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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5화 (3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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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29화

    외부 행성 마계로 넘어온 이후.

    이안과 토르, 헤라클레스는 마계 지형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마도서 네크로노미콘도 마계에서 태어났을 뿐 지형에 빠삭한 편은 아니었기에, 심지어 마계를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셋은 저 시계탑처럼 커다란 대검을 구심점 삼아 마계의 지도부터 완성시켰다.

    (저곳은 마왕 오리아스 님의 영역이니라. 지금 당장은 너희들이 노릴 상대가 되지 못해.)

    (마왕 비프론스, 으음, 최하위 서열이긴 한데, 그래도 아직은 어려울 게야.)

    (저 녀석들은 마왕이 아닌 상급 악마다. 백 마리의 악마를 지휘할 수 있다고 해서 백마장이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이지. 꽤 강하기는 하다만, 그래도 셋이 덤비면 해볼 만할걸?)

    (아, 참고로 내 본신은 북쪽 끝자락에 있단다. 나의 주인이신 단탈리온 님의 영역이기도 하지. 내 마음 같아서는 본신부터 찾아 달라 하고 싶은데, 지금 너희들의 수준으로는 그분의 손짓 한 번에 먼지가 될 터이니…… 당분간은 참아주도록 하마. 고마운 줄 알아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도를 제작하면 제작할수록 크로미의 의구심이 깊어져 갔다.

    무엇이 문제일까? 간단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마계가 너무 조용하다.

    (흐음, 뭔가 이상하구나.)

    (왜 이렇게 마왕들이 보이지 않지?)

    (악마들도 마찬가지다. 개체 수가 확실히 줄었어.)

    (뭔가…… 이변이 생긴 것 같구나. 우리 마계에 말이니라.)

    본디 마왕의 영역이었던 곳곳이 텅 비어 있다.

    바퀴벌레처럼 들끓었던 악마들의 머릿수 역시 대폭 줄어들었다.

    이러니 마계 출신 크로미가 의구심을 느끼지 않고 배기겠는가?

    “한번 알아보죠.”

    뭔가 있다.

    분명 이변이 발생한 게 분명하다.

    수상함을 느낀 이안이 사냥한 악마들의 기억을 여러 차례 읽어본 결과.

    “이 마계라는 행성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군요.”

    “기껏해야 백 년, 72인의 마왕 중 대부분이 마계를 떠났습니다.”

    행성 자체의 수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를 깨달은 마왕과 휘하 악마 대부분이 마계를 떠났다.

    작금의 마계에 남아 있는 마왕의 수는 기껏해야 30마리 남짓.

    휘하 악마들 역시 함께 떠났고, 남은 건 대부분 야생 악마였다.

    [그것참 아쉬운 일이군.]

    [그래도 아직 서른 마리나 남아 있다지 않소?]

    [휘하 악마들까지 합하면 그 머릿수가 제법 되겠지.]

    [우선 이 행성에 남은 놈들부터 싹 쓸어버리고 생각해 보자고.]

    토르의 말이 옳다.

    지금은 그 나머지를 사냥하는 데 집중할 때다.

    남아 있는 마왕들조차 상대하기 버거운 존재들 아닌가?

    우선은 반쯤 빈집이 되어버린 마계부터 싹 쓸어버리자.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격을 확보할 수 있을 터이니까.

    “토르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나 또한 아스가르드의 황태자와 같은 생각이다.]

    (너희들이 강해져야 내 본신도 되찾을 수 있으니…….)

    모두의 동의 아래, 본격적인 ‘악마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쯤 강제로 뭉쳤던 세 명의 지배자.

    이안, 헤라클레스, 토르의 전우애는 생각보다 더 돈독해졌다.

    [솔직히, 우리 아스가르드는 그대를 잠재적인 적으로 여기고 있소.]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헌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뭐랄까, 막연한 적대감을 품었던 것 같군. 갑자기 나타나서 올림포스 전당을 통째로 집어삼켰으니 말이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소. 실력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으니 더더욱 경계할 수밖에. 다만, 그 생각에서 정체불명의 적대감이란 요소는 사라진 것 같소.]

    [무사히 사냥을 마치고 돌아간다면, 난 아마 평생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요. 물론 그 순간 속에는 올림포스의 왕 칼리두 와탕카도, 헤라클레스라는 올림포스의 지배자도 있겠지.]

    함께 목숨 걸고 사냥하는 과정에서 전우애라도 생긴 걸까?

    이안은 이안 나름대로 토르를, 토르는 토르 나름대로 이안을 인정했다.

    돌아가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전우’였으니까.

    (슬슬 최하위 서열 마왕들을 노려봐도 될 것 같구나.)

    (그래도 마왕은 마왕, 여러모로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게야.)

    사냥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 계산하지는 않았으나, 모르긴 몰라도 중간계 기준으로 년 단위는 족히 흘렀을 터.

    크로미의 말처럼 72마왕 중 최하위권 마왕들을 하나둘씩 사냥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격을 취하였으며, 그들의 영역에 숨겨놓은 보물까지 빼앗아 챙기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 사냥에 합류한 거,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내 모든 삶을 통틀어 이만큼 만족스러운 판단을 내린 적이 있나? 없다. 단언컨대 없어. 별의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싶군. 당장 여기서 돌아가도 나는 아마…… 내 아버지조차 뛰어넘었을 테니까.’

    물론 사냥으로 취한 이득을 셋이 공평하게 나눈 것은 아니다.

    사냥 기여도만큼 나눴으니 수치로 따지면 칼리두 와탕카가 6할, 헤라클레스와 토르가 나머지 2할씩을 나누어 가진 셈인데, 고작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세를 이루는 중이다.

    그야말로 ‘별의 순간’이 아닐 수 없으리라.

    ‘……아무리 만족스러워도 끝은 봐야겠지.’

    토르의 생각이 옳다.

    벌써 만족하기는 이르다.

    아직 마계의 잔당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왕과 군대가 남아 있지 않던가?

    (저 커다란 대검 아래 웅장한 성이 보이느냐?)

    (저곳이 바로 색욕의 마왕, 아즈모데우스 님의 영역이니라.)

    (마계에 남아 있었던 마왕 중에서는 가장 서열이 높은 분이시지.)

    (그렇기에 이번 사냥은 본녀도 좀처럼 판단을 하기가 어렵구나.)

    (과연 너희들이 아즈모데우스 님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

    ‘색욕의 마왕’ 아즈모데우스.

    마계를 떠나지 않았던 모든 마왕 중 가장 높은 서열의 마왕.

    그는 행성의 수명이 다해가든 말든, 그저 자신의 성에 틀어박혀 호화로운 삶을 즐겼다.

    무려 은하를 건너온 침략자 셋에게 동족들이 몰살당하는 것조차 모를 만큼.

    아니, 어쩌면 위협을 느끼지 못할 뿐,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번 사냥은 전적으로 너희들 판단에 맡기도록 하마.)

    (대신 여기서 사냥을 포기할 거라면 내 본신부터 찾아주고.)

    (그간 너희들이 약해서 많이 참아준 줄 알아라. 알겠느냐?)

    지금껏 크로미는 적과 이안 일행의 격차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다.

    그리고 그 설명은 백이면 백 맞아떨어졌다. 그만큼 정확했다는 뜻이다.

    한데 그런 그녀가 이번만큼은 좀처럼 판단을 하지 못하겠단다.

    그만큼 마왕 아즈모데우스가 강하다는 뜻이겠지.

    또한 그만큼 이안 일행이 강해졌다는 뜻이겠고.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일행의 실질적인 결정권자.

    이안이 모두에게 물었다.

    모두라고 해야 둘뿐이다.

    [전쟁도 아닌 사냥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겠지. 다만 저 아즈모데우스라는 마왕만 남기고 철수하는 것도 아까우니…… 이번만큼은 싸울만한 이들을 모아오는 것이 어떻겠소? 사냥의 성과야 그만큼 나누어 먹어야겠소만, 그래도 안전하게 마무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말이오.]

    먼저 토르가 의견을 말했다.

    돌아가서 아군을 이끌고 다시 오자.

    꽤 합리적인, 그리고 안전한 방법을 제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손으로 끝을 보는 게 낫지 않겠소? 마도서의 말에 따르면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는 뉘앙스인데, 그 정도면 상대하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그런 상대를 쓰러뜨렸을 때의 성취감, 쾌감, 만족감, 난 그런 것들이 당기는군.]

    사냥 내내 죽이 잘 맞았던 토르와 헤라클레스의 의견이 여기서 갈렸다.

    토르가 안전을 도모했다면, 헤라클레스는 짜릿한 모험 쪽을 선택했다.

    이로써 1:1의 상황, 이안의 판단에 사냥 여부 및 방식이 갈릴 터.

    “…….”

    이안이 크로미와 결합한 ‘팡이’를 손에 쥔 채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성을 바라봤다.

    마계가 멸망 직전임에도, 잔류했던 악마들이 전멸했음에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 마왕.

    이미 이 상황을 모를 리 없음에도 여전히 성안에서 향락에 취해 있는 색욕의 마왕.

    그런 놈이라면, 아마 재정비를 하고 돌아올 때쯤 마계에서 도망치고도 남겠지.

    “우리 셋이서 시작한 사냥입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냥감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 선이라면 우리 셋이서 끝을 보는 게 맞겠죠. 무엇보다…… 이미 셋이서 나누어 먹는 것도 충분히 아프거든요. 배가.”

    약간의 솔직함이 섞인 중얼거림과 더불어.

    “자, 그럼 이제 결론이 났으니 마지막 사냥을 시작해 볼까요?”

    이안이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영역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 뒤를 헤라클레스와 토르가 바짝 뒤쫓으며 기습할 준비에 나섰다.

    헤라클레스는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얻은 기념으로 헤파이스토스에게 선물 받은 커다란 흑요석 몽둥이를,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유물이자 강력한 전투 망치 묠니르를 고쳐 쥐는 순간.

    쿵!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성문이 쿵, 하고 열렸다.

    아니, 이쯤 되면 열린 것이 아니라 부서진 거다.

    커다란 성문을 거칠게 때려 부수며 누군가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아즈모데우스, 저분이 바로 마왕 아즈모데우스 님이시다.)

    크로미가 속삭였다.

    덕분에 성 밖으로 나온 자의 정체를 알았다.

    색욕의 마왕 아즈모데우스, 그가 직접 성문을 열고 나왔다.

    ‘저 괴물이…… 아즈모데우스?’

    그 괴물의 상체는 뚱뚱한 인간에 가까웠고, 하반신은 다리가 여럿 달린 거미에 가까웠다.

    탁하고 옅은 녹색 피부의 목, 어깨, 가슴, 허리, 손목, 그리고 손가락에는 온통 황금으로 만든 장신구들이 과할 만큼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과연 탐욕스러운 돼지처럼 보였다. 색욕의 마왕보다는 탐욕의 마왕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그런 모양새였으니까.

    ‘생각보다 크지는 않네.’

    여태껏 상대했던 다른 마왕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작다.

    슈페리어 차원에서 지겹도록 봤던 기간테스 일족과 비슷한 수준이거든.

    물론 덩치로 힘의 격차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압박감이 덜한 것은 사실이었다.

    [……감히.]

    바로 그때.

    색욕의 마왕 아즈모데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토르와 헤라클레스는 아즈모데우스가 구사하는 악마어를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여러 악마의 기억을 읽었던 이안한테는 그 괴물의 악마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자연스레 해석되었다.

    [누가…….]

    생명력이 꺼져가는 마계의 지축을 뒤흔드는 중얼거림.

    다만 작금의 격렬한 진동은 마왕의 목소리 탓이 아니다.

    [나의 여흥을 방해하는 것이냐?]

    눈앞에 나타났던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육체가 녹아내렸다.

    대신 전혀 다른 방향에서 그 마왕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 위치는 하늘 높은 곳, 정확히는 이 마계라는 행성의 바깥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마왕 아즈모데우스의 팔과 손이.

    정말이지 거대한 팔과 손이 하늘에서 불쑥 나타나 마계 한가운데 건축물처럼 박혀 있던 대검을, 마계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커다란 대검을 천천히 잡아 뽑기에 이르렀으니, 작금의 지진은 아즈모데우스의 검이 지면으로부터 뽑혀져 나오며 일으키는 ‘천재지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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