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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86화 (28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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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00화

    인신 공양에 필요한 오백만의 목숨을 구해와라. 물론 어디서 구해오는지는 일절 상관하지 않겠다.

    [물론 산 채로 잡아 와야 해. 인신 공양의 핵심은 산 제물이거든.]

    하물며 산 채로 잡아 오란다.

    다시 말하지만, 오백만 명이다.

    오백만의 생명을 생포해야 한다.

    거절할 수도 없는, 이안 페이지의 마지막 열두 번째 과업 되시겠다.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못 할 것도 없죠.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 어디든 괜찮습니까?”

    [앞서 말했듯 네놈의 자유다.]

    “기한은 어떻게 되죠?”

    [네 고향의 단위로 정확히 석 달 주겠다. 물론 기준은 이곳이니, 아마 슈페리어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세계에서는 그보다 더 길 것이다.]

    슈페리어의 기준으로 석 달.

    길지 않다. 헤스티아가 귀띔해 줬던 여유보다 훨씬 더 촉박해졌다.

    “정확히 오백만 명 잡아서 시계탑 앞에 꿇려놓으면 끝나는 겁니까?”

    [그렇다. 네놈은 머릿수만 맞춰 오면 돼.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지성체로 오백만, 나머지 절차는 우리 평의회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언제쯤 개조라는 게 끝날까요? 맹약까지 받아놓았는데, 필요할 때는 좀 써먹어보고 싶어서요.”

    [걱정되느냐? 그의 안위가?]

    “뭐……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긴 합니다. 생사를 함께 한 동료니까요. 이제 한 식구가 될 거고요.”

    [한 식구라, 틀린 말은 아니군.]

    이안의 말에 공감을 표한 제우스가 공양그릇 위로 웬 수정구를 보내왔다. 거기에는 혼돈의 전당 어딘가에 붙잡혀 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보였는데, 강력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흑요석 쇠사슬로 칭칭 묶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음, 상태를 보아하니 시간이 제법 남은 것 같은데, 보기보다 저항이 센 모양이야. 수행자 시절부터 유명한 놈이기는 했으니…….]

    실로 참혹한 모습에 순간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는 이안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안 자신과의 의리를 지켜준 이가 저런 꼴이 되어 있는 거, 두고 보기 어려웠다.

    그냥 더 많은 정보고 뭐고 시간을 되돌리면, 크로노스를 되돌려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면 헤라클레스가 저런 수모를 겪지도 않을 터.

    하지만.

    ‘……정말 미안합니다, 헤라클레스 님. 조금만 더 견뎌주십시오.’

    이안은 끝내 크로노스를 되감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많은 기회들이 이번 시간대에 남아 있었으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마음속으로 사과하는 위선과 자기 위안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 * *

    [……뭐? 오백만의 영혼을 네가 직접? 왜지? 그럴 필요가 있나?]

    이안은 하데스에게 열두 번째 과업으로 오백만의 목숨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이야기했을 뿐.

    제우스와의 대화는 전하지 않았다. 지금은 두 존재 사이에 줄타기하며 이득만 취하는 게 옳으니까.

    “저도 모르죠. 직접 모으기 귀찮았을 수도 있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그게 제 마지막 과업이라는 겁니다.”

    [그래, 뭐, 어찌 되었든 축하한다. 마지막 과업치고는 굉장히 쉬운 임무가 걸렸어. 그깟 오백만, 어느 중간계를 털어도 금방 모일 테니.]

    “…….”

    아, 잊고 있었다.

    이 양반도 지배자였지?

    하물며 최상급 지배자다.

    중간계의 생명들을 벌레 취급, 아니 어떨 때는 벌레보다 아래로 볼 만큼 오만하고도 위선적인 족속들.

    그런 그에게 중간계 생물 오백만 따위, 먼지보다 하찮을 뿐이리라.

    [뭐야 그 반응은? 설마 너, 아직도 중간계 벌레들 목숨에 연연하는 거냐? 네놈 고향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남의 세계 벌레들 따위한테?]

    그 낌새를 알아챈 하데스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는 정말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이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신 차려라. 너도 이제 내일모레면 지배자가 될 몸이야. 지배자의 격이란 것이 꼭 힘만 있는 줄 알아? 마인드, 행동거지, 기타 모든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법이다. 헌데 지금 네놈이 하는 짓은…… 아직도 중간계의 벌레 그 자체거든. 계속 그리 한심하게 굴어서야 어디 가서 지배자라고 소개할 수 있겠어? 네놈 스스로를?]

    이쪽 세계로 처음 넘어왔을 때면 모를까, 놈은 이미 열한 번의 과업을 완수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수행자로 거듭났다.

    이제 열두 번째 과업만 넘긴다면 정식으로 지배자의 격을 얻어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될 터.

    그때부터는 정말 중간계인으로서의 마인드를 완전히 지워야만 나아갈 수 있을 텐데, 저래서 될까 싶다.

    “글쎄요. 딱히 그러고 싶진 않네요. 어차피 저한테 지배자의 격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이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까닭 또한 일부 타당했다.

    물론 하데스로서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더 따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우리 남다르신 예비 지배자 칼리두 와탕카 님께서는 무슨 수로 오백만의 목숨을 확보할 생각이지? 추방자도 싫다, 중간계인도 싫다, 다 싫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데? 아, 참고로 말해주는데, 네놈이 그토록 잡아 족치고 싶어 하는 지배자들, 그 족속들은 아무리 긁어모아도 오백만이 안 돼. 이미 튀폰 때 봐서 알겠지?]

    그래, 그건 알고 있다.

    오백만은커녕 오천도 어렵겠지.

    “그러니 하데스 님께 조언을 구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꿈에도 모를 그런 방법, 어디 없나 해서요.”

    [하,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나 같으면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간계의 벌레들이든, 추방당한 벌레들이든, 그냥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아서 머릿수 맞출 텐데, 그 쉬운 길 마다하고 무슨 방법을 찾아?]

    “그래도 한번 생각이나마 해주십쇼. 우리, 동맹 아닙니까? 동업자 정신이 뭐라 뭐라 하셨잖아요?”

    [흥! 동업자 정신을 먼저 잃어버린 건 네놈이다. 인제 와서 뭔…….]

    하데스는 그리 퉁명스럽게 반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한테 의지하는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이안이 자신의 통제권 안쪽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거든.

    이전까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였는데, 이제 좀 안심이 된다.

    물론 언젠가 이안이 제우스와 맺은 계약을 알게 된다면, 글쎄, 그때도 동업자 정신이 어쩌고 하려나?

    [……흐음, 근데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쉬운 길은 있어도 어려운 길이 없어.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라. 추방자와 중간계가 아니면 또 어디서 오백만을 잡아오겠어?]

    물론 이 상황이 마음에 들든 아니든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하데스여도 이번 일은 정말 난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매우 무의미한 고민이다.

    쉬운 길이 빤히 있으니까.

    [인신 공양 해달라는 눈깔 괴물이 스스로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고서야, 결국 어디서든 구해 와야 할 텐데……. 아, 참고로 해달라는 거 안 해주면 그 양반, 땡강 엄청 피우거든? 초창기에 한 번 빼먹었다가…… 어우,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신물이 올라와. 신물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무지막지한 보복을 당한 듯 혀까지 내두르는 하데스였다.

    그러나 이안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방금 하데스의 말 중 뒤쪽이 아닌, 앞쪽이 솔깃했거든.

    “스스로 없었던 일이라.”

    [혼자 뭐라고 지껄이는…….]

    “하데스 님.”

    [……어?]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몇 번 말해? 방법이 없다고.]

    “아뇨, 그거 말고.”

    [그럼 또 뭐?]

    “저를 시계탑 안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왜 예전에 아테나 님이 개최한 번외 과업 때 갔던 지하 말입니다. 괴수들이 막 득시글거리던.”

    [지하? 거긴 갑자기 왜?]

    “만날 분이 좀 있어서요.”

    [……네놈,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물론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가능성이 무척 희박하기도 하다.

    그래도 시도는 한번 해봐야겠지.

    “한번 말이나 전해보게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그 눈깔 괴물은 우리와 달라. 말이 통하지도, 애초에 그런 개념이…….]

    “그래서 그 아버지란 자한테 직접 말고, 그 아랫것을 통하는 거 아닙니까? 혼돈의 군주였나, 하는.”

    […….]

    “그자가 눈먼 아버지의 직속 부하라면서요?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뭐 그런 거라던데, 그럼 말이라도 전해줄 수 있을 거 아닙니까?”

    [네놈, 혼돈의 군주에 대해서 잘 모르나 본데, 그자야말로…….]

    “압니다. 그때 아테나한테 하는 거 보니까 아주 무자비하더군요.”

    [그걸 아는 녀석이…….]

    “전 멀쩡했잖아요.”

    [……뭐?]

    “아테나는 생기를 빼앗겼고, 저랑 함께 들어갔던 수행자들은 다 갈기갈기 찢겨 죽었습니다. 그 혼돈의 군주라는 괴팍한 놈한테 말이죠.”

    […….]

    “근데 저는 어땠습니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나왔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다.

    놈은 멀쩡히 살아 나왔다.

    그 과정이 수정구에 잡히지 않아 누구도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른다.

    혼돈의 군주와 이안 페이지, 오직 두 당사자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째서인지 제 말은 들어주더군요. 그러니 다시 만나서 한 번 더 시도해 보겠습니다. 대화라는 것을.”

    [흐음…….]

    이안의 말에 하데스가 아주 잠시간 의구심 어린 눈초리를 보였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을 뿐, 이내 본연의 표정으로 돌아와 읊조렸다.

    [……네놈이 정 쉬운 길을 택하지 않겠다면, 좋다. 시계탑 지하로 보내주도록 하지. 그런데 말이다.]

    “말씀하십시오.”

    [네놈은 정말 그 존재, 혼돈의 군주 앞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냐? 예컨대 말이 나오지 않는다든지, 눈앞이 깜깜해진다든지…….]

    “음, 글쎄요. 처음에는 좀 당황했는데, 시간 지나니까 괜찮아지던데요? 그 존재가 저한테 적의를 보이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가…….]

    납득한 듯 아닌 듯, 어딘가 묘한 표정의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쪼록 행운을 빌지. 그 존재가 네 말에 귀 기울여 주길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그 바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만큼 하데스가 여기기에 혼돈의 군주는 쉽지 않으니까.

    * * *

    그로부터 잠시 후.

    하데스가 열어준 차원 문 너머 시계탑 지하에 도착한 이안이 번외 과업 당시 기억을 더듬어가며 혼돈의 군주와 만났던 위치로 향했다.

    “크에에에엑……!”

    가는 길 곳곳이 토착 괴수 천지였으나, 당장 번외 과업을 치르던 당시보다도 강해진 상태였기에 별문제 없이 나아갈 수 있었다.

    오히려 쌓아 올린 격을 마음껏 가늠해 보는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가만있자, 이쯤 어디였는데.’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 근처가 확실하다. 그땐 분명 커다란 문이 보였는데, 어디로 사라졌지?

    쿠궁……!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검푸른 빛이 사각을 그렸고, 그 사각의 빛은 곧 커다란 문을 이루었으니, 이제야 기억 속 그 장면 그대로였다.

    쿠구구구구구구……!

    마침내 열리기 시작한 문.

    그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격.

    어느 거 하나 만만히 볼 게 없는 상황 속에서.

    [오, 손님이 오셨군.]

    이제 조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이안의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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