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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38화 (33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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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2화

    불쾌한 소리였다.

    무언가 까드득, 하고 씹히는 소리.

    예컨대 어떤 생물의 뼈가 씹히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불쾌한 소리였다.

    [큭……!]

    아무래도 인간의 뼈가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음 소리를 낼 리가.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목소리다.

    이안이 흘린 음성이 아니었으니까.

    [쏙 빼낸다는 게 그만.]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였다.

    어느새 시계탑 최정상까지 올라온 그가 이안을 핏줄 다발에서 구출해 줬다.

    가져온 검으로 핏줄을 잘랐으며, 포박되었던 이안을 꺼내 시계탑 난간으로 던졌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한쪽 팔을 물렸다는 점인데,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괜찮으십니까?”

    [그럴 리가, 팔이 잘렸는데.]

    “그런 것치고는 많이 침착하셔서요.”

    [그깟 팔뚝이야 나중에 다시 붙이면 되지.]

    별일 아니라는 듯 읊조린 헤라클레스가 검을 허리춤으로 넣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려 나간 왼쪽 팔 역시 그 언저리에 달아놓았다.

    그러고는 등에서 본연의 무기 ‘축복받은 올리브 나무 몽둥이’를 꺼냈다.

    [밑에서 보니 꽤 고전하던 것 같은데.]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까요.”

    [이길 방법이 있겠나?]

    “글쎄요.”

    이길 방법.

    그런 게 있으면 진즉 시도했겠지.

    다만 아예 희망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다.

    “시도해 볼 만한 것들이 조금 남아 있긴 합니다.”

    [근데 왜 안 써먹고?]

    “혼자서는 힘들거든요. 준비가 필요한 방법이라.”

    [시간을 벌어 달라?]

    “나쁘지 않죠.”

    [음.]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 써먹지 못한 방법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그걸 준비하는 데 집중하도록 시간을 조금만 벌어 달라.

    이안의 요청에 헤라클레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저 아래보다는 이쪽이 더 재미있겠군.]

    헤라클레스의 말에 이안이 지상을 슬쩍 바라봤다.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으나, 전세는 많이 기울어져 보였다.

    공허의 군단은 계속 밀리고 있으며, 공허의 군주 또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티탄, 명계, 올리버와 차민성의 합공이 생각보다 거센 모양이리라.

    ‘헤라클레스 혼자서 유의미한 시간을 벌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지배자가 합류한다면.

    전원 합심하여 시간을 벌어준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다.’

    이안이 결심을 굳혔다.

    나아가 멀찌감치 거리를 뒀다.

    마지막 수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헤라클레스 님.”

    이안이 부탁하기가 무섭게.

    쿵!

    헤라클레스가 시계탑 난간을 박차며 날아갔다.

    그는 비록 이안처럼 비행 마법을 부리지는 않았다.

    오직 순수한 근력과 감각만으로 허공을 박차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아니, 공중을 두 발로 뛰어다니는 신묘한 경지와 더불어 시계탑 꼭대기 눈먼 아버지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빠악 - !

    헤라클레스의 올리브 몽둥이가 거대한 눈을 힘껏 후려쳤다.

    지배자 중에서도 힘이 좋기로 정평이 난 헤라클레스 아닌가?

    심지어는 이안과 엮이며 어마어마한 격과 경험까지 쌓아 올렸다.

    그런 그의 몽둥이질은 눈먼 아버지조차 움찔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벌레…… 같은…… 놈……!]

    [뭐라는 거냐? 눈깔 괴물 놈이.]

    빠악! 빡! 빠아악 - !

    핏줄 다발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와 헤라클레스를 노렸다.

    그럼에도 그는 요리조리 피하며 끈질기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성가신 모기가 끊임없이 달려드니 이보다 정신 사나운 게 없다.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할지도 모르겠다.

    놈을 죽이진 못할지언정 일말의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것 같다.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믿었다. 이안도 마찬가지다. 가능성이 보였으니까.

    ‘이 기회를 잡아야겠지.’

    이안은 항상 염두에 뒀다.

    웬만한 마법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

    그런 초월적인 적을 쓰러뜨릴 비장의 마법.

    꽤 오랫동안 연구했고, 어느 정도 완성했다.

    ‘문제는 준비가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인데.’

    그래서 필요하다.

    지배자라는 미끼들이.

    ‘얼마나 버텨줄지는 모르겠다만.’

    믿고 한번 해보는 거다.

    물론 성공한다 해도 이긴단 보장은 없다.

    통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실전에 쓰는 건 처음이거든.

    하지만 성공 확률이 낮다고 해서 마냥 패배를 기다릴 순 없는 일.

    질 때 지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지는 게 맞다.

    “후우우우……!”

    거리를 충분히 벌린 이안이 깊게 호흡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눈앞에 원형의 마법진을 그렸다.

    푸른 마나로 그린 마법진이 한 개, 한 개, 또 한 개.

    총 세 개의 마법진이 삼각으로 겹쳐져 빙글빙글 돌았다.

    우우우우우웅 - !

    그 제자리 회전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느껴지는 기운 역시 불어났다.

    단순한 마나가 아닌, 이안 본연의 격과 결합된 초월적인 힘이 느껴졌다.

    예컨대 이안이 크로노스를 되감을 때 뿜어지는 힘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이건 단순한 공격 마법이 아니다.’

    공격 마법은 대개 뚜렷한 근본에서 비롯된다.

    화염, 냉기, 자연, 빛, 어둠 따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안이 준비 중인 마법의 근본은 달랐다.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 그것이 곧 이 마법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지.’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마법.

    그렇기에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 실전에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미지수요, 상대 또한 크로노스를 다룰 줄 아는 존재이니 두 번째 미지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뿐이다.

    평범한 마법이나 공격으로는 결단코, 결단코 저 괴물에게 죽음을 선사할 수 없을 터.

    ‘……아니, 죽음이 아닌 소멸인가?’

    분명 그리 될 것이다.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이 마법이 놈에게 통한다면.

    [쥐새끼…… 같은……!]

    그러나 이안의 바람과 달리 전체적인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눈먼 아버지를 감당하기란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자르고 끊어내도 그 몇 곱절의 핏줄 더미가 무한정 나타나 헤라클레스를 추격했다.

    [크윽……!]

    결국 헤라클레스의 움직임이 거기서 멈췄다.

    무한대의 핏줄 다발에 붙잡히고 말았다.

    더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죽여…… 주마……!]

    단순히 붙잡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놈은 헤라클레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고자 했다.

    그것도 굉장히 야만적이며 위협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쾅! 콰광! 쾅! 콰광……!

    그 시작은 시계탑이었다.

    헤라클레스를 통째로 시계탑에 내리꽂았다.

    시계탑이 무너지든 말든 쉴 새 없이 내리꽂았다.

    어찌나 무자비한지 철퇴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물론 그 철퇴의 무게추 역할은 철저히 헤라클레스의 몫이었다.

    [커헉……!]

    헤라클레스가 역류하는 피를 분수처럼 토해냈다.

    처음에는 몸부림이라도 치더니, 어느 순간부터 축 늘어졌다.

    기절했든, 이미 숨통이 끊어졌든, 무엇이든 멀쩡하진 않을 터.

    푸욱!

    그러나 놈의 무자비한 손속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축 늘어진 헤라클레스를 시계탑 꼭대기 뾰족한 첨탑에 전리품처럼 꽂았다.

    그러고는 그 위로 떠올라 파괴적인 붉은색 안광을 정확히 직각으로 내리꽂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시계탑이 무너진다.

    눈먼 아버지가 쏘아내린 붉은색 안광과 함께.

    그리고 그 모든 파괴를 온몸으로 받고 있을 헤라클레스와 함께.

    “…….”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린 시계탑 일대.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 지배자들은 물론 얼마 남지 않은 공허의 군단조차 넋을 놓았다.

    도대체 뭘 어찌하면 저 거대한 시계탑을 단숨에 무너뜨려 폐허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놀랍다. 새삼 저런 괴물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하찮은…… 것들……!]

    그런 그들을 가감 없이 멸시한 눈먼 아버지가 다시금 이안에게 다가왔다.

    당연히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만, 설마 벌써 끝나버릴 줄이야.

    아직 주문의 절반조차 완성시키지 못하였거늘, 어쩌면 좋을까?

    [발버둥은…… 여기까지다…….]

    방법이 없다.

    정말 여기까지일까?

    더는 방법이 없는 걸까?

    [이번에야…… 말로…… 나의…… 일부가…….]

    절망.

    그리고 또 절망.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피슈우 - !

    흡사 투창과도 같은 커다란 화살이 눈먼 아버지에게 날아왔다.

    비록 놈의 표면을 꿰뚫지는 못하였으나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

    고결함의 지배자 아르테미스가 쏘아 올린 화살이었다.

    쾅!

    화살 다음은 마법이었다.

    제 할일을 끝낸 프란이 거대한 불덩이를 던졌다.

    이안의 마법조차 먹히지 않는데 프란의 마법 따위가 무슨 효용이 있겠느냐만, 아르테미스가 쏜 화살처럼 눈먼 아버지의 움직임을 아주 잠깐 동안 멈칫거리게 만들 만큼은 되었다.

    [시계탑이 무너졌다! 저들을 상징하는 흉물이 우리 세계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온 거 이판사판이다! 놈을 시계탑 꼭대기에서 몰아내자!]

    [올림포스 놈들한테 공을 빼앗길 순 없지! 이 기세로 밀어붙여라!]

    [티탄의 아이들아, 우리들의 원수가 저 위에 있구나! 끌어내려!]

    어디 화살과 마법뿐일까?

    공허의 군단을 상대로 하나둘씩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 지배자들이 너도나도 하늘 높이 눈먼 아버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들은 조금 전 시계탑이 무너지면서 느꼈던 공포를 용기의 원료로 불태웠다. 어째서 그리할 수 있느냐고? 간단하다. 놈은 이미 고삐가 풀렸다.

    지금 고삐 풀린 괴물을 제압하지 못하면 결국 남는 것은 죽음뿐임을 깨달았으니까.

    [올림포스의 왕이시여! 우리가 무얼 해드리면 되겠나이까?]

    투쟁의 지배자 아레스가 목청 높여 이안에게 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공허의 잔당들을 무참히 쓰러뜨렸다.

    “시간을 버세요. 내가 다들 비키라고 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라.

    그 대답에 모든 지배자와 티탄 일족이 눈먼 아버지를 향하여 일제히 달려들었다.

    공허의 군주와 나머지 잔당들은 전적으로 올리버와 차민성, 명계의 군대 몫이었다.

    [벌레 같은…… 놈들…….]

    모두의 표적이 된 눈먼 아버지.

    그는 정말 진심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 봐야 벌레들의 꿈틀거림일 뿐이거늘.

    그냥 운명에 순응하면 편할 걸 도대체 왜?

    [아니…… 이 또한…… 나의…… 과오인가……?]

    동시에 어떤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시간대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지.

    다시는 저 벌레 같은 놈들이 꿈틀거리지 못하게끔.

    그래야 수없이 반복할 이 여정이 조금은 편안해지리라.

    [과오란…… 그 흔적조차…… 남김없이…… 지워야…… 하는 법…….]

    그 괴물이 읊조렸다.

    눈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지배자들을 향했다.

    그러나 놈의 음울한 목소리는 명백히 이안을 향하고 있었다.

    [보아라…… 네놈의…… 발버둥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이번에는 이전까지와 달랐다.

    이안에게 쏘았던,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시계탑을 무자비하게 무너뜨린 붉은 안광이 아니다.

    칠흑처럼 시꺼먼 어둠, 이안이 부렸던 겁화의 불꽃보다도 훨씬 더 농도와 깊이가 깊은 어둠의 안광.

    그것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지배자들을, 아니, 지상의 모든 것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그를 믿고 따르던 공허의 군주와 휘하 공허의 군단조차 그 잔혹한 어둠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니까.

    “……이런, 미친.”

    지상으로 내리꽂힌 어둠이 걷혔을 때.

    거기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때 번창했던 슈페리언들의 대도시, ‘슈페리어의 심장’이 지워진 것이다.

    바로 이곳, 모든 지배자들의 고향, 슈페리어 차원에서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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