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3화 (313/342)

313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27화

사냥꾼.

조금 더 특별한 수식어를 붙이자면 ‘악마 사냥꾼’.

처음에는 헛웃음을 치는 크로미였다. 그도 그럴 게, 고향의 동포들을 사냥한다잖아?

본인도 고향 지키겠답시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주제에 너무 뻔뻔한 소리를 한다.

(어이가 없구나. 본녀가 그런 목적으로 계약자의 고향을 원한다면, 허락하겠느냐?)

“못하죠. 당연히.”

(헌데 나한테는 잘도 그런 요구를 하는구나.)

“남을 잡아먹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족속이라면서요?”

(그게 뭐 어쨌다는 게냐? 그저 습성일 뿐인데.)

“사회적 시스템 없이 그저 서로를, 그리고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기만 하는 생물체는 지성체가 아닙니다. 포악한 짐승, 아니, 짐승도 어지간하면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지는 않으니까…… 그보다 아래에 있다고 봐야겠지요. 아, 그래서 악마인가 봅니다.)

(지, 짐승보다 아래……?)

“그러니 사냥이죠. 짐승보다 아래여도 격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요.”

격이란 슈페리어 특유의 힘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에게도 아주 미세한 격이 존재한다.

단지 그 힘의 실체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악마들의 격은 실로 어마어마할 터.

(……계약자야. 무언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한 모양인데, 내 고향의 동족들은 계약자가 사냥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약자들이 아니다. 기껏해야 백인장 아래 잡졸이라면 모를까, 서열 최하위 마왕님들조차 계약자의 상대가 되지 않느니라. 헌데 그런 강자들을 사냥하겠다고? 그건 사냥이 아니라 자살 행위일 뿐이지.)

“그럼 그 백인장 아래 잡졸들부터 시작하죠.”

(본녀의 말은 그게 아니라……!)

“크로미 님. 저한테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함께 들어서 아실 거 아닙니까? 설령 제가 이쪽 세계 모든 지배자의 격을 먹어치운다고 가정해도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이대로 가만히 손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내 고향을…….)

“계약자로서의 명령입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계약을 해지하십시오.”

(…….)

계약자로서의 명령.

그리고 계약의 해지.

선택의 기로에서 크로미가 침묵했다.

이안은 그녀에게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줬다.

(……조건이 있다.)

강경했던 태도가 확실하게 꺾였다.

역시나 고향을 향한 애정이 깊지는 않다.

평소 대화를 나누며 어렴풋이 예상했던 바다.

“얼마든지요.”

(내 고향, 마계로 가면 나의 본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라. 뜨거운 불구덩이에서도 족히 만년을 버틸 수 있는 커다란 얼음에 갇혀 있지. 억울한 누명으로 벌을 받는 중인데…….)

“풀어드리죠. 어떻게든.”

(……어떤 누명인지 궁금하지는 않고?)

“딱히, 그보다 다른 조건은 없습니까?”

(없느니라. 내 본신만 되찾을 수 있다면야…….)

“좋습니다. 그럼 이제 협조하시지요.”

협조란 마계로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뜻.

크로미 역시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먼저 나의 주인이신 단탈리온 님께서 다른 세계로 강림하시는 것처럼 마계의 누군가를 제물 삼아 역강림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이쪽 세계에서는 제물이 계약자 그대이고, 본녀가 그 계약의 촉매 역할을 하지만, 마계에는 그걸 해줄 수 있는 자가 없거든. 미리 준비해 둔 바가 전혀 없으니 말이니라.)

크로미는 조건만 갖춰진다면 언제든 마왕 단탈리온을 강림시킬 수 있다.

그러나 마계 쪽에서 이안 페이지를 강림시켜줄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결국 은하를 넘나드는 수밖에 없는데, 계약자의 비행 능력으로는 턱도 없다. 도착할 때쯤 늙어 죽을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나로서는 모르겠구나. 좀 더 고민해 봐야…….)

“길 안내는 가능하다는 뜻입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지. 하지만 그 먼 길은 어찌 가려고?)

“말씀하신 것처럼 고민해 봐야겠죠. 지금부터.”

길 안내는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단숨에 넘어갈 방법은 모르겠다.

거짓말 같지는 않다. 그러니 방법을 찾는 건 이안 본인의 몫일 터.

“…….”

이안이 계속해서 슈페리어의 심장을 거닐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멀찌감치 올림포스 신전이 보였다.

과업을 수행하며 참 자주 들락날락거렸던 장소 아닌가?

이 와중에 반갑다. 아무래도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다.

“어? 그러고 보니…….”

분명 저 신전 뒤뜰에 비프로스트가 있었지?

여러 중간계로 순식간에 옮겨주는 이동장치 말이다.

‘비프로스트의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

이안이 곧장 올림포스 신전 뒤뜰 쪽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역시나 허공을 맴도는 구체 형태의 비프로스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올림포스의 왕, 칼리두 와탕카 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디로 이동하길 원하십니까?)

오호라? 수행자 시절에는 이토록 친절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물론 지금은 비프로스트의 달라진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니겠지.

“혹시 중간계 말고, 제가 따로 좌표를 지정할 수도 있습니까?”

[비프로스트는 미리 설정된 좌표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미리 설정된 좌표라는 건 어떻게 설정할 수 있죠?”

[비프로스트의 제작 과정에서 설정됩니다.]

제작 과정이라.

고개를 끄덕인 이안이 되물었다.

“혹시 비프로스트 제작을 담당하는 이가 있습니까?”

[아스가르드 전당의 황태자, 묠니르의 주인 토르 님이십니다.]

아스가르드 전당의 2인자, 혹은 황태자.

즉 오딘의 아들 토르가 비프로스트의 제작자였다?

‘몇 번 마주쳤을 때는 그저 호전적으로만 보였는데.’

예상 외로 기술자였잖아?

원래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흥미가 조금 생겼다.

‘한번 만나봐야겠군.’

* * *

그로부터 얼마 후.

이안은 올림포스의 왕이자 시계탑 평의회의 공동 수장 자격으로 토르를 호출했다.

아니, 정확히는 방문통보였다. 그의 영역으로 직접 찾아가 만나는 쪽을 선택했으니까.

[후욱!]

아스가르드의 황태자.

유물 ‘묠니르’의 가장 적법한 주인.

토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련에 매진했다.

오랜 원수 집단의 수장이 코앞에 있다 한들 멈추지 않았다.

이는 이안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닌, 그저 무아지경의 경지였다.

[후욱!]

수련 중독자답게 토르의 개인 영역은 철저히 연무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과거 올리버와 대련을 나눴던 기사단의 연무장을 연상케 하는 풍경.

그 한복판에서 이안은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토르의 수련이 끝나는 순간만을.

쿵! 쿠궁! 쿵……!

과연 아스가르드의 2인자다웠다.

어찌 보면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는 아레스보다 훨씬 더 강한 지배자였다.

특히 저 아스가르드의 유물, ‘묠니르’라는 망치로 구사하는 움직임이 일품이었다.

만약 지금 아레스와 토르가 진심으로 붙는다면 짧은 시간 내에 승부가 나겠지.

물론 승리는 토르의 몫이리라.

[후우우우……!]

무아지경으로 수련에 집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수련을 끝낸 토르가 한숨을 돌렸다.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께서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신지?]

나아가 연무장 구석에 비치된 포도주로 목을 축이며 물었다.

오랜 원수나 마찬가지인 올림포스의 수장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압도적인 성장을 이룬 경계의 대상이라 그럴까?

토르의 목소리와 말투에는 호의라는 것이 빠져 있었다.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누군지는 아시겠지요.”

[반갑다니 나도 반가운 척을 해야 하는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소.]

“잘 되고 있으십니다. 그리 무서운 표정은 아니네요.”

[다행이군. 그럼 나도 반갑다고 해야겠지. 반갑소.]

왼손으로 묠니르를 옮겨 잡은 토르가 악수를 권했다.

이안 역시 그의 악수 요청을 마다치 않았다.

어쩌면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다시 묻지만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께서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시오? 무언가 논의할 것이 있다면 나보다야 나의 아버지, 오딘 님을 만나는 것이 정상일 텐데.]

“논의는 아니고, 토르 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나한테?]

“그렇습니다.”

[부탁이라, 올림포스의 왕께서 나한테…… 생소한 일이군. 무슨 부탁이실까?]

“토르 님께서 비프로스트의 제작자라고 들었습니다.”

[제대로 들으시긴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아뇨, 문제는 아니고, 말씀드린 것처럼 부탁입니다. 비프로스트 하나만 더 만들어주십시오. 중간계 말고, 다른 은하까지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비프로스트 말입니다.”

[……다른 은하까지?]

다짜고짜 찾아와서 비프로스트를 한 대 더 만들어달라니.

심지어 중간계도 아니고 다른 은하까지 넘어갈 수 있는 비프로스트를?

토르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탁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흥미가 생겼다.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거요?]

“마계라는 행성입니다.”

[……마계? 그런 곳도 있나?]

토르의 질문에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을 꺼냈다.

“이건 제가 습득한 마도서입니다. 혼돈의 전당을 통해서 우리 세계로 흘러들어왔고, 저와 계약을 맺었죠. 이 마도서가 탄생한 곳이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행성, 마계입니다.”

[마도서의 발생지라, 마계라는 이름이 퍽 어울리는군. 헌데, 거기는 갑자기 왜 가려는 거요? 다른 은하면 우리와 별 상관없는, 서로 신경을 쓰지 않는 관계인데, 설마 시계탑 상층을 차지한 나부랭이들처럼 다른 은하를 침략이라도 하시게? 왕이 된 기념으로다가 말이오.]

“침략,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다만 말씀하신 시계탑 상층의 나부랭이들…… 혼돈의 전당처럼 군림하고 지배할 생각은 없고, 그저 사냥이 목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냥?]

사냥이라는 말에 토르가 순간 두 눈을 번뜩거렸다.

마도서의 발생지, 이름만 들어도 온갖 괴수들이 득시글거릴 것만 같은 행성으로 사냥을 떠난다?

이거, 왠지 모르게 느낌이 확 온다. 어쩌면 이 사냥이라는 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행자에 불과했던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 칼리두 와탕카의 ‘고속 성장 원동력’이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그 원동력, 알아내야겠다.

그리 결심한 토르가 이안의 말에 집중했다.

직전까지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태도가 일품이었다.

[……그러니까 마도서의 발생지인 마계라는 곳으로 사냥을 떠나고 싶으시다, 다만 거리가 너무 먼 관계로 새로운 비프로스트가 필요하다, 내 귀로는 이렇게 들리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사냥은, 단순한 여흥 목적이오?]

“그럴 리가요. 여흥이라면 토착 괴수만으로도 충분하죠.”

[그 말씀은?]

“더 강해지러 갑니다.”

[……!]

더 강해지러 간다.

머나먼 타 은하의 행성.

마계에서의 사냥을 통하여.

[그 마계라는 곳에 무엇이 있기에…….]

“저만큼 강한, 혹은 저보다 강한 괴물들이 득시글거린답니다. 아, 저와 계약한 이 마도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괴물들을 악마라고 지칭한다더군요. 사냥하기 딱 좋은 이름 아닙니까?”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칼리두 와탕카만큼, 혹은 더 강한 괴물들.

일컫기를 ‘악마’가 득시글거린단다. 그리고 그 악마란 족속들을 사냥한단다.

여흥이 아닌 강해지기 위하여, 과연 그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격, 그 악마라는 괴물들의 격을 노리는 것이로군.’

과연 그렇다.

그런 괴물들을 사냥하여 격을 모조리 취할 수만 있다면?

수행자였던 자가 단숨에 왕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겠지.

[…….]

토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좋소. 올림포스의 왕께서 원하는 비프로스트,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들어드리지. 단, 제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조건 한 가지가 있소. 내 조건을 들어준다면 지금 당장 작업에 착수하도록 하지.]

“어떤 조건입니까?”

[나도 끼워주시오. 그 사냥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