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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23화 (32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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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7화

    “……약?”

    다짜고짜 약이라니.

    약 한 병 마시는 걸로 끊을 수 있는 족쇄라고?

    [먹여봐. 제우스든, 오딘이든, 아무한테나.]

    그래, 먹여보면 될 일이다.

    이안이 둘 중 오딘을 골랐다.

    왠지 제우스는 꺼림칙했거든.

    “이 약, 마셔주시겠습니까?”

    […….]

    이안에게 비약을 건네받은 오딘이 텅 빈 표정으로 하데스를 바라봤다.

    명령을 기다리는 눈치였고,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망설임이 사라졌다.

    벌컥!

    단숨에 약병을 비우는 오딘이었으니, 곧 약효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 변화를 일으켰다.

    축복이라는 족쇄의 증거, 예컨대 푸른 피부, 안광, 머리카락 따위를 모조리 지웠으니까.

    ‘정말 비약 한 병 마시는 걸로 끝날 문제였다고……?’

    그런 이안의 표정을 읽어낸 걸까?

    하데스가 천천히 말문을 이어갔다.

    [여긴 명계다.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에서 죽은 망자들이 다 모이는 곳이야. 살아생전에 선했든, 악했든, 어떤 것을 업으로 삼았든 구분 없이 모여들어. 그중에는 연금술사도 있겠고, 한평생 저주나 독 따위를 연구하는 미치광이도 있겠고, 자기 마음대로 명계에 접촉하려는 강령술사나 주술사 같은 족속들도 넘쳐나지. 자, 그럼 이게 다 무엇을 뜻하겠느냐?]

    “……지금 집단 지성이라도 발휘했다는 말씀입니까?”

    [정답, 그 집단 지성이 무려 수만 년간 여러 이론을 쌓아 올렸다. 낡은 지식을 새로운 지식으로 발전시켜줄 망자들도 끊임없이 공급되었지. 아홉 세계를 통틀어 하루에 죽어서 오는 망자만 몇 명인지 알아? 명계의 왕인 나도 그거 일일이 확인하는 건 포기했다고.]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에서 매일 쏟아져 내려오는 망자들.

    그중 관련이 있을 법한 전문가들을 추려 오랜 세월 연구시켰다.

    망자는 잠을 잘 필요조차 없으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영원토록.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지옥이 아닐까 싶다. ‘연구 지옥’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선뜻 믿기가 어렵네요. 시계탑 꼭대기의 괴물, 아시겠지만 그거 보통 괴물 아닙니다. 지금의 저도 이길 수 없을 만큼 초월적인 괴물인데, 그런 괴물이 채운 족쇄를 지배자도 아닌 슈페리언들과 중간계인들이 풀었다? 제아무리 여럿이서 수만 년간 매달렸다고 한들…….”

    믿기 어렵다.

    물론 중간계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천재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안의 고향인 첫 번째 중간계만 하더라도 마법으로는 이안 페이지 본인, 검으로는 올리버 레이우드, 연금술로는 더글라스, 그 외 장인들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권위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천재들이 다 모였다고 한들,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에서 장장 수만 년간 긁어모았다고 한들, 눈먼 아버지가 채운 족쇄를 푼다는 게 말이 될까?

    하물며 저런 비약 한 병으로?

    [신기한 녀석이군.]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이안에 하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 실없이 웃으며 말문을 이어갔다.

    [기껏해야 중간계에서 요술이나 부리던 놈이 우리 세계로 쳐들어온 것으로도 모자라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제우스까지 죽여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 된 거, 하물며 이제는 각 전당의 왕이었던 놈들에 튀폰까지 맨손으로 제압하는 거, 믿기 어려운 일은 이런 거 아닐까?]

    “…….”

    [막말로 너 같은 놈 수만 명이 수만 년간 힘을 키운다고 생각해 봐. 시계탑 꼭대기의 괴물도 장담하기 어려울걸? 더군다나 그 괴물이랑 비슷한 힘까지 다룰 줄 알잖아?]

    “…….”

    [중간계 출신이 다른 중간계인들을 이리 믿지 못해서야 원, 이거 나중에 오딘이 누구 손에 죽었는지 알면 까무러치겠군. 내 다른 건 몰라도 그때 표정은 꼭 봐야겠어.]

    “예? 그건 또 무슨…….”

    [됐고, 정 의심스러우면 연구를 총괄한 놈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사실 그 약이 완성된 건 최근이라고. 그전에도 프로토타입이 계속 나오긴 했지만, 고작 한 번 마시는 걸로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이 비약이 처음이거든. 이게 다 그놈이 합류한 덕분이지.]

    “……좋습니다. 제가 한번 만나보죠. 그게 누굽니까?”

    이안의 승낙에 하데스가 손가락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곧 타원형의 큼직한 차원 문이 나타났다.

    [가 봐. 아마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기다리고 있다?

    이안 자신을 말인가?

    잠시 고민했던 이안이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차원 문 너머, 누군가의 조그마한 연구실.

    “……당신?”

    그 연구실에서 어떤 실험을 하기 바쁜 장발의 중년인.

    그는 이안과 똑같은 머리색을 가졌고, 남루한 거적을 걸쳤다.

    무엇보다 이안으로서는 굉장히 익숙한 기운을 품은 남자였다.

    “드디어 보는구나. 내 하나뿐인 아…….”

    “아들 소리 나오면 뒷일 책임 못 져.”

    “……오우, 그렇다면 인사는 여기까지.”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능글거림.

    이안의 생물학적 아버지, 혹은 ‘본신’이었던 존재.

    프란 페이지가 능글맞은 웃음으로 이안을 맞이했다.

    “네 어머니, 베네사는 잘 계시고?”

    아들 소리 못하게 하니 냉큼 어머니 얘기부터 꺼낸다.

    마음 같아서는 한 방 후려치고 싶었으나, 일단 꾹 참았다.

    “……뵌 지 꽤 되긴 했는데, 아마 무탈하실 거야.”

    “며느리하고 손녀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이따금 그린리버 제국 출신 망자들한테 소식 듣고 그러거든. 예를 들어서 상아탑주와 공주마마께서 혼인식을 올렸다는 소식이라든지, 둘 사이에 딸을 태어났다는 소식이라든지.”

    어지간히도 관심이 많나 보다.

    이안에게, 그리고 그 주변에게.

    “……잘 지내겠지. 다들 잘 지내라고 내가 여기서 이러는 거니까.”

    “암, 그렇고말고.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잘 지내지 못하면 큰일이지.”

    고개를 주억거린 프란이 낡은 의자 두 개를 끌고 왔다.

    한쪽은 자신이 앉고, 나머지 한쪽은 이안에게 권했다.

    “내가 이야기했지? 우린 결국 만나게 될 거라고. 네가 이 세계에서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내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봐라. 결국 이안 네가 먼저 나를 찾아왔잖아?”

    “마음대로 생각해. 이제 난 당신 따위한테 휘둘릴 체급이 아니니.”

    “아아, 확실히 그렇기는 하겠더라. 네 녀석 재능이 날 뛰어넘은 거야 네 손에 죽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제우스를 꺾고 올림포스의 왕으로 등극할 줄이야! 난 솔직히 희망이 없을 줄 알았거든. 한때는 내가 지키고 싶었던 고향, 그리고 이제는 네가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에는.”

    이안의 고향이면서 프란의 고향이기도 한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

    프란은 솔직히 그 중간계에 재구성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희망을 버렸다.

    이들이 정했다면 중간계인에 불과한 자신이 절대 막을 수 없고, 또 이제는 중간계라는 것이, 중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들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지를 알아버렸으니까.

    그런데 웬걸? 자신의 아들이자 사념체이기도 했던 이안 페이지는 달랐다. 아득바득 살아남아서, 아니, 살아남는 걸 뛰어넘어 아득바득 올라와 결국에는 제우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자신이 모시는 하데스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지배자로 거듭났다는 뜻이리라.

    “원래는 너를 만나서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다. 이 거대한 세계와 흐름 앞에서 중간계의 인연이나 운명 따위가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지, 그 진리를 너에게 알려주고자 했었어. 더는 허튼짓 하지 말고 하데스 님 밑으로 들어오라고. 나와 함께 과거는 잊고 힘을 키워서 언젠가 이쪽 세계, 슈페리어라는 이름의 주류 세계에서 새롭게 뜻을 펼쳐보자고.”

    프란이 하데스의 수족으로 활동하는 까닭.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작금의 이안처럼 되기 위해서였다.

    하데스 밑에서 기반을 충분히 쌓고 지배자가 되는 것.

    하여 슈페리어 차원이라는 주류 세계의 일원으로 거듭나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이안은 이미 그 주류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아니, 단순한 일원을 넘어서 올림포스 전당의 왕으로 등극했다.

    “……분명 그랬었는데, 네 녀석은 정말이지 내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이쯤 되면 널 나의 새로운 그릇으로 써먹으려 했던 계획이 얼마나 멍청했는가 싶다. 나보다 수백, 수천 곱절은 더한 괴물을 탄생시켜놓고 무슨…… 웃기지도 않은 소리지. 그렇지 않느냐?”

    프란에게는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내면의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

    그와 동시에 비로소 인정했다. 이안 페이지라는 존재 자체를.

    “아무튼 그래서 더 만나고 싶었다. 비록 넌 나를 믿지 못할 거고,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네 신뢰를 얻게 될 일은 없겠다만, 왠지 네가 하고 있는 그 발악에 도움이 되고 싶어졌거든.”

    “내가 아는 당신은 절대로 목적 없이 움직일 족속이 아니야. 그러니 괜한 수작 부리지 말고 그냥 얘기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건지.”

    “그래서 미치겠다는 거다. 이번에는 진짜 그냥 변덕인 것 같아서. 아니면 뭐,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미련일지도 모르지. 한때 정말 미치도록 지키고 싶었던 내 고향 땅의 동족들, 그때의 기억들, 거기 머물고 있는 미련 비슷한 거, 그것 말고는 설명할 논리가 없겠더라고.”

    과거.

    이안과의 접전 마지막 순간.

    정화의 불꽃 속에서, 프란의 육신은 불타 사라졌다.

    또한 그 존재의 영혼에 각인되었던 광기도 일정 부분 정화되었다.

    그래서일까?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곤 못할지언정 약간의 변화는 느껴졌다.

    프란 스스로 여기기에도 그랬고, 직접 마주하고 있는 이안이 판단하기에도 그랬다.

    “무엇이든 도와주마. 신뢰는 바라지도 않아. 그냥 나를 마음껏 이용해먹어. 내가 이래 보여도 여기서 굴러먹은 세월이 꽤 길거든. 아마 큰 도움은 몰라도 자잘하게 도움이 될 테니.”

    프란이 그리 읊조리며 악수를 청했다.

    이안 역시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 손을 잡아줬다.

    여전히 꺼림칙한 존재였지만, 당장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당신 말이 맞아. 난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신뢰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되도 않는 변덕에 놀아나 줄게. 그 변덕이 내 계획에 도움이 되는 한, 얼마든지.”

    다만 이안의 손길은 악수로 끝나지 않았다.

    명계의 왕 하데스에게 받은 비약의 빈 병.

    그것을 건네기 위한 악수였으니 말이다.

    “우선 그 비약부터 대량으로 생산해 줬으면 하는데.”

    “대량생산이라, 구체적인 수량을 말해주는 건 어때?”

    “최소 모든 지배자들이 마실 수 있을 만큼.”

    “최대는?”

    “모든 슈페리언들이 마실 수 있을 만큼.”

    “이야, 무슨 노예 해방자라도 되시게?”

    “가능하다면야.”

    이안의 대꾸에 프란이 피식 웃었다.

    돕기로 했으니, 못할 건 없으리라.

    “맡겨둬. 최대치는 모르겠고, 최소치는 금방이니까.”

    이것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제시했던 필수 선결 조건.

    이른바 ‘대규모 노예 계약 해지’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이안이 떠난 프란 페이지의 연구실.

    그곳에 홀로 남은 프란이 제 손바닥을.

    이안과 악수를 했던 손바닥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네.”

    무엇이 오랜만일까?

    하나뿐인 핏줄의 손길이?

    아니, 애당초 핏줄의 손길 따위 느껴본 적도 없다.

    “내 마지막 한 조각.”

    그가 오랜만이란 감정을 느낀 대상.

    그것은 바로 이안의 내면세계에 남았던 프란 자신의 파편.

    악수하는 과정에서 은밀하게 빨아들인 바로 그 ‘잔혼殘魂’이었다.

    “그럼 어디…….”

    그 영혼의 파편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 터.

    이안의 깨달음과 사상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과실 아닌가?

    “내 아들이 남긴 선물 맛 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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