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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2화
“쿨럭……!”
붉은 피가 도는 심장이 아닌.
푸른 심장을 파괴했을 뿐이다.
목숨에 지장이 있을 리 없다.
한데도 상당한 핏물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정교함이 부족했을까? 아니, 아니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신체장기 중 일부가 아닌 건 아니니까.
휘오오오오오오오……!
흘러나오는 피의 다음 차례는 강풍이었다.
파괴된 푸른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
그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태풍을 일으켰다.
시계탑이 아닌 상아탑이었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르리라.
“하아, 하아, 하아……!”
푸른 심장이, 혹은 마나 하트가 완전히 소멸하였다.
이제 더 이상 이안 페이지는 마법사가 아니라는 거다.
마나의 저장과 생성이 불가능한, 그저 인간에 불과할 뿐.
“이제…… 됐습니까?”
한참 숨을 고른 이안이 헤임달에게 물었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을 비우라’는 첫 번째 조건.
그 조건은 마나하트의 파괴로 해결된 것 같았으니까.
[흐으음…….]
헤임달이 그런 이안을 훑었다.
그 특유의 보랏빛 안광으로, 이곳저곳을.
특히 심장 부근을 거의 뚫어질 만큼 응시했다.
[……별난 놈이네. 그걸 하란다고 진짜 해?]
그러더니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도통 모르겠다.
[오늘 처음 보는, 하물며 적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어떻게 믿고?]
“오늘 처음 보긴 했지만 조사를 꽤 많이 하고 왔습니다. 다른 지배자 분들과는 다르게 허언이나 실언을 하실 분은 아닌 것 같더군요. 또 적이라는 표현이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의 관계를 뜻하는 말씀이라면…… 제 생각은 다릅니다. 두 전당이 치고받고 싸울 때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든요. 그 이후에 태어났고, 우리는 모두 동족이라 배웠죠.”
[동족? 하,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여전히 부정적인 말투.
헤임달이 말문을 이어갔다.
[해서, 겨우 그걸 믿고 네 밑천을 다 포기했다?]
“그만큼 절박하다고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무엇이 그리 절박하지?]
“힘이 필요합니다.”
[힘이라.]
헤임달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힘이 필요한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헤임달 본인도 힘을 부르짖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힘이 왜 필요할까? 고작 평의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평의회의 일원도 물론 되어야죠. 하지만 그건 과정에 불과합니다.”
[최상급 지배자의 격이 과정? 허면 그 끝은?]
“저기.”
이안이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더불어 하늘 높을 곳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시계탑의 가장 최상층을.
[……뭐?]
지배자가 시계탑 최상층을 노린다.
거기에 담긴 뜻은 단 하나밖에 없다.
굳이 물을 필요가 없을 만큼 유일하다.
[무모하군. 망상이야.]
“수행자 출신이 평의회의 일원이 되는 것도 망상이던 시절이 있었죠.”
[…….]
“그 망상을 실현시킨 존재가 바로 당신, 헤임달 님이시고요.”
[그것은…….]
무언가 더 말하려던 헤임달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역시 한때 시계탑 최상층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지배자로서 이안의 목표를 무시하고 부정할 수만은 없었으니까.
[……이유나 들어보자. 망상의 까닭 말이다.]
“제가 듣기로, 헤임달 님께서는 여러 전쟁에서 가족을 잃으셨습니다.”
혼돈의 족속들이 슈페리어 차원을 침략하기 이전.
티탄, 올림포스, 아스가르드가 수많은 전쟁을 치르던 시절.
헤임달은 올림포스 일족의 손에 하나뿐인 아내를 잃어버렸다.
“오직 복수만을 꿈꾸며 사셨습니다.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우스고 뭐고 다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일념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죠.”
헤임달의 첫 번째 원동력은 복수심이었다.
아내를 앗아간 올림포스의 모든 지배자들.
하물며 그 올림포스의 최상급 지배자들까지.
모조리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는 강력한 복수심.
그 목적은 중급 지배자에 불과했던 헤임달을 괴물로 만들었다.
슈페리어 차원 최초의 수행자 출신 최상급 지배자라는 괴물 말이다.
“이제 슬슬 복수를 시작해야 하는데, 혼돈의 족속들이라는 놈들이 우리 세상을 침략해 옵니다. 압도적인 힘으로 슈페리어 차원 전체를 굴복시키고는, 다짜고짜 다들 사이좋게 지내랍니다. 동족이라면서요. 원수를 갚는 순간 동족상잔의 죄인이 되는 겁니다.”
[잘도 내 뒷조사를 했구나. 로키가 알려주던가?]
“이래저래 알아봤습니다.”
대부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덕이다.
물론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의무는 없겠지.
[해서, 내 복수가 네놈의 망상이랑 무슨 관계가 있지?]
“있습니다. 좀 더 들어보십쇼.”
[……반드시 있어야 할 거다. 없으면 내가 네놈을 죽일 것 같거든.]
아내와 복수 얘기가 나오자 헤임달의 표정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픈 구석을 들쑤신 이안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
“헤임달 님께서 저희 올림포스 전당에 원한이 있으신 것처럼, 저도 저 시계탑 꼭대기에 군림하는 괴물한테 유감이 아주 많습니다. 그 괴물이 끌고 온 끄나풀들도 마찬가지고요.”
[…….]
“그 침략자들이 사라지면, 해서 그 괴물들의 지배력이 사라진다면, 이 땅은 다시 아비규환이 시작될 겁니다. 새로운 주인이 되기를 원하는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의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요. 아, 그때는 아마 자기네들 영토에서 숨죽이고 있던 티탄 일족도 움직이겠네요.”
[그 말은…….]
“더는 동족상잔이 아니게 됩니다.”
[……!]
“원한을 마음껏 푸셔도 된다는 뜻이죠.”
혼돈의 전당.
그 침략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낸다면?
세상은 다시 공석이 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비규환 속에서 당신, 헤임달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복수의 대상, 올림포스의 지배자들을 죽여 오랜 세월 쌓인 분노를 해소하라.
[허튼소리로군.]
잠시 고민했던 헤임달이 읊조렸다.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
[혼돈의 전당은 강하다. 평의회조차 그들의 끄나풀로 전락했다. 힘에 굴복했지. 헌데 네놈 따위가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겠다고? 아서라. 설령 네놈이 나처럼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오른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애당초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내가 이미…….]
“오해가 조금 있으시네요.”
[오해?]
“당연히 어렵죠.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요.”
[……그 말은?]
“생각보다 저 시계탑 꼭대기에 은거 중인 존재,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눈깔 괴물한테 유감을 가진 분들이 여기저기 참 많습니다. 제가 필요한 힘은 바로 그 개개인을 하나로 모아서 움직일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정도는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혈혈단신으로 혼돈의 전당과 싸운다는 것이 아니다.
혼돈의 전당에 불만이 많은 자들을 움직일 힘.
혹은 그만한 ‘자격’이 필요할 뿐이다.
“최상급 지배자의 격은 최소한의 자격입니다. 그리고 그 자격을 혈통이나 기연 없이 자력으로 쟁취하신 분은 이 세계에서 헤임달 님이 유일하시죠.”
미리 준비해 놓은 말을 모조리 쏟아낸 이안.
그가 헤임달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헤임달 님. 헤임달 님께서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올라가신 방법이나 수련법, 저한테 전수해 주십시오. 그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헤임달이 침묵했다.
고뇌가 필요한 문제 아닌가?
두 눈을 감고, 흑요석 대검을 단단히 쥐었다.
바닥을 향한 대검의 칼날이 지면을 조금씩 파고들었다.
[……자격은 이미 갖추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헤임달의 침묵이 깨졌다.
[따라와라. 사실 전수랄 것도 없으니.]
헤임달은 더 이상 이안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심장 속 무언가를 스스로 파괴했을 때.
바로 그 순간부터 대부분의 적의가 사라지기는 했다.
단지 그럴 수 있는 목적이 궁금했고, 상당수 해소되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네 말은 틀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다른 평의회의 일원들처럼 우수한 혈통을 물려받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러나 아무런 기연도 없이 여기까지 올라온 건 아니야. 오히려 아주 파격적인 기연을 마음껏 누렸거든.]
혈통은 없되 기연은 누렸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그 뒤틀린 공간은…… 여러모로 축복이었지.]
“……뒤틀린 공간이요?”
[됐고, 이쪽으로.]
그를 따라 시계탑을 다시 올랐다.
그가 항상 서 있다는 시계탑의 망루.
그곳에 도착한 헤임달이 또 한참을 침묵했다.
머나먼 하늘만 응시할 뿐, 기연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
한데도 이안은 헤임달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치였으니까.
[아, 드디어 나타났군.]
바로 그때.
드디어 무언가를 발견한 헤임달이 말했다.
그는 머나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한 구를 가리켰다.
그 별은 헤임달의 안광처럼 오묘한 보랏빛으로 반짝거렸다.
[저 별로 가라.]
“예……?”
[가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기연이 무엇인지를.]
다짜고짜 저 별로 가란다.
가면 다 알 수 있을 거란다.
여기서 문제는 저길 어떻게 가?
“……죄송하지만, 저는 헤임달 님의 조언대로 모든 걸 비웠습니다.”
[그런데?]
“다 비워 버려서 저기까지 날아갈 힘도 없네요.”
[고작 그 정도의 도약력조차 없단 말인가?]
고작 그 정도의 도약력이라니.
저기까지 도약으로 날아가라고?
[음, 하기야, 딱 봐도 요술사 체질이긴 해. 허약해 보인다는 뜻이지.]
허약한 요술사 체질의 이안 페이지.
그를 한참 살펴본 헤임달이 결심했다.
[별수 없지. 도와주마.]
그럼 그렇지.
차원 문을 열어주면 될 일이잖아?
안심한 이안이 우두커니 서 그가 열어줄 차원 문을 가만히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헤임달은 차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신 흑요석 대검을 고쳐 잡으며 이안에게 읊조렸다.
[올라타라.]
“설마 그 칼에 말입니까?”
[그래, 여기 평평한 칼날 쪽으로 올라와 봐.]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차원 문 열면 되잖아요?”
[문은 따로 있어.]
“눈에 보이는 저 별 말입니까?”
[가 보면 알아. 가 보면.]
슬슬 목소리와 말투에서 귀찮음이 묻어난다.
계속 되묻고 따졌다가는 마음이 바뀔지도 모를 터.
결국 이안은 헤임달이 시키는 대로 그의 흑요석 대검.
그중에서도 굉장히 넓적한 칼날 옆 부분에 두 발로 올라탔다.
[무운을 빌지.]
뭔데 무운까지 빌어?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문제는 그럴 겨를이 없다는 점.
[안부 전해주고.]
“안부요……?”
[다 네가 자초한 일이라는 것도 명심하고.]
“그게 무슨…….”
마지막 순간까지도 반신반의했다.
정말 검에 자신을 얹어서 집어던진다?
저 머나먼 곳에서 반짝거리는 별을 향해서?
“흐읍……!”
진심이었다.
헤임달이 이안을 흑요석 대검 위에 얹어 크게 휘둘렀다.
최상급 지배자의 격이 담긴 근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마치 포탄처럼 날아가는 이안 페이지의 육신이 그 증거였다.
‘……여긴?’
한참을 날아가다 보니 곧 사방이 어두워졌다.
과거 붉은 용 일족 수장 리시스 라덴쥬가 보여줬던 세상 위의 세상.
별들의 고향, 세계의 근원, 그리고 무한의 공간 ‘우주’와 흡사한 풍경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하지만 그 진귀한 풍경을 감상할 겨를 따윈 없었다.
어느새 보랏빛으로 불타오르는 별이 눈앞에 보였으니까.
화악!
어디 보이기만 할까?
거기서 뿜어지는 빛이 이안을 삼켰다.
눈이 멀어버릴 만큼 강렬한 보랏빛 섬광이었다.
‘아하, 이래서…….’
문이 따로 있다고 말한 거였구나?
이안은 이제야 헤임달의 말을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을 삼키기 시작한 보랏빛 섬광.
그 빛은 단순히 이안을 집어삼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장소로 내뱉기까지 해주는, 헤임달의 표현 그대로 차원 문 혹은 양쪽 세계의 통로 그 자체였다.
‘어디로 가는 거지……?’
여차하면 크로노스를 되감아야 할 터.
보랏빛 통로 끝에 나타날 무언가를 대비해야 한다.
문제는 푸른 심장을 파괴했다는 점인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크로미 님.’
(뭐냐?)
‘혹시 모르니 마나 좀 끌어다 쓰겠습니다.’
(마나? 내 마력을 말하는 것이더냐?)
“네.”
(흐응, 뭐, 계약자 마음대로 하려무나.)
마도서 네크로노미콘의 방대한 마나라면 크로노스를 한 번은 되돌릴 수 있다.
비록 되감기는 시간이 짧겠지만, 애당초 많이 되감을 필요가 없는 상황 아닌가?
“……어?”
하지만 그 대비도 잠시일 뿐.
이안은 곧 눈앞에 나타난 무언가와.
정확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그야말로 이질적인 풍경이었으니까.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