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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36화 (33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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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50화

    “……아비 소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반말은 좀 너무하지 않느냐?”

    나타나자마자 이안의 심기부터 건든다.

    이쯤 되면 이안 불쾌하게 만들기 전문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순순히 용서해 줬다.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지 않았던가?

    ‘무엇보다도…….’

    지금부터 프란 페이지가 해줄 일.

    그것이 굉장히 급하고 중요했으니까.

    “이번 일만 잘 끝나면 특별히 해줄게.”

    “뭘? 설마 아버지 소리를 해준다는 건가?”

    “그럴 리가, 존댓말 한 번 해준다고.”

    “겨우?”

    “싫으면 말든가.”

    “흐음, 뭐, 그것도 나쁘지 않네.”

    피식 웃은 프란이 마법의 힘으로 들어 올린 거대 약병과 함께 지상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허의 군단과 맞서 싸우던 지배자들이 시계탑을 타고 올라왔다.

    족쇄의 결속에 굴복하여 눈먼 아버지에게 향하는 이안을 끌어내리려는 게 분명할 터.

    “……쯧, 명색이 지배자라는 놈들이 노예하고 다를 게 없어서야 원.”

    저런 노예나 다를 거 없는 족속들의 세계에 합류하고자 이 고생을 해왔다니.

    이루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회의감 속에서 프란 페이지가 천천히 손짓했다.

    퐁!

    그러자 거대 약병의 주둥이를 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가 퐁, 하고 떨어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담겨있던 황금빛 액체 역시 프란의 손짓에 따라 바깥으로 역류했다.

    그럼에도 쉬이 흩뿌려지지 않으며 허공을 맴도는 것이 명백한 프란의 마법이었다.

    “저 노예들 정신만 차리게 하면 되는 건가?”

    “당신이 그 이상으로 뭘 할 수나 있고?”

    “말을 해도 꼭…….”

    고개를 휘휘 저은 프란이 양쪽 팔을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허공을 맴돌던 약물 역시 사방으로 고루 퍼져 나갔다.

    시계탑 일대에 ‘해방의 비’를 내리기 위한 프란의 컨트롤이었다.

    쏴아아아아아-!

    마침내 해방의 약물이 폭우처럼 시계탑 일대에 쏟아졌다.

    나아가 지배자들의 육신을 흠뻑 적시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들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그런데, 이길 수 있겠냐? 저 괴물 말이다.”

    “글쎄, 그건 해봐야 알겠지.”

    “흐음, 솔직히 내 눈으로는 도저히 사이즈가 안 나오거든.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우리 잘나신 대마법사 이안 페이지 공의 눈에는 남들한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나 싶어서.”

    “알 거 없어. 부정 타.”

    “사실 너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고?”

    “…….”

    “오우, 알겠어. 알겠다고. 안 물어볼게. 됐지?”

    이안이 대답 대신 노려만 보자 서둘러 두 팔부터 번쩍 드는 프란이었다.

    반쯤 주종관계로 전락하였음에도 저놈의 능글스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기야, 먼 미래의 모습인 혼돈의 군주조차 버리지 못한 성향 아니겠나?

    “그러니까 그만 노려보고 올라가기나 해. 존댓말은 달아놓을 테니까.”

    프란의 능청에 고개를 끄덕여준 이안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곧 눈먼 아버지와 정면으로 마주할 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이안도 잘 모르겠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꽤 어려울 것 같다.

    프란의 말에 쉬이 대꾸하지 못한 까닭도 그래서였다.

    저 괴물한테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거든.

    ‘만약 시간이 넉넉해서 공허의 군주와 휘하 군대를 내 손으로 끝낼 수 있었다면, 해서 그들의 격을 모조리 취했더라면 가능성이 더 높아지긴 했겠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공허의 군주는 가히 혼돈의 군주를 능가할 만큼 강한 존재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 휘하 병사들 역시 최하급 지배자 수준은 된다.

    만약 그들의 격을 모조리 취했더라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디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이런 변수,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으리라.

    ‘익숙해진 만큼 대처도 능숙해야겠지.’

    어차피 여기서 지면 다 끝장이다.

    크로노스조차 되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알다시피 상대 또한 크로노스의 권한을 갖고 있잖아?

    필시 간파당하고 어떤 방해를 당할 것이 자명한 일일 터.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그게 맞다.

    그렇게 생각함이 옳다.

    시간 회귀는 무기가 되지 않는다.

    더 이상 이안만의 권능이 아니었으니까.

    “…….”

    그로부터 잠시 후.

    이안은 마침내 닿았다.

    “……반가워.”

    눈먼 아버지라 불리는 우주적 존재.

    혹은 머나먼 미래의 이안 페이지 자신.

    그 괴물의 공허하고도 메마른 눈동자 앞에.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지?”

    이안이 먼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어째서인지 특별한 적개심은 없었다.

    그저 도려내야만 하는 살점이라고나 할까?

    ‘어찌 되었든 나 자신이라서 그런가?’

    오묘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든다.

    입안의 돌기처럼 걸리적거리는 느낌이다.

    […….]

    아무래도 그 오묘함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아무런 저항이나 공격을 펼치지 않았다.

    꾸역꾸역 여기까지 올라온 피라미가 신기한 듯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그 시선으로부터 알 수 없는 처연함이 느껴졌다.

    “……어디서 듣기로는 갓난아기 수준의 지능까지 떨어졌다던데, 그럼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겠군.”

    아마 시작은 그랬을 거다.

    작금의 이안과 똑같았겠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위협이 되는 모든 것을 파괴하다 보니.

    어느덧 미래의 이안은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젠 무엇이 소중했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그저 본능에 각인된 파괴만을 충실히 일삼는 괴물.

    “어쩌다 그 모양이 되었어? 내가, 우리가 그렇게 사리분별이 안 되는 타입은 아닐 텐데, 얼마나 많은 짐을 감당했으면 그래 눈알 하나 남아서 그러고 있냐. 괜히 사람 측은하게.”

    진심이다.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대충 알겠거든.

    그것은 정말이지 고단하고 고독한 길이었으리라.

    “아, 물론 다 이해해. 뭘 위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 그런데 있잖아. 나는 이해하는데, 이 세상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만큼 네가 일삼은 범 우주적인 파괴 행위, 그리고 학살은 누구한테도 인정받지 못할 짓이거든.”

    다만 이해와 용서는 다르다.

    놈은, 미래의 이안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너무나도 많은 세계를 파괴했고, 많은 생명체를 학살했다.

    그것은 이안이 원하는 미래가 아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처음 시간을 되돌렸을 때, 라그나르한테 뒤통수 거하게 맞고 악에 받쳐서 시간을 되돌렸을 때 기억나? 애초에 우리가 용언인 줄 알았던 그 힘을 어째서 연구했어? 친구랍시고, 충성한답시고, 제국을 위해서랍시고 내 손에 묻힌 피를 지우고 싶어서였잖아? 물론 나중에는 생각을 고쳐먹었지만, 중요한 건 이미 알고 있다는 거야. 그 어떤 명분을 옆에 세워도 학살은, 나도 해봤고, 너도 해본 그 잔혹한 짓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렇게 되었다.

    이제 모든 과오를 바로잡을 차례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고마워. 지금처럼 살면 훗날 어떻게 될지 다 봤으니까, 덕분에 나는 너와 다른 길을 걸어갈 것 같거든. 너처럼 파괴자도, 학살자도, 괴물도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파괴자, 학살자, 괴물 따위가 아닌.

    오직 이안 페이지로서 존재하는 삶.

    “내 딸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말이야.”

    딸.

    그 말에 눈먼 아버지의 동공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눈에서 처음으로 감정이란 것이 느껴졌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그 괴물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감정을 넘어서 본능적인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대체 놈의 어떤 허를 찔렀기에 이런 반응을 보일까?

    알 수 없는 일이나, 아무래도 대화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그래 뭐, 어차피 나도 대화로 풀 생각은 없었…….”

    [나를…….]

    “……어?”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갓난아기처럼 퇴화해 버린 줄 알았던 괴물의 입에서 목소리가.

    심지어 명백히 이안의 모국어인 제국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해…… 한다고……?]

    그것은 명백한 답변이었다.

    이안의 말에 대한 화답 말이다.

    애당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뜻.

    그 괴물이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네놈 따위가…… 장막을 들춰…… 그 너머의 심연을…… 본 적조차…… 없는…… 한낱 조무래기에…… 불과한…… 네놈…… 따위가…… 감히…… 감히 나를…… 이해…… 한다고……?]

    그 괴물의 목소리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이 뿜어져 나왔다.

    놈은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이안의 말을 하찮고 가증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네놈은…… 정녕…… 프란 페이지…… 따위가…… 나를…… 그리고…… 너를…… 여기로…… 이끌었다…… 생각하는가……? 오만이…… 지나치구나…… 멍청하기…… 짝이…… 없어…….]

    미래의 이안은 그저 파괴만이 본능에 각인된 괴물일 뿐이다.

    그 괴물을 구원하고자, 모든 것을 끝내고자 과거로 넘어왔다.

    먼 미래의 프란 페이지, 혼돈의 군주는 분명 그렇게 주장했다.

    한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나 보다. 놈의 말이 명백한 증거였다.

    [과거의…… 나는…… 얼마나 아둔했던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저…… 평화라는…… 소꿉놀이에…… 매몰된…… 한낱 어린…… 아이에…… 불과한 것을…….]

    눈먼 아버지.

    그 우주적 존재가 이안을 노려봤다.

    [모든 것은…… 모든…… 흐름은…… 내가…… 여기에…… 있는…… 것도…… 네놈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나의…… 의도였을 뿐…….]

    그러고는 과거의 자신에게.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노라 믿는 그를 비웃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길을…… 걷겠다고 했지…… 하지만…… 너는 결단코…… 그럴 수…… 없다…… 네놈의…… 무의미한…… 발버둥은…… 여기서…… 멈출…… 터이니…… 영원토록…….]

    나아가 피처럼 붉은 안광을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당장에라도 광선을 쏘아댈 것처럼 무섭게 꿈틀거렸다.

    [아…… 어쩌면…… 이거 한 가지는……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를…… 이해한다는 말…… 그래…… 그것은…… 가능하겠지…… 네놈은 결국…… 나를…… 이해할…… 것이다…… 바로 내…… 안에서…… 나의…… 두 눈으로…… 나의…… 심장으로…… 나의…… 얼마 남지 않은…… 영혼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결국에는…… 깨달을 터이니……!]

    거기까지였다.

    눈먼 아버지가 내뿜는 시뻘건 안광이 이안을 집어삼켰다.

    어지간한 지배자는 뼛조각 한 줌 남기지 못할 만큼 궤멸적인 광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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