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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40화 (34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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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4화

    올리버 레이우드.

    그 기사는 대범하다.

    아니, 대범하다는 표현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애당초 이안이 평가하길 칼잡이가 아니었다면 본인을 뛰어넘었을지도 모르는 괴물 아닌가?

    먼저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온 이안의 발자취를 늦지 않게 따랐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모든 과업의 완수자, 최상급 지배자, 아스가르드 전당의 새로운 왕, 지금에 이르기까지.

    “후우우우우…….”

    올리버 레이우드.

    그 기사는 이안처럼 시간을 되감을 줄 모른다.

    모든 삶에, 모든 순간에, 모든 선택에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매번 신중했고, 자만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철컥!

    올리버 레이우드.

    그 기사는 이번에도 언제나 그렇듯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눈먼 아버지가 쏘아 내린 어둠의 섬광 앞에서도 침착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어떻게든 승리할 가능성을 높일 만한 그런 일을, 목숨 따위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이미 거의 다 이겨놓은 공허의 군주를 방패 삼아 어둠의 섬광을 막아냈고, 놈이 죽어 놈의 육신이 증발할 때쯤 토해낸 격의 결정체만 쏙 챙겨 지배자들이 연 차원 문으로 넘어갔다.

    토르, 차민성과 함께 떠났던 악마 사냥의 경험 덕분에 떠올릴 수 있었던 방법이다.

    그들과 함께 수없이 많은 악마들을 사냥하며 격의 결정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뽑혀져 나오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으니까.

    “결판을 내자. 괴물아.”

    그렇기에 올리버 레이우드.

    그 기사는 마침내 이안의 예상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공허의 군주가 남긴 격을 먹어치운 그가 명백히 강했으니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명백하게 이안 페이지를 뛰어넘었다는 거다.

    서걱!

    그래서였다.

    지배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안의 마법조차 먹히지 않았던 괴물.

    눈먼 아버지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까닭이.

    서걱!

    올리버의 검은.

    그 기사의 경지는 명백히 통했다.

    놈이 흘리는 피가 바로 그 증거였다.

    “이안 공!”

    꿈틀대는 촉수마냥 끊임없이 쏟아지는 핏줄 다발을 가르면서.

    그리고 눈먼 아버지라는 이름의 커다란 눈알에 상처를 내면서.

    “멈추지 말고 계속하시오! 무엇이 되었든 계속하시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그 기사, 그린리버의 검공 올리버 레이우드가 목청을 크게 높여 소리쳤다.

    “어차피 목숨 걸고 하는 일 아니겠소? 이안 공이나, 나나, 여기서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맙시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말고 이안 공께서 해야만 하는 일을 하시오!”

    그는 이안에게 그 어떤 상황이 닥치든 절대로 멈추지 말라 요구했다.

    설령 자신의 숨통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신경 쓰지 않기를 바랐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내던졌다는 증거였으니까.

    “……아뇨,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눈곱만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경께서는 고향에 처자식이 없어서 목숨을 그리 쉽게 거시는 겁니다. 저는 예전이면 모를까, 이제 어디 가서 함부로 목숨 못 걸어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안에게는 가족이 있다.

    고향에서,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이.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 싸움이 아닌가?

    그러니 여기서 죽을 수 없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간다.

    가족의 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의 품으로.

    “그러니 살아남으십시오. 몸 좀 사리면서 싸우라는 겁니다. 살아서 같이 돌아가야 황제 폐하께 체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저 혼자만 살아서 돌아가 봐요. 황실이 울음바다만 되겠죠.”

    이안이 진심으로 그러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마치 쓴 약을 입에 문 듯 확 찡그린 얼굴 표정도 함께였다.

    “……듣고 보니 그렇군.”

    올리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분명 위험한 싸움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그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미쳤나 보다.

    “좋소. 함께 살아서 돌아갑시다.”

    올리버가 눈먼 아버지의 거대한 눈알 곳곳을 누비며 끊임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사방에서 핏줄이 뻗어져 온다든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누비고 있는 놈의 육신이 격렬히 뒤흔들린다든지, 기타 온갖 방법으로 자신의 몸에서 날뛰는 벌레 한 마리를 내쫓고자 부단히 애를 썼으나, 올리버를 떼어 내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

    그런 올리버의 고강한 무위를 바라보면서.

    이안은 새삼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칼잡이로서 한계만 아니었다면 본인만큼, 혹은 본인보다 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올리버의 성장을 지켜보며 어렴풋이 느꼈던 경이로움을 몸소 증명하고 있지 않던가?

    ‘조금만 더…….’

    이젠 아무래도 좋다.

    누가 더 강하든 약하든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올리버 덕에 시간을 더 벌었고, 그사이 주문이 완성되어간다는 것.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우우우우우웅……!

    어느덧 이안이 창조한 모래시계가 그 위용을 자랑했다.

    저 거대한 눈알, 눈먼 아버지의 덩치마저 압도하는 크기.

    도대체 그는 이 마법의 모래시계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조금만…… 더……!’

    거대한 모래시계가 완성을 눈앞에 두었을 때쯤.

    육신을 극한까지 내몬 올리버가 조금씩 지쳐갔다.

    슬슬 한계에 봉착하였으니, 이대로는 금세 쓰러질 터.

    ‘이렇게 쓰러질 바에는, 차라리…….’

    어차피 혼자만의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1초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겠지.

    혼자 지쳐 쓰러지는 게 아니라, 마지막 한 방을 먹이는 거다.

    이 괴물조차 고통에 몸부림치며 시간을 허비할 만큼 강력한 수.

    그런 공격과 함께 기사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이…… 버러지…… 같은……!]

    “반쪽짜리에, 벌레에, 버러지까지, 입이 아주 거친 괴물이로군.”

    눈먼 아버지의 커다란 눈알 여기저기에 수많은 상처를 입힌 그가 다시 한번 칼날에 보라색 불꽃을 불태웠다. 그러고는 여태껏 공략했던 부위보다 더욱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런 만큼 위험천만한 곳으로 움직이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 거대한 눈알의 중심, 푸른 동공이 자리를 잡은 정면 말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압 - !”

    몸을 던진 올리버가 뒤로 빙그르 돌며 눈먼 아버지의 동공에 칼을 찔러 넣었다.

    까득, 까득, 까드드드득……!

    어디 그뿐일까?

    박힌 칼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아 무게까지 실어가며 아래쪽으로 쭉 내리그었다.

    워낙 단단한 눈알이라서 그런지 까드득, 까드득, 하는 불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으…… 크아아아아아악 - !]

    물론 놈의 처절한 비명도 함께였다.

    오늘 처음으로 터뜨리는 비명이었다.

    특히 저 고통에 찬 비명은 굉장히 귀하다.

    이안의 마법으로도 터뜨리지 못한 비명 아닌가?

    [크으으…… 죽인다…… 죽인다……!]

    분노밖에 느껴지지 않는 눈먼 아버지의 괴성.

    놈이 자신의 눈앞에서 칼을 박은 채 매달려 있는 올리버를 노려봤다.

    나아가 이안한테 쏘았던 붉은색 광선을 그대로 내뿜기에 이르렀다.

    “……이안 공.”

    놈의 동공 끝에 매달려 있다.

    더는 허공을 밟고 올라설 여력이 없다.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결국 여기까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올리버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안에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한마디 남기고 싶었다.

    어쩌면, 아마 높은 확률로 지금 이 중얼거림이 유언으로 남을 테니까.

    “부디…… 폐하를…….”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눈먼 아버지는 올리버에게 말 한마디 남길 여유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무어라 제대로 된 유언을 남기기도 전에 붉은색 안광을 쏘아버렸으니까.

    “……올리버 경?”

    그 광경에.

    너무나도 순식간이었던 찰나에.

    이안은 당혹감에 물들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분명 같이 살아남자고 했는데, 그러니 몸을 사리라고 했건만.

    쿵……!

    그로부터 잠시 후.

    무언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용맹했던 올리버 레이우드의 육신일 터.

    [지긋지긋한…… 벌레 놈들…….]

    이제 더는 그 누구도 남지 않았다.

    오직 두 존재만이 서로를 바라볼 뿐.

    [이제…… 끝이다…….]

    거대한 눈알이 시뻘건 피를 뚝뚝 흘렸다.

    조금 전 올리버가 동공에 입힌 상처 탓이었다.

    [이안…… 페이지…….]

    놈이 다가온다.

    이제 막아줄 이는 아무도 없다.

    마법이 거의 완성되긴 하였으나,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정말 잠깐이면 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 잠깐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네놈의…… 얄팍한…… 수를…… 알고…… 있다…….]

    그런 이안에게.

    고민하는 과거의 자신에게 그 괴물이 말했다.

    [실패할…… 때마다…… 시간을…… 크로노스를…… 되감겠다는…… 그 어리석고도…… 얄팍한…… 생각을…… 네놈에게서…… 절박함을…… 앗아간…… 그 편의적인…… 힘을…….]

    놈은 미래의 이안이다.

    과거의 이안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그 힘을 막아낼 힘 역시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내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허니……  포기해라…… 내 과거의…… 파편이여……!]

    이제 퇴로는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안이 주문을 유지하며 어떻게든 뒤로 물러났다.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저항이었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 했다.

    쾅! 콰광! 쾅 - !

    주문을 유지하는 오른손이 아닌 왼쪽 손으로 간단한 매직 미사일 역시 쏘아댔다.

    이 또한 무의미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이 이상의 마법적 역량을 분배하기는 어려웠다.

    […….]

    그 보잘것없는 저항에 눈먼 아버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의 자신을 공허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천천히 다가올 뿐.

    바로 그때였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 !

    강렬한 불기둥이 눈먼 아버지에게 일직선으로 꽂혔다.

    그 불기둥은 이안의 뒤로부터 이안을 살짝 빗겨 날아왔다.

    ‘……누구지?’

    더는 이안을 도와줄 이가 없다.

    여태껏 마법을 준비하며 똑똑히 보았다.

    한 명 한 명 격퇴당하는 지배자들과 동료들의 모습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점에 이안을 도와줄 이가 남지 않았다는 거다.

    한데 이 불기둥은 뭘까? 도대체 누가 이안의 뒤에서 놈을 공격하고 있는 걸까?

    “아버지! 괜찮으세요?!”

    ……뭐?

    아버지라고?

    “……요하나?”

    요하나 페이지.

    이안의 하나뿐인 딸.

    그녀가 불기둥으로 눈먼 아버지를 압박하며 이안의 앞까지 천천히 다가왔다.

    “네, 네가 어떻게……?”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하고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안에게 요하나가 버럭 소리쳤다.

    “어서 하시던 거나 계속하세요! 제가 어떻게든 버텨볼 테니까!”

    훌쩍 자라 나타난 딸은 자신이 시간을 벌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힘만으로는 이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

    ‘안 된다. 요하나마저 잃으면…….’

    어째서 요하나가 저만큼 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래 봐야 올리버 수준의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저 괴물이 변덕을 부리는 그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터.

    “요하나, 그만두고 도망쳐라! 어서! 여긴 네가 있을 곳이……!”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요하나가 퍼붓고 있는 저 불기둥.

    사실 눈먼 아버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거다.

    그러나 놈은 어찌 된 영문인지 요하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쏘아대는 불기둥을 묵묵히 맞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놈한테는 그저 하찮은 수준에 불과한 방해꾼을.

    [요…… 하나……?]

    어디 바라보기만 할까?

    놈이 요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올리버를 기억할 때와는 달랐다.

    작금의 부름에는 감정이 담겼다.

    그 감정의 이름은 명백한, 정말이지 명백한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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