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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24화 (32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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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8화

    다시 말하는데.

    프란은 더 이상 미련이 없다.

    한때 고향이었던 세계야 망하든 말든 상관없고, 자신의 그릇으로 써먹고자 했던 이안을 이제 와서 또 어찌할 생각 또한 전혀 없었다. 단지 이안이 닿아 있는 경지, 혹은 깨달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침 하데스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던 참이었는데, 이안의 깨달음만 나눠 먹을 수 있다면 능히 그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파편이 바로 그 깨달음이지.’

    이안의 내면세계에서 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하고 체득해온 프란 페이지의 파편.

    의도적으로 심어둔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프란의 품으로 돌아온 조각.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프란에게 있어 기연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고맙구나. 이안, 내 아들아. 잘난 아들 덕에 이 아비가 덕을 보는군.’

    따지고 보면 잘된 일이다.

    그때, 이안이라는 그릇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

    녀석의 손에 죽어 명계로 떨어졌고, 하데스를 만났으며, 더 큰 세계를 알게 되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는 그릇에 불과했던 아들이 여기까지 찾아와 대단한 깨달음까지 나누어 줬으니, 프란은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효자도 이런 효자가 없으리라.

    우우우우우웅……!

    마침내 프란의 손아귀로 돌아온 내면세계의 파편.

    구슬의 모습을 띤 조각이 프란의 손바닥에 스며들었다.

    이제 곧 파편 속 모든 기억과 깨달음이 프란 페이지와 일체 되리라.

    “후욱……!”

    하데스의 하수인 노릇을 꾸역꾸역 해내면서.

    프란은 조금씩 힘을 모아 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기에 이안의 깨달음을 흡수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 믿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노라고, 버틸 만한 그릇이 되었노라 생각했으니까.

    “……큭?”

    하지만 그 믿음은 반쯤 착각에 불과했다.

    파편 속 깨달음이 자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낡은 깨달음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바뀌면 바뀔수록 머리가, 아니, 온 몸뚱이가 펑, 하고 터져 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니까.

    “끄으으으윽……!”

    그럼에도 꾹 참았다.

    참지 않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

    여기까지 와서 실패할 순 없잖아?

    ‘견뎌야……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이미 본체마저 뛰어넘은 비대한 혼의 파편을 강제로 조립하는 과정 아닌가?

    조금이라도 엇나갔다가는 프란의 영혼도, 그 영혼의 조각도 모두 조각날 터.

    명계에서 혼이 조각난다는 것은 곧 영원한 소멸, 이른바 영멸을 뜻하리라.

    “허억! 헉……! 허어억……!”

    영멸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길어졌을까?

    마침내 영혼의 결합을 끝낸 프란이 거칠게 호흡했다.

    멀쩡히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영멸을 피했다는 증거였다.

    “해낸…… 건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그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순순히 당신 밑에 있을 리가 없다고 했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에 연구실을 떠난 아들.

    분명 이안 페이지의 목소리였다.

    [……그래, 그런 것 같군. 사실 나도 얼마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어. 감히 중간계에서 올라온 망자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선을 넘으려 드는 것이…… 조만간 버릇을 고치든, 아예 소멸을 시켜 버리든 둘 중 하나는 하려고 했는데, 굳이 내 손 더럽힐 필요가 없어졌네?]

    어디 이안의 목소리만 들릴까?

    꽤 오랫동안 상전으로 모셔왔던 지배자.

    명계의 왕, 하데스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더욱이 두 존재의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누가 들어도 프란을 겨냥한 얘기 아닌가?

    “그럼 이제 제가 마음대로 부려도 됩니까?”

    [얼마든지, 우리 쪽에서 쓸모는 다 했으니까.]

    대체 이것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슬슬 화가 치솟기 시작한 프란이 말했다.

    “……무슨 헛소리들을 하는 거지?”

    어찌 되었든 이안의 깨달음을 모두 얻었다.

    그럼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겠지.

    “누가 누굴 부려? 쓸모를 다 했다고?”

    하데스를 한 번, 연이어 이안을 한 번.

    공평하게 한 번씩 노려본 프란이 웃었다.

    “너희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상황 파악 못 하는 건 프란 당신 같은데.”

    “……뭐?”

    그 순간.

    이안을 바라보는 프란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다가오는 이안에게서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으니까.

    ‘이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감정들.

    예컨대 두려움이라든지, 공포라든지, 경외심이라든지.

    무어라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다.

    “내 안에 당신 파편이 남아 있는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그 모든 감정의 근원.

    이안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파편까지 강해진다는 사실을, 당신이 나와 접촉하려는 이유가 그 파편을 가져가기 위함이라는 추측을, 내가 정말 그 따위 얄팍한 수를 파악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면 다 알면서도 모르기를, 순순히 속아주기를 바란 건가?”

    프란이 착각한 게 있다.

    바로 예전의 이안이 아니라는 것.

    이미 프란을 꺾고도 오랜 경험을 쌓았다는 것.

    그리고 그 경험 중 일부는 엄청난 강자들의 세계, 슈페리어 차원에서 쌓아 올렸다는 것.

    이곳에서 살아남으면서, 모든 과업을 완수하면서,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이안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으며, 또한 비교하기 힘들 만큼 모략에 능해졌다.

    “당신의 파편은 이미 예전에 내가 손을 써뒀어. 평생 나와 내 가족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게끔, 그 충성이 흔들릴 만한 위기가 온다면 그 자리에서 영원한 소멸을 선택하게끔.”

    “……뭐, 뭐라고?”

    “그러니까 프란, 당신과 나의 길고도 긴 악연을 정리하는 뜻으로…… 한번 꿇어봐.”

    꿇어라.

    평소였다면 코웃음을 치고도 남았을 명령.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

    이안의 명령 한마디에.

    꿇으라는 말 한마디에 프란의 몸이 움직였다.

    정말 이안의 눈앞에 양쪽 무릎을 꿇고 앉았으니까.

    “너…… 도대체 무슨 짓을……?”

    “조금 전에 얘기해 줬잖아. 졸았어?”

    “이, 이놈……! 당장 이 되먹지 못한 사술을 풀지 못하겠느냐!?”

    “내가 당신한테 사술을 걸었다고? 천만에, 난 그저 내 안에 남아 있는 불순물을 제어했을 뿐이야. 그걸 멋대로 뽑아가서 먹어치운 건 당신이고. 근데 뭘 풀어? 당신이 선택한 건데.”

    발악하는 프란 페이지의 면전에서.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게 방향성 좀 확실하게 잡지. 아예 더 악랄한 놈이 되어서 마음 편히 소멸당하든, 아니면 정말 개과천선이라도 해서 나한테 신뢰받을 근거라도 만들어주든, 둘 중 하나라도 했으면 이런 추잡한 꼴은 안 봤을 거 아니야? 괜히 전보다 더 애매해져가지고는…… 쯧!”

    이안의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명계에 떨어져 더더욱 악랄해졌다면?

    그냥 마음 편히 존재 자체를 지워 버렸을 거다.

    혹은 반대로 명계에 떨어져 개과천선을 했더라면?

    썩 내키지는 않아도 전보다 나은 관계가 되었겠지.

    그러나 작금의 프란 페이지는 이도 저도 못 된다.

    예전보다 더 악랄하지도, 착해지지도 않았다.

    애매하다는 게 단순한 모욕만은 아니리라.

    “이안, 너 지금 실수하는 거다! 내가 알아낸 것들이 있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지! 그걸 알려주마. 아무런 조건 없이 다 알려주마! 그러니 우리 처음부터 다시……!”

    “입 다물어. 시끄러우니까.”

    “읍……! 으읍……!”

    새삼 느끼는 거지만, 참 시끄러운 양반이다.

    살아생전에도 시끄러웠고, 죽어서도 시끄럽다.

    이제 명령 한마디면 입을 다무니 좀 나으려나?

    “아까 했던 말 기억나지? 눈먼 아버지의 족쇄를 푸는 비약, 우선 이것부터 대량으로 생산해. 내가 원하는 수량이 될 때까지 계속, 하데스 님.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응? 이제부터는 네 하수인이잖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명계의 자원과 인력,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하니까요.”

    [아하, 얼마든지. 우린 슈페리어 최고의 동업자니까!]

    잠시 미소를 머금은 채 하데스와 대화한 이안이 다시금 프란을 바라봤다.

    하데스를 바라볼 때와 달리 싸늘하게 식어버린 표정과 눈빛은 덤이었다.

    “들었지? 이제 일해. 그만 놀고.”

    * * *

    “덕분입니다.”

    사실 이안이 내면세계에 남아 있는 프란 페이지의 파편.

    그 성가신 조각을 다시금 자각하고 조치해 둔 까닭은 따로 있었다.

    원래는 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까맣게, 정말이지 새까맣게 잊어버렸거든.

    “한동안 나타나지 않기도 했고,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잊어버렸는데, 경고해 주신 덕분에 귀찮은 일 하나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안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대상은 바로 혼돈의 전당의 대군주.

    시계탑 최상층의 존재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존재.

    “혼돈의 군주님.”

    혼돈의 군주.

    바로 그 초월자의 조언 덕분이었다.

    너의 내면에 불순물이 있으니 다스려라.

    그런 말을 들었고, 생각난 김에 행하였다.

    한데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알면 되었다. 옷자락에 묻은 먼지 한 점 찾아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솔직히 예상은 했다.

    아니, 분명 했을 것이다.

    프란은 그만큼 교활한 존재니까.

    아마 프란을 만나기 직전에 떠올렸을 터.

    그러나 미리 조치해 둔 것처럼 정교하게는 어려웠겠지.

    파편을 회수해간 프란을 죽일 순 있어도, 하수인으로 전락시키지는 못하였으리라.

    [그건 그렇고, 이제야 제법 완숙해졌구나. 이안 페이지.]

    물론 그 고마움을 표하자고 시계탑 상층까지 올라온 것은 아니다.

    이제 어느 정도 혼돈의 군주가 내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힘을 키워 마땅한 자격부터 갖추고 다시 오라는 조건 말이다.

    “이 정도면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이 되겠습니까?”

    [글쎄, 너 하기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여전히 애매모호한 대답.

    [허나.]

    그러나 평소와 달리 몇 마디를 덧붙이는 혼돈의 군주였다.

    [적어도 그 여부를 시험할 자격은 충분히 갖춘 것 같군.]

    조건에 들어맞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여부를 시험할 순 있겠다.

    군주의 대답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시작해 주십시오. 그 시험이라는 거.”

    [정녕 괜찮겠느냐?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은데?]

    “각오하고 왔습니다. 처리할 일 다 처리해 놓았고요.”

    [그래? 흐음, 뭐,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이안의 뜻을 이해한 혼돈의 군주가 왼쪽 검지와 엄지를 탁, 하고 쳤다.

    그러자 항상 그렇듯 주변이 종잇장처럼 접히고 넘어가며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렇게 완성된 일대의 풍경은 그 끝을 가늠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넓디넓은 평야였다.

    [자격의 여부를 알아볼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그 광활한 평야 한가운데 우뚝 선 혼돈의 군주.

    그 초월적인 존재가 그림자로 이루어진 지팡이를 고쳐 쥐며 읊조렸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덤벼. 그래야 정확히 판단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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