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37화 (337/342)

337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1화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머나먼 미래의 이안 페이지.

범 우주적으로 불리는 이명 ‘눈먼 아버지’.

파괴자로 전락한 그는 어느 날 계시와도 같은 꿈을 꿨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봤다. 누가 뭐라고 한들 똑똑히 목격했다.

장막 너머, 은하 너머, 우주 너머 ‘외우주’에 도사리고 있는 초월자들을.

‘이 우주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그들은 감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큼 아득한 존재였다.

한 우주 전체를 모조리 먹어치운 미래의 이안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어찌하기는커녕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두 번 다시 장막을 들추지 못했을 만큼.

‘그들은 분명 실존한다. 단순한 꿈이 아니야.’

사실 미래의 이안은 처음부터 이 지경까진 아니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인간성이 바닥까지 갔을지언정.

거기에는 반쯤 미쳐 버린 이안 나름대로 신념이 존재했다.

실존하는 적으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명분.

순순히 투항한다면 살려줄 뿐만 아니라 거두기까지 하는 원칙.

‘……그 초월자들이 내 세계로 넘어오면, 그때는 무슨 수로 막지?’

그러나 꿈속에서 장막을 들춰본 이후부터 그는 완전히 미쳐 버렸다.

실존한다고 확신조차 하기 어려운 외우주의 존재들을 적으로 삼았다.

그들이 곧 우리 세계로 넘어올 것이라는 불확실한 공포에 잡아먹혔다.

더는 나름대로의 신념이랄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에 이르렀다.

‘강해져야 한다. 더, 더, 더……!’

만약 그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장막 너머를 들추지 않았더라면.

우주 구석구석까지 이 잡듯 들쑤시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시공간까지 넘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거기서, 모두를 지켰다는 만족감으로 조금씩 죽어갔을 텐데.

[네놈은…… 아무 것도…… 알지 못 한다…… 무엇이…… 우리 세계를…… 지켜보고…… 있는지…… 무엇이…… 장막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지를…….]

하지만 결국 보고 말았기에.

보는 순간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기에.

먼 미래의 이안 페이지는 지금 여기에 있었다.

자신이 목격했던 외우주가 실존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저 대비할 뿐이다.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니…… 내 안에서…… 보아라…… 진정한…… 공포를……!]

눈먼 아버지의 붉은 안광이 이안을 집어삼켰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자 했다.

죽여서 격만 얻으면 그만이다. 다시 시공간을 뛰어넘으면 된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힘을 빼앗는다. 해서 조금씩 강해진다.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외우주의 존재들에게 닿는 순간이 오겠지.

그날이 오는 순간 비로소 멈출 수 있으리라. 이 굴레도, 광기와 두려움도.

“……그러니까.”

물론 이안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위인이 아니다.

머나먼 미래의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든, 어떤 뜻을 품었든.

그런 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했으니까.

“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강한 적이 존재한다는 뜻인가?”

[그런…… 얄팍하고…… 한심한…… 관점으로는…… 결단코……  이해할 수…… 없을 거다…….]

“해서 과거의 너를, 나를 죽이러 왔다는 거지? 목적은 내가 키운 힘이고.”

[이해…… 했다면…… 순순히…… 받아들여라…… 네놈의…… 유일한…… 쓰임새를……!]

“하.”

이안이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쯤 되니 인정하기 싫어도 아니할 수가 없겠다.

이안 본인의 핏줄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누가 프란 페이지 혈통 아니랄까 봐 그놈이랑 똑같은 짓을 하고 자빠졌어?”

과거의 프란 페이지 역시 그랬다.

이안이 좀 더 빠르게 성장하게끔.

한계를 뛰어넘게끔 이런저런 계략을 꾸몄다.

이안의 육체를 자기 영혼의 그릇으로 쓰려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정확히는 미래의 자신이 그러고 있다.

육체와 격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그 옛날 프란과 다를 것이 없으리라.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흐음,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군.”

조금 전 붉은 광선에 가루가 되어버린 로브 끝자락을 툭툭 턴 이안이 읊조렸다.

그는 진심으로 못마땅했다.

작금의 모든 상황이, 특히나 프란을 닮았다는 사실이.

아무리 이성을 놓고 미쳐 버렸어도 그렇지. 과거의 프란과 똑같은 짓을 할 줄이야.

“아니, 아예 믿기지가 않아. 미래의 내가 그따위 선택을 했다는 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미래가 저 괴물이라는 것도.

한술 더 떠 가장 증오하는 이를 닮았다는 것도.

“확인을 해봐야겠어.”

그러니 확인을 해봐야겠다.

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현명…… 하구나…… 그렇다면 이제…… 나와…… 한 몸이…… 되어…… 모든…… 진실을…….]

“아니, 그거 말고.”

[……?]

“우선 내 손으로 너를 끝장내야지. 저거부터 막으려면.”

이안이 손가락으로 하늘에 뚫려 있는 구멍을 가리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행성이 조각나고 있을 차원 너머.

저걸 막기 위해서라도 미래의 자신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러고 나서, 네 기억과 격을 내가 취하는 거야. 그럼 확인이 되잖아?”

[…….]

“만약 사실이면 내 방식대로 준비할 수도 있겠지. 네놈 방식이 아니라.”

이기는 건 이쪽이다.

승리한 이안이 패배한 이안을 취한다.

하여 각자의 방식에 따라 미래를 설계한다.

그 말에 시계탑 최상층의 거대한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결국…… 무의미한…… 저항을…… 선택…… 하려는 건가……?]

“무의미한지 아닌지는.”

이안이 지팡이를 가지런히 잡았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선 몸가짐이었다.

“해봐야 알겠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이길 수 있단 확신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지가 없다.

진정 목숨을 걸고 맞설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쿠구구구구구궁……!

콰광! 쾅! 콰과광 - !

가장 먼저 강력한 낙뢰가 사방으로부터 내리쳤다.

모든 벼락의 목표물은 오직 하나, 눈먼 아버지.

그 공허한 눈을 향하여 사정없이 뻗어 나갔다.

[크으으으으윽……!]

물론 이안의 목숨을 건 맹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고자 했다.

콰득, 콰득, 콰드드드득……!

백만의 분신과 백만 덩이 롱기누스의 창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만 덩이 빙뇌의 창이 오직 단 한 명의 적에게 비처럼 쏟아졌다.

그 광경은 정말이지, 지상에서 싸우던 이들조차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아직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욱 몰아쳐야 한다. 티끌만 한 타격이라도 줘야 한다.

그래야 저 구멍이라도 어떻게 틀어막을 수 있겠지.

나아가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이겠지.

“흐읍……!”

이안이 서둘러 세 번째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양쪽 팔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

그러자 놀랍게도 지면으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그것은 땅 아래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한 쌍의 팔뚝이었다.

파스스스스스스……!

흙먼지와 돌조각을 잔뜩 흩뿌리며 솟구쳐 올라온 한 쌍의 초대형 바위 팔뚝이 쭉 뻗은 양쪽 손으로 롱기누스 고슴도치 신세가 되어버린 시계탑 최상층의 괴물을 강하게 붙잡았다.

무엇이 되었든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일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는 뜻.

화르르르르륵……!

네 번째 마법은 화염 계열 마법이었다.

여러 마법 중에서도 으뜸의 화력을 자랑하는 주문.

모든 것을 정화한다는 가장 고결한 백색의 불꽃.

일컫기를.

‘정화의 불꽃.’

그러나 이안은 그 고결한 불꽃에 특별함을 추가했다.

높아진 격과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혼탁하게 변해버린 영혼을 정화의 불꽃에 담았다.

그러자 잡티 한 점 없이 새하얗던 불덩이가 조금씩 밤하늘과도 같은 칠흑으로 물들었다.

‘조금 더…… 파괴적으로……!’

마침내 완성된 새까만 불꽃.

마치 잉크로 그린 것처럼 이질적인 빛깔.

‘겁화의…… 불꽃!’

세상의 마지막 순간.

온 세상을 불태워 무로 되돌릴 때 일어난다는 전설의 불꽃 겁화劫火.

그 이름을 딴 암흑의 불덩이가 이안의 손아귀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이것도 무의미한지…… 한번 볼까?”

새까만 불덩이가 단단히 고정된 눈먼 아버지에게 뿜어졌다.

무엇이든 불태울 것처럼 보이는 파멸적인 불꽃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효과가 있을 거다.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만약 이마저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다면…….

‘……가능성이 줄어든다. 많이.’

누가 시간이라도 벌어주지 않는 한.

이 이상의 살상 마법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제발 효과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하아아아아압……!”

마침내 겁화의 불꽃이 표적을 집어삼켰다.

어마어마한 폭발과 연기가 시계탑 일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감히 그 어떠한 생명체도 저 폭발 속에서 살아남기란 어려울 터.

그런데 왜일까? 저 폭발을 보고도 아무런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실망이…… 크구나…….]

그 이유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욱한 연기 안쪽으로부터 멀쩡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어디 그뿐일까? 놈의 눈에서 수만 갈래 핏줄이 촉수처럼 뻗어져 이안의 육신을 잡았다.

조금 전 거대한 바위 손 한 쌍으로 놈을 붙잡았던 구도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겨우…… 여기까지밖에…… 성장하지…… 않았을…… 줄이야…….]

겨우 핏줄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안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격과 마법의 힘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강력한, 그 자체로 권능에 가까운 핏줄이 분명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실망하기는…… 이르겠지…….]

수만 갈래 핏줄에 묶인 이안이 조금씩.

아주 천천히 거대한 눈앞으로 당겨졌다.

종국에는 코앞까지 닿을 만큼 가까웠다.

[이것은…… 기껏해야…… 위대한…… 발걸음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니…….]

그리고 그 순간.

쩌저저저저저저적……!

끔찍한 광경이 이안의 눈앞에서 일어났다.

먼 미래의 이안 페이지, 말하기를 눈먼 아버지.

그 거대한 눈알이 위아래로 쩍, 하며 벌어졌다.

마치 뱀 먹이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는 것처럼.

[아직…… 나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남아…… 있으니…….]

아니, 처럼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입’이었다.

이안을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는.

핏물이 침처럼 뚝뚝 흘러나오는 괴물의 아가리 말이다.

[그 기회의…… 일부로…… 쓰이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라…….]

쩍 벌어진 기괴한 아가리가 포박당한 이안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영혼들의 절규가 들렸다.

여태껏 저 입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체들을, 그리고 행성을 잡아먹었을까?

[나의…… 가엾고도…… 애처로운…… 밑거름이여……!]

하지만 그 의구심도 잠시일 뿐.

이안은 끝내 모든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어째서냐고? 간단하다.

놈의 아가리가 움직였거든.

콰직!

바로 이렇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