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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9화 (29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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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3화

    둥글다.

    마치 거대한 수정구와도 같았다.

    우주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수정구 말이다.

    그 표면에는 풀과 나무, 강줄기 따위가 실제 세상과 다를 바 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아무리 앞을 향해 달려도 하늘과 땅이 전혀 뒤집히질 않았다. 마치 이 수정구처럼 둥근 땅이 이안의 두 발아래에서 바퀴처럼 굴러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느 쪽으로 움직여도 결국 제자리군. 넓이는 대충…… 왕성 수준이려나?’

    어느 방향이든 마찬가지다.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나의 온전한 세상으로 치기에는 그리 넓은 것도 아니라서 금방 제자리다.

    많이 쳐줘도 왕성 그런리버디움의 자리 잡은 부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웅장한 대도시이긴 하나, 그 도시를 국가도 아닌 세상으로 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대체 무얼 하라고…….’

    신기한 땅인 것은 잘 알겠다.

    문제는 여기서 무얼 하느냐는 거다.

    ‘딱히 느껴지는 특별함도 없고, 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돌아갈 방법도 알지 못한다.

    이거야 원, 혹시 속은 건 아니겠지?

    ‘이를 어쩐다……?’

    이런저런 고민과 함께 이 둥근 땅의 이곳저곳을 탐색하던 그때였다.

    ‘……동굴?’

    드디어 주목할 만한 무언가가 보였다.

    풀, 나무, 강물 따위가 아닌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건축물.

    물론 대단한 건축물은 아니고, 흙과 돌로 쌓아 올린 반구 형태의 큼직한 인공동굴이었다.

    쿵!

    그리고 그 안에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동굴답게 기거하는 존재도 남다른 모양이다.

    쿵!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이안의 긴장 역시 깊어졌다.

    지금은 마도서 크로미의 도움을 빌려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상황.

    만약 저기서 생각보다 강한 적이라도 튀어나오는 날에는 큰일이다.

    ‘당분간은 크로노스를 되감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세상사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이안이 손에 든 지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팡이’였다.

    쿵!

    이윽고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범상치 않은 생물체였다.

    덩치도, 생김새도, 그 무엇 하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게 없었으니까.

    ‘저건…….’

    그래도 굳이 무언가와 비교하자면.

    닮은 생물체를 어떻게든 찾아내 보자면…….

    ‘……토끼?’

    한 쌍의 길쭉하고 몰랑한 귀.

    온순함이 느껴지는 보랏빛 눈동자.

    툭 튀어나온 앞니와 토끼를 닮은 얼굴.

    ‘틀림없는 토끼다. 단지…….’

    단지 거대한.

    기간테스 일족만큼 거대한 순백의 토끼.

    그런 토끼 한 마리가 몽둥이를 든 채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단순한 괴물일까? 아니면 말이 통할 만큼 지성을 갖춘 생물체일까?

    킁! 킁킁……!

    초대형 토끼가 다짜고짜 이안의 냄새부터 맡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슈페리어의 언어를 구사했다.

    [헤임달 냄새가 나네. 너 헤임달이야?]

    “아뇨, 저는 헤임달이 아닙니다.”

    [그럼?]

    “그분이 보내서 왔습니다.”

    [헤임달이 너를?]

    “그렇습니다.”

    [왜? 나랑 놀아주라고?]

    “……그건 아닌 것 같고, 여기서 수련을 하라고 보내신 것 같습니다.”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오르는 법을 물었고, 그 대답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럼 당연히 여기서 수련이든, 비슷한 무언가를 하든 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수련? 무슨 수련?]

    한데 어째서인지 토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 위에 솟아난 귀도 함께 살랑거렸다.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그럼 여기서 무얼 하던가요?”

    [놀았어.]

    “……네?”

    [나랑.]

    “…….”

    [재미있게.]

    “…….”

    헤임달은 수련을 하지 않았다.

    그저 초대형 토끼와 놀았을 뿐.

    저 괴물의 주장을 따르면 그랬다.

    ‘뭐가 뭔지…….’

    아직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적응해야겠지.

    여기가 어딘지, 이 괴물은 누군지.

    헤임달은 여기서 무엇을 했던 것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한다.

    “저도 몇 가지만 여쭈겠습니다.”

    [대답해 주면, 나랑 놀아줄 거야?]

    “해주시는 대답이 만족스러우면요.”

    [좋아! 좋아! 질문해! 얼마든지!]

    놀아준다는 말에 아주 그냥 신이 났다.

    대답을 건성으로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가 어딥니까?”

    [여기? 우리 집인데?]

    “다른 이름은 없습니까?”

    [다른 이름이라니?]

    “어떤 차원이라든지, 어떤 중간계라든지.”

    [그런 건 없어. 그냥 우리 집이야.]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것밖에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겠지.

    “그럼 이곳의 주인이신……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코스모스라고 불러.]

    “그럼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코스모스 님.”

    코스모스.

    왠지 모르게 토끼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그게 본인 이름이라는데.

    “저는 칼리두…… 아니, 이안 페이지라고 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왠지 이 토끼한테는 진짜 이름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간 수많은 정답을 불러왔던 이안 특유의 본능이 그러길 원했다.

    [이안 페이지, 예쁜 이름이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안, 이제 나하고 놀아줄 거야?]

    “헤임달하고는 주로 무얼 하시면서 노셨습니까?”

    적절히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아무래도 이 존재, 범상치 않거든.

    단순한 대형 토끼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저것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혹시 ‘만약에 놀이’라고 알아?]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하지. 내가 만든 놀이니까.]

    “…….”

    [그게 어떤 놀이냐 하면…….]

    대형 토끼, 아니, 코스모스가 이안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러더니 조금은 놀라운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읊조렸다.

    [대충 이런 놀이야.]

    “……!”

    바로 그 순간.

    이안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설마 이안을 제거하려는 함정이었을까?

    ‘……아니, 그건 아니야.’

    의식은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다.

    말 그대로 시야만 어둠에 잠겼을 뿐.

    또한 그 어둠 역시 조금씩 빛을 되찾았다.

    “……?”

    두 눈이 정상적인 기능을 되찾는 순간.

    이안은 새로운 종류의 당혹감을 느껴야만 했다.

    여태까지와 궤를 달리하는, 아주 신선한 당혹감이었다.

    “올리버 경……?”

    먼저 눈앞에 올리버 경의 모습이 보였다.

    한데 어째서인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젊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설마 과거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나누었던 반로환동返老還童의 경지에 도달한 걸까?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왜 올리버 경께서…….”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네?”

    “7번 수습기사 이안 페이지.”

    “수습…… 기사……?”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많다.

    좀 더 젊은 올리버도 그렇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도 그렇고.

    손에 쥔 훈련용 장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습기사라는 호칭까지.

    “자네가 아무리 마법의 길을 박차고 왔을지언정 그것은 전적으로 자네의 선택일 뿐, 내 단언컨대 그 어떠한 특별대우도 없을 것이니 후회가 된다면 지금 즉시 상아탑으로 돌아가도록.”

    아, 이거.

    대충 감이 온다.

    먼저 눈앞에 저 올리버는 이안이 아는 그 올리버가 아니다.

    그보다 과거의, 이안이 마나 반응 검사를 받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올리버다.

    뿐만 아니라 이안 페이지 본인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점의 이안 페이지는 놀랍게도 마법의 길을 걷지 않는, 마나 하트와 마나 브레인을 타고났음에도 기사도를 선택한 별종.

    즉 마법사 이안 페이지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이안 페이지임이 분명하리라.

    ‘이래서 만약에 놀이인가?’

    ‘만약에’ 마법사가 아닌 기사의 길을 선택했다면.

    과연 그랬다면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윽……! 머리가…….’

    기억이 온전한 것도 거기까지였다.

    본연의 기억들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이 ‘만약에 놀이’를 온전히 즐기게끔 만들어주는 장치일 터.

    ‘……어?’

    하지만 그 망각의 장치도 찰나에 불과할 뿐.

    곧바로 정신을 차린 이안의 눈앞에는 다시 수정구처럼 둥근 땅이.

    그리고 그 땅을 자신의 집이라 부르는 초대형 토끼만이 보였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기는? 다 기억날 거 아니야?]

    “……아?”

    체감상으로는 분명 찰나의 순간이었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머릿속에는 마법사 이안 페이지와 전혀 다른 삶의 기억들이.

    예컨대 ‘기사’ 이안 페이지로서의 경험이 육체와 정신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것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대단해. 대부분의 ‘만약’은 중간에 죽던데, 설마 처음부터 여기까지 올 줄이야!]

    그 말인즉슨.

    검의 길을 선택한 이안도 결국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곳.

    슈페리어 차원 하늘의 보랏빛 별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뜻일 터.

    비록 환상일지언정, 그 기나긴 경험은 이안의 육체와 정신에 고스란히 남았다.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응! 얼마든지.]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코스모스에게 양해를 구한 이안이 헤파이스토스의 선물, 팡이를 응시했다.

    그러자 곧 이안이 원하는 형태로 모습을 바꾸는 아티펙트 ‘팡이’였다.

    이는 팡이의 다양한 옵션 중 하나, ‘형태 변환’ 기능이었다.

    스릉!

    이안이 원한 팡이의 형태는 검.

    정말 이 모든 환상들을 체득하였는지.

    아니면 단지 허상으로 끝날 장난인지.

    그 진위를 판가름할 최적의 도구였다.

    “후우우……!”

    잠시 숨을 고른 이안이 육체와 정신에 남아 있는 기사로서의 경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날붙이를 쥐고 살아가는 무인이라면 누구나 수련의 일환으로 반복하는 초식의 향연.

    이안이 펼치기 시작한 초식은 오직 황실기사단에만 전수되는 ‘황실검법’이었다.

    콰과과과과광 - !

    하물며 그 깨달음의 깊이가 남다르다.

    고작 초식 몇 번에 초토화가 되어버린 주변 일대를 보라.

    이는 조금 전까지의 환각이 환각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기나긴 삶을 한 번 더 산 셈이 되었지만, 물리적인 시간은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나?’

    직접 겪고도 좀처럼 믿기가 어렵다.

    이게 정말 환각만으로 될 만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상황 아닐까?

    [그만, 그만! 우리 집 다 박살 낼 셈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확인은 다 끝났다.

    이제 이안은 기사로서도 엄청난 경지에 도달했다.

    마법과 검, 양쪽 모두 초월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격의 크기까지 소폭 상승하였다.

    애당초 격이란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늘려주는 자격 아닌가?

    초월적인 검술 실력이라는 ‘특기’가 생겼으니, 그만큼 격이 상승하는 건 자연의 이치였다.

    ‘슈페리어 차원의 이치 말이지.’

    아마 헤임달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한계를 넘어섰으리라.

    수없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가며, 코스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약에 놀이’를 쉴 새 없이 반복해가며 조금씩, 정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겠지. 그 길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많은 삶을 반복한 셈이니까.’

    그 정신적 피로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터.

    그럼에도 감내해야만 한다.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헤임달도 해낸 일이다. 나라고 못할 건 없어.’

    결심을 굳힌 이안이 팡이를 다시 지팡이로 되돌렸다.

    그러고는 눈앞에 저 거대한 토끼, 코스모스에게 말했다.

    “재미있네요. 이 놀이.”

    [그치? 다들 재밌어해. 구경하는 나도 재밌고.]

    “코스모스 님한테도 보이십니까?”

    [당연하지! 그거 구경하는 재미로 하는 건데?]

    “그렇군요.”

    역시 칼리두 와탕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없었다.

    다 본다잖아? 속여 봐야 바로 다 알아챌 거 아니야?

    “혹시 더 놀아도 될까요?”

    [물론이야. 혹시 따로 원하는 삶이 있어?]

    “선택도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서 고양이로 사는 게 궁금하다고 쳐. 그럼 ‘만약에 고양이로 태어났으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라고 말해봐. 고양이 이안 페이지가 어떤 삶을 사는지 바로 보여줄 테니까.]

    “고양이는 좀…….”

    [왜? 귀엽기만 한데.]

    “다른 것부터 체험해 보겠습니다.”

    [그러든지.]

    다른 삶을, 다른 선택을, 다른 시작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을 고스란히 현실로 가져온다.

    헤임달의 말마따나 실로 파격적인 기연이었다.

    “……만약에.”

    잠시 고민에 빠졌던 이안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가능성을 떠나서, 말이나 한번 꺼내볼 만한 게 떠올랐거든.

    “제가 처음부터 우수한 혈통을 물려받은 슈페리어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느 경지까지 올라갔을지, 또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그 삶을 보여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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