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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12화 (3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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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26화

    “무슨 뜻입니까?”

    이안과 똑같이.

    영원하고도 완벽한 평화를 바란다.

    그 말에 담긴 의미가 해석되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렵군요.”

    다만 한 가지 추측은 간다.

    말도 안 되는 추측이긴 한데.

    그래도 한번 물어나 볼까?

    “저와 목적이 같다는 게, 혹 장애물을 치우는 것도 해당이 됩니까?”

    [일정 부분은, 그렇다.]

    뭐? 일정부분은 그렇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 말인즉슨.

    “당신의 상관을 죽이는 일에 동참 하겠다, 제가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리 간단한 의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일정 부분은 그렇다.]

    대답을 들은 이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 아닌가?

    “반란을 일으켜 혼돈의 전당의 왕이라도 될 생각입니까? 저처럼 말이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미 내가 실질적인 주인이기도 하고.]

    “그럼 무슨 뜻으로…….”

    [말했잖아? 그대처럼 나 역시 영원 하고도 완벽한 평화를 바란다고.]

    “……그러니까, 그 평화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입니다.”

    [해줄 말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더 얘기해 봐야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이해할 수 있다 한들 지금으로서는 좋을 게 전혀 없는 일이다. 목적의 성공 확률만 줄어들 터이니.]

    그 이상의 정확한 이야기.

    예컨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이유는 ‘아직’ 말해줄 수 없단다.

    매우 답답한 노릇이나, 더 물어봐야 얻을 것은 없어 보였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쯤에서 질문을 바꿀 수밖에.

    “좋습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죠.”

    [말하라.]

    “만약 제가 어떤 조건을 충족한다면, 해서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지금도 전혀 해독되지 않는 군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 아마 그때쯤이면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알 필요가 없는 것들까지도.]

    충분한 대답.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그 선결 조건을 알아야겠지.

    “슬슬 말씀해 주십시오. 선결 조건 이라는 게 뭡니까?”

    [간단하다. 지금의 너보다 강해지면 된다.]

    “얼마나 더 강해지면 되겠습니까?”

    [나, 그리고 공허의 군주와 함께 이곳 혼돈의 전당의 패권을 다툴 수 있을 만큼.]

    쉽게 말해서 혼돈의 군주 자신만큼 강해지라는 뜻인데.

    제우스조차 벌레처럼 제압하는 저 초월자를 무슨 수로?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물며 시작이란다.

    아득바득 여기까지 왔건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심하게 멀어.

    “힘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 군주께서 남기신 말씀이 해독되고, 자연스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뜻으로 이해할까 하는데, 혹여 틀린 부분이 있다면 정정해 주시지요.”

    [없다.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군.]

    그래, 대충 알겠다.

    무릇 격이란 한계를 넓혀주는 힘 아닌가?

    그 한계의 범위를 넓혀 혼돈의 군주가 남긴 말을.

    지금은 해독할 수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전언을 해독하라.

    그리한다면 지금 이안이 품고 있는 모든 의문이 풀릴지어니.

    ‘문제는 어찌 더 강해지느냐는 점 인데.’

    제우스를 뛰어넘는데도 엄청난 기연이 필요했다.

    보랏빛 별 너머의 존재, 거대한 토끼 ‘코스모스’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강해지라고? 도대체 무얼 더 해야 할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기까지 오는 데도 한계를 여러 번 느꼈습니다.”

    [아아, 그럴 테지. 본디 중간계인들은 태생적으로 그 한계가 매우 낮거든.]

    “그러니 조언이라도 해주시죠. 여기서 뭘 더 어찌해야 말씀하신 조건을 충족할 만큼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엄살 부리는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나야 모르지. 물론 안다 해도 말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마저도 직접 해내지 못한다면 내가 너와 함 께 일을 도모할 이유가 없잖아? 그냥 더 나은 변수를 찾아내고 말지.]

    “생각보다 쪼잔하시네요.”

    [종종 듣는 소리다.]

    “그럼 이렇게 여쭈겠습니다. 제가 만약 슈페리어 차원의 모든 지배자를 먹어치우면, 그들의 격을 모조리 빼앗아서 제 것으로 흡수하면, 그때는 말씀하신 조건이 충족되겠습니까?”

    진심이라면 굉장히 살벌한 질문.

    그럼에도 혼돈의 군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읊조렸다.

    [부족할 것 같은데?]

    “부족…… 하다고요?”

    [음, 부족하지. 그 정도로는.]

    그저 강해지라는 말의 기준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해서 극단적으로 상황을 설정했거늘, 뭐라고? 부족해?

    ‘이게 부족하면, 여기서 더 무얼 할 수 있다는 거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럼 진심이지. 거짓말해서 뭐해?]

    “그 이상으로 강해지는 게 가능하긴 합니까?”

    [가능하지. 당장 나부터가 증거 아닌가?]

    “…….”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혼돈의 군주는 강하다.

    아마 공허의 군주란 존재도 비슷하겠지.

    시계탑 최상층의 괴물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아, 알겠습니다. 더 물어봐야 얻을 게 없을 것 같네요.”

    [옳은 판단이다. 그럴 시간에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 낫겠지.]

    놀리는 건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혼돈의 군주의 표정과 마주하며, 이안이 말문을 이어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귀찮군. 왜 이렇게 질척거려? 딱히 해줄 수 있는 말도 없는데.]

    “마지막입니다. 이것만 여쭙고 돌아가겠습니다. 오늘은요.”

    [답을 듣지 못해도?]

    “물론이죠.”

    [좋다. 들어는 주지.]

    “크로노스를 되감을 때마다 조금씩 사라지는 신체, 격을 쌓아 올릴 때 마다 조금씩 커지는 본신, 그리고 거대한 눈 한쪽만 남은 채 어린아이처럼 군다는 눈먼 아버지란 존재까지, 제가 느끼기에는 이 세 가지에 제법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은 데, 아닙니까?”

    […….]

    날카로운 질문이었을까?

    혼돈의 군주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침묵도 잠시일 뿐.

    군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스스로 알아봐. 그 과정도 꽤 재미있을 테니까.]

    그 대답을 끝으로.

    혼돈의 군주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바깥으로 통하는 차원 문을 열어주며 손짓할 뿐이었다.

    이만 나가보라는, 다시 만날 이유가 생겼을 때 또 만나자는 제스처였다.

    ***

    “휴우.”

    혼돈의 군주가 열어준 차원 문 너머는 시계탑 바깥.

    이쪽 세상의 거대한 도시, 슈페리어의 심장 한복판이었다.

    ‘딱히 건진 게 없네.’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만족스럽다 말하기도 어렵다.

    중요한 질문은 모두 답변을 거부당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아주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지.

    ‘……정말 이 세계의 모든 격을 다 먹어 치워버릴까?’

    혼돈의 군주는 분명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해서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찌 되었든 티끌이라도 모아두면 좋잖아?

    ‘어차피 그럴 작정으로 올라왔잖아?’

    처음에는 그랬다.

    고향을, 소중한 모든 것들을 위협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싶었다.

    그 요소가 아무리 사소할지언정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필요하면 이곳 슈페리어 차원을 멸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내 고향을 지키고자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지. 아니, 보이는 게 많아졌다고나 할까?’

    당장 이 거리를 보라.

    슈페리어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도시.

    이 도시에 살아가는 평범한 슈페리언들은 중간계의 존재조차 모른다.

    결국 이 세계도 권력자들, 그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일을 꾸민다는 거다.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시계탑에서도 극소수의 권력자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슈페리언들.

    그보다 더 낮은 곳에서 핍박받는 추방자들.

    결국 여기도 똑같다. 그러니 예전과 다를 수밖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이, 전부 다.

    “하아……”

    복잡함이 뚝뚝 묻어나는 한숨과 더 불어.

    한동안 정처 없이 도시를 떠도는 이안이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혼자만 조그마하지도 않았다.

    높은 격만큼이나 본신 역시 거대해 졌으니 말이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지금보다 더욱, 확실하게 강해지는 방법.

    혼돈의 군주가 말한 조건을 충족해 낼 방법.

    무엇이 있을까? 그런 방법이 존재 하기나 할까?

    (보던 중 퍽 울상이로구나. 계약자야.)

    그런 이안의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아니면 그 반대로 쌤통이라서일까?

    잠자코 있던 크로미가 소리를 냈다.

    물론 이안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안쓰러워서 더는 두고만 보고 있을 수가 없겠구나. 내 이번만 특별히 방법을 알려줄 터이니…….)

    “강림이니 어쩌니 하실 요량이라면 그만두십시오. 확 계약을 해지해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하, 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으냐? 생각을 해보아라. 아득바득 거기까지 올라갔다. 건방진 번개돌이 한 놈 잡으려고 네가 어떤 고생을 하였느냐? 그런데 한술 더 떠 그 군주인지 뭔지, 말하는 본 새만 봐도 기분 나쁜 놈들만큼 강해지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하느냐? 본녀의 판단으로는 절대 불가능 하다. 애초에 이만큼 강해진 것도…….)

    “이런저런 기연 덕분이죠. 운도 좋았고요. 저도 압니다.”

    (그러니 새로운 기연을 받아들이라는 게야. 그분의 힘을 받아들이면 충분히…….)

    “경고가 통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계약을 해지해야겠습니다.”

    (자, 잠깐……! 너무 성급하게 그러지 말고……!)

    요즘은 좀 덜하더니만.

    기회를 틈타 또 이런다.

    과연 사특한 마도서답게 주인을 잡아먹으려드는구먼.

    그러나 크로미는 상대를 잘못 만났다. 고작 이런 일로 넘어갈 이안 페이지가 아니…….

    ‘……가만.’

    그 순간.

    이안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고 스쳐가는 생각 한 줄기.

    물론 아직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가능성을 확인해 봐야겠지.

    누구한테? 바로 이 한 줄기 생각의 원천,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에게.

    “크로미 님.”

    (그래, 그래. 본녀가 널 도와준 게 얼마인데 계약해지라니, 그건 참 너무한 처사이니라.)

    “크로미 님께서 매번 말씀하시는 그분 말입니다. 정확히는 그분이 존재하는, 크로미 님의 고향이요.”

    (으, 응……? 갑자기 내 고향은 왜…….)

    “이름이 마계였던가요? 아무튼, 거긴 어떻습니까?”

    (어떠냐고?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야?)

    “여기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통치하는 집단이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든지…….”

    이안의 물음은 간단하다.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고향.

    일컫기를 마계, 그녀의 ‘그분’을 포함한 악마들의 땅이라는 세계.

    거기도 슈페리어 차원처럼, 혹은 중간계처럼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이냐?

    요약하자면 그런 물음이었고, 한 박자 늦게 이해한 크로미가 콧방귀를 흥, 하고 뀌며 읊조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우리 계약자가 참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나고 자란 고향, 그분께서 계신 마계는 말 그대로 지옥이니라. 지옥! 72인의 마왕이 각자의 군대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말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영원한 전쟁을 벌이는 땅이지.)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 똑똑히 알아두어라. 우리 악마들은 말이다. 오직 남을 잡아먹기 위해서 태어난 족속들이니라. 다른 세계의 생명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동족들까지도!)

    “그럼 그 마계라는 곳에는 강한 악마들이 참으로 많겠네요.”

    (물론이지. 네 녀석이 쓰러뜨렸던 그 번개돌이쯤 되는 녀석들이야 발에 챌 만큼 많아.)

    “그 정도입니까?”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그런 곳이니라. 본녀의 고향은.)

    “으음, 그렇군요.”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동시에 만족스러운 듯 눈빛을 반짝거린다.

    크로미 역시 한발 늦게 이안의 변화를 알아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런 묘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거기로 가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응? 갑자기 그게 무슨…….)

    “그 마계라는 곳이요. 크로미 님께서 여기 계시고, 매번 말씀하시는 그분이란 양반께서도 틈만 나면 이쪽으로 호시탐탐 넘어오려는 거 보면, 아예 가지 못할 거리는 아닌 것 같아서.”

    (그, 그러니까 왜, 갑자기 왜 그러는....)

    “사냥.”

    (……사, 사냥?)

    “아무래도 제가 사냥꾼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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