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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39화 (33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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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3화

    모든 것이 증발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한데 다시 보니 단순한 증발과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이를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서 부식되고 분해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예컨대 슈페리어 특유의 건축물이든, 거리를 거닐던 생물이든, 하다못해 구석구석 자라나 있던 잡초까지도 수백, 수천, 수만 년이란 시간을 맞고 자연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 칠흑의 광선에는 크로노스의 묘리가 담겨있었으리라.

    지금 이안이 준비 중인 마법과 근본적인 개념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을 터.

    “…….”

    그러나 지금 이안의 머릿속에는 그런 계산이 거의 굴러가지 않았다.

    여태껏 살면서 처음으로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것을 체감 중이었으니까.

    “이게…… 무슨……?”

    자고로 머릿속이 하얘진다 함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 뒷일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경우,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력할 때나 일어나는 현상 아닌가?

    매사 신중히, 계획적으로,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살아온 이안으로서는 결코 흔치 않은 일이건만, 하필 이런 순간에 그 흔치 않은 일이 찾아왔다. 무슨 날이라도 잡은 것처럼 말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일방적일 줄은…….’

    처음에는 그랬다.

    의외로 선전하는 헤라클레스를 봤다.

    그가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줄 거라 여겼다.

    길진 않을지언정, 유의미한 시간을 벌어줄 거라고.

    ‘아마 죽었겠지.’

    틀림없다. 죽었을 거다.

    뾰족한 첨탑에 꽂힌 채 시계탑째로 무너지지 않았던가?

    저런 잔혹한 공격을 당했는데 아직 살아 있을 리가 없겠지.

    ‘저 아래에 있던 모두가.’

    어디 헤라클레스뿐일까?

    조금 전 어둠의 광선 아래 증발되어버린 슈페리어의 심장.

    그 땅에 있던 모든 지배자와 슈페리언들이 비명횡사했으리라.

    ‘올리버 경까지도.’

    이안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게 자신의 실책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더 힘을 키웠더라면, 조금만 더 신중하게 움직였더라면.

    그랬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텐데, 적어도 이리 처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제기랄…….’

    모두의 목숨을 담보로 내던진 것치고는 확보한 시간이 너무 초라했다.

    이제 겨우 주문을 절반쯤 완성했으니, 사실상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좀 더 시간을 확보할 방법.

    주문을 완성시킬 때까지 버틸 방법.

    더는 그런 방법이 남지 않은 걸까?

    ‘뭔가 방법이…….’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계속 이대로 버티며 다른 방법을 찾아낼지.

    혹은 놈에게 방해받을지언정 크로노스 회귀를 시도할지.

    일단 지금으로서는 후자가 좀 더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니, 양쪽 다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그나마 낫다고 봐야 할 터.

    [반항은…… 여기까지인가……?]

    일생일대의 고민에 휩싸인 이안에게 눈먼 아버지가 물었다.

    그는 여전히 공허한 눈빛으로 이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안이 준비 중인 마법에 관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흥미로운…… 마법이로군…….]

    흥미롭다.

    무슨 뜻일까?

    놈이 말문을 이어갔다.

    [그것을…… 위해서…… 저 하찮은…… 목숨들을…… 희생시킨…… 것인가……?]

    이안의 마법은 점차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직 반쪽에 불과했으나, 저것은 명백한 ‘모래시계’였다.

    강력한 마나와 격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모래시계 말이다.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시도였도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꽤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뜻.

    물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조롱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정하마…… 아직…… 협소하고…… 하찮은…… 시야를…… 가졌을…… 뿐이나…… 결국…… 네놈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나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눈먼 아버지.

    그 미래의 이안은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을 벌레처럼 바라보지 않았다.

    만약 조금만 더 상황이 좋았더라면, 조금만 더 시간이 넉넉했더라면.

    능히 자신에게 절멸적인 피해를 입히고도 남았을 만큼 막강한 존재.

    그런 존재임을 순순히 인정했다. 일말 존중심까지 품을 정도였다.

    [예상보다…… 크나큰…… 수확이로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으로…… 네놈을…… 품도록 하지……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곧…… 네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의…… 마지막…… 수순이니…….]

    결국 우리는 똑같은 존재다.

    그러니 품고 있는 목표 또한 똑같다.

    단지 그 목표의 단계와 수순이 다를 뿐이다.

    그러한바 자신을 원망하고 저항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것은 그저 ‘이안 페이지라는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니까.

    스스스스스스……!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의 눈먼 아버지.

    그 괴물의 눈에서 다시금 핏줄 다발이 뻗어왔다.

    이안을 붙잡고, 그의 모든 것을 씹어 먹기 위함이었다.

    [나와…… 하나가 되어…… 우리의 진정한…… 이상향을…….]

    눈먼 아버지의 아가리가 쩌적, 하고 벌어졌다.

    여러 궤변과 더불어 다시금 이안을 잡아먹고자 했다.

    [우리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바로 그때였다.

    [예전이랑 똑같이 당해줄 줄 알았나?]

    허공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허공에 열린 차원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이안의 귀에 매우 익숙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하데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하데스.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다른 지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눈먼 아버지의 암흑 섬광이라면 이미 예전에 당해봤거든.

    한 번 당해본 공격에 또 당할 만큼 지배자들이 바보는 아니다.

    보자마자 냉큼 차원 문부터 열었고, 보기 좋게 섬광을 피해 갔다.

    [우리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께서 명하신 그 시간이라는 거, 벌어드려야겠지.]

    그리 읊조린 하데스가 차원 문 바깥으로 나와 손가락을 탁, 하고 튕겼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그러자 오랫동안 공들여 길들인 슈페리어의 파괴자 튀폰이 차원 문을 박차고 나와 눈먼 아버지의 커다란 눈알 위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괴성을 질러대며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대신 그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게야.]

    어디 튀폰만 날뛸까?

    살아남은 지배자들이 너도나도 차원 문 너머로 뛰어내려 눈먼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예컨대 저 눈깔 괴물 놈을 내 눈앞에서 영영 치워준다든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이 놈을 이 세계에서 지워 버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여기서 방관하거나 실패하면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또 없을 거라는 사실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하데스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동시에 발동하고자 했던 크로노스 회귀 역시 멈췄다.

    다시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데 모든 걸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좋아. 그럼.]

    하데스 양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지하세계 깊숙한 명계로부터 올라온 죽음의 기운이 양 손바닥에 모여들었다.

    그 기운은 점차 커다란 ‘데스 사이드’의 형태를 이루었으니, 언제나 후방으로 물러나서 뒷짐만 진 채 상황을 살피던 그가 마침내 몸소 나설 채비를 끝냈다.

    “웬일이십니까? 하데스 님께서 직접 나서시고.”

    [다들 싸우는데 혼자 뒷짐지고 있을 순 없지.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몸이라고.]

    글쎄.

    그런 거 없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데.

    [……뭐, 하는 김에 목숨 간당간당한 놈들 모가지고 내 손으로 직접 따고. 그럼 명계로 떨어지거든. 다시 불러와서 두 번 싸우게 할 수 있어. 이 얼마나 효율적인 인재 활용이야?]

    아하, 그럼 그렇지.

    피식 웃은 이안이 마법에 집중했다.

    하데스 역시 커다란 데스 사이드를 앞세우며 속칭 ‘시간 벌기 전투’에 합류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슈페리어 연합 대 눈먼 아버지의 전투가 시작된 셈이리라.

    [예전과는 다르다! 지난 수천 년간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강해졌으나, 놈은 그저 제자리걸음만 하였음이 자명할 터! 싸워라. 이번에야말로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는 거다!]

    [침략자를 몰아내자! 수천 년 지배의 고리를 여기서 끊어내자! 누가 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인지, 누구한테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를 통치할 권한과 위엄이 있는지를 증명하라!]

    아레스와 토르의 외침처럼.

    지배자들의 저력은 처음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세력이 침공해 왔을 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지난 수천 년간 슈페리어의 지배자들은 강해졌으며, 그 인원 역시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나 눈먼 아버지는 처음 이 세계를 침략했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특별한 방법을 제외하고는 더 강해질 수단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가능할지도.’

    그리고 그 지배자들의 거센 저항을 바라보면서.

    이안은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희망’을 느꼈다.

    ‘이번에야말로 완성시킨다.’

    이안이 주문에 집중했다.

    이제 거의 완성된 마법의 모래시계.

    혹은 모래시계 형상을 한 마법의 신기루.

    이제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이…… 파리 떼…… 같은…… 놈들……!]

    물론 버티는 것에 불과하다.

    예전과 달리 거세게 저항할 뿐.

    아니, 저항이라는 것이 성사되었을 뿐.

    여전히 눈먼 아버지는 강했고, 지배자들을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콰드득……!

    먼저 아까부터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 날뛰는 튀폰부터 떼어냈다.

    핏줄 다발이 그 최강의 토착 괴수를 반으로 갈라 지상으로 던져 버렸다.

    어디 그뿐일까? 다른 지배자들 역시 하나둘씩 빠르게 정리해 나갔다.

    결국 대다수 지배자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 때쯤.

    온전히 싸우는 건 지배자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일부에 불과했다.

    [이봐! 이안 페이지! 아직 멀었어?!]

    꼬박꼬박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라 불러주던 하데스가 외쳤다.

    그는 상황이 녹록지 않은 듯 앞서 차려주던 격식을 모조리 버렸다.

    [뭐라도 해봐! 어떻게 좀 해보라…… 큭……!]

    그의 외침은 끝 매듭을 맺지 못했다.

    눈먼 아버지의 날카로운 핏줄 다발에 복부를 관통당했거든.

    결국 하데스마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어둠의 춤.’

    그때.

    참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지원군이 나타났다.

    여타 지배자들과 함께 어둠의 섬광을 피해 차원 문으로 넘어갔으나, 공허의 군주와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들을 조금 회복하고 돌아온 차민성이 그 첫 번째 지원군이었다.

    스캉! 스캉! 스캉! 스캉 - !

    차민성 특유의 스피드와 그림자 능력이 만나 눈알뿐인 괴물을 빠르게 난타했다.

    비록 육신을 베는 소리가 아닌 쇳덩이와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 같은 것이 두 귀로 들려왔으나, 차민성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싸움의 목적은 시간을 버는 거다.

    거기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이 희생당할지라도.

    ‘여기서 이겨야 내 고향을 지킬 수 있다. 그러니 죽을 각오로 덤빌 수밖에……!’

    하지만 그 목숨을 내건 기세도 찰나에 불과일 뿐이었다.

    그렇게나 재빠른 몸놀림을 가졌는데도 핏줄 다발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혀 지상에 처박혔으니까. 다른 지배자들처럼 말이다.

    “……정말 끔찍한 괴물이로군.”

    다음 차례는 올리버 레이우드였다.

    그들은 일부러 시간차를 두고 눈먼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싸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 벌이다.

    승리를 목적으로 두지 않았으니, 목적에 맞는 방식을 택한 거다.

    이렇게 시간차를 두고 덤벼들어야 몇 초라도 더 벌지 않겠는가?

    “나와 한번 놀아보자꾸나. 이 끔찍한 괴물아!”

    올리버가 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차원 문 너머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눈먼 아버지의 육신에 검을 내리꽂았다.

    푸욱……!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놈에게 흠집조차 내지 못하던 여타 지배자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목숨 걸고 싸웠던 차민성과는 달랐다.

    [……!]

    올리버 레이우드의 칼날 끝이 눈먼 아버지의 육신을 파고들었다.

    비록 그 깊이가 손가락 몇 마디조차 되지 않을지언정, 누구도 입히지 못했던 상처를 입혔다.

    오죽하면 눈먼 아버지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순간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멈추겠나?

    [……너는?]

    물론 놈이 멈칫거린 까닭은 비단 자신의 몸에 상처가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몸뚱이에 검을 찔러 넣은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눈치였으니까.

    [올리버…… 레이우드…….]

    “괴물이여, 나를 아는가?”

    [고작해야……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은…… 벌레의…… 몸뚱이로…… 꽤나…… 그럴싸한…… 성장을…… 이루어냈구나…… 올리버…… 레이우드…… 황제의…… 호위기사여…….]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일까?

    옛 동료를 향한 그리움일까.

    아니면 사뭇 다른 무엇일까?

    [좋다…… 너는…… 특별히…… 나와 하나가 될…… 기회를…… 선사해 주도록…… 하지…….]

    ……역시.

    이미 최악의 괴물로 변해버린 그에게 옛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보다 강해졌기에, 앞으로의 계획에 유의미한 자원이 될 것 같기에 잠시 흥미를 품었을 뿐.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괴물의 눈알뿐인 몸뚱이 위에 우뚝 선 올리버 레이우드가 읊조렸다.

    그 기사의 칼날 끝에서 푸른색을 넘은 보랏빛 아지랑이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주지.”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

    그 역시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걸었다.

    이안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자.

    “반쪽짜리의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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