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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1화
쿵……!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쿵……!
기척이 느껴지는 곳마다 내리꽂히는 흑요석 대검.
지배자 헤임달은 절대로 방심하는 법이 없었다.
철두철미함은 그 지배자의 뿌리와도 같았다.
쿵……!
이쯤 되면 대검이 아니라 흑요석 망치에 가깝다.
한 방만 스쳐도 골로 갈 만큼 무지막지한 망치 말이다.
쿵……!
얼마나 더 내리치기를 반복했을까?
헤임달이 마침내 격렬했던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특유의 보랏빛 안광으로 주위를 살폈다.
[……너, 이상한 놈이군.]
다짜고짜 이상한 놈이란다.
심지어 이안은 그 말을 이해한 듯 피식 웃었다.
[어떤 사술을 부리는 거지?]
“영업 비밀입니다. 사술은 아니고요.”
[…….]
사술.
헤임달은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사술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놈은 마치 헤임달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피했다.
보고 반응한다든지, 오랜 경험으로 예측을 해서 피하는 수준이 아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질 미래를 모조리 알고 있는 존재인 양 회피한다.
이러니 이상한 놈이라는 말이, 또 사술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사술을 부리는 꼴이 꼭 로키와 같군.]
헤임달이 흑요석 대검을 거두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심 흥미를 느꼈다.
아무리 사술을 부렸을지언정 진심이었다.
진심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는 뜻이다.
한데 그걸 피한다고? 심지어 여유롭게?
그쯤 되면 사술이 아니다. 능력이지.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헤임달 님께 말이지요.”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에 오른 방법을 말하는 건가?]
“물론 그것도 포함입니다.”
[호오.]
자수정처럼 빛나는 헤임달의 안광이 번뜩거렸다.
흥미를 느낀 걸까? 아니면 가소로움의 눈빛일까?
[내가 왜?]
이런, 아무래도 후자인가 보다.
말투에 비웃음이 잔뜩 묻어 있다.
[네놈은 나의 동족조차 아니다.]
“우린 같은 슈페리언 아닙니까?”
[오히려 내 원수들의 끄나풀이지.]
“제가 원한을 산 건 아닐 텐데요.”
[죽어야 정신을 차릴 놈이구나.]
얼마 전에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때는 죽어야 철이 들 놈이라고 했던가?
왜 이렇게 못 죽여서 안달인지 모르겠네.
“그럼 이렇게 하죠.”
[또 무슨 말장난을…….]
“저를 죽이십시오.”
[……뭐?]
“죽어야 정신을 차릴 놈이라면서요? 정신 차리게 해달라는 겁니다.”
이안이 양팔을 쭉 펼치며 말했다.
어서 날 죽여줍쇼, 하는 포즈였다.
“대신.”
물론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다.
전제조건을 달아둠은 필수 아닌가?
“못 죽이시면 제 부탁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궤변이로군. 네놈의 사특한 술수에 또 놀아날 성싶으냐?]
“그러니까, 놀아나지 않을 자신 있으면 죽여보시라고요.”
[…….]
“죽이면 들어줄 필요 없는 거 아닙니까? 제 부탁 말입니다.”
[…….]
“아니면 자신이 없으신가요? 아까 보니 피할 만하긴 하던데.”
자신 있으면 한번 죽여보시라.
그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헤임달이 조금은 발끈했다.
이마에 치솟기 시작한 핏줄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리라.
[먼지로.]
헤임달 특유의 보랏빛 안광이 붉게 물들었다.
그와 더불어 시꺼먼 흑요석 대검에 불꽃이 타올랐다.
[만들어주마.]
쿠궁……!
헤임달이 휘두른 대검에서 엄청난 풍압이 불어 닥쳤다.
그 풍압은 평범한 풍압이 아니라서, 마법의 힘으로 버티는 이안을 시계탑 망루 바깥으로 밀쳐내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뿐일까? 어찌 된 영문인지 비행 주문조차 펼칠 수 없었다.
그대로 날개 없는 추락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높다란 시계탑의 최정상 부근에서 말이다.
팟!
비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헤임달 역시 시계탑 망루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추락하는 이안 쪽으로 대검을 겨눈 채 더욱 빨리, 더욱 무겁게 떨어졌다.
이안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버리기 위한, 헤임달 특유의 절기 중 하나였다.
쿵-!
시계탑의 높이가 더해진 헤임달의 일격이 지면을 내리꽂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굉음이 슈페리어의 심장 일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아마 그 사이에 낀 이안은 헤임달의 말처럼 먼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만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면 그 자리에서 먼지가 되는 것이 합리적일 터.
당장 흑요석 대검이 내리꽂힌 자리를 보라.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박살이 나버렸잖아?
[…….]
분명 끝장이 났어야 정상이건만.
헤임달의 표정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간단하다. 지면을 내리꽂는 순간 느꼈거든.
헤임달 자신의 전력이 깃든 한 수가 통하지 않았음을.
“와, 이번엔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이미 멀찌감치 떨어진 이안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읊조렸다.
정말 십년감수했다는 말투인데, 벗어난 거리상으로는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삭 피했지만요.”
[…….]
“어떻게, 더 해보실 겁니까?”
이안의 물음에 헤임달이 흑요석 대검을 거두었다.
물론 멈추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다면 죽이지 못할 것도 없을 거다.
하지만 그리 했다가는 슈페리어의 심장 전체가 폐허로 변해 버리겠지.
더군다나 놈이 어떤 사술을 부리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 아닌가?
[흥미롭군.]
자신의 전력이 담긴 공격을 모조리 회피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사술이라면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특한 술수도 술수 나름 아니겠는가?
[올림포스가 언제부터 사술에 능했지?]
“계속 말씀드리는데, 사술 아닙니다.”
[그럼 그게 사술이 아니고 무엇이지?]
“계속 말씀드리는데, 영업 비밀입니다.”
[사특한 술수일수록 비밀스러운 법이다.]
“네 뭐, 헤임달 님 편하실 대로 생각하십시오.”
헤임달은 알까?
그의 모든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이안이 무슨 짓까지 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반복된 권능으로, 헤임달이 말하길 ‘사술’을 부리느라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
아마 평생 모를 거다. 또 반드시 몰라야만 하고, 그래야 이안의 행보가 편할 테니까.
“대신 약속은 지켜주시고요.”
[일방적인 강요였을 뿐.]
“제 도발에 홀라당 넘어가셨으면서.”
[그런 적 없다.]
“무작정 우기신다고 될 일이 아닐 텐데요?”
[우긴 적 없다.]
“진실은 헤임달 님과 저, 그리고 저 위에 계신 분만 알겠죠.”
이안이 시계탑 최정상을 가리키며 읊조렸다.
하늘만 알 거라고 말하려다가 조금 각색했다.
여기는 중간계가 아니라 슈페리어 차원이잖아?
“아무튼 실망이 큽니다. 전 또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에 올라서신 분이라기에, 혈통 하나만 믿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좀생이 지배자들하고는 뭔가 다르실 줄 알았거든요.”
이는 단순한 도발이 아니다.
헤임달의 가장 큰 부분을 건드는 것이다.
그가 한평생 느끼고 있었을 엄청난 자신감을.
혈통과 기연 없이 올라왔다는 자부심을 쿡 찔렀다.
“그런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봅니다. 좀생이들이랑 딱히 다를 게 없어요.”
[네놈, 설마 지금 나한테…….]
“본인 공격을 피했다고 무조건 사술이라고 박박 우기시는 거, 그렇게 우기면서 약속도 덩달아 저버리는 거, 그게 좀생이가 아니면 뭡니까? 실망이 참 커요. 헤임달 님.”
[…….]
헤임달이 어금니를 뿌득 물었다.
흑요석 대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잡기도 했다.
지금껏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모멸적인 언사 아닌가?
그간 누구도 헤임달에게 이따위 말을 지껄인 적 없다.
하물며 그 오만한 오딘조차 자신에게는 예우를 갖추거늘!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도 좀생이를 스승으로 모실 생각은 없으니까요.”
[스승……?]
“뭔가를 배우려면 스승으로 모시는 게 당연하죠.”
[…….]
“이제 다 끝난 일입니다만.”
이안이 미련 없이.
정말 아무런 미련 한 톨 남지 않았다는 듯 홀연히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우두커니 서 있는 헤임달의 반대편으로 뚜벅뚜벅 멀어졌다.
[……잠깐.]
그런 그를 이번에는 헤임달이 멈춰 세웠다.
이대로 보냈다가는 평생 좀생이로 남게 된다.
그 치욕과 불명예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올림포스의 사냥개 따위한테 그따위 망발을 들을 만큼 잘못 살지 않았다.]
됐다.
이제 거의 다 넘어왔다.
미소를 감춘 이안이 우두커니 멈췄다.
[소원이라면 알려주마.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를.]
동시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런 싸구려 도발에 넘어올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이나마 자극이 되기를, 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기를 바랐을 뿐.
한데 알려준단다. 생각보다 도발이 크게 먹힌 걸까?
[비워라.]
비우라고?
갑자기 뭘?
[모든 것을.]
“모든 것……?”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헤임달의 조언은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봐도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건만.
어찌 된 건인지 헤임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여태껏 쌓아 올린 격을 포기하라는 뜻입니까?”
[격이 네놈의 전부인가?]
“……네?”
[격이란 것은 단지 등급에 불과하다.]
“등급……?”
[너를 지탱하는 뿌리가 무엇이지?]
“…….”
[격은 절대로 근본이 될 수 없다.]
뿌리, 또는 근본.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이안의 심장이 크게 내려앉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으니까.
‘……마법.’
이안 페이지의 뿌리가 무엇이던가?
인류 최초 8클래스 마법사의 근본이 무엇이던가?
그것은 첫째로 마법이요, 둘째도 마법이다.
이안을 설명할 때 마법을 빼놓는다?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뿌리이자 근본은 마법이다. 그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어.’
칼리두 와탕카가 아닌.
그저 마법사, 이안 페이지.
그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더불어 자신의 마나를 한껏 느꼈다.
아아, 마나, 새삼 오랜만에 느껴본다.
이제는 공기만큼이나 익숙해져 버린 특권.
이 세상 모든 마법과 술식의 시작이자 끝.
“…….”
이안이 침묵했다.
정말이지 기나긴 침묵이었다.
수많은 고뇌가 짙게 깔린 적막함.
물론 그 침묵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바야흐로 어떤 ‘결단’에 닿았으니까.
“……그거, 확실합니까?”
침묵을 끝낸 이안이 물었다.
그 물음의 대상은 지배자 헤임달.
오랜 침묵을 묵묵히 기다려준 존재였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이게 모든 것의 시작이 맞느냐는 뜻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네놈 자유다. 나는 그저 네놈한테 입은 모욕을 씻어내고 싶을 뿐이니.]
“그렇군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보랏빛으로 돌아온 헤임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허면.”
어디 그뿐일까?
오른손으로 자신의 심장 부근을 꽉 움켜쥐었다.
정확히는 그 심장 깊은 곳에 박혀있는 조그마한 핵.
오랜 세월 단련된 마나의 원천, ‘푸른 심장’을 노렸다.
“믿어보겠습니다.”
그 한마디와 더불어.
콰득……!
단숨에 파괴되었다.
이안 페이지, 그 마법사의 시작이자 끝.
마나의 뿌리이며, 마법사의 근본.
푸른 심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