시계.

    저 오랜 마법의 결과물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역시…… 모조품은…… 모조품을…… 따르는 법…….]

    그 만반의 준비에 화답하듯.

    눈먼 아버지 역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방해물도 없겠다, 끝장을 낼 차례였다.

    [얌전히…… 사라져라…… 나의…… 어리석은…… 부산물이여……!]

    어둠의 섬광.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는 힘.

    그 세상의 끝자락에 닿아 있는 힘이 뻗어졌다.

    이안을 향하여, 또한 이 세계와 모든 것을 향하여.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암흑 섬광이 이안을 덮쳤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보다 위에, 그리고 앞에 떠있는 모래시계만 바라볼 뿐.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일컫기를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이변은 바로 그 모래시계로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이안에게 겨누어졌던 암흑 섬광을 모조리 빨아들였으니까.

    눈먼 아버지의 암흑 섬광을, 각고의 노력과 희생 끝에 탄생한 모래시계가.

    파스스스스스스……!

    더욱이 놀라운 점은 암흑 섬광을 빨아들인 이후였다.

    고깔 모양 두 칸으로 나누어진 모래시계의 위쪽 칸에 갇혀 꿈틀대는 암흑 섬광이 아래쪽 칸으로 조금씩 흘러내렸다. 마치 모래시계 속 모래가 내려가는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감히…… 그따위…… 잔재주를…….]

    “잔재주인지 아닌지는.”

    이안의 반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손짓하자 모래시계에서 백색 빛이 뿜어졌다.

    그 강렬한 빛 기둥이 노리는 것은 바로 눈먼 아버지.

    암흑 섬광과 정반대의 빛이 미쳐 버린 괴물을 휘감았다.

    “네가 직접 확인해.”

    그 빛은 사슬처럼, 혹은 그물처럼.

    눈먼 아버지의 육신을 조금씩 끌어당겼다.

    암흑 섬광을 빨아들였던 모래시계의 위쪽 칸으로.

    [크윽……!]

    눈먼 아버지조차 쉬이 벗어나지 못할 만큼 강력한 빛의 사슬.

    이안의 모든 격과 마나, 그리고 깨달음의 결정체가 아니겠는가?

    희생까지 따랐으니 그 힘의 정당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크아아아아……! 여기서…… 네놈…… 따위에게…… 당할 수는……!]

    놈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벗어나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모래시계로 빨려 들어가는 속도만 더 빨라질 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이안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너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거야.”

    너와는.

    미래의 이안과는 다른 길.

    명분에 잡아먹힌 괴물이 되지 않는 길.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

    “가능하지. 지금 내가 너를 이기고 있는 것처럼.”

    [네놈 따위가…… 그깟…… 조무래기들을…… 이끌고…… 정녕…… 진정한…… 적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느냐……? 저 우주 너머에는…… 작금의 나보다도…… 훨씬 더…….]

    “정말 네가 말하는 적이 존재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더더욱 방법을 바꿔야지. 앞서 나간 네 방식은 결국 여기서 실패할 예정이잖아? 그럼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정상 아닌가? 평범한 머리로도 그럴 텐데, 우리쯤 되는 머리로 그 간단한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

    [네놈은…… 아무것도…….]

    “어, 아무것도 몰라. 대신 증명을 하고 있지.”

    이안이 다시 한번 손짓했다.

    그러자 눈먼 아버지를 잡아당기는 빛이 강렬해졌다.

    놈의 거센 저항을 단숨에 제압할 만큼 엄청난 힘이었다.

    “네 방식으로는 고작 여기서 실패한다는 것을.”

    [크아아아아아아악……! 풀어라……! 어서……! 오직…… 나만이……! 오직…… 내 방식만이……! 모든…… 위협으로부터…… 모두를…… 모든 것을…… 온전히…… 지켜낼 수……!]

    화아아아악 - !

    시계탑 최상층의 주인.

    눈 먼 아버지의 절규는 거기까지였다.

    환한 빛과 더불어 놈의 육신이 모래시계에 갇혔으니까.

    파스스스스스스……!

    앞서 암흑 섬광이 그랬던 것처럼 눈먼 아버지의 육체 또한 조금씩 흘러내렸다.

    모래시계 속 뒤집어진 모래처럼 서서히 흘러 그 잔해가 아래쪽에 차곡차곡 쌓였다.

    눈먼 아버지의 암흑 섬광이 타격 범위 내 모든 시간을 앞당겨 무로 돌아가게 한다면, 이안의 모래시계는 빨아들인 존재의 시간을 되감아 무로 돌아가게 하는 마법이었다.

    비록 같은 사상의 뿌리와 힘을 공유했지만, 그 성향만큼은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야말로 이안이 걷고자 하는 ‘다른 길’이리라.

    “……허억! 헉! 허어억!”

    놈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켜본 이안.

    그가 거칠어진 숨을 잔뜩 몰아쉬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그만큼 모든 것을 쏟아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 겨우 모든 문제와 위협을 걷어냈는데.

    “여기서…… 죽을 순…….”

    자꾸만 눈이 감긴다.

    자꾸만 의식이 멀어져간다.

    이젠 호흡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

    “없는…… 데…….”

    돌아가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까지 아비를 찾아온 대견할 딸아이.

    요하나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

    겨우 버티고 있던 이안의 육신이 무너졌다.

    모든 동력을 잃어버린 추락.

    멈추지 않으면 제아무리 이안이라도 위험하다.

    “아, 아버지……!”

    당연하게도 요하나가 나섰다.

    모든 걸 쏟아낸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그녀의 비행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을 거다.

    하지만.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저 하늘 너머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만큼 머나먼 곳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보라색 빛줄기가 내려와 이안을 감싸 안았다.

    “……어?”

    워낙 따스한 빛이라서 그랬을까?

    요하나는 순간 저 빛에서 아버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멈칫거림은 곧 요하나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결과를 불러왔다.

    “아버…… 지……?”

    아버지가.

    이안이 사라졌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라색 빛줄기와 함께.

    * * *

    [또 보네. 이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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