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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30화 (3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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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44화

“잘 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혼돈의 군주.

한때는 프란 페이지였던 자.

그 존재의 격과 기억을 모조리 흡수한 이안이 중얼거렸다.

“이쪽 세계의 당신은…… 내 한번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게.”

물론 나중에나 생각할 문제다.

지금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으니까.

혼돈의 군주에게서 얻은 기억이 위협을 감지했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어……!

시계탑 최상층으로부터 들려오는 괴성.

눈먼 아버지, 혹은 미래의 이안 자신이 터뜨리는 소리야말로 위협의 서막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과거의 잔재, 혹은 이안 페이지로서 마지막 연결고리가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무지막지한 괴성으로 분출했다.

‘그리고 이 괴성을 들은 공허의 군주가 움직이겠지.’

프란의 기억을 따르면 공허의 군주는 본디 존재하지 않았던 자다.

그와 그의 군대는 철저히 눈먼 아버지가, 즉 미래의 이안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그리운 사람들,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재구현한 꼭두각시 군대 아니겠는가?

시계탑 꼭대기로부터 들려오는 괴성에 합당한 반응을 보여줄 터.

‘저 괴성에 담긴 의지는…….’

이안은 프란의 모든 것을 흡수했다.

덕분에 저 괴성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공허의 군주와 군대에게 무엇을 명령하는지.

그 모든 의미가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들렸다.

‘위협을 제거하라.’

이미 괴물이 되었음에도.

갓난아기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음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요소를 제거하고자 했다.

설령 그 대상이 과거의 자신일지라도 말이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바로 그 순간.

이안이 밟고 있는 혼돈의 군주의 영역에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비단 시계탑뿐만이 아닌, 슈페리어 차원 전체를 뒤흔드는 힘일 터.

‘이거…….’

이안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이 진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마……?’

무언가 깨달은 이안이 재빠르게 시계탑을 빠져나왔다.

바깥에는 이미 위협을 감지하고 나온 지배자들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지배자들 모두 어느 한 곳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니…….

“……어?”

이제야 확연해졌다.

조금 전 본능이 경고했던 무언가.

오감을 전율시키는 어마어마한 위협.

“저게…… 도대체…….”

시계탑 꼭대기.

그곳에는 어느새 커다란 눈이.

눈먼 아버지라 불리는 우주적 존재가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괴물의 존재감이 눈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존재감을 내뿜는 ‘현상’이 시계탑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 나타났으니까.

“뭐지……?”

어둠이 몰려온 슈페리어 차원의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새빨간 구멍.

그 구멍은 슈페리어의 하늘 전체를 아우를 만큼 거대했다.

[동업자, 이게 갑자기 다 무슨 일이지?]

시계탑에서 빠져나온 하데스가 물었다.

다른 지배자들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군. 무슨 짓을 벌였나?]

“별거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별거 아닌 일이 무엇…….]

“혼돈의 군주를 제거했습니다.”

[……뭐, 뭐라?]

그 간단한 대답에 지배자들이 술렁거렸다.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 혼돈의 군주를 제거했다고?

혼돈의 전당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대적인 존재를?

[그, 그런데 저 눈깔 괴물은 갑자기 왜…….]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화가 난 것 같습니다.”

[화……?]

“아끼는 부하를 죽였으니까요. 엄연히 하극상이잖아요?”

[…….]

강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슈페리어 차원의 최강자.

무지막지한 힘으로 모든 지배자들을 굴복시킨 괴물.

일컫기를 눈먼 아버지께서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저 구멍의 규모로 보나,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나.

이안의 생애를 통틀어 최악의 위기가 닥쳤음은 자명한 사실이리라.

‘행성을 넘어 은하까지 파괴하고 다닌 괴물이다. 그런 괴물이 저토록 분노하고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슈페리어 차원쯤이야 순식간에 멸망시킬.

혹은 아홉 세계를 모조리 파괴할 만큼 괴멸적인 힘이겠지.

‘막아야한다. 내 힘으로, 어떻게든.’

제기랄.

설마 이렇게 급격히 흘러갈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제로나마 살려두는 건데.

그럼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 수 있었을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의도한 건가?’

이안의 자격을 확인한 혼돈의 군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직전까지의 전투로 피해를 입히긴 했으나, 마음만 먹었더라면 충분히 회복했을 터.

당장 자신의 모든 것을 넘겨주는 게 차일피일 미루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서겠지.

지금처럼 상황이 한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급격하게 흘러갈지언정 말이다.

‘하여튼 마지막 순간까지 무책임한 양반.’

이안 자신에게 모든 걸 떠넘긴 채 영원한 안식을 택하다니.

생각해 보겠다는 말 취소다. 지금 이 시간대의 프란이라도 빡세게 굴려야겠다.

지금껏 벌인 악행과 기행을 모두 갚을 때까지, 단 한 순간조차 편히 두지 않으리라.

‘문제는 지배자들한테 채워져 있는 족쇄인데…….’

잠시 고민에 빠진 이안.

그런 그에게 하데스가 물었다.

[허, 허면 뭘 어째야 하지? 설마…… 싸워야 하는 건가?]

“저 괴물 달랠 자신 있으시면 가서 해보셔도 됩니다.”

[내 명색이 명계의 왕인데 자살행위를 일삼겠느냐?]

“그럼 싸우는 수밖에요. 조금 갑작스럽긴 합니다만.”

[갑작스럽지. 아주 많이 갑작스럽지! 원래 계획대로면…….]

“원래 계획이 다 그런 법이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십쇼.”

이토록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도 이안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의 농담까지 던지며 당혹스러워하는 하데스를 다독였다.

[……그런데, 정말 뭘 하려는 거지? 저 구멍을 통해서 무언가 불러낼 작정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저 괴물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 있거든요.”

[즐겨 사용하는 방식……?]

“다른 행성이나 은하를 멸망시킬 때 말이죠.”

프란의 기억 속에서.

저 괴물은 무수히 많은 은하와 행성을 무너뜨렸다.

그럴 때마다 즐겨 사용하던 마법이 있다. 물론 그 파멸적인 힘을 마법으로 규정하기에는 많이 투박하고 무식했지만, 저 괴물이 미래의 이안이라면 그 또한 마법이라고 칭할 만하다.

[그게 뭐지?]

“이미 멸망시킨 은하의 행성들을 조각냅니다.”

[행성을 조각내……?]

“그리고 몽땅 퍼붓죠. 그 조각난 파편들을.”

[……뭐?]

“저런 구멍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안이 손가락으로 하늘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가리켰다.

그럼에도 하데스를 포함한 여러 지배자들은 좀처럼 반응하지 못했다.

다른 세계의 행성들을 조각내서 그 파편을 퍼붓는다니, 그런 게 가능한 일일까?

“아마 지금쯤 저 구멍 너머에 존재하는 여러 행성이 박살 나고 있을 겁니다. 이쪽으로 퍼부어댈 조각들을 모으는 중이겠죠. 자, 그럼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요? 가만히 앉아서 죽는 날만 기다릴까요? 아니면 그만 멍 때리고 몸뚱이를 움직여서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할까요?”

[그야 당연히…….]

움직여야지.

이대로 죽을 순 없잖아?

문제는 무엇을 하느냐는 건데.

“다행이라면 저게 꽤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준비가 끝나기 전에 먼저 끝장을 내자?]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그게 최선이긴 할 겁니다.”

[그런 거라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게다. 지금은 너도 있고, 나와 내 군대의 힘 역시 예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강해졌으니까. 물론 다른 지배자 녀석들도 그 오랜 세월을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터,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그러면 저도 참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방해꾼이 있어서.”

[방해꾼……?]

“아, 마침 저기 나오네요.”

그리 읊조린 이안이 손가락으로 시계탑 정문 쪽을 가리켰다.

어느새 활짝 열린 흑요석 문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존재.

새하얀 무면탈을 뒤집어쓴 그의 정체는 바로 공허의 군주였다.

[누가 혼돈의 군주를 죽였지?]

여럿의 목소리가 뒤엉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읊조림.

대답이 돌아오길 바란 건 아닌지 연이어 말을 이어갔다.

[누구든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네.]

조금은 의외의 서두였다.

아무리 그래도 오랜 동료가 죽었는데 고맙다니.

근거가 무엇일까?

[덕분에 우리 아버지께서 한동안 멈추셨던 과업을 재개하셨잖아? 이제야 좀 우리 아버지다워. 처음 여기로 넘어왔을 때는 아, 저쪽에는 더 이상 때려 부술 게 없으니 무대를 옮겨오신 거구나 싶었는데, 설마 여기서 수만 년이나 멈춰계실 줄 누가 알았겠어?]

아하, 그런 이유로군.

공허의 군주와 휘하 군대는 분명 미래의 이안이 그리운 사람들을 본 떠 만든 꼭두각시였지만, 오랜 세월 이안과 함께 파괴행위를 일삼으며 조금씩 변질되고, 어딘가 많이 뒤틀렸다.

미래의 이안 페이지가 눈먼 아버지로 전락한 것처럼, 이들도 변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야.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주절주절 떠들어댄 공허의 군주가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공허의 군주의 뒤를 이어 수없이 많은 무면탈의 군대가 시계탑의 커다란 흑요석 문으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프란의 기억처럼 하나같이 강력한 대군이었다.

[대충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겠어. 너희 벌레들이 고사리 같은 손을 모아서 모처럼 만에 움직이기 시작하신 우리 아버지의 앞길을 막으려는 속셈이겠지. 뻔해. 다른 그런 식이거든.]

어쩜 이리 다들 레퍼토리가 똑같을까?

멸망을 목전에 둔 갸륵한 벌레들의 반응 말이다.

언제 봐도 무의미한 발버둥이 아닐 수 없으리라.

[너희들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서 미리 인사할게. 유감이야. 일이 아쉽게 되어서. 그래도 우리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진 마. 저래 보여도 좋으신 분이거든. 우리한테는.]

중얼거림은 거기까지였다.

공허의 군주의 연이은 손짓에 무면탈의 군대가 달려들었으니까.

그 대상은 눈먼 아버지와 공허의 군주를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하데스 님.”

[어…… 어?]

“무얼 해야 하는지는 아시겠죠?”

[……지금 당장 명계의 군대를 소환하지.]

“좋습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 님.”

이안의 부름에 상황을 지켜보던 프로메테우스가 앞으로 나왔다.

[말하게. 내가 무엇을 하면 되지?]

“티탄의 땅으로 가서 그들을 불러오십시오.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니까요.”

[바로 가지. 아마 지금쯤이면 헬리오스가 준비를 끝내놓았을 거야.]

명계의 군대와 티탄 일족.

이제 그다음 순서는…….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차원 문을 연 이안이 그 안으로 팔을 쑥 넣었다.

그러고는 누군가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로난 님.”

“허, 허억……?”

졸지에 이쪽으로 넘어온 이는 다름 아닌 상아탑주 권한 대행자.

혹은 포세이돈이 중간계로 보낸 수족이었던 로난 시어러였다.

“갑작스러우시겠지만 부탁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부, 부탁…… 말씀이십니까?”

“지금 당장 폐하께 가서 말씀 좀 전해주십시오.”

“어떤……?”

“이쪽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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