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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8화 (31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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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2화

    오랜 사냥이 끝났다.

    아무런 피해 없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비대해진 격, 다양한 전리품, 얼어붙은 크로미의 본신까지.

    잃은 거 없이 얻기만 했던 사냥이니만큼 모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런 선택권 없이 합류하셔서 열심히 고기 방패 노릇 해주신 헤라클레스 님도 수고하셨고, 비프로스트까지 만들어주신 토르 님께서도 수고하셨습니다. 물론 사냥에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괜히 아스가르드의 황태자가 아니시더군요.”

    전리품도 적당히 나누었겠다.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격이 담긴 결정체도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겠다.

    모든 정산을 끝낸 이안이 헤라클레스와 토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일종의 ‘사냥단 해단식’쯤으로 봐도 무방할 분위기였다.

    [고생은 무슨, 다 내가 끼고 싶어서 낀 자리인데, 덕분에 돌아가는 즉시 아버지와 한판 붙어볼 수 있게 되었소. 아아, 이리 말하니 무슨 패륜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군. 올림포스의 전통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아스가르드는 승자 계승이 원칙이라서 말이오.]

    결국 오딘을 힘으로 꺾어야 아스가르드의 새로운 왕이 될 수 있다는 뜻.

    아마 이 길로 돌아가자마자 자신의 아버지인 오딘에게 도전장을 내밀겠지.

    [그런데 이것 참, 막상 돌아와서 보니 막막하구먼.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은 이제 내가 어찌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해져 버렸고, 옆에 계신 우리 헤라클레스 아우님조차 나하고 비견될 만큼 힘을 키웠으니…… 이거 잘못하면 우리 아스가르드가 잡아먹힐지도 모르겠군.]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 칼리두 와탕카는 토르가 느끼기에 너무 강하다.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장벽과도 같았다. 그러니 새삼스레 걱정되었다.

    만약 저들이 아스가르드까지 넘본다면, 그때는 솔직히 말하건대 자신이 없다.

    ‘칼리두 와탕카, 저 괴물 같은 자를 필두로 한 올림포스의 공세를 막아낼 자신이.’

    그렇기에 지금은 납작 엎드려야만 한다.

    이번 사냥으로 저들과 맺은 전우애, 혹은 친밀감.

    그런 감정들을 방패막이 삼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자.

    ‘적어도 내가, 우리 아스가르드가 동등한 힘을 키울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만 해.’

    사냥단에 합류해서 천만다행이다.

    올림포스 쪽에서 마계 사냥을 독식했다면?

    그건 정말이지 최악의 경우가 아닐 수 없으리라.

    ‘비프로스트 제작 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나 혼자서만 알고 지낸 게 참으로 다행이로군.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저들의 마계 사냥단에 합류할 명분도,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그러니 이제는 그 결과물을 지키고 발전시켜야겠지.

    예컨대, 이런 식으로.

    [부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소. 내 아버지 되시는 오딘 님과 제우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우리들의 시대는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겠소? 이미 어느 정도 증명도 되었고 말이오.]

    “못 할 건 없죠.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거요. 적어도 칼리두 와탕카, 그대가 올림포스 전당의 왕으로 계속 군림하는 한, 나와 아스가르드는 올림포스 쪽에서 어떤 요청을 보내오든 기꺼이 응답할 의향이 있으니 말이오. 물론 그전에 나 역시 아스가르드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할 필요가 있겠지.]

    “가능하시겠습니까? 오딘 님께서도 만만치 않으시던데.”

    [아버지는 강한 분이오. 하지만 지금이라면…… 솔직히 내가 질 것 같지는 않군. 그러니 이제 쉬시게끔 해드려야지. 좋아하시는 사냥이나 실컷 하시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요.]

    듣기에 따라 패륜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발언.

    그러나 본디 이쪽 세계가 그렇다.

    힘의 논리 앞에서는 부모고 자식이고 없다.

    지금까지는 그저 자신보다 더 강한 아버지였기에 부하처럼 살았을 뿐이리라.

    “무운을 빌겠습니다.”

    [조만간 평의회에서 또 뵙겠소. 공동 수장 자격으로 말이오. 아, 헤라클레스 자네는 종종 내 영역으로 놀러 오라고. 마침 비슷한 수준의 대련 상대가 필요했는데, 자네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군. 피차 동족 중에 대련 상대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 안 그래?]

    [……시간 나면 종종 들르겠소.]

    그렇게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토르였다.

    아마 잠깐의 재정비 후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겠지.

    “우리도 슬슬 돌아가죠.”

    이안 역시 헤라클레스와 헤어지며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꽤 오랜만에 왔음에도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았을 만큼 그대로다.

    “……비현실적이네. 역시.”

    새삼 그 비현실적임이 이안을 잠시 추억 속에 빠지게끔 만들어줬다.

    대저택을 처음 하사받았을 때, 청소 걱정부터 앞서셨던 어머니라든지.

    요하나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방을 직접 꾸미고 청소하던 나날이라든지.

    “오래 머물 곳은 아니야.”

    어떻게든 구현하고 싶었다.

    참으로 익숙한, 저택의 서재를.

    문제는 그래 봐야 아무도 없다는 거다.

    이 공간을 온기로 채워줄 소중한 사람들이.

    “슬슬 박차를 가해야겠지.”

    돌아간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가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다만.)

    이안의 향수병이 극에 달하는 순간.

    (이제 나랑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느냐?)

    아까부터 잠자코 있던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이 말을 걸어왔다.

    비록 마도서에 잠든 영혼이나, 그녀의 시선은 명백히 이안의 영역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얼음덩이를.

    그리고 그 안에 갇혀있는 자신의 육체에 콕, 하고 박혀 있었다.

    (아까는 상황이 워낙 급박했으니 그냥 왔다만, 이제 슬슬 내 본신을 꺼내줘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내 봉인을 풀어주는 게 싫은 것이면 조건이라도 말해줘야 협상을 하든 말든…….)

    “조건은 이미 말씀하셨는데요?”

    (……뭐?)

    “제가 모든 걸 끝내고 돌아가든 말든 크로미 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사실 누구보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가능하면 도와주셔야 할 겁니다. 바로 그 순간이 크로미 님께서 본신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니까요. 물론 이 계약 관계도 종료될 것이고요.”

    쉽게 말해서 모든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입 다물고 도우라는 거다.

    오직 그것만이 조건 전부였으니, 크로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충 예상은 했다만, 그래도 좀 너무하는군. 눈앞에 떡하니 내 본신이 있는데 저걸 매번 두고만 보라는 것이냐?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으냐? 고문이 따로 없느니라. 고문이……!)

    “그러니 더더욱 성심성의껏 도우셔야죠. 지금까지처럼 강림이니 현현이니, 그런 사특한 술수만 호시탐탐 노리지 마시고요. 어차피 그분께서도 마계를 떠났다 하지 않으십니까?”

    (그, 그건 분명 무슨 오해가……!)

    “마계라는 행성이 파괴될 걸 뻔히 알면서도 크로미 님의 본신은 자기가 살던 성 한가운데 쓰레기처럼 버려두고 갔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시고도 오해라는 말씀이 나오십니까?”

    (…….)

    “그러니 이제는 봉인 풀 생각이나 하십시오. 봉인 풀고 뭐 하면서 살지도 한번 고민해 보시고요. 자신을 버린 주인한테 계속 충성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비참한 일이 또 없으니까요.”

    그 조언 아닌 조언을 듣는 순간.

    크로미는 자신의 머릿속에 어떤 선이 끊어짐을 느꼈다.

    그저 야생 악마 서큐버스에 불과했던 자신이 마왕 단탈리온의 눈에 들어 엄청난 힘을 허락받았고, 그 힘을 남용하다가 마왕군의 규칙을 어겨 마도서 봉인이라는 징벌까지 받았다.

    그 이후로는 징벌의 연장선으로 우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마도서로서 수많은 계약자와 계약을 맺었으며, 그 계약자에게 마왕 단탈리온을 강림시켜 수많은 행성을 멸망시켰다.

    실로 기나긴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계속 죗값을 치르다 보면 징벌이 끝날 것이라고, 언젠가 단탈리온 님께서 노여움을 풀어주실 거라고 믿었다.

    한데, 우연치 않은 기회로 돌아간 마계는 크로미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단탈리온 님께서는 계시지 않았고, 그분과의 추억이 남아 있던 겨울성에는 오직 자신을 봉인한 얼음덩이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아니.’

    버려져있었다.

    마치 쓰레기처럼.

    (알겠다. 내 잠시 고민을…… 해보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읊조린 이안이 지팡이 끝에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을 분리했다.

    그러고는 마치 평범한 서책처럼 커다란 책장 한구석에 쑥 꽂아 넣었다.

    “일 몇 가지만 처리하고 오죠. 그때까지 좋은 결론 내리시길 바랍니다.”

    이안은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그것이 조금 전 사냥을 끝내고 돌아왔음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였다.

    * * *

    ‘지체할 필요 없겠지.’

    수련장처럼 꾸며진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온 토르가 대충 짐만 풀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굳이 쉴 필요도, 차일피일 미룰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무엇을? 그야 당연히 왕위계승 아니겠는가?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오직 아스가르드의 수장에게만 허락되는 유물 ‘궁니르’의 주인이자 토르에게는 가히 태산처럼 높아 보였던 아버지, 오딘을 꺾을 자신 말이다.

    ‘편히 쉬실 수 있게끔, 소일이나 하시며 지내게 만들어드리는 것이야말로 효도니까.’

    놀랍게도 반어법이 아니다.

    토르는 정말 진심으로 그리 여겼다.

    그가 느끼기에 자신의 아버지, 오딘은 너무 오랜 세월 격무에 시달리셨거든.

    이제 그 육중한 짐을, 머리에 이고 계신 무거운 왕관을 벗겨 드릴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아들이 약해서, 믿음을 드리지 못한 탓에 물려받지 못했던 왕관을.

    ‘몰라보게 장성한 아들이 지금 갑니다. 아버지!’

    토르의 발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오딘의 영역.

    화려한 금빛 왕궁과 붉은 카펫, 그리고 그 끝에 놓인 왕좌까지.

    평소 왕으로서 긍지를 가졌던 아버지의 취향이 잔뜩 녹아난 공간이었다.

    [아버지, 잠깐의 출타 끝에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좋은 소식과 함께 말이옵니다!]

    그 왕좌에는 언제나 그렇듯.

    아스가르드의 수장이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머리에는 황금빛 왕관을, 오른손에는 황금빛 창 궁니르를.

    왕좌의 양쪽에는 아스가르드의 왕을 호위하는 두 마리 까마귀가.

    그야말로 왕을 상징하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 다가오는 토르를 응시했다.

    [……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앉아 계신 왕좌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눈에 들어오는 왕좌의 주인이 뚜렷해지면 뚜렷해질수록.

    토르는 어떤 강력한 의구심과 더불어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네놈…… 네놈이 왜 거기에……?]

    그도 그럴 게, 왕좌의 주인은 오딘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더 젊을뿐더러 익숙하지 못한 존재였다.

    다만 초면은 아닌 것이, 분명 눈에 익은 존재다.

    어떤 과업의 수행자에게 과업을 내려주는 순간.

    그리고 그 수행자에게 지배자의 격을 허락해 주는 순간.

    주로 그럴 때 만나본 기억이 있거든.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오딘 대신 왕좌에 앉아 궁니르를 쥐고 있는 지배자.

    그 존재의 이름은 토르가 기억하기로 ‘올리비우드’.

    토르가 사냥을 떠나기 전쯤 모든 과업을 완수하고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았던, 칼리두 와탕카에 대항마로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바로 그 수행자 출신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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