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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4화
‘지금쯤이면 그 존재를 만났겠군.’
아스가르드 전당의 최상급 지배자 헤임달.
그는 다시 평소처럼 시계탑 망루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나 그렇듯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일품이었다.
‘모든 걸 비우라는 말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제힘의 원천을 부순 놈이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야. 올림포스의 개만 아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아쉽구먼.’
하늘에서도 유독 혼자만 보라색으로 빛나는 별.
그 특이한 별을 바라보며 헤임달이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도대체 정체가 뭘까?’
보랏빛 별을 타고 넘어간 공간에서 마주했던 존재.
거대한 토끼, 코스모스의 정체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지배자들한테 물어도 보이지 않는단다.
지금도 여전히 보라색으로 빛나는 저 별이.
오직 헤임달의 눈에만 보인다는 뜻이리라.
‘물론 내가 모든 지배자들에게, 그리고 혼돈의 족속들한테까지 물어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떠본 이들은 하나같이 저 별을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녀석은, 칼리두 와탕카란 올림포스의 개는 달랐다.
자신이 가리킨 곳에 빛나는 별을 정확히 응시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흥미가 꿈틀거렸다.
‘보인다면 보내줄 수밖에, 거기서부터는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니까.’
아마 높은 확률로 저 별이.
혹은 저 별 너머의 존재가 바라는 손님일 터.
덕을 본 처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저놈의 세 치 혀에 놀아나기도 했고 말이야.’
칼리두 와탕카의 세 치 혀는 실로 달콤했다.
혼돈의 족속들을 몰아낸 뒤, 이 세상을 다시 전란의 도가니로 빠뜨린단다.
그리하면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 원한, 마음껏 풀 수 있지 않겠느냐고.
솔직히 혹했다.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그 발상이 마음에 들었다.
‘과연 어디까지 올라가려나?’
이 수련, 코스모스의 말을 빌리자면 ‘만약에 놀이’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삶을 경험하고, 거기서 경험한 것들을 현실로 가져오는, 설명만 들어서는 어마어마한 기연이 아닐 수 없으나, 문제는 격이 오를 만큼 유의미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내 경우 지배자가 되기는커녕 12과업도 해결하지 못한 채 죽는 경우, 혹은 수행자조차 되지 못한 채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타고난 기질에 어울리지 않는 삶이 대부분이니까.’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헤임달이 추방자의 삶을 경험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삶이 얼마나 유의미한 삶을 살겠는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그런 삶은 경험해 봐야 아무런 소득도 없다. 그저 시간 낭비, 정신력 낭비일 뿐.
‘약 3,700번의 삶을 경험했고, 그중 유의미한 결과를 낸 삶은 100개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그 100개의 성공적인 삶으로 충분했다.
최상급 지배자의 격이라는 목적에 닿았으니까.
‘나는 거기에서 만족했다만…… 놈은 어떨까?’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까?
모르긴 몰라도 놈이 만족하길 바란다.
그래야 놈의 세 치 혀가 현실이 될 터이니.
“헤임달 님.”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헤임달의 생각을 끊어냈다.
[아, 네놈이로군. 수행자 올리비우드.]
아스가르드 전당의 과업 수행자 올리비우드.
칼리두 와탕카의 대항마처럼 키워지는 수행자였다.
[그래, 내가 맡긴 여덟 번째 과업은 완수했겠지?]
“물론입니다. 헌데 어찌 신전이 아닌 이곳으로 부르셨는지……?”
[아, 다른 건 아니고, 그냥 뭣 좀 물어보고 싶어서.]
“하문하십시오.”
[혹시 네 눈에는 저 별이 보이느냐?]
“저 별이라고 하오시면…….”
[저기 저 보라색으로 빛나는 별 말이지.]
헤임달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물었다.
새로운 수행자가 올 때마다 묻는 질문이다.
아직 단 한 번도 보인다는 녀석을 만난 적은 없다.
그냥 혹시나 싶은 거다.
그런데.
“혹시 저 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 저 별이 보여? 진심으로?]
“보랏빛 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확실히 보입니다.”
고작 며칠 만에 두 명이나 나타났다.
오직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줄 알았던 보랏빛 별.
저 의문투성이의 기연 덩어리가 보인다는 녀석들을 말이다.
* * *
[우와, 이번에도 오래 버텼네? 너 진짜 다재다능한 녀석이구나?]
헤임달의 약 3,700개라는 기록을 뛰어넘었다.
이안은 무려 6,107개의 삶을 경험했고, 그중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낸 삶은 정확히 298개였다. 조금 전 마무리된 ‘각성자 이안 페이지’의 성공적인 삶까지 합하면 299개가 되리라.
“후욱! 후욱! 후우욱……!”
단지 환상일 뿐이다.
또 다른 삶을 겪는 환상.
한데도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솔직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미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넘어섰으니까.
‘아직 아니야. 확인할 게 남아있어.’
아직 한 번의 삶이 더 필요했다.
이것만 확인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안으로서는 몹시 중요한, 이 놀라운 기연의 마침표였다.
“……한 번 더 가겠습니다.”
[진짜? 힘들지 않아?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우음, 나야 좋긴 한데, 괜히 걱정되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별수 없지. 얘기해 봐. 어떤 삶을 원해?]
어떤 삶을 원하느냐?
코스모스의 물음에 이안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뱉으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재구축 이론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해서 저의 고향이 재구성 판정을 받지 않고 평화로웠다면, 그 아무것도 모르는 삶은 정말 행복했을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재구축 이론.
인즉 크로노스의 영역에 닿지 않았더라면?
하여 시계탑과 평의회의 눈에 들지 않았더라면?
그 세계선에서 이안의 고향은 정말 평화로웠을까?
[그게 왜 궁금해? 무의미한 경험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만…… 궁금하네요. 그냥.”
초대형 토끼 코스모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사자가 원한다는데 왈가왈부할 필요 없겠지.
[그럼 그렇게 해. 나야 뭐, 더 놀면 좋으니까.]
그리 읊조리는 코스모스의 눈이 보랏빛으로 반짝거렸다.
또한 그 눈과 마주한 이안의 눈 역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더불어 이안의 눈앞 풍경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익숙한 저택, 익숙한 냄새, 익숙한 사람들.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빠! 빠아!]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아기의 목소리였다.
이제 막 말문이 튼 아기가 성큼성큼 기어왔다.
이안을 빤히 올려다보는 아기의 이름은 요하나.
그저 평화로운 세계를 살아가는 이안의 딸이었다.
“……요하나.”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허둥대는 딸을 이안이 안아 올렸다.
너무나도 작고 소중한, 그래서인지 깃털처럼 가벼운 아이였다.
“조금 있으면 걸어 다니겠네. 우리 딸.”
그 삶은 여러모로 달랐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그저 평화로웠다.
제국은 태평성대였고, 이안 페이지의 존재하에 전쟁이란 잔혹사가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으며, 가족과 지인들 모두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
건강한 가족들, 항상 곁을 지켜주는 아내, 무럭무럭 자라는 딸.
성군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황제,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기사.
모든 것이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 이후처럼 완벽했다.
가장 꿈꾸었던, 항상 꿈꾸고 있는 삶의 형태였다.
그래서일까? 좀처럼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오랫동안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 번째 중간계 문드아일의 재구성을 시작한다.]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기가 늦춰졌을 뿐, 시계탑은 결국 이안의 고향을 짓밟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 평화에 찌든 이안에게.
재구축 이론을 연구하지 않은 이안에게 재구성을 막아낼 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처참하게, 또한 무기력하게 모든 평화가 짓밟히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니, 그 피를 토하는 심정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안 돼…… 안 돼……!”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
고향을 지키지 못했다.
그 끝에 맞이하는 최후.
비참하고 무기력한 죽음.
6,108번째 삶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코스모스의 말처럼 아무런 소득도 없는.
그저 실패로 끝이 나버린 무의미한 경험.
하나 이안의 생각은 달랐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항상 그런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재구축 이론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하여 시계탑의 재구성 대상으로 지목당하지 않았더라면.
이안의 고향은 지금보다 더 평화롭지 않았을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그 평화를 자신이 깨부순 건 아닐까?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서 그 모든 죄책감은 말끔히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이 났을 터.
그러니 지금처럼 뭐라도 하는 것이,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이 백번 옳으리라.
[꽤 만족스러운가 봐? 표정이 좋은데?]
“……코스모스 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에이, 고맙기는, 난 그냥 놀았을 뿐인걸?]
코스모스가 별거 아니라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 그럼 이제 어쩔 셈이야? 더 놀다 갈래?]
“아뇨,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 아쉽네. 네 다른 삶을 구경하는 거, 꽤 재미있었는데.]
“저도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많은 걸 얻었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나도 잘 놀았어.]
다시 봐도 참 신기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초대형 토끼.
물론 절대 단순한 토끼가 아니다.
이 존재, 코스모스, 정체가 뭘까?
떠나기 전에 한번 물어나 보자.
“……저기, 코스모스 님.”
[응?]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하신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내가 누군지 궁금해?]
“네, 솔직히 궁금합니다.”
이안의 대꾸에 코스모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때마다 살랑거리는 귀를 보고 있자면 왠지 초월적인 존재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나, 그는 틀림없이 초월적인 존재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글쎄, 나도 내가 누군지 항상 헷갈려서 말이야. 그래서 그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해 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거 한 가지는 확실해. 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이건 내 기억이 시작된 지점부터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거든. 아마 이게 나한테 주어진 임무겠지?]
탄생할 때부터 주어진 임무.
혹은 평생 짊어져야 할 책임.
잠시 말문을 멈췄던 코스모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읊조렸다.
[질서.]
“……질서?”
[혼돈의 대척점으로서 이 은하의 질서를 지킨다, 그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유일한 임무야. 너도 알다시피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뜻도 질서거든.]
코스모스κ?σμο?.
슈페리어의 언어로 ‘질서’.
그 초월적인 존재의 임무는 바로 자신의 이름 그 자체를 지키는 것.
[참고로 이거 너한테만 특별히 말해주는 거야. 마음에 들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자주 와. 와서 나 좀 놀아주고. 심심하거든.]
“시간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럼 자주 놀러오라는 의미에서 선물을 하나 줄까?]
“선물 말씀이십니까?”
[눈 감아봐.]
다짜고짜 눈을 감으란다.
물론 고분고분 눈을 감았다.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자, 됐어. 이제 눈 떠도 돼.]
이안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코스모스를 닮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른 지배자들과 궤를 달리했던 헤임달의 안광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