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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4화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지 뭐야. 갑자기 하데스가 와서는 나를 꺼내주는데…… 처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죽었나 싶더군. 하데스가 직접 날 명계로 데리러 온 줄 알았어. 그래도 나쯤 되면 명계에서 꽤 대접받을 만한 인재이긴 하잖아? 그런데 아니더라고? 제우스는 죽었고, 자네가 올림포스의 실권을 잡았다면서…… 무슨 헛소리인가 했지.]
“헛소리 아닌 건 확신하셨고요?”
[아, 물론. 아직도 믿기지가 않긴 하네만, 상황이 믿을 수밖에 없겠더구먼.]
“믿어주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프로메테우스는 혼자 오지 않았다.
처음 보는 누군가와 함께 찾아왔다.
아버지의 축복이라 불리는 푸른 피부, 푸른 안광, 뱀처럼 꿈틀거리는 머리칼 없이 평범한 외형을 가진 것으로 보아 순수 티탄 일족임이 확실한데, 과연 누구일까?
[아, 자네도 아는 얼굴이야. 정확히는 저 껍데기 속에 있는 뼈다귀를 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인사 나누라고. 이쪽은 헬리오스, 바위산에서 나를 감시하던 올드 가드야.]
“올드 가드……?”
이안에게 자신의 갈빗대를 주며 제발 이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했던 존재.
그는 분명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이었거늘, 저 잘생긴 티탄 청년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제우스한테 저주를 받았던 친구지. 그런데 그 저주의 당사자인 제우스가 죽어버렸으니, 자연스레 그 저주도 풀리지 않겠어? 날 똑바로 감시하지 못한 죄로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는 것을 내가 꺼내왔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항상 이놈의 정이 문제야. 이래서 이 빌어먹을 세상을 어찌 끝장낼지 원……!]
프로메테우스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올드 가드, 아니, 헬리오스가 무릎을 꿇었다.
어디 무릎만 꿇을까? 머리까지 조아리며 말했다.
[칼리두 와탕카 님! 아니,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시여! 왕께서 내려주신 은혜 덕분에 오랜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 목숨 바쳐 왕의 신하가 되는 것으로 갚겠습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저 역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정식으로…….]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티탄 일족으로 남아 계십시오.”
[아, 그 부분은 나도 동감일세.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예? 아, 예. 그, 그럼 격의 맹세라도…….]
“그건 나쁘지 않죠.”
푸른 피부의 슈페리언으로 거듭나는 아버지의 축복.
그 의식은 여러모로 꺼림칙하다. 그렇기에 거절했고, 프로메테우스 역시 공감했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격의 맹세를 자청한다면야, 그것까지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살아 계셔서 다행입니다. 올드 가드…… 아니, 헬리오스 님이셨던가요?”
[예, 그것이 저의 이름입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이름이지요.]
“제 신하가 되고 싶다 하셨죠. 티탄 일족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그 다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까?]
글쎄, 딱히 부탁이나 들어주려고 제우스를 제거한 것은 아닌데.
어찌 되었든 잘되었다. 쓸모 있는 부하가 한 명 생긴 셈이니까.
‘느껴지는 힘도 상당하고, 제법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아프로디테와 함께 제거했던 에오스보다 강하다.
어지간한 최상급 지배자 수준은 된다는 뜻일 터.
“그럼 초면에 죄송하지만 부탁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무엇이든 실망시켜 드리는 일 없을 것입니다.]
“헬리오스 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티탄의 땅에서도 꽤 높은 위치에 계셨으리라 추측됩니다. 적어도 저희 쪽 시계탑 평의회의 일원 수준은 되시리라 보는데, 아닌가요?”
[시계탑 평의회가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 낮은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빼앗겼습니다만, 한때 태양의 지배자라는 이명으로도 불렸으니까요.]
태양의 지배자.
지금은 아폴론이 차지한 타이틀.
그렇다. 헬리오스는 따지자면 태양의 ‘옛’ 지배자였다.
마치 에오스가 새벽의 ‘옛’ 지배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군요.”
적당한 위치다.
딱 이안이 바랐던 위치.
그가 말문을 이어갔다.
“헬리오스 님께서는 지금 즉시 티탄의 땅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예? 티탄의 땅으로 말씀이십니까?]
헬리오스가 당황한 듯 되물었다.
자신은 분명 동족을 배신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된다면 격의 맹약을 해서라도 신하가 되겠노라 말했다.
그런데 신하로 받아주기는커녕, 오히려 티탄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설마 거절의 완곡한 표현일까?
거절을 당한 것이 맞는다면 도대체 왜?
[혹 저를 거부하시는 것이라면 그 이유만이라도…….]
“아뇨,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임무를 드리는 것이죠.”
[……임무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티탄 일족과 협약할 일이 많아질 겁니다. 그때 헬리오스 님께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입지를 다져놓으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올림포스와 티탄.
아니, 이안과 티탄의 연결고리.
충분히 알아들은 헬리오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리도록 하지요.]
“아, 만약 저쪽에서 무슨 수로 빠져나왔는지 묻는다면…….”
[올림포스의 왕위 쟁탈전으로 제우스가 죽었고, 그 결과 저한테 걸렸던 저주가 풀린 덕분에 기회를 틈타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봅니다. 혹 부족할까요?]
“……적당합니다. 그럼.”
이안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타원형의 차원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슈페리어의 심장 바깥으로 통하는 차원 문이었다.
“솔직히 큰 봉변을 겪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에는 제 잘못도 있으니 항상 양심의 가책처럼 남아 있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다시 뵈니 참 죄송하면서도 다행이네요.”
[저도 제우스가 다시 찾아와서 죄를 물을 때는 솔직히 철렁했습니다. 하지만 칼리두 와탕카 님을 책망하지는 않았지요. 다 각오하고 드렸던 부탁이니까요. 오히려 저 때문에 처지가 곤란해지신 건 아닐까,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곤란하기는커녕 제우스의 모가지를 확 따버리고…… 아, 아니, 이게 아니라…… 그…… 죄송합니다. 프로메테우스하고 너무 오래 지내서 그런가? 천박한 말투까지 옮아버렸네요. 이러면 안 되는데…….]
오랫동안 프로메테우스를 감시했기 때문일까?
프로메테우스 특유의 과격한 말투가 옮아버린 헬리오스였다.
본디 그는 품격 넘치기로 소문난 티탄이었거늘, 난감한 일이었다.
[무슨 나한테 말투가 옮아? 자네 본성도 나만큼이나 천박한 게지.]
[시, 시끄럽다! 지금 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그 논리라면 나도 네 은인이지. 저주가 풀렸음에도 평생 타르타로스에 처박혀 있을 놈을 내가 구출해 줬잖아? 이거 따지고 보면 내가 더 은인이구먼? 그렇지 않나? 칼리두 와탕카?]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였던 헬리오스와 프로메테우스.
아무래도 두 지배자의 앙숙 관계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눈치였다.
“누가 더 은인인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헬리오스 님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늦으면 늦을수록 의심받을 확률도 올라갈 테니 이쯤에서 보내드리도록 하죠. 제우스의 저주에서 풀려나신 거, 그리고 본연의 모습과 힘까지 되찾으신 거,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헬리오스 님.”
[감사합니다. 맡겨주신 임무, 최선을 다해서 수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헬리오스의 인사는 신하가 왕에게나 올릴 법한 인사였다.
아무래도 그는 정말 이안의 신하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리라.
[조심히 가라고. 이왕 할 일 생긴 거 열심히 하고.]
[또 바위산 꼭대기에 갇히지나 말라고. 꼴사납게.]
물론 유서 깊은 앙숙 프로메테우스와의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차원 문을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인사는 계속되었으니까.
[저놈은 어째 뼈다귀일 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아. 안 그런가?]
“아마 헬리오스 님도 지금쯤 그렇게 상각하고 계실 겁니다. 죄수일 때가 나았다고요.”
피식 웃은 이안이 의자에 앉았다.
프로메테우스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그나저나, 예전하고 비교해서 덩치가 많이 커졌군. 그땐 내가 한 손으로 잡았었는데.]
“그만큼 격이 높아졌으니까요. 불편하시면 보이는 모습이라도 조금 줄여볼까요?”
[그럴 필요는 없고, 그냥 신기해서 하는 말이야.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잖아? 한데 어찌 벌써 제우스의 모가지를 확 따버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는 거야. 난 솔직히 적당히 까불다가 죽을 줄 알았거든. 내 기억을 넘겨주면서도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왜 기억을 넘겨주셨습니까? 기대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일말의 희망, 다른 말로는 도박이었다고 할 수 있겠군.]
“그럼 그 도박에 성공하신 셈이네요.”
[아아, 일단은 그런 셈이지.]
‘일단’은 그런 셈이다.
말 속에 뼈가 느껴졌다.
[이만하면 회포도 적당히 풀었겠다,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나눠볼까?]
“바라던 바입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프로메테우스 님을 풀어드린 것이니까요.”
[만약 일 얘기가 잘못되면, 다시 날 타르타로스에 처박아 버리기라도 할 셈인가?]
“어지간하면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딱히 못 할 것도 없긴 합니다.”
[하……! 이거 제우스보다 더 악독한 놈이 나타났잖아?]
“필요하면 얼마든지 더 악독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한편으로는 다행이야. 이제 배부르고 등 따시다고 마음이 변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걱정 없겠어. 이제야 좀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겠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재를 둘러본 프로메테우스가 말문을 이어갔다.
앞서 말했던 일 얘기, 다른 표현으로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아까 그 친구, 헬리오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자네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대충 알 것 같더군. 우선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가장 큰 난제부터 해결한다, 그런 뜻이겠지.]
할 수 있는 모든 것.
예컨대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티탄, 그리고 중간계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세력을 다 동원해서 가장 큰 난제, 혼돈의 전당을 ‘포위’한다.
“혼자서는 대항하기 어려운 족속들이니까요. 그들의 우두머리는 더더욱 그렇죠.”
[내 기억을 봐서 알겠지만, 나도 비슷한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 실제로 어느 정도 진행하기도 했었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 기억을 얼마나 온전하게 갖고 있지? 대충 보아하니 내 기억을 완벽하게 흡수한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때 워낙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으니…….]
정확히 봤다.
당시 이안의 메모리 이터 주문은 완벽하지 않았다.
더불어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중 대다수가 그때 당시 이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뿐더러 그 용량 또한 어마어마했기에, 모든 기억을 다 흡수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맞습니다. 그러니 프로메테우스 님을 불렀죠. 만약 제가 프로메테우스 님의 기억을 완벽하게 흡수했다면 굳이 부를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제 머릿속에 계신 거나 마찬가지일 텐데, 그냥 나중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때 불러왔겠지요. 가서 싸우시라고 말입니다.”
이안 역시 프로메테우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건네받은 기억과 정보만으로는 부족했으니까.
[그것참 야박한 소리구먼. 그래서 더 마음에 들기도 하고.]
진심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가감 없는 악독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는 악독해야 시계탑을, 혼돈의 전당을, 슈페리어를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내 마음에 든 김에 조언 한 가지만 해주지. 한때 나도 추진했던 자네의 그 계획이, 혼돈의 전당을 뺀 모든 세력을 통합하여 포위한다는 그 계획이 어째서 불가능한지, 우선 그것부터 논의해야겠군. 으음, 사실 이건 어려울 게 전혀 없어. 간단한 문제니까.]
간단한 문제다.
근거가 무엇일까?
[아까 아버지의 축복을 받겠다는 헬리오스를 만류하지 않았나?]
“예? 아, 네. 그랬죠.”
[난 그 대목에서 자네도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
아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
티탄의 땅으로 보내야 하기에 만류했을 뿐.
한데 그것이 어째서 문제라는 걸까? 아, 설마……?
“혹시, 그 아버지의 축복이라는 것이…….”
[축복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힘이지. 그건 족쇄야. 눈먼 아버지, 그 괴물의 노예가 되는 족쇄! 그러니 모든 세력을 다 통합해서 덤벼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눈깔만 둥둥 떠다니는 괴물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아니, 아무 것도 못하는 수준이면 차라리 낫지. 갑자기 돌변해서 자네한테 칼을 들이댄다고 생각해 봐. 그것참 끔찍하지 않아?]
쉽게 말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슈페리언은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격의 맹약보다 더 강력한 주종 관계가 맺어진다는 뜻이다. 그 관계의 주인은 당연히 눈먼 아버지일 터.
[나는 끝내 그 축복 아닌 축복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지. 그러니 어쩌겠어? 포기할 수밖에. 다른 슈페리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나조차 그 축복이란 이름의 저주를 뒤집어썼으니까. 그러니 자네가 그 계획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라면…… 먼저 그 대규모 노예 계약부터 풀어야 할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