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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21화 (32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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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5화

    일컫기를 ‘대규모 노예 계약’.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없으리라.

    “적절한 방법을 찾으셨는지?”

    [알면 내가 했지. 왜 포기했겠어?]

    “조사한 자료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아무것도 없다. 사소한 단서조차도.]

    프로메테우스는 이 계획에.

    시계탑을 무너뜨리는 일에 진심인 자다.

    분명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터, 한데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다?

    “어지간히도 미지의 힘인가 봅니다.”

    [미지의 힘이라, 그것참 적절한 표현이로구먼.]

    그야말로 미지의 힘.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족쇄.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의 정상급 지배자들은 그 힘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눈먼 아버지의 휘하 세력으로 거듭났고, 이후 세대의 슈페리언들은 그 힘을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순혈’과 물려받지 못한 ‘추방자’로 갈라져 오랜 차별의 역사를 쌓아 올렸다.

    [족쇄를 푸는 방법은커녕 그 힘의 원천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 그저 거대한 눈알 앞에서 무릎 꿇고 조아리는 것이 전부였거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피부, 눈, 머리카락까지…… 죄다 꼴 보기 싫게 변해버렸더라고.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티탄의 땅에 남은 티탄들만 봐도 안다.

    이곳 슈페리어 차원의 토착민들은 본디 중간계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외형을 가졌다.

    조금 전에 보낸 헬리오스만 하더라도 황제 하이든과 비슷한 느낌의 미남자 아니었던가?

    [어쨌거나 핵심은 이 대규모 노예 계약부터 없앨 방법이 시급하다는 거다. 그걸 찾지 못하면 결국 나처럼 돼.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잔뜩 날리고 허송세월, 무슨 뜻인지 알지?]

    프로메테우스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무얼 해야 하는지 100% 이해했다.

    “그럼 우선 명계로 내려가서 죽은 슈페리언들부터 확인해 봐야겠군요.”

    [음? 갑자기 죽은 슈페리언들은 왜?]

    “당연히 체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죽음으로 풀 수 있는 족쇄인지 아닌지.”

    [……아!]

    이안의 말에 프로메테우스가 손뼉을 탁, 하고 쳤다.

    [천잰데?]

    “예……?”

    [어떻게 그런 생각을…….]

    “…….”

    [그래, 그렇지. 죽음으로 벗어날 수 있는 족쇄인지, 아니면 죽어서도 계속 차고 있는 족쇄인지, 일단 그것부터 확인해 놓아야 앞으로 뭘 어찌할 건지도 정할 수 있겠지.]

    설마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는 걸까?

    이래서야 미지의 힘이라는 표현에 신빙성이 없잖아?

    그냥 프로메테우스가 찾지 못한 건 아닐까 싶은데?

    [너, 괜히 그 짧은 시간에 올림포스를 집어삼킨 것이 아니구나?]

    “……예. 뭐, 그렇다고 해두죠.”

    아무래도 이 양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아니 될 것 같다.

    음흉한 계략 같은 건 없어 보인다만, 사고의 한계가 있는 것 같거든.

    아마 너무나 오랜 세월을 지배자로 살아온 일종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프로메테우스 님은 오늘부로 자유입니다. 죄를 물었던 제우스가 죽었고, 제 직권으로 프로메테우스 님의 죄목이었던 배신을 용서했으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는 저 도우면서 사십시오. 절 돕는 게 프로메테우스 님의 목적으로 직행하는 가장 빠른 길 아니겠습니까?”

    자유.

    얼마 만에 듣는 단어일까?

    프로메테우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굳이 말해 무엇 하느냐는 제스처였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시여.]

    장난기 가득한 인사를 끝으로.

    이안이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오랜만에 명계로 향할 차례였다.

    * * *

    “감축 드립니다. 하데스 님.”

    명계의 책자.

    한때는 라그나르 그린리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사내.

    자그레우스가 하데스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읊조렸다.

    “두 전당의 전대 수장과 튀폰의 영혼까지 우리 군단 휘하로 들어왔으니, 작금의 명계는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에게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 강대한 세력이 되었음을 확신합니다.”

    명계의 왕좌에 앉아 있는 하데스.

    그 양쪽으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제우스와 오딘이 보였다.

    하데스 특유의, 혹은 명계 특유의 정신지배가 완료된 모양새였다.

    [크으으…… 크으…… 크르르륵……!]

    어디 제우스와 오딘만 있을까?

    왕좌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한때 슈페리어를 공포로 내몰았던 괴물 ‘튀폰’이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으니, 이제 명계의 군대는 하데스가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독자적인 세력으로, 올림포스, 아스가르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다못해 뛰어넘을 만큼 강대한 세력으로 거듭났다.

    [자그레우스.]

    “하문하시옵소서. 명계의 왕이시여.”

    [정말 올림포스, 아스가르드한테 밀리지 않는다고 확신하나?]

    “물론이옵니다. 하데스 님과 제우스, 오딘, 그리고 튀폰까지, 감히 누가 이 초월적인 강자들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저희 명계의 군세는 슈페리어 차원의 전 영토를 뒤덮고도 남을 만큼 대단합니다. 최정예로만 추려도 슈페리어의 심장과 시계탑에 발 디딜 틈조차 없겠지요. 감히 말씀드리건대, 저희 명계가 뛰어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뛰어넘었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를?]

    “그렇사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자그레우스의 말에 명계의 왕 오딘이 길쭉한 수염을 매만졌다.

    [그렇다면 저기 저 녀석과 비교하면 어떻지?]

    그리 읊조리더니 수염을 매만졌던 손가락으로 왕좌의 정면을 가리켰다.

    그 끝에는 어느새 명계로 내려온 올림포스의 왕, 이안 페이지가 서 있었다.

    [여기서 저놈을 죽여 명계의 노예로 만들 수 있겠느냐?]

    하데스의 물음에 자그레우스가 이안을 바라봤다.

    언제나 그렇듯 적대적인 눈빛과 표정도 함께였다.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는데, 거기 계신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 생각은?]

    이번에는 이안한테 묻는다.

    이안 역시 고개를 까닥거렸다.

    “이참에 서열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뭐? 서열 정리?]

    “그래야 앞으로 허튼 생각 못 하실 테니까.”

    [……하!]

    칼리두 와탕카, 혹은 이안 페이지.

    놈이 강한 건 알고 있다. 제우스를 쓰러뜨리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제우스와 오딘, 튀폰에 하데스 본인까지 있다.

    한데 그 앞에서 저리 여유를 부린다고? 요즘 너무 잘나가서 오만에 빠진 걸까?

    [듣자 하니 먼 곳으로 사냥을 다녀왔다던데, 얻은 것이 많은 모양인가?]

    “기대했던 만큼은 얻었습니다. 어떻게, 확인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좋지. 죽어도 원망하지 말고. 어차피 여기서 죽어봐야 내 부하가 되기밖에 더해? 그리되면 내 약속하는데 첫 번째 중간계만큼은 잘 보살펴주도록 하지. 너로서는 이기든 지든 남는 장사란 뜻이야. 어차피 고향 지키겠답시고 여기서 그러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애당초 대꾸를 바라지 않는 물음이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하데스의 좌우를 보좌하던 제우스와 오딘이 움직였으니, 이안은 졸지에 두 명의 적을 상대해야만 했다. 하물며 그 둘은 이곳 슈페리어 차원에서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는 절대 강자들 아닌가? 하데스의 자신감이 과하게 넘칠 만도 하리라.

    ‘오딘은 언제 죽어서 명계에 떨어진 거지? 설마 벌써 토르한테 목이 날아간 건가?’

    의문이라면 바로 그것이었다.

    어째서 여기에 오딘이 있는가?

    토르는 분명 ‘승리’만을 원했다.

    아비를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한데 죽어서 명계에 떨어졌다고?

    ‘싸움이 생각보다 치열했나?’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서로 살초를 날렸을 거고, 한쪽의 숨통이 끊어졌겠지.

    결과적으로 하데스만 좋은 일이다. 제우스로 모자라서 오딘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뭐, 그래 봐야.’

    작금의 이안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하겠지만.

    ‘이참에.’

    버릇이나 단단히 고쳐놓아야겠다.

    다시는 세력 좀 불렸다고 덤비지 못할 만큼.

    물론 이들도 한시적 아군이니 소멸시키지는 말자.

    카앙……!

    이안이 제우스와 오딘의 묵직한 창날을 마법 방패로 가볍게 막았다.

    각 전당의 유물 대신 명계의 창을 하사받은 두 지배자의 창술이 사뭇 날카로웠다.

    카앙! 캉! 카아아앙 - !

    두 전대 수장은 쉴 새 없이 이안을 압박했다.

    특히 제우스 쪽은 살아생전의 원한이 남기라도 했는지 오딘보다 조금 더 격렬했다.

    예컨대 마계를 다녀오기 직전 수준이었다면 이 둘의 공세에 조금은 애를 먹었을 터.

    ‘어디까지나 예전이었다면 말이지.’

    하나 그 가정은 이미 과거형으로 전락했다.

    지금부터 펼칠 반격이야말로 명백한 증거였다.

    탁!

    그 반격은 화려하거나 고차원적인 마법이 아니었다.

    단지 두 손으로 지배자들의 창대를 낚아챘을 뿐.

    “흡……!”

    어디 낚아채기만 했을까?

    격이 잔뜩 실린 완력으로 창대를 비틀어버렸다.

    동시에 쑥 잡아당겨 두 지배자의 창을 빼앗아버렸다.

    흡사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의 창을 빼앗는 것처럼 간단하게.

    [……!]

    졸지에 창을 빼앗긴 두 지배자가 서둘러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하지만 그들이 격투 자세를 취하는 것보다 이안의 대처가 더 빨랐다.

    빼앗긴 두 자루 창날 끝이 어느새 두 지배자의 목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목 관통하면 두 분 다 소멸하십니다. 그래서 계속하시겠습니까?”

    승기를 잡은 이안이 물었다.

    대상은 두 지배자가 아닌 하데스였다.

    이제 이들의 주인은 하데스가 아니던가?

    [아직 기고만장하기는 이를 텐데?]

    그럼에도 하데스는 아직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 근거가 곧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 !]

    어느새 흑요석 사슬을 끊고 달려든 슈페리어 최악의 생물.

    ‘학살자’ 튀폰이 이안을 향하여 미치광이처럼 달려들었다.

    ‘저 괴물은 또 왜 여기 있어……?’

    저건 오딘보다 더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도대체 왜 튀폰이 명계에 떨어졌단 말인가?

    쾅 - !

    물론 튀폰은 이안이 의구심을 느끼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이안이 펼친 마법 방패 위로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를 뿐.

    ‘이야, 힘은 여전히 무지막지하네.’

    괜히 슈페리어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간 괴물이 아니었다.

    명계의 하수인이 되어 생전보다 조금 약해졌음에도 이 정도다.

    ‘어째서 여유롭나 했더니.’

    제우스, 오딘에 이어 튀폰까지 휘하에 넣어서였어?

    이러면 단순한 허세는 아니다.

    충분히 인정할법하다.

    ‘물론.’

    이안 앞에서는 다 부질 없는 짓이지만.

    콰득!

    마구잡이식 주먹질을 받아내던 이안이 틈을 파고들어 튀폰의 뿔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그 자세 그대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처박는 것이 아닌가?

    튀폰의 커다란 머리를, 하데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계 궁전 바닥에 말이다.

    “이 괴물도 예전만 못하네요.”

    고작 머리 한 번 바닥에 내리꽂았다고 전투 불능이 될 괴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튀폰은 움직이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간단하다. 이안이 놈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겨우 한쪽 팔로 꾹 누르는 것만으로도 튀폰이라는 괴물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힘.

    마계를 휩쓸고 돌아온 이안 페이지는 그만한 괴물이 되었다.

    “어떻게, 더 해보실 겁니까? 아니면 하데스 님께서 좋아하는 동업자 정신 발휘해서 이쯤 할까요?”

    […….]

    제우스, 오딘, 튀폰.

    하데스가 그토록 자신했던 명계 군단의 새로운 삼황.

    그들의 맥없는 패배에 하데스는 좀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쩍 벌어진 입은 이 모든 광경을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자그레우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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