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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05화 (30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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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9화

    [……네놈 따위의 개가 될 순 없지.]

    솔직히 의외였다.

    목숨만 살려달라며 개처럼 빌 줄 알았다.

    그러나 제우스는 예상과 달리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겸허히 두 눈을 감았다. 이안의 개가 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래 봐야 어차피 개가 되는 건 똑같습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의 문제죠.”

    이안이 여러 지배자가 모여 있는 한쪽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하데스가 흥분을 감추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알고 있다. 네놈 따위의 개가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정말 그럴까요?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닥쳐라! 어딜 감히 중간계의 벌레 따위가 나,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를 부리려는 것이냐? 차라리 죽겠다. 하데스의 개가 될지언정 이 자리에서 죽겠다는 얘기다! 어서 죽여라. 어서!]

    “흐음.”

    물론 죽여서 나쁠 건 없다.

    무려 제우스의 격이 담긴 결정체를 취하는 일 아닌가?

    더더욱 독보적인 존재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하데스에게 제우스를 넘겨주는 것은 영 별로긴 한데.’

    다시 봐도 참 표정 관리 못 한다. 하데스 말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군침까지 뚝뚝 흘릴 기세다.

    ‘저러고 있는데 넘기지 않는 것도 좀 그렇고.’

    제아무리 한시적인, 불안한 동맹이라고는 하나.

    하데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였을 터.

    이제 슬슬 큰 선물 하나 넘겨줄 때도 되었거니 싶다.

    ‘너무 크긴 한데, 어쨌든…….’

    마침내 이안이 결정을 내렸다.

    이 자리에서 제우스의 격을 취한다.

    “……죽음을 원하신다면야, 그렇게 하죠.”

    바야흐로 이안의 결단이 모두에게 전해지는 순간.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 그 어디에도 왕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지는 않아.]

    어느새 접근한 하데스가 이안 앞을 가로막으며 읊조렸다.

    죽은 자들의 원혼으로 만든 커다란 데스 사이드는 덤이었다.

    [왕이 할 일은 그저 군림하고, 명령하며, 지켜보는 것.]

    왕을 대신해서 나서는 신하처럼 군다.

    하나 그 표정은 전혀 신하답지 않았다.

    행복에 겨워 미쳐 버릴 것만 같은 표정이다.

    [집행을 명하소서.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이시여.]

    빨리 죽이라고 말해.

    어서 명계로 넘겨줘.

    데려가서 잘 쓸 테니까.

    말하지 않아도 읽힌다.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하데스 님.”

    [하문하시옵소서.]

    “신하 흉내는 그만 내시고요. 그러기 싫어서 삼황이라는 별호까지 따로 두셨잖아요?”

    [그것은 소신과 제우스, 포세이돈의 힘이 거의 동률을 이루었기에 그랬던 것이옵고, 이제는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신 칼리두…… 아니, 이안 페이지 님께서 압도적인 격을 갖추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유일무이한 일황으로 오르심이 마땅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좀 하시네요. 아부.”

    말투 봐라.

    고향 역사에 이름을 남긴 간신들이 떠오를 지경이다.

    얼마나 제우스를 명계로 떨어뜨리고 싶으면 이럴까?

    “좋습니다. 그럼.”

    이안이 하데스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지금 즉시 처형을 집행하라는 뜻이었다.

    [잘 가시게, 제우스. 어차피 곧 다시 보겠지만 말이야.]

    바야흐로 하데스의 데스 사이드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 시꺼먼 날 끝이 바닥으로 떨어질 쯤에는.

    화상을 입은 제우스의 목 역시 바닥에 떨어졌다.

    데구르르르르…….

    어디 제우스의 목만 떨어져 구를까?

    그의 몸뚱이에서 튀어나온 격의 결정체.

    그 푸른 구체 역시 이안의 발 앞을 굴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올림포스의 왕이었던 제우스.

    초월적인 존재의 격이 잔뜩 담긴 결정체가 말이다.

    “……앞으로 또 이런 물건을, 예컨대 격의 결정체 따위를 구하게 된다면, 저는 제우스와 달리 여러분과 나눌 계획입니다. 저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시는 분들에 한해서 말이죠.”

    제우스의 격을 취하기 직전.

    이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올림포스의 최상급 지배자들에게 말했다.

    “다만 이번에는 저 혼자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조금 전 하데스 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유일무이한 일황이라는 거, 그 자리에 좀 더 어울리는 격을 갖추지 않겠습니까?”

    누구도 이안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달 건수도 없거니와, 조금 전 이안의 압도적인 무력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전대 왕의 격은 새로운 왕의 징표와도 같은 것, 그 왕관을 오롯이 누리심이 마땅합니다.]

    더군다나 제우스의 영혼에 눈이 먼 하데스까지 한팔 제대로 거들며 나섰으니, 설령 제우스의 격을 나누어 먹고 싶은 지배자가 있다고 한들 지금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으리라.

    “모두의 뜻이 그러하시면…….”

    모두의 뜻은 아니고 하데스의 뜻이긴 하나.

    여기서 그걸 따지고 들 용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바로 취하도록 하죠.”

    바야흐로 이안이 격이 담긴 결정체를 손에 쥐었다.

    나아가 그 안에 응축된 격을 모조리 흡수하고자 했다.

    콰드드드득……!

    그러자 이안의 육신이 그릇을 넓히기 시작했다.

    제우스의 폭발적인 격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릇.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으나, 이안은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후욱……!”

    육신과 영혼의 재구성이 일어나기를 수백 차례.

    드디어 모든 걸 흡수한 이안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그와 동시에 올림포스의 왕을 상징하는 유물.

    아스트라페와 케라우노스가 이안의 주위를 천천히 맴돌았다.

    다만 제우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행렬에 팡이와 결합된 크로미가 합류했다는 점이었다.

    “…….”

    아스트라페, 케라우노스, 그리고 지팡이가 된 네크로노미콘의 호위를 받으며.

    새로운 왕, 이안 페이지가 자신을 바라보는 올림포스의 지배자들에게 말했다.

    이는 올림포스의 새로운 수장으로서 내리는 첫 번째 명령이자 당부였다.

    “우선, 제가 중간계 출신이라는 사실은 당분간 불문에 부치겠습니다.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오. 만약 새어 나갈 경우 여러분께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함구령.

    이안이 중간계 출신이라는 점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그리고 두 번째, 예정된 첫 번째 중간계의 재구성을 취소하겠습니다. 그곳을 수중 세계로 탈바꿈하고자 하셨던 포세이돈 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곳이 제 고향이라서 말입니다.”

    두 번째 명령은 재구성 명령 취소.

    그 말에 포세이돈이 움찔했으나, 재빨리 표정을 관리했다.

    자신만의 수중 세계고 나발이고, 반기를 들었다가는 본인이 죽게 생겼다.

    제우스를 어린애 다루듯 가지고 놀던 이안 페이지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저기, 칼리두…… 아니, 이안 님?]

    이안의 두 번째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헤스티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말씀하세요.”

    [그…… 절차상 재구성 명령은 저희가 독단적으로 취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아스가르드와 만장일치가 되어야 한다죠? 그건 저한테 맡겨두시면 됩니다.”

    [아뇨, 아스가르드뿐만 아니라…… 사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거든요.]

    “……위?”

    [첫 번째 중간계의 재구성은 전적으로 혼돈의 전당에서 일방적으로 내린 명령입니다. 저희한테는 재구성의 방식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만 주어졌을 뿐, 명령 자체를 거부하거나 취소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의 재구성 명령을 취소하시려면 저희들, 그리고 아스가르드가 아닌, 혼돈의 전당과 합의를 보셔야 합니다.]

    그거 이상한 일이다.

    제우스는 분명 평의회의 결정만으로도 가능하다 했는데?

    ‘거짓말을 했던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고향의 평화를 빌미 삼아 이안 자신을 꼭두각시로 만들려던 수작이겠지.

    새삼 아쉽다. 죽지 않고 격의 맹약을 맺었다면 지금쯤 흠씬 두들겨 패줬을 터.

    “그렇군요.”

    아쉬움을 삼킨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두 번째 명령의 내용을 조금 바꾸었다.

    “허면 아쉬운 대로 재구성의 방식만 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는 일이니만큼 일시적으로 중단해 놓도록 하죠. 이 정도 권한은 저희한테 있겠지요?”

    [계획 변경을 위한 일시중단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아스가르드와 합의만 된다면요.]

    “좋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죠.”

    역시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올림포스도, 아스가르드도 아니었다.

    시계탑 상층을 독차지한 혼돈의 전당이야말로 악의 근원일 터.

    그 침략자들을 깨부수지 않고는 아무것도 끝낼 수 없으리라.

    “……짧은 사이 많은 일이 있었네요. 우선 좀 쉬어야겠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노려야 하는지를 한 번 더 깨달은 이안 페이지.

    올림포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그가 모두를 돌려보냈다.

    당연하게도 휘황찬란한 즉위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 * *

    “어째서 나서지 않으셨습니까?”

    올림포스의 왕위계승이 일어나고부터 얼마 후.

    명계의 궁전으로 돌아온 하데스가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었다.

    “설마 또 그 매번 뒤통수나 맞으시는 동업자 정신이라도 발휘하신 겁니까?”

    이제는 하데스의 심복이 된.

    그러나 왠지 모르게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프란 페이지.

    그 의뭉스러운 존재가 하데스에게 물었다.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과 함께였다.

    [그럴 리가? 매번 나만 발휘하는 동업자 정신 따위 지켜서 뭐 해?]

    “그럼 왜…….”

    [나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차마 나서지 못한 거야.]

    본디 하데스의 계획은 간단했다.

    이안과 제우스가 박 터지게 싸운다.

    그러다 보면 둘 다 약해지는 순간이 올 터.

    바로 그 순간 나서 둘 다 명계로 떨어뜨린다.

    그럼 이안과 제우스, 두 영혼을 휘하에 둘 수 있잖아?

    [정말 압도적이더군.]

    “제 아들이 말입니까?”

    [제우스를 갖고 놀더라고.]

    하나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박 터지게 싸우기는커녕 압도적이었으니까.

    이안 페이지, 그 중간계에서 온 변수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다.

    [그러니까 네놈도 이제 아비랍시고 그만 까불어. 괜히 그 녀석 근처에서 얄밉게 기웃거리다가 나랑 우리 명계까지 미움 사면, 그거 다 네놈이 책임져야 해. 무슨 뜻이지 알겠어?]

    “염려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천륜 아닙니까?”

    [그 천륜 끊겨서 명계로 떨어진 거 아닌가?]

    “그땐 중간계였고, 지금은 생판 남밖에 없는 슈페리어잖아요? 잠재적인 적들 앞에서 천륜으로 이어진 핏줄은 귀한 법입니다. 예전처럼 그리 냉정하지는 않을 거예요. 하하.”

    도대체 뭘 믿고 저리 태평한지.

    하여튼 언제 봐도 수상한 놈이다.

    [쯧.]

    혀를 찬 하데스가 프란에게 꽂혀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궁전 지하에 마련된 특수 감옥 안쪽을 바라봤다.

    먼저 그 감옥 중에서도 가장 공간이 넓고 높은 감옥부터 바라봤는데, 그 안에는 팔과 다리가 흑요석 사슬로 칭칭 감긴 괴수 튀폰이 비교적 얌전한 눈빛으로 하데스를 노려봤다.

    비교적 얌전한 눈빛으로 노려본다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이전까지 보여줬던 그 무지막지한 포악성을 고려하자면 쓰지 못할 표현도 아니리라.

    [……그래도 뭐,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물론 지금 이 순간에 중요한 건 비교적 온순해진 튀폰이 아니었다.

    바로 그 옆, 튀폰의 감옥보다는 사이즈가 아담한 감옥에 갇힌 존재.

    수백 겹의 흑요석 사슬로 포박당한 채 뇌전의 기운을 내뿜는 지배자.

    [제우스, 이왕 내 밑으로 온 거 순순히 복종하면 좋잖아? 네가 아무리 멍청하기로서니 저기 저 괴물 놈처럼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리 난동을 부리는 거야? 응?]

    금일 최고의 수확.

    번개의 지배자 제우스.

    그 존재를 가두어놓은 감옥 앞에서 하데스가 이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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