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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7화 (31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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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31화

    ‘헤파이스토스의 사슬.’

    불과 망치의 지배자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특제 흑요석 사슬이 아니다.

    그가 만든 사슬의 단단함을 떠올리며 고안해 낸 또 다른 변형 마법.

    이안은 그 술식과 격의 결합체에 매우 직관적인 이름을 붙였다.

    ‘결박.’

    분신 한 명당 사슬 하나.

    총 백만 갈래의 시꺼먼 마법 사슬이 마왕 아즈모데우스에게 뻗어 나갔다.

    사슬 한 갈래 한 갈래는 아즈모데우스와 비교하여 작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갈래가 백만에 육박한다면 상황이 꽤 달라질 터.

    [크으으으으……!]

    전신을 포박당한 아즈모데우스가 침음을 내뱉었다.

    힘으로 풀어보려 해도 좀처럼 풀리지를 않았으니까.

    오히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조여드는 느낌이다.

    “움직이지 마십쇼. 조여드는 거, 착각 아닙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벌레들이지? 처음 보는 족속들인데.]

    움직일 수 없자 마음이 가라앉은 걸까?

    난동을 멈춘 마왕 아즈모데우스가 물었다.

    물론 그 악마의 눈은 여전히 살기로 가득했다.

    “저보다는, 이분하고 말씀 나눠보시죠. 할 말이 많아 보이네요.”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팡이’를 아즈모데우스의 면전으로 보냈다.

    정확히는 그 지팡이와 결합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을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놈은……?]

    (오랜만이다. 마왕 아즈모데우스.)

    크로미는 아즈모데우스에게 존칭을 쓰지 않았다.

    마계를 망친 죄인쯤으로 취급이 내려간 탓이었다.

    [……네크로노미콘, 단탈리온의 하녀가 아니더냐?]

    (하녀라니! 나는 그분께서 가장 아끼시는 간부였거늘!)

    [글쎄, 그렇다고 보기에는 죄악을 저지른 것으로 아는데?]

    (시끄럽다! 마계를 이따위로 망쳐놓은 자가 죄를 운운하는 것이냐?)

    [마계를 망쳐놓았다고? 내가? 하, 마도서 신세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더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로군. 가엾은 아이야. 마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것은 내가 아니란다.]

    (어디서 헛소리를! 딱 봐도 마계의 정수를 취해놓고는 어디서 발뺌이야?)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내가 마계의 정수를 취해서 마계의 수명이 줄어들었다고?]

    (그렇다! 그게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지?)

    [크흐흐흐……!]

    크로미의 되물음에 마왕 아즈모데우스가 흉히 웃었다.

    정말이지 불쾌함으로는 손에 꼽히는 웃음소리였다.

    [나도 하나만 되묻지. 내가 정말 마계의 정수를 취했다면, 해서 마계의 수명이 위험한 수준까지 줄어들 만큼 그 정수에 담긴 힘을 탐닉했다면, 과연 이 정도에서 끝났겠느냐?]

    (그, 그게 무슨……?)

    [너희 같은 벌레들한테 당하고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

    그래, 그건 확실히 그렇다.

    이 마계라는 행성을 지탱하는 원천.

    마계의 정수에 담긴 모든 힘을 취했다면?

    지금쯤 이안 일행은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겠지.

    [마계의 정수는 내가 아닌 바알이, 벨리알이, 네 주인인 단탈리온 같은 배신자 놈들이 다 빨아먹었다! 처음부터 놈들은 정수를 먹고 떠날 작정이었지! 이 마계를 말이다! 나는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남은 찌꺼기를 취했을 뿐! 덕분에 네놈들이 살아 있는 것 아니겠느냐?!]

    아즈모데우스는 마계의 정수 중 극히 일부 찌꺼기만 취하였을 뿐.

    알짜배기 힘은 모두 바알, 벨리알, 단탈리온 같은 최상위 마왕들이 독식했다.

    애당초 그들은 마계를 떠날 계획이었으니, 행성의 수명 따위는 중요치 않았으리라.

    (그, 그럴 리가……? 우리 주인님께서……?)

    [그러니 잘 선택해라. 단탈리온의 하녀여. 내가 죽는 순간 마계 역시 끝장난다. 하지만 나를 살려둔다면 마계가 무너질 일은 당분간 없겠지. 뿐만 아니라 마계를 떠났던 마왕들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우리들의 고향, 이 마계는 다시 예전처럼 멸망의 위기 없이…….]

    “작정하고 도망친 마왕들이 굳이 왜 돌아오겠습니까?”

    흔들리기 시작하는 크로미.

    흔들리는 틈을 파고드는 마왕 아즈모데우스.

    그러나 이안은 아즈모데우스의 농간에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다 죽어가는 행성인데, 다들 멀리 떠나서 각자도생하겠지.”

    [자, 잠깐! 너희한테도 해줄 말이 있다. 분명 솔깃할 만한…….]

    “사냥감을 너무 오래 살려뒀네요.”

    오직 혼자만 헤파이스토스의 사슬 마법을 펼치지 않은 이안 페이지.

    바꿔 말하면 유일한 ‘본체’가 아즈모데우스의 얼굴 앞까지 떠올랐다.

    토르와 헤라클레스에게 당했던 눈이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이다.

    아마 저 눈과 몸이 회복되는 순간 다시금 난동을 부려대겠지.

    작금의 대화는 그저 시간을 조금 벌어보기 위한 수작일 터.

    “크로미 님.”

    (……그, 그래. 듣고 있단다. 계약자야.)

    “크로미 님은 바보가 아닙니다. 어떤 부분은 저보다 똑똑하시죠. 아닙니까?”

    (그, 그야 당연하지. 나는 그분의 오른팔이자 책사로서……!)

    “그럼 저 아즈모데우스라는 자가 어째서 저런 말들을 늘어놓는지, 대충 아시겠죠?”

    (…….)

    이안의 말에 크로미가 잠시 아즈모데우스의 상태를 살폈다.

    (회복할 시간을…… 벌었나 보구나.)

    “정답입니다. 이제 어찌해야 할까요?”

    (……끝을 봐야지. 회복하기 전에.)

    “책사였다는 주장, 믿어 드리겠습니다.”

    씨익 웃은 이안이 아즈모데우스에게 접근했다.

    그러고는 포박된 놈의 이마에 왼쪽 손바닥을 댔다.

    [무, 무슨 짓을…….]

    “덩치가 너무 큽니다.”

    [……뭐, 뭐라고?]

    “이대로 당신을 쓰러뜨렸다가는 행성이 작살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 성에서 전리품 챙겨 나올 여유조차 없겠죠. 그러니 그 무식하게 크기만 한 덩치, 조금만 줄입시다.”

    거기까지였다.

    이안의 손바닥에서 시작된 마법이 아즈모데우스의 이마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가 한껏 비대해졌던 육신의 소형화를 이루었으니, 순식간에 커지기 직전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물론 그 악마의 대검, ‘행성 파괴자’ 역시 정상적인 크기로 돌아갔다.

    나아가 아래에서 쉬고 있던 두 명의 지배자.

    헤라클레스와 토르를 향하여 나지막이 읊조렸다.

    “토르 님, 헤라클레스 님, 마무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허락은 곧 참혹한 광경을 불러왔다.

    고개를 끄덕인 두 지배자가 나서는 순간.

    쿵!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니까.

    작은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할 만큼 순식간이었다.

    데구르르르…….

    물론 머리만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애당초 이 사냥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물건.

    아즈모데우스의 격이 담긴 결정체가 뚝 떨어져 굴렀다.

    대다수 지배자나 악마의 결정체는 그 크기가 주먹만 하거나 혹은 그보다 약간 더 큰 수준이 보통이지만, 아즈모데우스의 결정체는 덩치답게 매우 육중한 크기와 무게를 자랑했다.

    [……이건 뭐, 특대형이로구먼.]

    [내가 무어라 했소? 우리끼리 잡고 가자 하지 않았소?]

    [이번만큼은 인정하지. 올림포스 출신답지 않은 탁월함이었소.]

    오죽하면 토르와 헤라클레스조차 감탄을 금치 못하겠는가?

    물론 결정체의 크기와 담겨 있는 격의 크기가 무조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기대해서 나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강한 상대였거든.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에게는 생각보다 쉬웠을지언정, 헤라클레스와 토르한테는 여태껏 상대했던 마왕이나 악마들을 통틀어 가장 강한 적이었다.

    아마 둘이서만 상대했더라면 눈을 찌른 이후 놈의 난동을 감당하지 못한 채 죽어 나뒹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리라.

    “격은 평소처럼 나누도록 하고, 혹시 이 검 가지실 분 없으십니까? 괜찮아 보이는데.”

    이안이 아즈모데우스가 남긴 행성 파괴 검을 집어 들며 말했다.

    크기가 작아졌음에도 여전히 굉장한 기운을 내뿜는 검이었다.

    [글쎄, 검이나 도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나 또한 마찬가지요. 역시 검보다는 망치지.]

    “그렇군요.”

    두 지배자 모두 검에는 흥미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안이 챙길밖에.

    “성에 숨겨놓았을 전리품도 살펴보죠.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요.”

    (잠깐, 계약자야. 전리품도 좋지만 약속부터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어떤 약속을 말씀하시는 건지?”

    (……시치미를 떼는 것이냐,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이냐?)

    “아, 북쪽 끝에 얼어붙어 있다는 크로미 님의 본신 말씀입니까?”

    (그래, 그래! 잊지 않았구나. 이제 약속대로 내 본신부터 찾아다오.)

    “흐음, 그건 마지막에 하고 일단 전리품부터…….”

    쿠구구구구구……!

    바로 그 순간.

    마계의 지축이 거세게 흔들렸다.

    외부적인 충돌에서 오는 것이 아닌, 행성 깊숙한 내핵으로부터 느껴지는 진동.

    아무래도 예상보다 더 빠르게 수명이 다한 것 같다. 이 마계라는 행성의 수명 말이다.

    (이, 이것 보아라! 느껴지지 않느냐! 늦으면 내 본신은 평생 찾을 수 없느니라!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겠지! 그러니 어서, 어서 내 본신을 찾아다오! 그리 해주기만 한다면 내 무엇이든 하겠다! 평생 계약자의 노…… 아, 아니, 조력자로서 모든 노력을 다 바치도록 하마!)

    구구절절한 애원.

    이안이 잠시 고민했다.

    물론 길게 고민할 여유는 없다.

    이쯤에서 빠른 결단이 필요하겠지.

    “좋습니다. 헤라클레스 님, 토르 님. 이 주머니를 빌려드릴 테니 두 분께서 책임지고 아즈모데우스의 성을 수색해 주십시오. 쓸모가 있어 보이는 건 그게 무엇이든 챙기셔야 합니다. 제대로 된 검증은 돌아가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아시겠습니까?”

    이안이 두 지배자에게 단단히 고하며 아공간 주머니를 넘겨줬다.

    아직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야말로 넉넉한 아공간 주머니였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안내하시죠. 크로미 님.”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본신은 마계에서도 북쪽 끝자락.

    본디 마왕 단탈리온의 영역이었던 거대한 겨울성에 봉인된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았고, 방해하는 악마나 마왕이 없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단탈리온이라는 마왕, 취미 한번 독특하네요.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그렇지, 자기 부하를 얼려서 정원의 장식품으로 세워놓는 놈이 어디 있습니까? 이건 너무 악취미잖아요?”

    (……다 뜻이 있으셨겠지. 그보다 어서, 어서 내 봉인을 풀어다오. 네 녀석의 힘이라면 이깟 얼음쯤이야 능히 부수고도 남을 것이니라. 제아무리 단탈리온 님의 얼음이어도 말이다.)

    “으음…….”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안은 크로미의 부탁을 속히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얼음 속에 봉인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본신을 자세히 살폈다.

    마계에서 숱하게 사냥했던 악마 종족 중 ‘서큐버스’에 가까운 외형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연한 핑크빛이 감도는 피부, 그리고 반짝거리는 은빛 머리칼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본신을 찾아드리는 거, 인즉 봉인을 완전히 풀어두리는 것은 잠시 보류해야겠습니다. 본신을 되찾으신 크로미 님께서 무슨 짓을 벌이실지 모르니까요. 이렇다 할 안전장치도 없고요.”

    (그런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꾸미면 무슨 짓을 꾸미겠느냐? 이미 계약자가 나보다 훨씬 강하거늘! 그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본녀쯤이야 단숨에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텐데……!)

    “알죠. 제가 더 강한 거. 그래도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이안의 돌변해 버린 태도에 크로미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직 마도서가 발은 없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발을 동동 굴렀다.

    어찌하면 좋을까? 도대체 어찌해야 저 의심 많은 계약자의 마음을 돌릴까?

    (그, 그럼 내 본신을 이대로 버리겠다는…….)

    “아, 그건 아닙니다. 설마 제가 그리 매정하게 굴겠습니까?”

    크로미의 말을 부정한 이안이 그녀가 갇혀 있는 얼음덩이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 커다란 얼음덩이를 바닥 일부와 함께 마법으로 도려내 들어올렸다.

    “우선 이대로 가져갑니다. 불만 없으시죠?”

    (그, 그럴 바에는 그냥 여기서 봉인을 풀어주면……!)

    “두고 갈까요?”

    (……탁월한 선택이니라. 불만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크로미가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속에서는 열불이 터졌지만, 어쩌겠는가?

    누가 봐도 계약자가 절대적인 ‘갑’인데.

    “돌아갑시다. 더 늦기 전에.”

    이안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 지 얼마 후.

    이안이 합류하길 기다렸던 토르가 묠니르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곧 마계와 슈페리어 차원을 이어주는 유일무이한 통로, 비프로스트의 빛줄기가 이안 일행에게 내리꽂혔으니,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한 마계에는 이제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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