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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32화 (33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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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46화

    아스가르드 전당의 과업 수행자였던 올리비우드와 제임스.

    아니, 올리버와 차민성은 함께 과업을 수행하며 급격히 가까워졌다.

    몇 차례 과업으로 생사고락을 나누면서 실로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거든.

    ‘이안 페이지.’

    어떤 마법사의 이름이 두 사람 간에 언급된 것은 지극히 우연이었다.

    그 이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비밀이며 암호 아니겠는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시적 협력관계에 불과했던 두 남자의 사이가 믿고 등을 맡길 수 있을 만큼 발전한 데에는 전적으로 이안 페이지라는 이름의 공유가 큰 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중간계.’

    앞서 나간 마법사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온 중간계인.

    각기 다른 중간계를 지키고자 목숨 걸고 다른 시계에서 고생 중인 후발주자들.

    두 남자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낯선 세계에서 만난 믿을 수 있는 아군.’

    가뜩이나 낯선 세계다.

    사방이 온통 적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믿음직한 아군을 얻었다.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공유했다.’

    함께 과업을 수행했고, 지배자의 자격을 허락받았다.

    함께 수련에 매진하였으며, 나란히 보랏빛 별의 선택을 받았다.

    하데스의 도움을 받아 평의회에 무사히 안착했고, 최상급 지배자가 되었다.

    상의 끝에 올리버가 대표로 오딘을 격퇴하여 아스가르드의 실권을 장악했으며, 그 무렵 돌아온 토르의 도전을 이겨내고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안과 함께 나섰던 마계 사냥은 물론 그 마계라는 행성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예컨대 탈출한 악마들의 이야기까지 전부.

    ‘토르는 사냥에서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도망친 악마를 찾아 사냥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안과 헤라클레스 몰래, 철저히 혼자서만 독식하려고 했지. 나에게 패배하기 직전까지는.’

    물론 그 계획은 오딘 대신 왕좌에 앉아있는 올리버로 하여금 조금씩 수정되었다.

    먼저 토르 혼자만 독식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대신 이안과 헤라클레스가 아닌 올리버와 차민성을 합류시켰다.

    이후 유일한 비프로스트 제작자 토르의 노력 끝에 우주를 표류 중인 마왕과 악마 중 일부를 찾았고, 이안이 했던 것과 똑같이 그들을 사냥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지.’

    그린리버의 기사, 올리버 레이우드.

    매 삶의 순간순간을 오직 기사로서, 칼을 든 이로서 이겨내고 또 이겨낸 역전의 용사.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데 도가 튼 그가 검으로 수려한 반월을 그리는 순간.

    스걱 - !

    무려 수백 명에 육박하는 공허의 군단병이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를 면치 못하였다.

    다시 말하는데 고작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백의 병력이 죽어 나간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 기사는, 올리버 레이우드는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다.

    태생적인 한계를 뛰어넘다 못해 등선登仙의 경지에 올라섰으니 말이다.

    “이안 공, 나를 알아보시겠소?”

    “많이 젊어지긴 하셨는데,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닙니다.”

    “그럴 리가, 내 이렇게나 잘생겨졌건만.”

    “원래도 외모가 썩 나쁜 편은 아니셨던지라.”

    “못 본 새 많이 변하셨구려. 낯간지러운 말씀도 곧잘 하시고.”

    “아부가 몸에 배었습니다. 괴물 같은 작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아, 그럴 만하지. 나도 그렇소. 폐하께도 안 하던 감언이설을 여기서 다 한 것 같군.”

    이안과 올리버.

    오랜만의 조우임에도 어제 봤던 것처럼 죽이 척척 맞는다.

    물론 그 호흡은 단순한 농담 주고받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상황이 좀 나쁩니다.”

    “내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하지 않았소?”

    “나중에 자서전 쓰시면 꼭 넣으세요. 영웅처럼 등장했다고.”

    “고려해 보겠소. 으음, 그건 그렇고,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눈치인데.”

    “바로 맞추셨습니다. 별건 아니고, 저기 저놈 보이십니까?”

    “딱 봐도 저쪽 우두머리 같구먼.”

    “정확히는 그 아래입니다. 진짜 우두머리는…….”

    이안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시계탑 최정상보다 높은 곳의 커다란 눈을.

    “아, 대충 알겠군.”

    딱히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올리버는 모든 것을 알아챘다.

    이안이 무얼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무얼 바라는지.

    “우두머리는 우두머리끼리, 아랫것은 아랫것끼리 치고받는 게 옳겠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지금으로써는 가장 효율적인 분배니까요.”

    “좋소. 내 저놈을 맡아 드리도록 하지. 대신 뭐가 되었든 반드시 성공하시오.”

    “그야 물론입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다 한 거 아닙니까?”

    이안이 씨익 웃자 올리버 역시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이제야 공허의 군주를 상대할 적임자가 나타난 셈이었다.

    “그럼 어디…….”

    올리버가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러고는 무면탈 군단의 우두머리.

    공허의 군주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몸 좀 풀어볼까.”

    카앙 - !

    순간적인 가속.

    그리고 폭발적인 일격.

    이를 가까스로 막아낸 공허의 군주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만만하게 봤던 벌레의 날붙이가 썩 매서웠으니까.

    “……와우.”

    올리버가 처음 이 전장 한복판에 나타났을 때.

    검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수백의 적을 도륙했을 때.

    이안은 단번에 확신했다. 자신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 거라고.

    ‘사실 이건 오래전부터 느꼈던 점이기도 해.’

    굳이 따지면 이안 자신과 5년간 대련을 나누었던 시절부터.

    또한 고위마법사였던 헬레느를 검 한 자루로 압도했을 때부터.

    올리버가 검을 잡아서 그렇지, 같은 재능 값으로 마법사의 길을 걸었더라면 인류 최초 8클래스 마법사의 자리는 이안이 아니라, 어쩌면 올리버 레이우드의 몫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물론 한 분야의 재능이라는 것이, 그리고 한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정해지는 것은 아니겠다만, 적어도 이안이 올리버 레이우드라는 천재를 평가하기로는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금 올리버 레이우드가 보여주기 시작한 몸놀림.

    다른 거 없이 오직 검 한 자루로 이룩해낸 고강한 경지.

    그 결과를 현실로 보자니 이안은 새삼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시간이라도 벌어줬으면 좋겠거니 싶었는데.’

    이건 시간을 버는 수준이 아니다.

    무려 공허의 군주와 호각을 다툰다.

    이번에도 역시나 검 한 자루만으로.

    ‘하여튼 간에 괴물 같은 양반.’

    그렇기에 더더욱 안심이 되었다.

    이런 괴물이 아군이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자, 그럼 여기는 믿고 맡기도록 하고.’

    지금부터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

    시계탑 최상층의 괴물과 끝을 내볼까?

    [자, 잠깐……!]

    마음 놓고 시계탑을 오르려는 이안에게 공허의 군주가 급히 외쳤다.

    가볍게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이어지는 말이 이안의 발걸음을 잡았다.

    [설마 내가 모든 병력을 이곳으로 집결시켰다고 보느냐? 천만에! 나는 네놈이 누군지 안다. 이안 페이지! 네놈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잘 알고 있지! 첫 번째 중간계가 아니더냐?]

    공허의 군주는 바보가 아니다.

    혼돈의 군주 쪽에서 어떤 일을 꾸미고 다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하였으나, 중간계의 벌레와 접촉한다는 사실쯤은 입수했다.

    그 벌레가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 칼리두 와탕카이며, 진짜 이름은 이안 페이지란 사실도.

    [이미 병력 중 일부를 다른 곳으로 보냈지. 그들이 어디로 향한 줄 아느냐?]

    “……설마 내 고향으로 보냈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가?”

    [왜, 믿기지 않아? 으음, 뭐, 믿고 안 믿고야 네놈 자유겠지.]

    이안의 표정에 미미한 변화가 찾아왔다.

    아무래도 자신의 말이 꽤나 먹혀든 모양새.

    여유를 되찾은 공허의 군주가 조롱하듯 읊조렸다.

    [하지만 말이다. 이거 하나는 명심해두도록 하려무나. 지금 이 순간에도 네 고향이, 소중한 모든 것들이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을 거란 사실을. 아니, 불타고 있으려나?]

    고향이, 소중한 것들이 불타고 짓밟힌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터.

    공허의 군주는 바로 그 부분을 노렸고, 정말 병력 일부를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로 내려보냈다.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테니, 짓밟히고 불탄다는 겁박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리라.

    “해보든지.”

    [……뭐?]

    “할 수 있으면.”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일까?

    고향 땅이 명백한 위기임에도 이안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아니, 침착함을 잃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네놈, 설마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아는…….]

    “아니, 믿어. 예전에도 그런 짓을 했던 놈이 있어서.]

    과거의 프란 페이지도 그랬다.

    이안과 싸우면서 언데드 괴물들을 제국으로 보냈다.

    이미 한 번 당해봤던지라, 딱히 낯설지 않은 모략이었다.

    [믿는다는 놈이 어찌…….]

    “그때도 이겼거든.”

    [……?]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고.”

    [지금 무슨 헛소리를…….]

    이안이 슈페리어 차원에서 목숨을 건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잊지 않은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슈페리어 차원의 기술, 자원, 지식 등을 고향 땅에 꾸준히 지원하는 것.

    “내 고향은 그깟 조무래기들한테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아.”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이안의 고향,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문명적 발전을 이루어냈을 터. 그렇기에 믿었다. 아니, 지금으로써는 반드시 믿어야만 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으니까.”

    * * *

    “황제 폐하, 아무래도 그때와 상황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사옵니다.”

    그린리버 제국의 북부.

    모그리안 영지 설산 지대.

    슈페리어 차원과 연결된 그 땅 인근에 모든 병력이 집결했다.

    로난을 통해 연락이 닿자마자 신속히 집결된 ‘범 슈페리어 대항군’이었다.

    “……그래, 그런 것 같구나.”

    그린리버 제국의 황제.

    혹은 범 슈페리어 대항군 총사령관.

    하이든 그린리버가 비행포격선 위에서 설산지대를 바라봤다.

    “물론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만.”

    이안이 넘겨준 기억 속에서나 봤을 뿐.

    실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 푸른 피부의 거인들.

    그 괴물들이 속속들이 모여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두려움과 경외심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독특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우리도, 우리 세계를 위협하는 적들도.”

    하이든은 언제나 침착한 이안이 아니다.

    언제나 용감무쌍한 올리버 역시 아니다.

    그저 운 좋게 왕의 핏줄을 타고난 얼간이 황태자.

    끝내주는 인재 운으로 나름 성군 소리까지 듣는 황제.

    스스로 느끼기에, 자신이 아직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솔직히 좀 무섭네.’

    그래서일까.

    여전히 두렵고 무거웠다.

    이 싸움이, 모두를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둘 중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더군다나 지금은 이안이 없다.

    항상 곁을 지켜주던 올리버조차 없다.

    오직 혼자서 감내해야만 하는 싸움.

    솔직히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지.’

    아니, 반드시 해내야겠지.

    왕관을 머리 위에 얹은 자라면.

    이 거대한 제국의 왕좌에 앉은 자라면.

    아무리 무섭고 겁날지언정 움직여야만 한다.

    ‘왕이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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