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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302화 (30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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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6화

    우우우우우웅 - !

    이안이 에오스의 결정체에 담긴 격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우 강력한 바람이 아프로디테의 꽃밭을 망가뜨렸다.

    격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문제는 이곳이 아프로디테 소유의 꽃밭이라는 점이었다.

    [자, 잠깐! 멈춰요! 내가 힘들게 가꾼 꽃밭이……!]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어렵사리 가꾼 꽃밭이다.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데스의 명계와 그보다 더 깊숙한 타르타로스까지 돌아다니며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공수해 온 씨앗을 틔워 가꾼 꽃밭 아니겠는가?

    [아, 안 돼……!]

    꽃밭이 난장판으로 변할 때쯤.

    이안의 격 흡수도 끝이 났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

    “복구해 드리죠.”

    [……뭐, 뭐라고요?]

    “잠깐이면 됩니다.”

    가볍게 읊조린 이안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더불어 난장판이 된 꽃밭 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이, 이게 무슨…….]

    그러자 망가졌던 꽃밭이 빠른 속도로 복구되었다.

    ‘대 드루이드’ 이안 페이지로서 경험했던 삶의 지혜였다.

    “미안합니다. 뒷일을 생각 못 했네요. 그래도 수습은 했으니 너그럽게 봐주십쇼.”

    [아…… 그, 그야 당연히…….]

    완벽하다.

    화를 낼 이유가 없다.

    평온함을 되찾은 아프로디테가 말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생기가 넘쳐 보이는걸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안은 정말로 아프로디테의 꽃밭에 싱그러운 생명력을 더해줬다.

    그래서일까? 이안을 바라보는 아프로디테의 눈빛과 태도가 조금 더 온화해졌다.

    [저기, 그런데…….]

    “말씀하세요.”

    [어떻게 하신 거죠?]

    “무엇이요? 아, 꽃밭?”

    [아뇨, 물론 꽃밭도 신기하긴 한데, 그것보다는…….]

    “지배자의 격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만한 격을 갖췄느냐, 그게 궁금하신가 보군요.”

    […….]

    아프로디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솔직히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업의 수행자였던 존재 아닌가?

    한데 벌써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갖추었다고?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슈페리어 차원의 역사를 통틀어 사상 초유의 사태가 아닐 수 없으리라.

    ‘단순히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갖춘 수준이 아니야. 지금은 다시 감추었지만, 아까 내 꽃밭을 복구하는 순간 느껴졌던 힘의 크기로 미루어보건대…… 나보다 위에 있음이 확실해.’

    아프로디테 본인보다 위.

    지극히 냉정한 평가였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게 어쩌다 보니 될 일인가요?]

    “되었잖아요? 보시다시피.”

    [그, 그건 그렇지만…….]

    아프로디테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딱 봐도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잖아?

    [……그럼 이제 뭘 하실 계획인가요?]

    “평의회의 일원부터 되어야겠죠.”

    [평의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혼돈의 전당에…….]

    “사상검증부터 받아야 한다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 좋아서 사상검증이지, 사실 그냥 기억이 들쑤셔지는 건데…….]

    아프로디테의 말은 간단하다.

    네가 최상급 지배자까지 올라선 방법.

    공개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방법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입장이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지극히 타당한 반응이고, 이안 역시 줄곧 염두에 두었던 일이다.

    ‘사실 그 보랏빛 별과 코스모스는 문제 될 게 없다. 헤임달도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최상급 지배자가 되었고 평의회의 일원이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어.’

    그 말인즉 혼돈의 전당에서 헤임달의 기연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뜻일 터.

    다만 이안에게는 헤임달과 궤를 달리하는 비밀이 몇 가지 존재한다.

    바로 중간계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크로노스를 되감았다는 점.

    ‘지금 당장은 혼돈의 군주를 믿을 수밖에.’

    혼돈의 전당의 실질적인 수장 아닌가?

    그가 손을 쓴다면 걱정할 필요 없을 터.

    물론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언젠가는 그 존재도 적이 될 테니까.

    “문제 될 거 없을 겁니다.”

    [……그런가요?]

    “네, 당장은 말이죠.”

    적어도 당장은 아니다.

    의미심장하게 대꾸한 이안이 아프로디테를 응시했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표정과 눈빛, 그리고 입 모양이다.

    “더 할 말 있으면 하십시오. 들어드릴 테니.”

    [그럼 사양하지 않고…… 그다음 목표는 뭔가요?]

    “평의회의 일원이 된 다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왠지 거기서 끝날 것 같지는 않아서.]

    “정확히 보셨네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서열을 새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서열을……?]

    “시작은 제우스가 될 예정이고요.”

    [제우스……?]

    “올림포스의 수장 자리가 탐이 나서요.”

    제우스를 힘으로 압도한다.

    하여 올림포스의 새로운 수장이 된다.

    그 누가 얘기했어도 콧방귀를 뀌었을 법한 발언.

    문제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는 거다. 느껴지는 격이 근거였다.

    ‘……가만, 그게 시작이라고?’

    더욱이 걸리는 건 칼리두 와탕카의 단어 선택이다.

    ‘시작은’ 제우스란다. 그럼 그 이후가 있다는 뜻이잖아?

    [제우스가 시작이라면, 그다음은…….]

    “그건 나중에 차차 보여드리죠.”

    [나중에……?]

    “우선 제우스라는 산부터 넘고요.”

    [아…….]

    그렇다는데 무얼 더 말하겠는가?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아프로디테였다.

    새삼 이 남자가 수행자로서 함께 에오스를 척살했던 그 칼리두 와탕카가 맞는지부터 의심이 되었지만, 달리 확인할 길은 없을 것 같았다.

    설령 다른 존재여도 뭐 어쩌겠나? 힘으로 제우스를 꺾고 올림포스의 수장이 되겠다는 마당에.

    “아프로디테 님.”

    [……말씀하셔요.]

    “제가 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드리는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워낙 자신이 있으셔서……?]

    “에오스의 격이 담긴 결정체를 끝까지 보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거의 동격의 결정체 아닙니까? 지배자라면 누구나 탐을 냈을 겁니다. 튀폰의 격 앞에서 눈이 뒤집혔던 제우스처럼 말입니다. 만약 아프로디테 님께서 욕심을 내셨다면, 그냥 수행자고 뭐고 싹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었겠죠. 드시고 입 싹 닫아버리면 끝이니까요.”

    솔직히 이안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몰래 먹어버렸을 가능성이 꽤 높다고 여겼다.

    그런데 웬걸? 지난 시간대에 확인하니 그대로 보관 중이더라.

    그것이 아프로디테라는 최상급 지배자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야 뭐…… 제 물건이 아니잖아요? 덕분에 그 여우 같은…… 아니, 일족의 배반자도 처단했고요. 대단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최소한의 예의, 존중, 뭐 그런 개념이죠.]

    “그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아는 분들이 시계탑은 별로 없더군요.”

    [그건…… 그러게요.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네요.]

    아프로디테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 생각에도 흔치 않기는 하거든.

    [그래도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랍니다.]

    “네, 부디 그러기를 빕니다.”

    이안이 텅 빈 결정체 가루를 꽃밭 위로 흩날렸다.

    동시에 텔레포트 주문을 발동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새로운 올림포스에는 그런 분들이 꼭 필요하니까요.”

    그 의미심장한 발언을 끝으로.

    “그럼 조만간 또 뵙죠.”

    이안의 육신이 푸른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도 아프로디테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올림포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까닭이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이안은 혼돈의 군주의 도움으로 무사히 평의회의 일원이 되었다.

    새로운 동료를 맞이하는 평의회 소집이 열렸고, 시계탑 내 모든 최상급 지배자가 모였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같은 눈높이에 있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바로 그 ‘새로운 동료’.

    이안의 첫마디에 모두가 얼떨떨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배자들 모두에게 이안 페이지.

    아니,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의 이름은 매우 익숙했으니까.

    올림포스 쪽은 말할 것도 없으며, 아스가르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게 말이 되나……?’

    ‘저자가 어떻게 벌써……?’

    ‘우리와 동격의 존재가 되었다고……?’

    ‘헤임달도 엄청난 세월이 걸렸을 텐데……?’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그리고 얼마 전에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은 칼리두 와탕카.

    분명 그러했건만, 어떻게 벌써 평의회의 동료가 되어서 나타났단 말인가?

    “모두 제가 어떻게 벌써 여기에 서 있는지 궁금하실 텐데,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사상검증이라는 것도 무사히 통과했고요. 여기 있다는 거 자체가 증거겠지요?”

    이안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헛기침을 내뱉는 지배자들도 보였다.

    [……실로 오래간만에 새 얼굴이 들어왔군. 진심으로 축하하네. 칼리두 와탕카.]

    그 무겁고도 어색한 침묵을 깨는 쪽은 올림포스의 우두머리, 제우스였다.

    그는 이안과 모종의 협약을 맺은 관계이니만큼 가장 먼저 이안을 반겨줬다.

    물론 그 역시 이안이 어떻게 벌써 최상급 지배자가 되었는지는 몹시 궁금하였으나, 일단은 뒤로 제쳐놓는 쪽을 선택했다. 나중에 따로, 혼자서 듣는 편이 낫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평의회의 일원으로서 좋은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지.]

    “네, 얼마든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나무랄 데 없는 대답.

    그런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까?

    저 말투, 태도,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든지 기대해도 좋다는 저 발언.’

    이를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지.

    그래, 마치 조만간 사고 한번 크게 칠 것 같은…….

    “지금부터 그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니까요.”

    이안이 제우스를 가리키며 읊조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말.

    그 발언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제우스 님.”

    [음?]

    “한판 붙어봅시다.”

    [……뭐, 뭐라?]

    “시계탑은 철저히 힘의 논리에 따라 군림하고 복종하는 곳으로 압니다. 그러니 외계에서 온 침략자들한테 꼭대기를 빼앗겼을 거고, 그 아래에서 우리끼리 치고받는 거 아닙니까?”

    혼돈의 전당을 외계의 침략자로 일컫는다.

    여기 모인 모두를 흠칫하게 하는 발언.

    [……해서, 그 힘의 논리로 나를 복종이라도 시켜보겠다는 뜻인가?]

    물론 그 발언에 가장 많이 화가 난 것은 제우스였다.

    목소리 깊은 곳으로부터 노기가 끓어오름이 느껴졌다.

    지목을 당한 당사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리라.

    “가능만 하다면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실패할 경우 어떻게 될지는 각오가 되었고?]

    “글쎄요. 딱히…….”

    이안이 잠시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고는 지금껏 일부분만 보여주고 있었던 격의 전부를 방출시켰다.

    여기 모인 최상급 지배자 전원이 당혹감에 빠질 만큼 강력한 격을 모조리.

    “실패를 각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제는 존칭마저 생략하는 이안의 불손한 태도에 제우스의 안광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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