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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6화 (29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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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10화

    의외였다.

    가이아의 매몰찬 거절에도 제우스는 침착하기만 했다.

    오히려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수긍하는 눈치였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과업의 완수를 인정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 쉽지 않을 거다.]

    그렇게 이안은 이번 시간대에서도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았다.

    수행자 시절 쌓아놓은 격이 그를 중급 지배자로 만들어줬다.

    [최상급 지배자, 그 경지는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럼에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헤라클레스의 말에 의하면 더더욱 그랬다.

    [우수한 혈통을 타고났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기막힌 기연을 얻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지.]

    혈통, 혹은 기연.

    그 두 가지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헤라클레스가 겪었던 현실의 벽은 그러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오래 묵어 영물이 된 토착 괴수들을 사냥해서 그 괴수의 격을 취하는 방법이 있고, 슈페리어의 주적으로 규정된 티탄 일족을 사냥해서 격을 빼앗는 방법도 있지. 하지만…….]

    “격을 갖춘 토착 괴수는 그 개체 수가 적을뿐더러 격의 크기도 작고, 티탄 일족은 모두 티탄의 땅에 숨어서 바깥으로 나오지를 않으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겠군요.”

    [……잘 알고 있군.]

    “혼자만의 수련을 통해서 격을 쌓아 올릴 순 없는 겁니까?”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지.]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없더군.]

    이안 덕에 최상급 지배자가 되었고, 정신개조까지 벗어나 온전한 자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그는 어느덧 이안의 가장 믿음직한 아군이자 ‘수행자 출신 선배’가 되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건 뭐,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아예 없네요.”

    [위에서 다 치워놓았으니 별수 있나?]

    최상급 지배자의 격은 그 자체로 엄청난 권력이다.

    최상급 미만 지배자들은 훌륭한 하수인이니 수가 늘어서 나쁠 게 없으나, 최상급 지배자가 늘어나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권력을 나누어 가질 경쟁 상대가 추가되는 일 아닌가?

    [평의회에 소속된 최상급 지배자 대부분은 우리 같은 수행자 출신 지배자들이 평생 자기네 뒤치다꺼리나 하는 하수인으로 남길 바란다. 그러니 사다리를 치워 버릴 수밖에.]

    예전부터 느끼는 점이지만, 중간계나 여기나 다 거기서 거기다.

    권력, 서열, 세력, 그런 것들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의 향연.

    스케일만 다를 뿐, 어디서든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잖아?

    “정말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가 된 분이 한 명도 없는 겁니까?”

    [우리 올림포스 쪽에는 확실히 없다. 다만 아스가르드 쪽은 모르겠군. 한 명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는데, 사실 우리가 소문을 확인할 만큼 교류하는 편은 아니라서…….]

    올림포스 전당.

    그리고 아스가르드 전당.

    두 세력 사이에는 기나긴 전쟁의 역사가 있다.

    시계탑 아래 같은 편이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처럼 지낸다.

    이런 저런 소문의 진실을 확인할 만큼 교류가 잦은 편이 못된다.

    “우선 그 소문의 진위여부부터 파악해 봐야겠네요.”

    [파악한 다음에는?]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전수받아야죠. 그만의 방법과 노하우를.”

    [흐음.]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얻어낸 지배자가 존재한다면.

    이번 시간대는 그 존재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걸 목표로 삼아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게 가능할까?]

    물론 헤라클레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두 세력의 오랜 감정의 골짜기가 근거였다.

    [너는 이미 올림포스의 지배자인데.]

    “그런 거 안 따지는 분이길 바라야겠죠.”

    만약 불가능하다면 한 번 더 크로노스를 되돌려야겠지.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기 전으로 돌아가 전향하면 되니까.

    “그러고 보니 헤라클레스 님.”

    [음?]

    “이제 평의회의 일원이시니…… 저쪽이랑도 연락이 되지 않으십니까?”

    [저쪽이라면…… 아스가르드 전당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가능이야 하다만…….]

    “그럼 로키 님 좀 불러주십시오.”

    [……로키를? 왜 하필 그놈이지?]

    “제가 저쪽에 아는 분이 그 양반밖에 없어서요.”

    아스가르드 전당 소속 ‘기만’의 지배자 로키.

    이안에게 전향을 권하고자 접근했던 존재.

    그하고는 대화가 좀 통할지도 모르리라.

    * * *

    [결국 올림포스의 개가 되었구나?]

    슈페리어의 심장 한복판.

    오랜만에 조우한 로키의 첫마디는 그랬다.

    그는 진심으로 아쉬운 듯 혀를 끌끌 찼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건 없어. 그냥 네놈이 올림포스의 개가 되길 바란 거지.]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로키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싸구려 도발이 통하지 않자 흥미를 잃어버린 모양새.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냈다.

    [그래, 올림포스의 충실한 개가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지? 이제 전향하기도 늦었는데.]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요. 아스가르드 분들께 말이죠.”

    [그러니까, 왜 하필 나한테 묻느냐는 거다.]

    “아는 분이 로키 님밖에 없거든요.”

    [왜 나밖에 없지?]

    “올림포스의 개가 아스가르드 분들을 많이 아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

    이번에는 로키가 순순히 인정했다.

    [무엇이 궁금하지?]

    “아스가르드 쪽에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까지 오른 분께서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타고난 혈통이나 운 좋은 기연 같은 거 없이 말입니다.”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이라…… 아, 혹시 헤임달을 말하는 건가?]

    아스가르드의 지배자 헤임달.

    이안도 몇 번 들어본 이름이다.

    “소문의 그분께서 헤임달 님이셨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그래. 수행자 출신이 그 친구뿐이라.]

    수행자 출신의 최상급 지배자.

    그거면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어디로 가면 만나 뵐 수 있습니까?”

    [왜, 가서 방법이라도 전수받게?]

    “저희 쪽에는 없어서요.”

    [뭐가?]

    “자력으로 거기까지 올라가신 분이.”

    [그러게 전향했어야지. 올림포스는 미래가 없다니까?]

    로키의 입고리가 씩 올라갔다.

    우월감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만나게야 해줄 수 있는데, 그 친구가 네 바람을 들어줄지 모르겠네. 아마 우리 중에서 가장 올림포스를 증오하고 있을걸? 전수고 나발이고 보자마자 널 죽이려 들지도 몰라.]

    아, 그건 꽤 나쁜 소식이기는 하다.

    하필 올림포스를 증오하는 지배자라니.

    벌써부터 크로노스를 되감고 싶어진다.

    [그래도 만나볼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나도 줄 하나만 대주라.]

    “줄이라고 하시면?”

    [네가 얼마 전에 만나고 온 여자.]

    “……가이아 님 말씀이십니까?”

    [정답! 생각보다 친해 보이더라고?]

    친해 보인다.

    그 말을 내뱉는 로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마치 뭔가를 알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

    설마 이안과 프로메테우스, 가이아의 관계를 아는 건가?

    [나도 만나서 할 얘기가 좀 있거든. 근데 만나주지를 않네?]

    “그분은 저도 제우스 님 이름을 팔아가며 겨우 만난 분입니다. 친하다고 하기에는…….”

    [에이, 우리 진실은 감춰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

    “…….”

    [아예 말하지 않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 근데 거기에 거짓말까지 더하기 시작하면 신뢰가 깨지는 법이야. 이러면 내가 앞으로 계속 너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어?]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혹은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걸까?

    모르겠다. 역시 기만의 지배자답다.

    “……제가 그분을 또 언제 만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또 만나게 된다면 말씀이나마 한번 드려보겠습니다. 아스가르드 전당의 로키 님께서 만나 뵙기를 청한다고 말이죠.”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나도 네가 무리하는 걸 바라지는 않아.]

    이만하면 잘 넘겼다.

    로키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헤임달 그 친구는…….]

    잠시 말꼬리를 흐린 로키가 푸른색 차원 문을 소환했다.

    [아마 이 건너편에 있을 거야. 평의회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항상 시계탑 망루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거든. 자기가 무슨 아홉 세계의 관찰자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이상한 콘셉트를 잡은 것 같아. 그냥 할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음, 아무튼 많이 독특한 친구야.]

    막간을 이용한 로키의 설명과 더불어.

    이안이 푸른색 차원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문 건너편은 시계탑에서도 거의 최상층에 설치된 감시용 망루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자력으로 최상급 지배자의 반열까지 올라선 유일무이한 존재, ‘헤임달’의 비공식 거처였다.

    [모쪼록 얘기 잘 나눠봐.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넘어오기가 무섭게 사라지는 차원 문.

    이제 이안의 눈앞에는 오직 시계탑의 망루.

    그리고 저 멀찍이 서 있는 누군가의 등만 보였다.

    [로키의 차원 문이군.]

    그는 기간테스 일족에 밀리지 않을 만큼 커다란 육체의 소유자였다.

    또한 헤라클레스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육체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올림포스 일족이 주로 착용하는 가죽 베이스의 갑옷과 투구가 아닌, 시커먼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였으며, 무지막지한 크기의 흑요석 대검을 두 손으로 지탱 중이었으니, 눈에 보이는 무게감만큼은 이안이 지금껏 만나본 그 어떤 지배자보다 묵직했다.

    [또 장난질인가?]

    더욱이 놀라운 점이라면 두 눈에 빛나고 있는 안광의 색이다.

    여태 만난 모든 지배자들은 푸른 안광을 기본으로 갖고 있었다.

    한데 이 헤임달이란 지배자는 어찌된 영문인지 보랏빛 안광을.

    마치 자수정 한 쌍을 박아놓은 듯 오묘한 안광을 뿜어댔다.

    [……가만.]

    보랏빛 안광이 이안을 훑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은 어째서인지 발가벗겨진 기분을 느꼈다.

    꽁꽁 숨기고 있던 모든 밑천을 단숨에 간파당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네놈은 올림포스의 개로구나.]

    올림포스의 개.

    그 한마디에 숨 막히는 살기가 묻어났다.

    아무래도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올림포스를 증오한다는 로키의 설명 말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안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중급 지배자가 된 이후에 만나서 다행이지.

    수행자의 몸으로 만났다면 살기에 죽었으리라.

    “평의회의 일원 중 유일하게 자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로키 님께 부탁을 드려서 말이죠. 불쾌하셨다면 사과부터 드리겠…….”

    [관심 없다.]

    “……!”

    어디 살기만 내뿜을까?

    그 살기는 곧 형체가 되었다.

    쿵……!

    헤임달의 육중한 흑요석 대검이 이안을.

    정확히는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번개처럼 내리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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