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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04화 (30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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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8화

    정화의 불꽃.

    본디 제로 클래스의 영역으로서 프란 페이지에게 죽음을 선사했던 마법.

    이제는 그 불꽃에 격까지 담겼으니 실로 엄청난 파괴력을 머금고 있으리라.

    화르르르르륵!

    허를 찔린 제우스가 잠시 주춤하는 찰나.

    무엇이 되었든 잿더미로 만들 것만 같은 정화의 불꽃이 제우스를 집어삼켰다.

    평범한 불꽃이었다면 허를 찔리든 말든 제우스의 옷깃 하나 불태울 수 없었을 터.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새하얀 불꽃은 뭔가 남달라도 확실히 남달랐다.

    불꽃 속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제우스의 비명이 증거였다.

    [크, 크아아아아아악……!]

    아마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까지 처절한 비명을 질러본 적, 단언컨대 없을 거다.

    그만큼 혼돈의 전당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의 머리 위에 군림했던 제우스 아닌가?

    [사, 살려…… 살려……!]

    그런 그가 울부짖는다.

    살려달라며 목숨까지 구걸한다.

    그만큼 새하얀 불꽃의 열기가 엄청났다.

    격으로 똘똘 뭉친 제우스의 피부가 녹아내릴 만큼.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작열통에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끄으으으으으……!]

    그래도 과연 제우스는 제우스다.

    프란을 남김없이 불태웠던 불꽃 아닌가?

    이제는 그 불꽃에 어마어마한 격까지 더해졌다.

    살상력으로는 여러 마법 중 최고 수준이라는 뜻.

    [허억! 헉! 허어억……!]

    그럼에도 끝내 제우스의 숨통을 끊어내진 못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저항하여 불길을 몽땅 잠재웠다.

    그 비현실적인 저항력에 이안은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설마 저런 식으로 정화의 불꽃 속에서 살아남을 줄이야.

    “대단하십니다. 그걸 버티다니요.”

    [가, 감히 이따위 사술을……!]

    문제는 딱 살아남기만 했다는 점이다.

    만신창이라는 표현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풍성했던 머리카락과 수염은 온데간데없다.

    그저 시뻘겋게 부푼 피부와 기포만 존재할 뿐.

    이쯤 되면 제우스가 맞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리라.

    “더 싸우실 수 있겠습니까? 이쯤 하고 포기하심이…….”

    [닥쳐라 이놈! 내가…… 이 올림포스의 왕이 네놈 따위한테 무릎을 꿇을성싶으냐?!]

    이미 제우스는 전투불능에 빠졌다.

    그럼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여전히 올림포스의 왕이요.

    이안은 그저 아랫것일 뿐이니까.

    “원래 그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되시는 분이었습니까?”

    [그래, 마음껏 떠들어라. 그 입부터 찢어주마!]

    울분에 찬 제우스가 사방을 둘러봤다.

    올림포스 소속 지배자들의 면면이 보였다.

    대부분 제우스의 패배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올림포스 전당의 지배자들이여! 나, 그대들의 영원한 왕 제우스가 명하노니, 저 비천한 반동분자의 사술로부터 그대들의 왕을 지켜라! 그리고 저 반동분자의 목을 가져와라! 어서!]

    그런 그들에게 왕으로서, 올림포스의 수장으로서 명령을 내렸다.

    신하된 도리로 너희들의 왕을 지켜라. 그리고 반동분자를 척살하라.

    한평생 왕 노릇을 해온 제우스한테는 지극히 당연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아, 아버지……?]

    제우스의 가장 아끼는 아들 아레스.

    그리고 아내 헤라만이 제우스 앞을 지킬 뿐.

    나머지는 모두 선뜻 나서지 못한 채 서로 눈치만 살폈다.

    [너, 너희들, 내 명령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어서 저 반동분자의 목을……!]

    물론 그 망설임도 잠시.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헤라클레스였다.

    튀폰의 격을 먹고 최상급 지배자가 된 그가 이안의 앞을 지켰다.

    [이 대결의 승자는 누가 봐도 칼루다 망탕카요.]

    어디 이안의 앞을 지켜주기만 할까?

    승자가 누구인지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비록 이름은 틀렸지만 말이다.

    [헤라클레스 이놈……! 아무렴 그 반동분자가 목숨 한 번 살려줬기로서니……!]

    [생명의 은인이라서가 아니요. 당신은 졌소. 제우스. 그것도 굉장히 압도적으로.]

    [헛소리 마라! 내가 방심하지만 않았어도, 사특한 술수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의 말을 반박하고 나서는 그때였다.

    [에이, 그건 아니지.]

    헤라클레스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가 봐도 실력 차이잖아?]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

    그 역시 이안 앞에 서며 읊조렸다.

    [……하데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자네의 패배일세. 제우스.]

    [말도 안 되는……! 내가 저까짓 천한 놈한테……!]

    [패배를 인정하세요. 당신의 패배입니다.]

    [뭐…… 뭐라……?]

    세 번째로 끼어드는 지배자.

    그녀의 이름은 헤스티아였다.

    헤라클레스, 하데스, 헤스티아.

    이로써 친 이안파 지배자들은 모두 나섰다.

    이제 남은 이들의 선택이 강요되는 상황.

    [……칼리두 와탕카의 말이 옳소. 우리 올림포스, 아니, 슈페리어는 언제나 힘의 논리로 존속 되어왔지. 그 역사와 전통을 따르자면 우리들의 왕은 더 이상 제우스, 당신이 아니오.]

    남은 지배자 중에선 헤파이스토스가 가장 먼저 나섰다.

    오랫동안 충성했던 제우스가 아닌, 이안 앞을 든든히 지켰다.

    [뭐랄까, 많이 추잡하군.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이 말이야.]

    벌써 네 명의 지배자가 이안한테 붙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으니, 보다 가파르게 무너졌다.

    다섯 번째 타자는 무려 삼황의 한 축. 포세이돈이었으니까.

    [……아버지, 죄송합니다.]

    이에 질세라 아폴론 역시 이안 쪽으로 붙었다.

    애당초 핏줄의 의미가 옅어진 지 오래 아닌가?

    제우스에게 아폴론은 그저 부하에 불과하다.

    그런 아비의 편을 들기엔 대세가 기울었다.

    [네, 네놈들…… 네놈들이 감히 나를 배신해……?]

    제우스가 배신감에 몸서리치는 이 순간에도 이탈자가 속출했다.

    결국 아레스와 헤라를 제외한 올림포스 소속 최상급 지배자 전원이 이안 쪽으로 붙어버렸으니, 이는 대세가 기울다 못해 한쪽으로 꺾어져 올림포스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의미했다.

    “제우스 님.”

    대다수의 지지를 얻은 승리자.

    이안이 앞으로 나서며 읊조렸다.

    “패배를 인정하십시오.”

    […….]

    “그럼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

    패배를 인정해라.

    그럼 살려는 주겠다.

    이보다 모욕적인 말이 또 어디 있을까?

    [……흐, 하하, 하하하하!]

    모욕감에 정신을 놓아버리기라도 했을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광소를 터뜨린 제우스.

    그의 눈빛이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아직 포기하지 않는 눈초리였다.

    [멍청한 놈들, 네놈들은 저 반동분자가, 칼리두 와탕카라는 놈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 줄 아느냐? 아니, 아니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안다면 저놈 앞에 서 있을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

    제우스에게는 이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킬 카드가 존재했다.

    예컨대 칼리두 와탕카의 진짜 이름, 출신, 그리고 목적 말이다.

    [저놈의 이름은 칼리두 와탕카가 아니다! 그 이름은 단지 우리 모두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한 가면에 불과할 뿐……! 저 반동분자의 진짜 이름은……!]

    “이안 페이지.”

    [……어?]

    “그것이 제 진짜 이름입니다.”

    물론 눈 뜨고 당할 이안 페이지가 아니다.

    제우스가 고이 모셔뒀던 카드를 빼앗아버렸다.

    “중간계 출신이고, 이름과 신분을 속여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진짜 이름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

    제우스가 폭로하고자 했던 모든 걸 밝힌다.

    심지어 자신에게 걸려있던 변장 주술까지 풀었다.

    흰 피부와 길게 늘어뜨린 장발, 푸른 눈동자에 이르기까지.

    더는 슈페리언이 아닌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주, 중간계인……?]

    [중간계인이 슈페리언 행세를 했다고……?]

    [수행자가 된 것도 모자라서 제우스를 꺾어……?]

    [이게…… 이게 말이 돼? 중간계인 따위가 무슨 수로……?]

    일순간의 혼란, 그리고 술렁거림.

    필승카드를 빼앗겼던 제우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반응, 나쁘지 않다. 벌레 같은 중간계인한테 머리를 조아릴 지배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 그래! 저걸 봐라! 저게 저놈의 진짜 모습이다! 감히 중간계인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그런데, 이제 와서 제가 중간계인이라는 사실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정체를 드러낸 이안 페이지.

    그가 오히려 모두에게 되물었다.

    뻔뻔하리만큼 당당한 태도는 덤이었다.

    “중요한 건 제가, 중간계에서 온 이안 페이지가 당신들보다 강하다는 겁니다.”

    [하! 네놈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느냐? 우리 올림포스가 힘을 합친다면……!]

    “하데스 님과 헤라클레스 님은 이미 제 정체를 알고 계십니다.”

    [……뭐, 뭐라?]

    “아테나 님은 격의 맹약을 맺으셨으니, 제 편을 들 수밖에 없을 테고.”

    […….]

    “수가 조금 모자라긴 하는데, 그래도 이만하면 질 것 같지는 않네요.”

    이안의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

    제우스를 압도하는 이안 페이지.

    튀폰의 격을 빨아들인 헤라클레스.

    삼황 중 한 축을 담당하는 하데스.

    유사시 그가 출병시킬 명계의 군대.

    격의 맹약을 맺은 아테나까지 있다.

    결코 만만히 볼 세력이 아니라는 거다.

    “가장 강한 자가 슈페리어의 주인이 된다, 그건 이미 외계의 침략자인 혼돈의 전당이 증명했습니다. 그 말인즉 중간계 출신도 올림포스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강해졌으니까요. 제가, 여기 모이신 여러 지배자분들보다 말입니다.”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세상이다.

    혼돈의 전당은 슈페리언이 아님에도 이곳의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중간계인인 자신 역시 올림포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아, 혹시 인정할 수 없다면 언제든 도전하십시오. 저 양반처럼 만들어 드릴 테니.”

    그리 말하며 만신창이가 된 제우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덕분에 제우스가 느낄 모멸감과 치욕스러움은 덤이었다.

    “음, 당장 도전하실 분은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잠시간 침묵했던 이안이 말문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제우스의 카드는 물거품이 된 모양이리라.

    “제우스 님.”

    이안의 다음 타깃은 제우스였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러고는 마지막 통첩,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두 가지 선택지를 드리겠습니다.”

    [네놈이 어떤 헛소리를 지껄이든 절대로……!]

    “첫째, 여기서 죽고 격을 토해내는 길.”

    이안의 첫 번째 제안은 죽음이었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고 격을 토해내라.

    그 격을 누가 취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둘째, 격의 맹약을 맺고 살아남는 길.”

    두 번째 제안은 첫 번째보다 조금 더 나았다.

    목숨을 부지하되, 이안 자신에게 ‘격의 맹약’을 맺어라.

    그 맹약의 조건이 무엇일지는 역시나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상관없습니다. 편하게 고르십쇼.”

    편하게 고르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나 제3의 선택지 따위는 없다.

    어느 쪽이든 고를 수밖에 없는 처지.

    […….]

    제우스가 눈을 감았다.

    나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입술을 떼기 시작하는 제우스였다.

    결국 두 개의 선택지 중 한쪽을 선택한 걸까?

    [……다.]

    “목소리가 너무 작네요. 좀 더 크게.”

    [여기서 죽지도, 네놈의 개가 되지도 않는다!]

    콰광! 쾅! 콰과광 - !

    제우스가 소리치는 바로 그 순간.

    이안의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쳤다.

    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던 제우스의 상징.

    뇌창雷槍 아스트라페와 케라우노스였다.

    [죽어라! 이 건방진 놈!]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기습.

    하지만.

    파직, 파직, 파지지지직……!

    한 쌍의 뇌창은 끝끝내 이안을 꿰뚫지 못했다.

    오히려 기습에 성공하기는커녕 붙잡히고 말았으니…….

    [아, 이것들이 올림포스의 주인을 상징하는 유물이던가요?]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아스트라페와 케라우노스.

    올림포스의 주인을 상징하는 뇌창을 손에 쥔 이안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여타 최상급 지배자들이 그러하듯 엄청난 울림이 동반된 그런 목소리였다.

    [이 친구들도 저를 주인으로 인정했나 봅니다. 얌전하잖아요?]

    [이, 이 중간계인 따위가……!]

    [그러니까.]

    콰직!

    이안의 손 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제우스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에 쑤셔 박아버렸으니까.

    손아귀에 들어온 한 쌍의 뇌창, 아스트라페와 케라우노스를 말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제우스의 처절한 비명.

    그 앞에 다시금 꿇어앉은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결정해. 죽을 건지, 개가 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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