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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4화 (29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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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08화

기대했던 변수는 일어나지 않았다.

인신공양의 철회, 추가적인 요구사항 없음.

지난 시간대와는 흐름 자체가 완벽히 달라졌다.

그때보다 훨씬 더 평이, 평탄, 평온해졌다고나 할까?

[인정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니, 문제랄 것도 없기는 한데.

아무튼 지난 시간대와 크게 달라진 것은 제우스의 반응이었다.

[이런 식의 어부지리로 과업을 완수할 순 없는 법.]

인신공양의 철회로 마지막 과업이 무효화되었다.

완수 처리가 되길 바랐건만, 애석하게도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저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란 존재가 어지간히 깐깐해야 말이지.

[새로운 과업을 내릴 터이니 따르도록 하라.]

결국 과업의 교체다.

예상한 흐름이긴 하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명하십시오. 제우스 님.”

비록 열두 번째 과업을 공으로 먹는 건 물거품이 되었으나, 어찌 되었든 지난 시간대보다는 일이 덜 꼬인 채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평탄함에 맞춰 흘러갈 필요가 있으리라.

‘이번 시간대에는 급할 거 없이, 가능하면 정석대로 힘을 키워보자.’

지난 시간대와는 달라야 한다.

그래야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일 터.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풍경도 있는 법이다.

‘제우스와 대립하지 않는 이상, 내 고향의 일시적인 안전은 보장받은 상태이니까.’

제우스와 약속이 되어 있지 않던가?

자신의 부하가 된다면 첫 번째 중간계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

물론 언제 깨뜨릴지 모르는 약속이긴 하나, 당장 깨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바로 그 약속의 핵심.

제우스가 본론을 꺼냈다.

[나는 오래전부터 줄곧 생각해왔다. 언젠가는 이 땅에서 침략자들을,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인신공양 따위를 요구했다가 철회하는 저 안하무인의 족속들을 몰아낸 다음, 마땅한 자격과 지성을 갖춘 통치자가 저 시계탑 꼭대기에 앉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 알고 있다.

이미 지난 시간대 막바지에 밝혀진 사실이다.

그게 아니어도 충분히 품을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지?]

“동의합니다. 하지만 힘이 없죠.”

[그래, 우리는 힘이 없지. 지금 당장은.]

이안의 대꾸에 만족한 제우스가 잠시 침묵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말문을 이어갔다.

[지금 즉시 티탄의 땅으로 가라.]

티탄의 땅.

생소하지 않은 지명이다.

이미 한 번 가 본 적도 있다.

[가서 그들의 수장, 한때 이 세계의 왕이었던 대지의 옛 지배자, 가이아와 접촉하라.]

슈페리어의 정점이었던 존재.

대지의 옛 지배자, 가이아.

바로 그 존재와 접촉하라.

[이 편지를 전달하면 나의 뜻이 가이아에게 전해질 터, 그에 따른 답변을 받아오는 것까지가 그대의 열두 번째 과업,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는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다.]

제우스가 오직 동격의 존재만이 열람할 수 있는 서찰을 내어줬다.

바로 그 서찰을 대지의 옛 지배자 가이아에게 전달해 주는 것.

그리고 답변을 받아오는 것이 이안의 마지막 과업이었다.

“정확히 어떤 편지입니까?”

[그건 알 필요 없다.]

“갔다가 거절당하면 어찌합니까?”

[내 이름을 대라. 그럼 거절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우스 님의 함자를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대충 알겠다.

어떤 이유인지.

“답변만 받아오면 되는 겁니까?”

[그래, 긍정이든 부정이든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죠.”

[무운을 비마.]

고개를 꾸벅 숙인 이안이 올림포스 신전을 빠져나갔다.

예전과 달리, 티탄의 땅까지는 금방 날아갈 수 있었다.

* * *

언뜻 보기에는 참으로 간단한 심부름처럼 보일 뿐이다.

서찰 한 통 티탄들의 우두머리한테 전달하는 임무 아닌가?

하지만 시계탑과 티탄 일족의 관계를 안다면, 이번 임무가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집단은 아주 오랜 세월을 적대적인 관계로 남아왔으니까.

‘더군다나 이 서찰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만약 서찰의 내용을 본 가이아가 격노한다면?

하여 그 분노를 이안한테 풀고자 한다면?

작금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을 터.

크로노스를 되감아야 할지도 모른다.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군.’

마음을 단단히 먹은 이안이 하늘 높은 곳에 부유하는 땅.

통칭 ‘티탄의 땅’을 올려다봤다. 이것으로 두 번째 방문이다.

‘그때처럼 몰래 들어갈 필요는 없겠지.’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다르다.

그때는 에오스를 은밀하게 만나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종의 ‘특사’로 파견된 것 아닌가?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 가이아를 만날 명분이 있다는 거다.

‘자,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

티타의 땅 아래에서.

이안이 격을 방출했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알리는 꼴.

지금은 그 알림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몰래 숨어들 생각이 없거든.

쿠궁……!

상황은 이안이 의도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티탄의 땅으로부터 몇몇 티탄이 내려와 이안 앞에 착지했으니까.

그들은 모두 기간테스 일족의 원형답게 무지막지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네놈은 뭐지……?]

[어디서 시계탑 돼지 냄새가 나는군.]

[지배자의 격도 갖추지 못한 풋내기잖아?]

그들은 이안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한마디씩 툭툭 던졌다.

느껴지는 격만으로도 어디서 왔는지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올림포스의 과업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라고 합니다.”

이안이 제 소개를 했다.

그러자 이안 앞에 나타난 티탄 일족이 술렁거렸다.

[칼리두…… 와탕카……?]

[그 이상한 이름, 분명…….]

[아프로디테와 함께 에오스를 죽인…….]

[그래, 그놈! 올림포스 족속들의 끄나풀……!]

칼리두 와탕카라는 이름, 티탄 일족도 모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에오스를 죽인 장본인 아닌가?

얼마 남지 않은 동족을 죽였다. 그 적개심이 상당하리라.

“네, 제가 그 칼리두 와탕카 맞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누굴 죽이거나 끌어내러 온 것은 아니고, 제우스 님의 서찰을 전달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티탄 일족의 수장, 가이아 님께 말이죠.”

이안이 침착하게 목적을 설명했다.

[네놈 따위가 감히 가이아 님을 운운하는 것이냐?]

[잘도 떠드는군. 감히 에오스를 죽인 놈 주제에……!]

[마침 잘 왔다. 네놈을 죽여 에오스의 혼을 달래마!]

그러나 이안의 설명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고함치는 티탄 일족을 보라.

웬만한 말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을 터.

[그만.]

바로 그때.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안의 앞을 가로막은 티탄들의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우리 귀여운 손자가 이 할미에게 편지를 보냈다지 않느냐?]

손자가, 할미에게.

실로 많은 뜻이 담긴 중얼거림.

그 한마디를 끝으로 부유하는 땅, 티탄의 땅이 거세게 진동했다.

대지의 아랫부분을 이루는 커다란 바위와 흙이 꿈틀거리며 어떤 형상을 이루어내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얼굴이었다. 정말이지 거대한, 어떤 여인의 얼굴을 본 떠 만든 석상과도 같았다.

[모처럼 만에 말이니라.]

더욱이 놀라운 점은 그 석상이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말을 할 때마다 움직이는 입, 그리고 이안을 바라보는 눈까지.

그것은 결코 단순한 석상 따위가 아닌, 누군가의 얼굴이 분명했다.

[올림포스의 꼬마야, 칼리두 와탕카라고 했느냐?]

“예, 그렇습니다.”

[귀여운 이름이로구나. 우리 쪽 혈통은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 얼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개 끄덕일 때마다 엄청난 모래 폭풍이 일어남은 덤이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올림포스의 꼬마야. 네가 찾는 티탄 일족의 수장, 대지의 옛 지배자 가이아, 그게 바로 나란다. 너를 이곳으로 보낸 아이의 할미 되는 사람이기도 하지.]

티탄 일족의 수장.

대지의 옛 지배자.

그리고 제우스의 조모.

가이아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운 반전이나, 이미 알고 있긴 했거든.

‘이게 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덕분이지.’

어디 제우스뿐일까?

수많은 지배자들이 가이아의 핏줄이다.

혼돈의 전당을 빼면, 사실상 집안싸움이나 마찬가지다.

[그래, 제우스 그 아이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꼭 가이아 님께 전달해 드린 뒤, 답변까지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그 아이,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이 할미를 찾았어. 이렇게 입장이 갈라진 이후에는 통 소식이 없더니만, 드디어 무언가 바라는 것이 생긴 모양이로구나.]

가이아는 어딘가 몹시 즐거워 보였다.

단순히 손자에게서 편지가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걸까?

[올림포스 꼬마를 안으로 들여라.]

[하, 하지만 가이아시여. 이놈은……!]

[에오스를 죽인 것은 아프로디테다. 설마하니 그녀가 수행자 따위한테 당하였겠느냐?]

[그, 그건…….]

[들여보내라. 판단과 처분은 내가 내리는 것이니.]

[……알겠습니다. 가이아 님.]

가이아의 확고한 명령이 떨어지고 잠시 후.

이안이 딛고 있던 대지 일부가 하늘에 떠 있는 티탄의 땅을 향하여 솟아올랐다.

지상에서 티탄의 땅으로, 티탄의 땅에서도 가이아의 본신이 기거 중인 보금자리로.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고 나서야 이안은 비로소 가이아의 본신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왔구나. 올림포스의 꼬마야.]

그녀는 일부러 이안의 눈높이에 맞춰준 건지 평범한 크기와 외형을 유지했다.

하물며 아버지의 축복을 거부한 채 본연의 모습을 유지 중인 티탄 일족답게 푸른 피부와 안광 대신 평범한 피부와 눈동자를 가졌으니, 이쯤 되면 중간계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그러나 범주를 넘어서지 않은, 딱 그 정도의 평범한 중간계인.

아, 머리칼이 에메랄드빛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저런 머리카락, 이안의 고향에는 존재하지 않거든.

[이거, 손님을 맞이해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대접할 만한 것이…….]

“아, 괜찮습니다.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까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구나. 허면 어디 그 편지라는 것부터 읽어볼까?]

“그렇게 하시죠.”

제우스의 편지를 받아 든 가이아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편지지 크기로 미루어보건대 그리 긴 내용은 아닐 것 같다만, 어째서인지 가이아는 제우스가 보낸 편지를 상당히 오랫동안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어떤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꼬마야.]

“말씀하십시오.”

[이 편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느냐?]

“아뇨,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 으음, 허면 네가 한번 읽어보아라.]

“제 눈으로 직접 말씀이십니까?”

[부담 가질 거 없느니라. 외부의 생각이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니.]

그리 말하며 격의 봉인이 풀린 편지를 내어준다.

읽으라니 뭐 어쩌겠는가? 일단 읽어봐야겠지.

순순히 받아 든 이안이 내용을 살폈으며…….

“……!”

얼마 지나지 않아 크나큰 당혹감을 느꼈다.

그만큼 편지의 내용이 충격적이라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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