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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88화 (28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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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02화

    웬만하면 시간을 되감지 마라.

    특히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를.

    그러한 뜻이 담긴 충고를 끝으로.

    [아,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선물이라도 좀 사 들고 와. 부탁하러 온다는 놈이 빈손으로 오는 게 말이나 돼? 아무리 중간계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다지만, 그런 기본적인 매너조차 없으면 결국 부모 얼굴에 먹칠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

    이건 또 뭔……?

    이쯤 되면 이질적임을 넘어서 버린 무언가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아, 참고로 나는 그 지배자란 족속들이 사족을 못 쓰는 황금 사과라는 거, 내 취향 아니니까 다른 거 알아보고. 과연 네 센스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기대해 보겠어.]

    혼돈의 군주.

    그 아리송한 존재의 충고는 거기까지였다. 곧 이안의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가 싶더니, 적어도 그 존재의 연구실보다는 익숙한 풍경으로 돌아왔으니까.

    [살아서 돌아왔군. 불행히도.]

    목소리의 주인공.

    하데스의 명계 지하 궁전.

    바로 그곳에서 정신을 차린 이안이 조금 지친 듯 마른세수를 했다.

    “다행이죠.”

    [불행이지.]

    “어련하시겠어요.”

    참 언제 봐도 정이 안 가는 자다.

    물론 그래서 더 좋다. 언제든 마음 편히 쓰다가 버릴 수 있잖아?

    물론 하데스도 마찬가지겠지.

    [해서, 어떻게 해준다던?]

    “아, 그거요. 생각보다…….”

    [……어? 잠깐.]

    이안이 무언가 설명을 하려는 그때였다. 어떤 문제라도 생긴 듯 이안의 말문을 막은 하데스가 어떤 소리에 귀 기울였다. 이안에게는 들리지 않는, 오직 시계탑의 지배자들한테만 들리는 전언이었다.

    “뭔데 그러십니까?”

    [……너.]

    그 전언을 마지막까지 들은 하데스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더불어 이안을 응시하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 * *

    시계탑 내 모든 지배자들이 혼돈의 전당에서도 이인자에 속하는 초월자, ‘혼돈의 군주’로부터 전해 들은 전언이란 아래와 같았다.

    [시계탑은 듣는다.]

    [아버지께서 그대들에게 요구했던 인신공양은 없었던 일로 한다.]

    [단, 아버지께서는 머릿수만 많고 영양가 없는 기존의 인신공양보다 더 포만감이 큰 공양을 원하신다.]

    [그러한바, 평의회의 일원 중 한 명에게 시계탑 최상층으로 올라올 수 있는 영광을 하사하기로 했다.]

    [영광의 수혜자는 그대들이 의논하여 결정하도록 하되, 그 최종 결정권자는 평의회의 공동 수장이 아닌, 올림포스 전당의 과업 수행자인 칼리두 와탕카로 지정한다.]

    [이는 모두 자식 모두를 아끼느라 두 눈마저 멀어버린 우리 가엾고 우둔한 아버지의 결단이니만큼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라.]

    [기한은 기존과 같다.]

    간단히 설명하면, 졸지에 오백만 명 말고 최상급 지배자 한 명을 공양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물며 그 결정권자로 이안을 지목했으니, 이는 분명 혼돈의 군주가 부린 농간이 아닐 수 없을 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가서 무슨 소릴 지껄였기로서니 우리 중 한 명을 바치라는 거야?]

    “난들 아나요.”

    [낸들 아나요? 하……! 이봐, 칼리두 와탕카. 아니, 아니지. 이안 페이지! 지금 일이 더 어려워진 거 모르겠어? 이거 못하면 네놈 마지막 과업도 실패야. 실패!]

    “그러니까, 뭐가 더 어렵다는 겁니까? 제 기준에서는 더 쉬운데.”

    [……뭐?]

    “무고한 목숨 오백만 잡아다 바치는 거보다 당신들 중 한 명 바치는 게 더 쉬워 보이는데요?”

    […….]

    “하물며 그 결정권도 저한테 줬으니,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놈 하나 지목해서 바쳐버리면 되겠네요.”

    [무, 무슨…….]

    “걱정하지 마십쇼. 하데스 당신도 마음에 안 드는 건 맞긴 하는데, 당신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수두룩하니까요. 당장은 말이죠.”

    [……하, 그것참 눈물 나게 고마운 소리군. 하지만 그게 정말 네놈 말처럼 쉬울까? 평의회 놈들이 최종 결정권자인 수행자를 가만히 둘 것 같아? 내 장담하는데…….]

    “압니다. 방금 한 말은 반쯤 농담이고, 대충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안의 평온한 태도에 하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언을 전해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생각해 둔 바가 있어? 이거 허풍 아니야?

    [그게 뭔데?]

    “비밀입니다.”

    [솔직히 말해. 허풍이지?]

    “그건 나중에 확인하시고, 이쯤 되면 슬슬 평의회 소집이니 뭐니 하면서 바쁘실 타이밍 아닙니까?”

    [……일단 시계탑 근처로 보내줄 테니 허튼짓 말고 대기하도록.]

    “편히 다녀오십쇼. 저 부르면 바로 말씀하시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계탑 근처에 있을 테니까.”

    그로부터 얼마 후.

    평의회 내부적으로 격렬한 토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지칠 때쯤.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를 불러라. 아무래도 이 문제는 그와 함께 논의해야 할 것 같군.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도 알아야겠고.]

    결국 평의회의 공동 수장 제우스와 오딘의 합의로 이번 일의 핵심,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가 평의회 대회의장으로 호출되었다.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말씀하십시오. 제우스 님.”

    [내 듣기로 그대가 직접 혼돈의 군주에게 접근했다던데, 맞는가?]

    “맞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지?]

    이안을 향한 심문 아닌 심문은 다소 갑작스레, 제우스의 입으로부터 아무런 예고 없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무도 그 갑작스러움에 토를 달거나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 모인 모든 지배자들이 궁금하던 참이거든.

    “오백만의 인신공양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추방자나 중간계인들은 벌레처럼 하찮은 족속들이지만, 실제로 벌레를 오백만 마리 죽이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심적으로도 그렇고, 체력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죠.”

    이안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술술 쏟아냈다. 그 당당한 태도 때문인지 일부는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눈치를 살피며 멈췄지만 말이다.

    [……해서, 공양의 주체인 아버지의 직속 부하를 찾아가 부탁했다는 건가? 오백만 명 말고 최상급 지배자 중 한 명을 공양받으라고?]

    “그럴 리 있겠습니까? 그냥 인신공양 자체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반응도 꽤 좋았는데, 설마 이렇게 꺾을 줄은 몰랐네요.”

    [지금 그것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게냐? 정말 혼돈의 군주가 수행자에 따위의 부탁을 들어줬다고?]

    “믿지 않으셔도 별수 없죠. 결과가 이런데요. 그리고 그 결과로 봤을 때 부탁을 들어준 것도 아닙니다. 더 큰 문제로 바꿔서 돌려줬으니까요. 저도 난감하던 참입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큰 문제를 불러온 당사자치고는 아까부터 너무나도 여유로운 태도.

    정말 뭔가 뾰족한 수라도 있는 걸까? 그래서 저리 당당한 걸까?

    하데스를 필두로 30명 남짓 최상급 지배자들이 이안을 노려봤다.

    따지고 보면 이안의 독단적인 행동 탓에 그들 중 한 명이 희생당하게 생겼으니 당연한 눈초리였다.

    “하지만 제우스 님, 오딘 님. 그리고 여기 계신 지배자 여러분. 저한테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여러분 중 누구도 시계탑 최상층에 올라가는 일, 즉 아버지께 바쳐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확실한 방법이 있단다.

    누구 하나 공양물로 전락하지 않을 방법이 확실하게 있다는 거다.

    그게 뭘까? 지배자들의 눈빛을 가득 채웠던 불신이 조금씩 기대와 희망으로 바뀌었다.

    [어떤 방법이지?]

    오딘이 물었다.

    그 역시 이안의 계획이 궁금했다.

    이대로 최상급 지배자를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올림포스 전당에서 차출된다면 한시름 놓겠으나, 그 반대라면 전력누출이 너무 막대하다.

    “간단합니다.”

    이안이 오른쪽 검지를 펼쳤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저에게 지배자의 격을 허락해 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격도 조금씩 몰아주셔야 합니다.”

    지배자로 만들어달란다.

    하물며 격을 몰아달란다.

    갑자기 다 무슨 소리일까?

    “절 최상급 지배자로 만들어서 평의회 소속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의구심 가득한 오딘의 물음.

    제우스는 이미 이안의 뜻을 이해한 듯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다음 바치면 되니까요. 최상급 지배자가 된 저를, 시계탑 최상층에 군림하는 존재한테.”

    [……!]

    공양의 조건이 최상급 지배자다.

    그럼 그 최상급 지배자를 새로 만들어서 바치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최상급 지배자가 아닌 이들 중, 그리고 최상급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이들 중에서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조건이지만, 이안은 달랐다. 기꺼이 본인이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지겠단다.

    [칼리두 와탕카, 물론 그대가 지배자의 격을 갖출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벌써부터 우리와 동격을 이룬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느냐?]

    “그럼 가능하게 만드십시오.”

    [……뭐라?]

    “여러분 중 누군가가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질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찾아내셔야죠. 그 방법을.”

    […….]

    “저는 조건만 주어지면 기꺼이 제물로 바쳐질 용의가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딱히 없고, 그냥 그 아버지를 향한 호기심? 그리고 제가 일으킨 문제에 대한 책임감? 대충 그 두 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호기심과 책임감.

    그 간단하면서도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유에 지배자들의 안광이 다시금 불신으로 물들어갔지만.

    “믿지 못하셔도 그냥 넘어들 가시죠. 다시 말씀드리는데, 여러분들 중 누군가가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질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안의 날 선 한마디가 그 되돌아가려는 분위기를 콱 붙잡아버렸다.

    “제안은 여기까지입니다. 한번 고려해 보시고, 괜찮다 싶으시면 방법을 찾아주십시오. 저는 그동안 제 나름대로 준비 좀 하겠습니다.”

    할 말을 끝낸 이안이 멀뚱멀뚱한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자, 평의회의 공동 수장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네 제안은 잘 들었다. 시계탑 밖으로 보내줄 터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하라.]

    * * *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절대적인 시간을 되돌릴 순간이.

    ‘내 제안이 먹힌다면 말이지.’

    순식간에 최상급 지배자의 격을 얻고, 어쩌면 이 모든 여정의 끝에 서 있을 존재와 마주하는 일이다.

    여기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커다란 실마리 한 올쯤은 손에 꼭 붙잡은 채 크로노스를 되돌릴 수 있을 터.

    ‘물론 그 존재와 마주하기 전에 시간을 되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당장 헤라클레스처럼 최상급 지배자가 되는 순간 봉변을 당할 수도 있고, 그 밖에 또 어떤 변수가 도사리고 있을지 전혀 모르니까.’

    현재로서는 헤라클레스처럼 모든 기억이 들쑤셔지는 건데, 솔직히 아무런 대책도 없다.

    혼돈의 군주 선에서 마무리되길 바라는 정도인데, 다시 만나서 결판을 지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후우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상하리만큼 옅었던 긴장감도 커졌다.

    이제 슬슬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걸 보니, 정말 이번 시간대의 끝자락에 닿은 모양이다.

    이번 승부수가 통할지, 빗나갈지는…… 글쎄, 예전 같으면 ‘오직 하늘만이 알겠지’라고 말했을 텐데.

    그 하늘에 뭐가 있는지 알아버린 지금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래, 하늘이 다 무슨 소용이야? 내 눈에 보였던 하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오고 보니, 여기도 이런 머저리들만 가득한데.’

    결국 믿을 건 한 가지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이안 페이지.

    괜히 엄한 곳에 의지할 필요 없다. 이 길은 누구도 걷지 못한 미지의 영역 그 자체 아닌가? 자신이 뻗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곧 역사고 기록이며 유일무이한 결과다.

    그러니 신중하면 된다.

    정신만 바짝 차리자.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칼리두 와탕카 님, 좀 좋은 일로 만나면 좋을 텐데, 어째 저번보다 더 상황이 나쁜 것 같네요. 하하.]

    바로 그때.

    올림포스 신전 구석에서 마음을 다잡던 이안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테나의 부하, 오리온이었다.

    [그…… 위에서 모셔오랍니다. 칼리두 와탕카 님을요. 결론이 내려졌고, 방법 역시 찾았으니, 그대의 제안에 따르겠다…… 라고 말씀드린 뒤 정중하게 모셔오라더군요.]

    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번 생, 혹은 이번 시간대.

    그 처절한 역사의 클라이맥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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