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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84화 (28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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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98화

    [……놈을 제거했다고?]

    “중간계의 벌레들에게 심취했더군요. 더는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어서, 제거하지 않고는 정보를 가져올 방도가 없었습니다.”

    [흐음…….]

    열한 번째 과업의 계시자.

    포세이돈의 석상이 무척 의심스러운 말투와 눈빛으로 대꾸했다.

    그는 이안의 말에서 의구심을 느꼈으나, 그중 자신의 부하 페사낙스를 향한 믿음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대가 페사낙스를 죽였다?]

    “그렇습니다.”

    [여러모로 남다른 수행자라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페사낙스를?]

    “별거 아니던데요?”

    [……뭐?]

    “여기, 증거도 있습니다.”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페사낙스의 격이 담긴 구체를 꺼냈다.

    그는 그것을 받아놓기만 했을 뿐.

    아직 자신이 취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바로 먹어버릴까 욕심도 들었지만, 포세이돈 님께 보고부터 올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호오, 제법 적절한 판단이로구나. 그 뛰어난 판단력이 그대를 열한 번째 과업까지 보낸 것 같군.]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잘 먹혀들었다.

    무려 그 포세이돈의 입에서 칭찬 비슷한 무언가가 흘러나왔잖아?

    [좋다. 그대의 과업 완수를 인정해주지. 그리고 그 페사낙스의 격은…… 과업 완수의 보상으로 쳐주마. 어차피 나한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준이니까.]

    직접 구해온 격을 보상으로 친다.

    굉장히 치사한 지배자가 아닐 수 없으나,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직 몸 사릴 때다.

    [덕분에 나의 오랜 꿈, 아틀란티스 계획의 물꼬를 틀 수 있겠구나.]

    “축하드립니다.”

    [그래, 완성되면 내 한 번 초대해 주지. 아마 감탄할 거다. 그 더러웠던 벌레들의 세계가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나 싶어서 말이야.]

    “…….”

    그런 일은 없을 거다. 포세이돈.

    벌레들의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고, 내가 그 세계를 지킬 테니까.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필요하면 네놈들을 다 죽여 없애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줄게.’

    속으로 울분을 씹고, 씹고, 또 곱씹어 삼킨 이안이 무척이나 평온한, 마치 중간계의 멸망 따위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척 기대되네요.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로 거듭날지.”

    [하하! 좋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어째서 몇몇 지배자들이 그대를 눈여겨보는지 알 것 같아.]

    그런 이안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을까? 이안과 만난 이래 처음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이안을 칭찬한다.

    [가라. 이제 마지막 과업만 남았으니, 모쪼록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마. 나의 세계, 아틀란티스의 손님이 되려거든 그만한 격을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

    포세이돈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이후 왼쪽 손등에 새겨진 열한 번째 과업 완수 표식부터 확인한 뒤, 곧장 마지막 과업의 계시자 앞으로 걸어갔다.

    ‘……드디어 이 양반인가.’

    마지막.

    열두 번째 과업의 계시자.

    그는 이안의 눈에도 익숙했다.

    ‘제우스.’

    번개의 지배자.

    올림포스 전당의 수장.

    그리고 몇몇 지배자들이 이안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그 존재.

    역시 수장답게 마지막 과업의 계시자로서 당당히 군림하고 있었다.

    ‘일단 공양물부터 신경을 좀 써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나를 굉장히 아니꼽게 보고 있다고 하니…….’

    마지막 과업이다.

    심지어 그 계시자가 몇몇 사건으로 이안을 아니꼽게 보고 있단다.

    시작부터 제대로 한번 가 보자.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절하기 힘들 만큼 화끈하게……!’

    마침 이안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제우스의 정신을 쏙 뺄 만큼 화끈한 공양물이, 그것도 아주 많다.

    ‘미리 수확해 놨거든.’

    이안이 보상으로 받았던 아공간 주머니의 최종형, ‘걀라르호른’에서 무수히 많은 황금빛의 무언가를 공양그릇 위로 우르르 쏟아냈다.

    바로 황금 사과였다.

    ‘지배자 중에서도 가장 이 황금 사과에 환장하는 놈이 제우스라지?’

    젊음과 영생, 더 높은 격을 향한 욕망으로 제우스보다 앞서나갈 지배자? 적어도 올림포스에는 없다.

    애당초 황금 사과의 효능을 처음 발견한 것도 제우스며, 그 황금 사과로 온갖 걸 다 만들기 시작한 것도 제우스니, 그런 그에게 황금 사과란 곧 최고의 공양물이리라.

    ‘심지어 이만한 물량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거다.

    번쩍!

    그래, 바로 지금처럼.

    석상에 번뜩거리기 시작한 저 안광을 봐라. 눈동자가 아닌 안광임에도 감정이 읽힐 지경이잖아?

    [……칼리두 와탕카.]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우스 님.”

    [조만간 부를 참이었는데, 벌써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도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안의 대꾸에도 제우스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공양그릇에 쌓여 있는 황금 사과부터 싹 챙겨갔다.

    그러고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지 이안을 빤히 응시하며 질문했다.

    [대체 이 많은 황금 사과를 어디서 구한 게지? 프로메테우스의 보물 창고에 이만한 황금 사과가 숨겨져 있을 리는 없을 터인데…….]

    “사과나무를 키웠습니다.”

    [뭐? 설마 그 사과나무라는 게 황금 사과나무를 뜻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황금 사과나무는 절대 인위적인 재배가 불가능한…….]

    “저도 그렇다고 들었고, 그런 줄 알았는데, 해보니 가능하더군요.”

    [그게 무슨…….]

    “자세한 방법은 과업을 끝낸 다음에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쉽게 말해서, 내가 과업을 수행하다가 죽는다면 너희는 절대로 황금사과나무 재배법을 알 수 없다.

    그러니 쉽게 쉽게 가자.

    그런 어필이 담긴 대꾸였다.

    물론 제우스가 알아차렸을지, 또 그걸 알아차렸다 해서 순순히 그렇게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앞에서 거짓은 곧 죽음이다. 알고는 있겠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다만 지금은 과업을 우선으로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렇습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길.”

    이안의 정중한 태도에 제우스가 두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딱히 더 추궁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모처럼 재미있군. 허튼소리나 할 놈이 아님을 알아서 그런가?]

    혹은 황금 사과를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다는 소식에 기쁜 걸까?

    어느 쪽이든 제우스의 목소리가 한결 가라앉았다. 이안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조금은 줄어든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보였다.

    [아무튼, 알겠다. 알려주지 않겠다는데 굳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뜸 들일 거 없이 그대가 바라는 것, 그리고 나의 책무인 열두 번째 과업을 시작해 볼까?]

    제우스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과업, 열두 번째 과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으니, 긴장하기 싫어도 긴장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리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전에, 칼리두 와탕카, 네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예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더군.]

    “하문하십시오. 제우스 님.”

    [올드 가드.]

    올드 가드.

    마치 그 옛날 장인들처럼 죽을 방법을 찾아달라며 자신의 갈빗대까지 선물했던 존재.

    그 이름이 언급되었고, 사실 이안은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게, 올드 가드는 본디 제우스의 소유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걸 튀폰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써먹어야만 했으니, 의구심이 생길 법도 했다.

    [그대가 내 올드 가드의 빈껍데기를 여럿 부리더군. 얼마 전까지 프로메테우스를 감시했고, 지금은 타르타로스의 간수가 된 그 티탄의 파편을 말이지. 이게 다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나?]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을 교체하러 갔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저한테 이 갈빗대를 맡기며 부탁하더군요. 죽고 싶다고, 부디 죽어서 쉴 방법을 찾아달라고요.”

    이안이 여기기에, 제우스는 분명 올드 가드를 불러 심문했을 거다.

    어떻게든 진실을 뜯어냈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괜히 말을 지어내 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을 터.

    [해서, 찾아줬나?]

    “그럴 리가요. 그랬으면 그분이 타르타로스의 간수가 되었을까요?”

    이안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올드 가드의 갈빗대를 꺼내며 읊조렸다.

    “그냥 받아만 뒀습니다. 과업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물론 실제로는 생각보다 별 쓸모가 없긴 했습니다만…….”

    [그랬겠지. 기껏 그 갈빗대에서 태어나는 놈들이라고 해봐야 빈껍데기 뼈다귀에 불과할 터이니.]

    이안의 말이 올드 가드의 말과 별다를 게 없어서일까? 제우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뭐, 좋다. 놈은 이미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대가를 치렀고, 네놈은 죄가 작으니, 이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지.]

    첫 번째 질문이 끝났다. 그러나 제우스의 뉘앙스로 볼 때 두 번째 질문 역시 남아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편히 말씀하십시오.”

    [하데스.]

    ……하데스?

    갑자기 그 이름은 왜?

    더군다나 심상치 않다.

    하데스의 이름 석 자를 읊조리는 목소리, 말투, 분위기까지 전부.

    올드 가드의 이름을 언급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무거움이었다.

    [놈과 무얼 꾸미고 있지?]

    “……네?”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와 칼리두 와탕카, 두 잡놈이 머리를 맞대고 무얼 꾸미는 중이냔 물음이다.]

    “……!”

    이번만큼은 이안도 평정심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대한테 들러붙어 있던 하데스와의 연결은 내 앞에서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아라. 올드 가드와의 약속을 헌신짝마냥 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난관이다.

    이를 어찌 헤쳐나가면 좋을까?

    ‘올드 가드와는 다르다. 하데스는 제우스가 손쉽게 고문하고 진실을 밝혀낼 만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야. 그렇다면…… 아직 아무것도 모를 확률이 높을 거야.’

    이안이 확신을 품었다.

    확신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하데스와는 일종의 거래를 했었습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될 만한, 꽤 나쁘지 않은 거래였죠.”

    [어떤 거래를 말하는 것이지?]

    “망자를 원했습니다. 강한 격을 갖춘 이들이 죽어서 명계로 떨어지길 바랐죠. 그 이유는 제우스 님께서도 짐작이 가시리라 봅니다.”

    [으음……!]

    어려운 짐작이 아니다.

    하데스는 명계의 왕이다.

    명계가 곧 그의 영역이니, 망자는 곧 그의 백성이자 군인이 아닌가?

    왕이 백성을 늘리고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저는 그 목적을 돕는 대가로 과업 수행에 도움이 될 만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주로 지배자 여러분의 성향이나 선호하시는 공양물, 임무 등을 미리 들을 수 있었지요.”

    진실과 거짓의 혼합, 누군가를 속일 때는 이만한 게 또 없을 터.

    [그게 전부인가?]

    “네, 전부입니다.”

    […….]

    제우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

    불편한 침묵, 공허한 응시.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방금 그 답변은 세 번째 질문의 답변까지 듣고 판단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하문하십시오.”

    [그대는 누구의 편인가?]

    “……편 말씀이십니까?”

    [그래, 편.]

    다짜고짜 편 가르기야?

    무슨 어린 애들도 아니고.

    자칫 한숨을 내쉴 뻔했던 이안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히 올림포스 전당, 그리고 시계탑이지요. 죽은 자들만 득실거리는 땅, 제 취향 아닙…….”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어떤?”

    [나와 내 동족들이 속한 세상, 이곳 슈페리어 차원의 편에 서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설마……?

    [네놈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벌레들의 세상, 첫 번째 중간계 편에 계속 서 있을 작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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