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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47화
[저 푸른 피부의 거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세계에서는 우리 고향을 첫 번째 중간계라고 부른다. 우리들의 위대한 영웅 이안 페이지가 친히 저 너머의 세계로 넘어가 알아낸 사실이지.]
널따랗게 도열된 비행포격선과 드래곤 일족 중 가장 중심, 가장 최전방.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탑승한 대장선은 바로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간계, 참으로 오만방자한 표현이 아닌가? 명백히 낮잡아보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음을 과시하는 멸칭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짐은 우리 세계를 중간계라고 칭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붙인 문드아일이라는 이름 또한 이 자리에서 황제의 직권으로 폐기를 명한다. 이 땅은 그저 우리들의 터전이고, 소중한 고향이며,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세계일 뿐이니까.]
대장선 갑판으로부터 송출되는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음성이 모든 비행포격선의 통신수정구를 통하여 일제히 퍼져 나갔다. 그는 비록 모두를 전율케 할 만큼 엄청난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각오와 진심을 담백하게 전달할 줄 아는 황제였다.
[저 앞을 보라. 우리 고향을 짓밟고자 몰려드는 저 거인들을 보라. 예전이었더라면, 죽은 자들과의 전쟁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였다면, 아마 지금쯤 저 괴물들과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마 줄행랑을 치고 있었겠지. 나도 마찬가지다. 그대들도 익히 알다시피 나는 겁이 많아. 얼간이 황태자 출신이거든.]
얼간이 황태자.
그 오랜 멸칭을 당당히 꺼내 들 수 있을 만큼.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장치로 활용할 만큼.
작금의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많이 달라졌다.
[허나 짐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있지. 선봉장 행세까지 하면서 말이다. 어째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짐이 예전과 달리 용감무쌍해져서? 아니면 타고 있는 이 대장선이 튼튼해서? 음, 틀린 말은 아니군. 황제가 타는 비행포격선이라고 장인들이 공을 좀 들이긴 했어. 하지만 그거 조금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느냐?]
오랜 세월 오늘의 전투를 준비하면서, 숱한 모의 전투를 반복하면서.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는 단 한 번도 최전방에 서지 아니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쇼맨십이 아닌, 정말 이 순간을 위한 만반의 준비였다.
단언컨대 후방으로 물러날 계획 따위는 단 한 순간도 세우지 않았다.
[짐이 믿는 것은 바로 우리다. 우리 모두가 쌓아 올린 저력이다.]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가 마도공학 장인 스람이 만들어준 고글을 내렸다.
인공정령 안나와 결합한 고글로서 매우 다양한 기능을 자랑하는 고글이었다.
[돌이켜보아라. 창칼과 마법, 기병 따위가 전부였던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들을, 마법 대포로 무장한 비행포격선을 무려 일만 대나 건조했다. 언젠가부터 나타난 각성 현상 경험자들을 빠르게 규합하여 최정예 군대까지 꾸렸다. 무기와 방어구의 성능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강해졌으며, 한때 공포의 대상이었던 드래곤 일족조차 이제는 우리들의 아군을 자청하고 있다. 이런데 짐이 우리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을 수가 있겠는가?]
고글과 흑요석 갑옷.
그다음은 붐 스틱 차례였다.
여러 장인들이 오늘을 위하여 제작한 대물 저격 붐 스틱.
이름하야 ‘슈페리어 킬러’와 함께 능숙한 저격 자세를 취했다.
[그대들을 믿고 있기에, 우리가 함께 이룩한 모든 것들을 믿기에 얼간이 황태자였던 짐이 상아탑주도, 검공도 없이 그대들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군들도 겁먹지 마라. 숨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라.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낸 우리 인류에게 저 거인들은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니까. 그저 거세게 저항하는 커다란 사냥감에 불과할 뿐이니까!]
나아가 슈페리어 차원에서 넘어온 거인 중 한 마리를 겨누었다.
가장 앞장서 걸어오는, 멍청한 얼굴을 한 푸른 피부 괴물의 머리를.
[똑똑히 보아라! 내 말의 근거를!]
다소 격양된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목소리.
그러나 붐 스틱을 다루는 황제의 호흡과 눈빛, 그리고 손동작은 전혀 격양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것이, 수많은 병사들 앞에서 창피당할 일은 없겠거니 싶다.
“후우.”
침착하게.
흐트러짐 없이.
셋, 둘, 하나, 격발.
피슈웅 - !
방아쇠를 당기기가 무섭게 슈페리언 킬러의 총구 끝으로부터 강력한 마나탄이 발포되었다.
그 탄은 단발이 아닌 빛기둥 형태로 순식간에 뻗어 나가 거인의 미간을 꿰뚫어버렸으니, 거인으로서는 아주 조그마한 빛줄기에 불과하였는데도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밖에 없었다.
관통당한 구멍이 크든 작든 뇌를 정통으로 꿰뚫렸으니 생물체로서 어찌 살아남겠는가?
쿠구구구구구구구……!
황제의 완벽한 저격 한 방에 거인 한 마리가 무너졌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만큼 그 굉음 역시 무지막지했다.
장인들의 초월적인 기술력으로 말미암은 쾌거였다.
“뭐, 뭐야……?”
“쓰, 쓰러졌잖아? 한 방에…….”
“겨우 저거 한 방 맞았다고……?”
그리고 그 광경을 모두가 봤다.
황제 하이든이 거인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더 이상 이 싸움에서 덩치는 무기가 되지 않음을.
더는 포식자가 아닌, 그저 커다란 사냥감에 불과함을.
[다들 똑똑히 보았겠지? 저들은 포식자가 아니다. 진정한 포식자들은 지금쯤 저 차원의 통로 너머에서 우리들의 영웅 이안 페이지와 올리버 레이우드를 감당하기조차 벅찬 상태일 터! 저 거인들은 그저 우리라는 약점을 손에 넣기 위한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상아탑주와 검공을 상대로 협박할 수 있는 약점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여기서 패배하지 않는다! 더 이상 약점 따위가 아닌 믿음직한 아군이 되어 함께 싸운다! 비록 서로의 전장이 다를지라도!]
거인을 쓰러뜨린 ‘최초의 저격수’.
하이든 그린리버가 목청을 높였다.
[그대들이 나고 자란 고향을 지켜라!]
우리 모두의 고향 땅을.
한평생 나고 자란 터전을.
[그대들의 소중한 가족을 지켜라!]
전쟁이 끝나고 돌아갈 집을.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포격 준비! 저격수 앞으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을 섬멸하라!]
* * *
‘옳은 선택이겠지.’
오래 전에 상아탑주 권한대행 직에서 내려온 로난 시어러.
그는 이안의 말을 황제에게 전달한 직후 어디론가 향하였다.
정확히는 이안에게 받은 무언가의 적임자를 떠올린 까닭이었다.
‘이안 공께서는 나에게 취하라 말씀하셨지만…….’
불쑥 나타난 차원 문으로 끌려갔던 찰나.
이안에게 슬쩍 넘겨받은 물건은 바로 격이 담긴 결정체였다.
결백의 증거로 모든 격을 내어준 로난에게 다시금 격을 내어준 거다.
거기에는 힘을 다시 되찾아서 전투에 참전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을 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기회였건만, 로난은 어찌 된 영문인지 격을 흡수하지 않았다.
‘이건 내 몫이 아니야.’
이쪽 세계의 명운이 걸린 전투다.
그 전투에 크나큰 역할이 되어줄 힘.
슈페리언이면서 중간계로 내려와 감화된 자신은 취할 수 없는 힘이다.
자신보다 더욱 간절하며, 더욱 잘 써먹어 줄 누군가에게 돌아감이 옳다.
다행히 로난은 그 누군가를 쉽게 떠올렸다. 마침 적임자가 있었거든.
‘이 아이의 것이지.’
로난이 상아탑 최상층 마법 연무장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스승님! 어딜 갔다가 이제 오셨어요? 다들 싸우러 나갔다고요!”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요하나 페이지.
로난 시어러는 이안 페이지의 딸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슈페리어의 언어와 그 언어에 담긴 권능을 전수하기 위함이었다.
요하나를 지배자에 상응하는 강자로 만들고자 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저도 당장 싸우러 가야 해요! 그러니 왜 기다리라고 하셨는지 말씀을……!”
“……안다. 누구보다 싸우고 싶겠지.”
요하나는 당장에라도 전투에 참전할 기세였다.
이미 반쯤 텔레포트 주문을 완성시키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참는 까닭은 오직 로난 시어러 때문이다.
스승님께서 기다리라 하셨으니 꾸역꾸역 참는 중이었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해왔을 터이니.”
로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안과 함께 시간을 되돌아온 이후.
요하나는 강해지기 위하여 참 많은 것들을 해왔다.
올리버와의 수련이 그랬고, 붉은 용 일족과의 수련이 그랬다.
그밖에 반쯤 미친 사람처럼 준비하고 또 준비하였으니, 지금 북부에서 벌어지고 있을 전투에 합류하지 못한 요하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온몸의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리라.
“해서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째서…….”
“너에게 전해줄 것이 있거든.”
“네? 줄 것이요? 저한테요?”
“그래.”
로난이 이안에게 받은 격의 결정체를 꺼냈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요하나에게 건넸다.
“정확히는 네 아버지가 나에게 준 힘이지.”
“……아, 아버지께서요?”
아버지, 이안 페이지.
그 말에 요하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버지라니, 아버지께서 왔다 가셨단 말인가?
“이안 공께서는 나에게 이 힘을 주셨다. 물론 내가 직접 취하고 전투에 합류하기를 원하셨을 테지만, 나는 네 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보다 나은 방법이 떠올랐거든.”
자신이 취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
그 정답은 바로 요하나 페이지였다.
“나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이 세계에 애착이 강하며, 이안 공의 핏줄답게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 그리고 이제는 슈페리어의 언어와 그 언어에 담긴 힘까지 체득한 또 다른 강자를 알고 있거든. 내가 판단하기로는 그 마법사에게 주는 것이 백번 옳다고 보는데.”
그 정답이자 마법사, 요하나 페이지.
잠시 말문을 멈췄던 로난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 생각은 어떠하느냐? 요하나.”
“…….”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소식.
더더욱 갑작스러운 로난의 결정.
당혹감을 느낀 요하나가 잠시 침묵했다.
물론 그 침묵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동감이에요. 스승님보다는 제가 적격이지요. 여러모로. 더군다나 우리 아버지께서 주신 힘이라면서요? 그럼 당연히 딸한테 줘야지. 이것도 엄연한 재산 상속인데. 안 그래요?”
“……재산 상속이라, 허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로구나.”
정확히는 빼앗겼던 힘에 이자까지 얹어서 받은 셈이지만.
굳이 거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노라 판단한 로난이었다.
“받아라. 그리고 그 구체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받아들인다라…… 정확히 어떤 식으로요?”
“설명이 필요 없을 거다. 그런 힘이니까.”
마침내 요하나가 격이 담긴 구체를 건네받았다.
또한 그와 동시에 로난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했다.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말을, 본디 그런 힘이라는 말을.
화아아아아 - !
결정체에서 뿜어지는 강력한 기운.
그 힘의 폭풍이 요하나 페이지를 휘감았다.
결정체에 담긴 격을 오롯이 받아들일 그릇이 되었다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