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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3화 (29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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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07화

    ‘……이게 부작용인가.’

    신체 일부의 훼손.

    비단 이것뿐만이 아닐 터.

    이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재빨리 마법으로 손을 만들었다.

    환각과 실체가 공존하는 마법이었다.

    ‘우선 이걸로 수습하고…….’

    다음 차례는 상황 파악.

    과연 어느 순간으로 돌아왔을까?

    대략적인 지정은 가능하나, 그 지정이 딱히 정밀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이안도 정확히 어떤 순간으로 돌아왔는가는 알지 못한다.

    [어째서 말이 없지?]

    하나 그 불확실했던 안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걷어졌다.

    혼돈의 군주, 시계탑의 이인자.

    그 존재의 재촉이 들렸으니까.

    [날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굉장히 화려하되, 그 주인처럼 어딘가 또 굉장히 이질적인 응접실.

    온통 그림자로 이루어진 혼돈의 군주가 건너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 그렇군. 멀리 오지 않았구나.

    인신공양의 철회를 요청하기 위하여 혼돈의 군주를 찾아왔던 그 순간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설마하니 아무런 용건조차 없이 내 연구실을 찾아왔을 리는…….]

    “……없겠죠. 당연히.”

    군주가 노기를 내뿜기 직전.

    이안이 손을 저으며 읊조렸다.

    “잠시 생각하느라 늦었습니다.”

    [아, 생각 좋지. 미리 하고 오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긴 하다만.]

    “이해해 주십시오. 당신 앞에 서니까 미리 세워놓은 계획이고 나발이고 정신부터 아찔해져서 그런 거니까요. 이게 싫으시면 그 숨 막히는 존재감이라도 감춰주시든가요.”

    [싫은데?]

    “그럼 하던 생각 마저 하겠습니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세요.”

    [하……?]

    뻔뻔하게,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위기를 넘긴 이안이 계속해서 회귀 직후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먼저 왼쪽 손이 통째로 사라졌다.

    아주 약간의 과거로 돌아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상급 지배자로 거듭나며 깨달았던 것들, 그것들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 이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한결 더 수월해지겠군.’

    비록 잠깐이었으나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갖추며 깨달았던 것들.

    예컨대 이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정보와 깨달음 따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물론 그 깨달음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얻어야겠지만, 그 잔상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향후 행보에 엄청난 도움이 되어줄 터.

    ‘나쁘지 않군. 손 하나에 이 정도면 싸게 먹힌 셈이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야 이깟 손 한쪽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손 한쪽뿐일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도 있다.

    진심이다.

    ‘설령 눈 한쪽만 남을지라도.’

    대충 모든 리스크를 파악한 이안이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충분히 감당 가능한 리스크 아니겠는가?

    조금 더 과감하게 나서도 될 것 같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오, 그래. 무슨 부탁이지?]

    “혼돈의 군주께서는 시계탑 최상층에 계신 눈먼 아버지와 매우 각별한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뭐, 각별하긴 하지. 그분은 나 없이 아무것도 못 하시니까. 거의 아기와 보호자라고나 할까?]

    “그럼 아버지께 저 대신 말씀 한 가지만 전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하? 설마 지금 나한테 심부름을 시키려는 건가?]

    “심부름이라니요. 당치도 않으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탁입니다. 군주님 말고는 누구도 그분과 독대할 수 없으니까요.”

    이안의 말에 혼돈의 군주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온통 그림자로 가득한 얼굴 역시 아까보다는 더 평온해졌다.

    [너도 딸이 있으니 알겠다만, 원래 아기들이 낯을 꽤 가리거든. 나야 익숙하니 눈에 보여도 얌전하지만, 낯선 얼굴이라면…… 아마 울음부터 터뜨릴 거다. 아, 참고로 그분이 울면 다 죽어. 면전에서 들은 놈도, 이 시계탑에서 기생하는 지배자란 족속들도 전부.]

    그것참 살벌한 이야기다.

    울음 한 번으로 몰살을 당한다니.

    도대체 그 존재는 얼마나 강한 걸까?

    ‘하기야, 저 혼돈의 군주조차 벌레 잡듯 제압했으니…….’

    혼돈의 군주는 제우스를 벌레 잡듯 제압했다.

    그리고 그런 군주를 눈먼 아버지가 벌레 잡듯 제압했다.

    그 힘의 서열과 격차란 이안의 상식조차 아득히 벗어나 있을 터.

    [흐음, 뭐, 좋다. 우선 어떤 말을 전해달라는지부터 들어보고 판단하지. 네놈의 건방진 심부름 요구를 들어줄지, 아니면 단칼에 거절하고 이 자리에서 없애버릴지를.]

    들어줄지, 죽일지.

    그때와 비슷한 반응.

    이안이 다시금 읊조렸다.

    “먼저 오백만 명의 인신공양, 그 계획부터 철회해 주십시오.”

    [철회 말이냐?]

    “네, 아무리 생각해도 오백만 명을 바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걸 왜 네가 신경 쓰지? 지배자 놈들이 신경 쓸 문제 아닌가?]

    “저한테 맡겨졌습니다. 마지막 과업으로 말이죠. 하지만 군주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중간계인입니다. 같잖은 연민과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는 미개한 종족이지요.”

    [그럼 중간계인 말고…….]

    “추방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썩 내키지가 않아서요. 애초에 그들을 희생시킬 작정이었다면 굳이 군주님을 뵈러 오지도 않았겠지요.”

    [……뭐, 그렇기는 하지.]

    시간을 되돌리기 전과 흐름이 똑같다.

    우선 그때 했던 말을 그대로 답습하되, 다른 쐐기를 박아야겠다.

    “군주께서는 제 정체를 알고, 저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저를 지상으로 보내며 하셨던 말씀, 제대로 들리진 않았습니다만, 대충 그런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너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긴 해. 물론 지금은 말해줘 봐야 알아먹지도 못할 테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해하지 못할 거란 뜻이다. 그때 내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며?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걸?]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최상급 지배자를 뛰어넘는 격까지 누렸다.

    프로메테우스가 넘겨준 모든 정보와 깨달음을 체득하기도 했다.

    한데 그럼에도 여전히 혼돈의 군주가 마지막에 남겼던 말.

    그중 핵심 단어 몇 가지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큰 격이 필요한 걸까?

    “어차피 듣지 못할 말,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군주께서 저한테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겠죠. 말이 나와서 말씀인데, 저는 그 바람을 들어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오호,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물론이죠. 대신 제 부탁부터 들어주십시오. 그럼 장부가 깔끔해지지 않겠습니까?”

    [……뭐? 장부? 하하, 그것참 오랜만에 듣는 표현이로군.]

    혼돈의 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별다를 거 없는 반응이다.

    [사실 나도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거든. 산 재물을 바치라고 하는 우리 우둔하신 아버지나, 그걸 하란다고 진짜 하려는 너희 지배자들이나, 다 너무 뭐라고 할까…….]

    “야만적이죠.”

    [오, 맞아. 야만적이야. 같이 어울리기 불쾌하고, 아무튼 좀 그랬었는데…… 이거 말 나온 김에 말씀이나 한번 드려봐야겠네.]

    그러나 계속 똑같을 순 없다.

    이쯤에서 약간의 차이점을 두자.

    이러려고 크로노스를 되감은 거잖아?

    “더 있습니다.”

    [음? 뭐가 더 있어?]

    “군주께 드릴 부탁 말입니다.”

    [……가지가지 하는군. 말해봐.]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뜻이지?]

    “갑자기 요구사항을 바꾼다거나 하는 거 없이, 깔끔하게 말이죠.”

    [아하, 그런 뜻이구먼?]

    혼돈의 군주가 히죽 웃었다.

    굉장히 기분 나쁜 미소였다.

    [좋아,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군주님.”

    [그럼 나도 하나만 묻지.]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너.]

    바로 그 순간.

    촉수처럼 뻗어 나간 여러 갈래의 그림자가 이안을 확 끌어당겼다.

    또한 재구축의 여파로 사라졌던 왼쪽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자 마법으로 눈속임했던 왼쪽 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크로노스를 되감았구나?]

    혼돈의 군주.

    그는 모르지 않았다.

    이안이 절대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를 되감았단 사실을.

    “알아채셨네요.”

    그럼에도 이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애당초 남용하지 말라 경고했던 존재가 바로 혼돈의 군주 아닌가?

    이미 알고 있다면 약간의 변화를 느끼기도 쉽겠지.

    “남용하지 말라 경고까지 해주셨는데,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음음, 아니야. 어쩔 수 없었겠지. 물론 시작은 다 그렇게 하긴 한다만, 한두 번 되감는 것 정도야 뭐…… 맛만 들리지 않으면 돼.]

    생각했던 것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정말 별거 아닌 걸까, 아니면 그냥 넘기는 걸까?

    아직 알 수 없는 일, 혼돈의 군주가 멈추지 않고 읊조렸다.

    [그래, 그래서 손이 그 모양인가?]

    “사라져 있더군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하루아침에 외팔이가 되어버렸는데?]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덜해서 다행인데요?”

    [무엇이? 설마 부작용이?]

    “네.”

    단호한 목소리와 눈빛.

    이안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 위기에서 시간을 되감는 데 손 한쪽이면 싸게 먹힌 거라고.

    더군다나 크로노스를 절대적인 시간을 되감는 마법 아니던가?

    이안이 파악하기로 오직 눈먼 아버지와 자신에게만 허락된 권능.

    그런 힘을 발동하는데 그깟 손 한쪽? 기쁘게 내놓을 수 있으리라.

    [글쎄다. 그것뿐이라면 그럴 수도…… 아니, 뭐가 그럴 수도 있어? 손 한쪽이 사라져 버렸는데, 너 그거 계속 반복하다가는 나중에 진짜 배꼽만 둥둥 떠다닐지도 모른다?]

    “아, 그건 좀.”

    [그렇지? 그건 좀 아니지?]

    “그전에 끝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야겠네요.”

    [그 끝에 나도 포함되고?]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내 바람을 이루어줄 요량이 있다며?]

    “아, 그건 들어드리죠.”

    [하!]

    혼돈의 군주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이안을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있고, 그걸 알아챘다고 할지언정, 설마 이만한 차이를 보인 상대 앞에서 이런 여유로움을 보일 줄이야. 확실히 남다르기는 하다.

    ‘역시…….’

    이안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혼돈의 군주.

    그 의뭉스러운 존재가 다시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인신공양의 완전한 철회, 좋다. 내 한번 힘써보도록 하마.]

    “이왕 힘써주시는 김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안 됩니까?”

    [……또?]

    “장부가 깨끗한 것도 좋지만, 빚 하나 달아두시면 유리하잖아요?”

    […….]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아니기는 한데.

    ‘자꾸 페이스에 말려드는군.’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넘어간다는 거다.

    정확히는 넘어가 주게 된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알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말해봐.]

    “헤라클레스를 아십니까?”

    [이번에 새로 평의회의 일원이 된 그놈 말인가?]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정신개조라는 것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혼돈의 전당에서 말이지요.”

    [아랫것들 일이긴 한데,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놈은 왜?]

    “풀어주십시오. 그 정신개조라는 것도 지금 즉시 중단해 주시고.”

    [각별한 사이인가?]

    “이래저래 쓸모가 많습니다. 격의 맹세까지 받아놨거든요.”

    [오, 그건 크군. 근데 그럼 개조를 당하든 말든 상관없잖아?]

    “찝찝하잖아요.”

    찝찝하다.

    실로 많은 의미가 함축된 표현.

    혼돈의 군주도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확실히, 너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거린다.

    동시에 손가락을 탁, 하고 튕긴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대의 풍경이 달라졌다.

    “여긴…….”

    용암 한가운데 마련된 땅.

    그 위로 솟아난 흑요석 기둥.

    그리고 기둥에 묶여 있는 누군가.

    “……헤라클레스.”

    튀폰의 격을 먹은 헤라클레스.

    그가 흑요석 사슬로 포박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이미 수차례 모진 개조를 당한 듯 온몸이 만신창이었다.

    [정신력이 꽤 단단한가 보군. 아직까지 제 자아를 유지하고 있어.]

    그런 헤라클레스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리저리 살펴본 혼돈의 군주가 감탄했다.

    보통 이만큼 개조를 당하면 정신이 무너지게 마련인데, 이놈은 아직 몸뚱이만 무너졌다.

    [으음, 확실히. 네놈한테는 꽤 쓸 만한 도구가 될 수도 있겠네.]

    그리 읊조리며 다시 한번 손가락을 탁, 하고 튕긴다.

    그러자 놀랍게도 헤라클레스를 포박했던 사슬이 끊어졌다.

    [데려가라. 몸뚱이만 회복하면 예전이랑 다를 건 없을 거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반드시…….”

    [당연히 갚아야지. 이 거래장부에 전부 달아놓았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장부에 달아놓았다.

    어느새 나타난 서책이 이안과 혼돈의 군주 사이에서 펄럭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만 돌아가라. 그 덩치 큰 놈이랑 같이.]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혼돈의 군주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이안은 헤라클레스와 함께 자신을 시계탑 지하로 보내줬던 명계의 왕, 하데스의 궁전으로 돌아왔다.

    살아서 멀쩡히 돌아왔다며 아쉬워하는 하데스 역시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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