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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41화
더 시험할 것이 남았단다.
그래, 그건 잘 알겠는데…….
“……뭐 어쩌라고요?”
다짜고짜 격이 담긴 결정체를 권한다.
설마 이걸 이안에게 주려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걸까?
[받아라.]
“내가 왜 받아야 합니까?”
[그게 마지막 시험이니까.]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나의 격이 아니다. 나의 기억도 아니지. 한때 존재했던 누군가가 남겨놓은 기록일 뿐. 다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거기 담겨 있는 모든 것이야말로 너 자신을 구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이다. 그러니 받아라. 후회하지 않을 터이니.]
“…….”
이안이 혼돈의 군주가 건넨 결정체를 받았다.
물론 아직 받기만 했을 뿐, 흡수하지는 않았다.
“이게 무슨 시험입니까? 말만 들으면 그냥 보상 아닙니까?”
[오, 중요한 부분을 빼먹었군. 어디까지나 그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을 오롯이 받아들였을 때, 아무런 부작용 없이 너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만약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주하거나 정신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너의 한계이며, 또한 운명이겠지.]
“……이렇게까지 무책임한 소리는 참 오랜만에 듣네요.”
고개를 휘휘 저은 이안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결정체를 바라봤다.
말하는 본새로 보아서 여기 담긴 것은 아마 누군가의 기억일 것이다.
눈앞에 저 언제 만나도 의뭉스러운 존재, 혼돈의 군주의 기억이겠지.
‘한때 존재했던 누군가라는 둥 다른 사람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황상 저 존재의 기억일 확률이 높다. 아마 아주 오래전에, 이런 모습이 되기 전의 기억이라는 뜻이겠지.’
아마 이 기억을 받아들인다면.
높은 확률로 혼돈의 군주가 누구인지.
또한 그 존재가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
정체는 무엇이며, 이안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기타 많은 것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될 터.
‘문제는 역시…….’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그런 존재가 권하는 이 결정체 역시 믿기 어렵다.
어떤 안전장치가 있어야 할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로군.]
“당신이 나였으면 믿겠습니까?”
[안 믿지. 미쳤다고 나 같은 걸 믿어?]
“그걸 알면 노력이라도 해야죠.”
[무슨 노력?]
“믿게 하려는 노력 말입니다.”
[내가 왜?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윤데.]
“그건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네가 현명한 선택을 내리리라 믿는다.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나를 다시 찾아오겠지. 여기서 물러나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왔거든.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혼돈의 군주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안이 자신을 통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애당초 이외에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노라고.
“…….”
잠시 침묵한 이안이 결정체를 살폈다.
딱히 느껴지는 사특한 기세 따윈 없다.
일정한 크기의 격과 기억만이 담겼을 뿐.
“……좋습니다. 한번 믿어보죠.”
매사에 철두철미한 이안이다.
감으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라지기로 했다.
왠지 허튼수작은 아닐 것 같다는 육감을.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된다는 본능을.
무려 혼돈의 군주를 제압한 자신의 달라진 힘을.
이번만큼은 계산보다 그런 흐름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해 내고야 말겠다는, 그로 하여금 네 고향의 평화를 지켜내겠다는 목적만 여전하다면 말이다.]
마음을 정하자, 혼돈의 군주의 말은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그 존재가 어떤 말을 하든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내 육감, 본능, 힘만이 모든 걸 좌우할 뿐.
“……그전에.”
역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놓아야겠다.
혼돈의 군주, 이 작자 앞에서 무방비로 놓일 생각 따윈 추호도 없거든.
“잠깐 얼어계십시오.”
[……뭐?]
“다 끝나면 풀어 드리죠.”
[굳이 그럴 필요가……?]
“조금만 참으세요. 이 결정체에 문제만 없으면 금방 끝날 거 아닙니까?”
[아, 아무리 그래도 얼음에 갇히는 건 좀…….]
“아니면 여기에 무슨 함정이라도 담겨 있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럼 기다리십시오. 다 끝내고 풀어드릴 테니.”
[자, 잠깐……!]
거기까지였다.
이안의 얼음 불꽃이 다시 한번 만신창이가 된 혼돈의 군주를 집어삼켰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불꽃 형태의 얼음덩이에 갇혔으니,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참, 괜히 안에서 얼음 깨고 나오려고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고통스럽기만 할 겁니다. 일부러 그런 주문을 걸어놓은 건 아니고, 그냥 이 마법 자체가 그런 마법입니다. 오해마시길.”
몇 마디 툭 던진 이안이 혼돈의 군주가 건네준 결정체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 그럼 이제…….”
그러고는 마침내 결정체에 담긴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 담긴 소량의 격은 물론이거니와 누군가의 기억까지 몽땅.
우우우우우우웅……!
이안의 몸으로 스며드는 결정체로부터 강력한 태풍이 휘몰아쳤다.
그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잦아들수록 이안의 눈앞 풍경이 달라졌다.
혼돈의 군주가 또 환술을 부리는 걸까? 아니, 아니다. 환술과는 다르다.
‘나더러 직접 체험해 보라는 건가?’
이는 단순히 기억을 전이받는 게 아니었다.
그 기억의 흐름 자체를 직접 경험해 보는 구조.
예컨대 보랏빛 별의 수련법과 비슷한 구조였다.
‘못할 것도 없지.’
결심을 굳힌 이안이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기억을 받아들였다.
보이는 것들이 점차 뚜렷해졌고, 자신이 이안이라는 자각 역시 흐릿해질 때쯤.
[……따라서 우리 평의회는 무분별한 시간 조작으로 분열을 일으킨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의 재구성 처분을 원하오. 반대하는 지배자가 있다면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셔도 좋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어떤 이들의 모습이었다.
원탁을 중심으로 20명 넘게 모여 무언가를 논의하는 모습.
그들은 이안이 아는 자들이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조금 달랐다.
‘아버지의 축복, 그 족쇄의 영향이 없잖아……?’
본디 슈페리언은 푸른 피부와 푸른 안광, 뱀처럼 꿈틀대는 머리칼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두 시계탑 최상층의 주인, 일컫기를 ‘눈먼 아버지’가 모두에게 내린 축복이었다.
한데 지금 눈앞에 모여 있는 지배자들, 제우스를 포함한 25인의 지배자들은 달랐다.
모두 본연의 피부와 안구,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을 자랑하기 바빴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재구성 처분은 너무하지 않아요? 그들도 엄연히 우리 아홉 세계의 일원이고, 우리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선량한 미물인데, 무턱대고 몰살을 시키는 것보다는…….]
푸른 피부 대신 백옥처럼 하얀 피부를 빤짝거리는 여인.
자애로운 헤스티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제 의견을 말했다.
[헤스티아, 그들이 정녕 선량한 미물처럼 보이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는 알아요. 하지만 그 한 명 때문에 모두를 죽일 수는…….]
[고작 그 한 명이 장기적으로, 또 잠재적으로 우리 올림포스 일족과 아스가르드 일족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존재인지는 이미 오랜 논의를 통하여 입증되지 않았소?]
[그럼 그 한 명만 제거해도 충분히…….]
[첫 번째 중간계는 이미 우리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소. 몇몇 아둔한 자들의 소행으로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가 팽창했지.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오.]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그 세계의 수많은 생명을 몰살시킨단 말입니까? 그것이 저희 올림포스의 수장이자 평의회의 공동의장이신 제우스 님의 통치철학인가요?]
[오, 그게 아니지. 헤스티아. 나의 통치철학은 우리 올림포스 일족과 아스가르드 일족의 안위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의 보금자리인 이곳 슈페리어 행성을 지키는 것이오. 그 철학에 반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하고.]
[…….]
헤스티아가 그 어떤 반론을 펼쳐도 통하지 않았다.
그만큼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 계획을 밀어붙일 생각이오. 우리 올림포스 일족과 아스가르드 일족의 안위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까짓 중간계의 벌레쯤이야 얼마든지 몰살시킬 수 있으니까. 그것이 나의 유일무이한 통치철학이며, 여기 계신 아스가르드의 왕하고도 합의가 된 사안이오.]
‘우리’를 위하여.
오직 우리 올림포스 일족과 아스가르드 일족을 위하여.
우리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그 확률이 적든 높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다 제거하겠다.
그것이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통치철학이니, 웬만하면 재구성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리라.
마치 선언과도 같은 제우스의 말에 헤스티아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지배자들의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제우스의 논리에 충분히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고, 헤스티아처럼 이 몰살 계획에 공감할 순 없으나 딱히 반박할 만한 논리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배자들도 여럿 보였다.
[허면 그 재구성 이후에는…….]
[약속대로 포세이돈 그대에게 재창조의 권한을 위임하겠소. 새롭게 태어난 첫 번째 중간계 위에 수중세계를 건설하든, 다른 무언가를 하든, 마음대로 잘 꾸며보시오.]
소심하게 손을 들며 물었던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이 제우스의 답을 듣고는 작게 쾌재를 불렀다.
오랫동안 원했던 독자적인 세계 아닌가? 이제 그 꿈을 이룰 날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자, 반론하실 분 없으시오?]
[…….]
[더 반론하실 분들이 없다면 지금부터 첫 번째 중간계의 재구성을 담당할 분석관부터 지정하도록 하겠소. 재구성은 전적으로 명계의 지원이 필요한 만큼 명계의 왕인 하데스와 내가 고르고 골라 괜찮은 적임자를 찾아놓았으니, 이번 기회에 소개를 하는 편이 좋겠군.]
제우스의 말을 들은 하데스가 구석진 곳에서 회의를 지켜보는 이안에게.
정확히는 이안이 체험 중인 기억의 주인에게 이쪽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우리 평의회 동지 여러분께 소개하겠소. 하데스의 추천으로 얼마 전부터 우리 슈페리어의 분석관으로 임명받은 최하급 지배자, 프란 페이지라고 하오. 그는 이번에 재구성 처분을 받은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 출신이며, 그 세계의 치명적인 분열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한 명이기도 하오. 속죄하는 의미로 재구성의 담당자를 자청하였으니 박수로 환영해주시오.]
프란 페이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지배자 여러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재구성의 담당자로 임명된 프란 페이지라고 합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안은 그 기억 속에서 완벽히 프란 페이지가 되었다.
작금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선의 프란 페이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