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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5화 (29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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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09화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이안의 평가가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우스는 정말 미친놈이었으니까.

그것도 자신감이 넘치는, 굉장히 오만한 미친놈 말이다.

‘이딴 식으로 말하면 누가 뜻을 같이해주겠어?’

제우스가 가이아에게.

아니, 사실상 티탄 일족 전체에 보낸 메시지를 축약하자면 간단했다.

힘을 모으자,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티탄 일족 등 본디 슈페리어 차원의 토착 일족들이 하나의 거대한 연합을 이루어 침략자에 불과한 혼돈의 전당과 힘의 균형을 맞추자.

그리하지 않으면 혼돈의 전당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이미 낌새가 보이고 있으며, 그 마수는 곧 조용히 살고 있는 티탄 일족에게도 뻗어 나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힘을 합쳐야만 한다.

내용만 보면 괜찮다.

그럴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문이고, 본론으로 넘어가면…….’

[가이아, 그대 휘하의 티탄 일족은 그 수가 많지 않다.]

[오직 그대의 비호를 받는 티탄의 땅에 숨어든 채 오랜 세월을 숨만 쉬며 살고 있지.]

[그리 비루하게 살아남을 바에는, 그냥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평의회에 자리 하나 마련해 놓겠다. 그러니 올림포스에, 그리고 나 제우스에게 복종하라.]

[가이아 그대는 물론이거니와, 그대 휘하 티탄 일족 모두가 나에게 격의 맹약을 맺는다면, 나와 나의 올림포스는 언제든지 티탄 일족을 동료이자 아군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주절주절 써놓았지만, 핵심은 이거다.

복종하라.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버텨봐야 숨만 쉬며 살 뿐이잖아?

그렇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나?

‘좋게 말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따위로 동맹을 제안하는 놈이 어디 있어?

이것 참 알면 알수록 제정신이 아닌 지배자다.

어째서 하데스가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편지를 어찌 생각하느냐? 올림포스의 꼬마야.]

“……원래 이런 분인 줄은 알았지만, 선을 좀 넘으셨네요.”

[그렇지? 같은 편인 네가 봐도 선 많이 넘었지?]

“가능하면 대신 사과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수행자 나부랭이의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긴, 그것도 그렇죠.”

[…….]

진심으로 공감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안의 모습에 가이아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제우스만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이 칼리두 와탕카란 놈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자신 앞에서, 수행자 따위가 이리 당당할 수 있다니?

보통은 아득한 격의 차이 앞에서 절망하고 두려워해야 정상 아닌가?

[……올림포스의 꼬마야, 너도 그리 평범하지는 않구나?]

“그러니 저한테 이런 심부름을 맡기신 거 아니겠습니까?”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로군. 헌데…….]

애석하게도 가이아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당당하다고, 당돌하다고 좋게 봐주는 타입.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너무 까부는구나. 나의 귀여운 손자도, 그 손자가 보낸 심부름꾼도.]

가이아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안광이 아닌, 두 눈동자가 말이다.

[한 번 죽어봐야 철이 들겠어.]

명백한 적의, 그리고 살의.

그런 것들로 가득한 붉은 눈동자가 이안을 노려봤다.

하긴, 그 편지를 받고 적의를 품지 않는 게 더 신기한 일이겠지.

“가이아 님.”

[남길 유언이라도 있느냐?]

“벌써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할 일이 많거든요.”

[할 일이라, 끝까지 건방을…….]

“예컨대 프로메테우스 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든지요.”

[……뭐?]

프로메테우스가 남긴 일.

그 말에 가이아가 반응했다.

역시,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본디 프로메테우스는 티탄 일족과 함께 자신의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슈페리어 차원의 멸망.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진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목표는 그것이었다.

다만 그 목표로 가는 길에 가장 큰 방해꾼이 시계탑이었고, 그 시계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티탄 일족의 힘이 필요했기에 시계탑의 멸망이라는 전제조건만 입에 담았으리라.

마치 그것이 프로메테우스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꾸몄겠지.

“그분께서 저한테 많은 것들을 맡기셨습니다. 그중에는 꿈도 있고요.”

[꿈……?]

“시계탑의 멸망이라는, 아주 비현실적인 꿈 말이죠.”

[네가 그걸 어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한테 꿈을 맡기셨다고.”

[그러니까 그걸 왜 하필 너한테……?]

“글쎄요? 그건 프로메테우스 님 본인만 아시겠죠.”

[…….]

“확실한 건 그분과 제 목표가 같다는 점입니다.”

[목표가…… 같다고……?]

“일정 부분은 말이지요.”

굳이 모든 걸 말할 필요는 없다.

딱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저는 이번 과업을 완수하는 즉시 지배자가 됩니다. 가이아 님께서도 제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간 수행자 신분으로 해놓은 것이 많아서, 아마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자마자 중급 지배자까지는 무난히 올라갈 겁니다. 그 이후로도 기대해 볼 만하고요.”

가이아는 굳이 되묻지 않았다.

느껴지는 격의 크기로 미루어보건대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겨우 과업의 수행자 따위가 품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한 격이잖아?

“쉽게 말씀드려서, 앞으로 프로메테우스 님의 역할을 제가 대신 해드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멈춰 있었던 여러분의 거대한 계획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프로메테우스와 티탄 일족 전체가 결탁하여 은밀히 진행 중이었던 계획.

가이아의 기준으로는 시계탑을 무너뜨려 다시금 티탄의 시대를 여는 원대한 꿈.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구속으로 오랜 세월 보류해야만 했던 그 꿈을 재개할 수 있다.

“그러니 저를 죽여서 철들게 하는 건 여러모로 재고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이안의 그 쐐기를 박는 말에 가이아가 한동안 침묵했다.

그저 팔짱 낀 손가락으로 제 팔을 톡톡 두들기기만 했다.

그녀의 측근들만 아는, 무언가 고민 중이라는 제스처였다.

[그대의 말을, 프로메테우스의 뜻을 이어받았다는 말을 어찌 증명할 수 있지?]

“가이아 님께서 우리 시계탑과 슈페리어의 심장에 심어놓은 첩자 명단이면 증명이 되려나요?”

[뭐, 뭐라……?]

“올림포스 소속 하급 지배자 악타이온, 아라크네, 이리스, 하피, 그리고 또…….”

[……그만,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슈페리어의 심장과 시계탑에 심어놓은 티탄 일족 첩자들.

그 명단은 오직 가이아 본인과 프로메테우스만이 알고 있다.

한데 그들을 알고 있다? 프로메테우스 쪽에서 유출된 것이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럼에도 가이아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의심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기도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시계탑의 포로가 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느니라. 아마 모진 고문에 시달렸겠지.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을 실토했고, 너희 시계탑이 그 정보로 하여금 우리 티탄 일족을 티탄의 땅 밖으로 유인하려는 수작질일 가능성, 나는 그쪽이 더 높다고 보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그녀의 의심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지금 그 말은 수긍인가?]

“그럴 리가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일종의 공감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의심이다.

해야만 하는 의심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더는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할 만큼 하기도 했고요.”

물론 공감은 공감일 뿐.

이안은 더 이상 가이아를 설득하려들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을 줬다.

“이제 판단은 가이아 님의 몫입니다. 저를 프로메테우스 님의 대용품으로 쓰면서 다시 멈췄던 계획을 마저 진행하시든, 그냥 죽여서 철이 들게끔 해주시든, 원래 한 집단의 수장이라는 게 그런 판단 내리라고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무릇 한 집단의 수장이라면 매 순간이 판단이고 결단이다.

여전히 건방진 놈이긴 하나, 당장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다.

[……참으로 주제넘은 꼬맹이로구나.]

가이아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붉게 물든 눈이 가라앉음은 덤이었다.

[네 이름, 칼리두 와탕카라고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프로메테우스만큼 강해질 자신은 있나? 그 녀석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할 터인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못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못할 건 없다.

애당초 이안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위에 존재한다.

언젠가 눈먼 아버지마저 압도하는, 그만한 경지를 목표로 두지 않았던가?

그 정상으로 가는 길에 프로메테우스의 경지는 그저 스쳐 가는 거점일 뿐이리라.

[못할 것은 없다, 그럼 이건 어떨까?]

대지의 옛 지배자 가이아가 이안에게 넘겨받은 제우스의 편지를 휘휘 흔들며 말했다.

[내가 이 편지에 어찌 반응하는 것이 현명하겠느냐?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항상 최선의 대책을 내놓았느니라. 그 녀석의 대용품이면 이런 일에도 능숙해야겠지.]

격은 키울 수 있지만, 두뇌 회전과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모든 걸 갖췄었는데, 너도 그러하느냐?

가이아의 물음은 그랬고, 이안 역시 알아들었다.

“그냥 거부하십시오.”

[그다음은?]

“평소처럼 버티시면 됩니다.”

[평소처럼……?]

“저는 돌아가서 이렇게 보고할 겁니다. 가이아 님께서 완강히 거절하셨고, 매우 불쾌한 기색을 보이셨다고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편지의 내용 말고, 편지 그 자체를 보십시오.”

[……편지 그 자체?]

“아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편지, 오랜만에 받으셨다고.”

[그랬지. 일족이 갈라선 이후로는 처음이니라.]

“그런데 편지를 보냈습니다. 왜 보냈을까요?”

[그야 바라는 것이 있으니…….]

“바라는 게 있다, 아쉽다는 뜻이죠.”

바라는 것이 있고, 부탁을 한다.

보통 아쉬운 쪽이 택하는 길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바라는 게 간절해질수록 편지의 내용이 바뀔 겁니다. 다소 공손하게, 그리고 구구절절하게 말입니다. 어차피 여러분은 이 땅에만 버티면 죽거나 다칠 일도 없지 않으십니까? 힘으로 어찌할 수도 없으니…… 설득 말고는 답이 없죠.”

항상 먼저 움직이는 것은 아쉬운 쪽이다.

당장 오늘도 아쉬운 쪽이 편지를 보냈다.

누가 봐도 제우스가 아쉬운 상황 아닌가?

그러니 급할 거 없다. 아마 시간문제일 터.

[글쎄, 네 말처럼 될지 모르겠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판단은 전적으로…….”

[오냐, 나의 몫이지. 잘 알고 있느니라.]

어깨를 으쓱거리며 읊조린 가이아가 자신의 에메랄드빛 머리를 쓸어 올렸다.

찰랑거릴 때마다 빛나는 것이, 역시나 중간계에는 존재하기 어려운 머리칼이다.

[……철은 조금 나중에 들어도 되겠지. 가서 전하여라. 이 할미가 귀여운 손자의 부탁을 거절했노라고. 이보다 더 단호할 수 없을 만큼 완강하게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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