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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83화 (28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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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97화

    “아버지께서 다녀가셨나 보네요.”

    마당에 피어난 싹을, 그리고 그 싹이 빠르게 자라나 커다란 황금 사과나무로 거듭날 때쯤.

    “이런 사과나무, 우리 세계에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과거 30년이라는 세월을 되감았던 이안과 똑같은 나이 열두 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요하나 페이지가 처음 보는 사과나무 앞에서 읊조렸으니, 그 대상은 함께 온 붉은색 머리칼의 중년인이었다.

    “이렇게까지 황금에 가까운 건 없지. 비슷한 건 있을지 몰라도.”

    붉은 머리 중년인은 키가 무척 컸는데, 놀랍게도 파충류의 그것과 비슷한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친숙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분명 그대 부친의 기운인데,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격인가 보군.”

    “그러게요. 저희가 연구 중인 힘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푸른색 로브 차림의 요하나가 사과나무를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이내 저택 쪽으로 향하며 읊조렸다.

    “……아무튼,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가족들 얼굴 살짝 보고, 챙길 거 챙겨서 나올 테니까요.”

    “천천히 나와도 된다. 오랜만에 인간들의 도시나 구경하지 뭐.”

    “아저씨, 길 잘 모르잖아요.”

    “코딱지만 한 도시다. 대충 걷다 보면 거기가 거기지. 예전에 에스펠 따라서 한 번 와본 적도 있고.”

    “그래요?”

    “너 태어나기 전에 일이다.”

    “완전 할아버지.”

    “…….”

    “괜히 혼자 길 잃어버리지 마시고요. 진짜 금방 나올 거니까 그냥 계셔요. 우리, 도시 구경이나 할 만큼 한가로운 상황 아니잖아요?”

    “……여기서 기다리지.”

    “잘 생각하셨어요.”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그 한마디를 남긴 요하나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빠르게 돌아왔다.

    기껏해야 15분 남짓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일찍 나온 거 아니냐? 너나, 너희 가족들이나, 많이 보고 싶었을 텐데.”

    “그래 봐야 반년 만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벌써 10년 넘게 가족들을 못 보고 계세요. 가능해도 꾹 참으시고, 사지에서 고생하고 계시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요하나의 물음에 붉은 머리칼 중년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자기 입으로 직접 설명하고 싶은 눈치였으니까.

    “가족들 얼굴을 보면 무너질까 봐 그런 거예요. 아마 지금도 꾸역꾸역 버티고 계시겠죠. 모든 걸 다 끝낸 다음, 그때 만나려고요.”

    요하나는 안다.

    아버지가 어떤 심정인지.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진다는 거.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거든.

    “물론 그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이길 확률보다 패배할 확률이 더 높잖아요? 그럴 바에는 그냥 소중한 사람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잖아요. 이안 페이지.”

    이안 페이지.

    인류 최초의 8클래스 마법사.

    그리고 이제는, 8클래스라는 말이 하찮아 보일 만큼 아득한 경지에 올라선 인류 최강의 전력.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요하나 자신의 아버지가 고군분투 중이다.

    확률이 높지는 않을지언정, 한 번쯤 걸어볼 만한 승부수 아닌가?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그 길에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아요. 그러려면 노력해야죠. 자는 시간 줄이고, 쉬는 시간 줄이고, 허투루 보내는 시간 다 줄여서 지금보다 강해져야만 해요. 그래야…… 나중에 아버지께서 도움을 요청하셨을 때, 그때 가장 선봉에 서 있지 않겠어요?”

    요하나의 목표는 간단했다.

    어떻게든 강해진다. 훗날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만큼 힘을 키운다.

    비록 올리버를 포함한 여러 각성자들처럼 각성하지는 못하였으나, 그게 없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자신은 무려 그 이안 페이지의 딸이며, 시간까지 되돌아왔잖아?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버지처럼.

    “그러하느냐.”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어준 붉은 머리칼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요하나가 챙겨서 나온 짐을 들어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더 할 말이 없지. 둥지로 돌아가자. 지금쯤이면 네가 그토록 원했던 그 이상한 수련, 준비되었을 것 같으니.”

    “좋아요. 아, 그리고 이거.”

    곧장 텔레포트 주문부터 발동시키려던 요하나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중년인한테 건넸다. 처음 보는 나무에서 딴 황금 사과였다.

    “어머니께서 주셨어요. 되게 달콤하대요.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선 그뿐만이 아닐 것 같긴 하지만요.”

    “……확실히.”

    그 말이 실로 옳다.

    이건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느껴지는 힘이 너무나 강력하다.

    이런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연구할 가치가 있겠군.”

    “이미 진행 중이래요. 더글라스 삼촌이랑 황실 연금술사들이요.”

    “고작 인간들의 연금술만으로 되겠느냐? 내 친히 일족의 학자들을 시켜 연구해 보마. 어쩌면 굉장한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우리 더글라스 삼촌 무시하는 거예요? 마법은 이안 페이지! 검은 올리버 레이우드! 연금술은 더글라스! 이게 상식이거든요?”

    “흥, 인간들의 상식일 뿐.”

    콧방귀를 뀐 중년인이 손짓했다.

    그러자 붉은색 기운이 그와 요하나를 집어삼켜 버렸으니, 둘은 곧 전혀 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바로 리시스 라덴쥬를 필두로 한 용 일족의 보금자리.

    ‘드래곤 레어’였다.

    “여긴 언제 와도…… 더워요.”

    “원래 도마뱀이 냉혈동물이거든.”

    “……지금 그거, 자학개그 맞죠?”

    “커흠……!”

    요하나 페이지의 실질적인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올리버 레이우드가 이안의 뒤를 이어 슈페리어 차원으로 떠난 후, 요하나는 새로운 수련 파트너로 용 일족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와 그 휘하 일족을 선택했다. 이안도, 올리버도 없는 첫 번째 중간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으니 말이다.

    [오셨군요. 일족의 수장이시여.]

    [생각보다 일찍 오셨습니다.]

    [오, 인간 소녀도 돌아왔군.]

    [가족들은 잘 만나고 왔나?]

    수많은 용들의 환영 속에서, 요하나 왈 ‘자학개그’를 펼쳤던 붉은 머리카락의 중년인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이들 모두의 수장, 리시스 라덴쥬였다.

    [지금부터 그대들이 그토록 아끼는 인간 소녀, 동맹의 딸 요하나 페이지가 요청했던 환영 마법을 펼친다. 그것이 환영 인사보다 더 인간 소녀를 기쁘게 해줄 터이니.]

    수장의 명령에 둥지 내 모든 용 일족이 움직였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미리 정해놓은 자리를 찾아간 뒤, 일족 모두의 마나를 연결하여 대규모 환영 마법을 일으켰다.

    “오…… 진짜 비슷하네요?”

    그 환영 마법은 이안의 기억 속 지배자들을 본떠 만든 거인의 형상이었는데, 단순한 환영만은 아닌지 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정말 슈페리어의 지배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사실적인 환영.

    바로 이것이 요하나가 용 일족에게 주문한 ‘훈련’의 일환이었다.

    “물론 그들만큼 강할 순 없겠으나, 호락호락하지도 않을 게다. 우리 또한 예전보다는…… 그대의 아버지와 힘을 합쳐 거악을 몰아냈을 때보다는 훨씬 더 강해졌으니.”

    무려 용 일족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든 지배자의 환영이다. 그 환영이 발휘하는 권능 역시 용 일족 전체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일 터.

    더군다나 용 일족 중에는 리시스 라덴쥬를 포함하여 ‘각성 현상’을 겪은 이들 또한 많았으니, 그 전력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으리라.

    “기대할게요. 도마뱀 아저씨.”

    “……내 무덤을 내가 팠군.”

    고개를 저은 리시스 라덴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인간이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한 마리 용으로 거듭나 지배자의 환영 중 가장 꼭대기인 머리가 되었으니, 마침내 요하나가 요구했고 용 일족이 준비한 환영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그대가 바랐던 모든 그림이 완성되었다. 요하나 페이지.]

    거대한 지배자의 환영이 요하나에게 말했다. 여러 용들의 목소리가 뒤엉킨 듯 들리는 음성이었다.

    [이제 무얼 하면 되지?]

    무얼 하면 되겠느냐?

    그 물음에 요하나가 피식 웃었다.

    그걸 꼭 물어봐야 알까? 이 구도에서 뭘 할지는 너무 당연하잖아?

    “그야 당연히…….”

    눈앞에 우뚝 선 지배자의 환영.

    그 거인의 눈높이만큼 떠오른 요하나 페이지가 머리 위 허공에 커다란 얼음덩이를 빚어내며 말했다.

    “저랑 붙어주셔야죠.”

    [언제까지?]

    “제가 이길 때까지.”

    [가능할까? 이 환영은 우리 일족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 그대의 아비라면 모를까, 그대만으로는…….]

    “그러니까 수련이죠.”

    […….]

    “이미 아시겠지만, 제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잖아요? 과연 어디까지 닿을지 확인하고 싶어요. 그래야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판단?]

    “과연 제가 아버지의 계획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요.”

    ……글쎄.

    적어도 리시스 라덴쥬가 아는 이안 페이지라면, 그 어떤 대의나 명분보다 제 주변의 안위만을 우선시하는 좁아터진 그릇의 수호자라면, 아마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을 것 같다만…… 굳이 그 얘기를 지금 언급해서 초 칠 필요는 없겠지.

    아, 참고로 좁아터진 그릇은 리시스 라덴쥬의 평가가 아니다. 이안 페이지 본인이 스스로 말한 거다.

    [그런가.]

    “네, 그런 거죠.”

    [그럼 진심으로 상대를 해줘야겠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말이야.]

    “지금까지는 봐주셨단 뜻이에요?”

    [당연하지. 제아무리 이안 페이지의 핏줄일지언정 어찌 인간 꼬맹이 상대로 전력을 다하겠느냐?]

    “오, 방금 하신 그 말씀, 되게 전형적인 용 같았어요. 뭐랄까, 엄청 오만하고, 자존심 높은……?”

    [……그런 용이 어디 있다고? 이 세계에 용은 우리가 전부인데.]

    “이야기책에요.”

    […….]

    “루카 루카라고 유명한 소설가가 쓴 책에 나오는데, 괜히 유명한 게 아닌가 봐요. 어떻게 상상만으로 도마뱀 아저씨들이랑 똑같은 캐릭터를 만들었을까요?”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인류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용 일족이지만, 요하나한테는 그저 놀리기 좋은 도마뱀 아저씨들일 뿐이었다.

    근데 이제 조금, 아니, 많이 강한, 뭐 그런 삼촌들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잘 부탁해요. 라덴쥬 아저씨, 아니, 용 일족 아저씨들!”

    올해 나이 12세 요하나 페이지.

    전생의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두 번째 삶은 오직 수련만으로 가득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력한 힘이 필요하단 사실을 몸소 깨닫고 돌아왔으니까.

    * * *

    ‘격’이란 것을 본격적으로 얻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안은 그 격과 마법을 융합하고자 틈틈이 노력해왔다.

    그 두 가지 힘을 조화시켜 완벽히 다룰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다른 지배자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강점이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우리 가족들의 저택 앞마당에 심어놓은 황금 사과나무다.’

    그거 아는가?

    본디 황금 사과는 인위적으로 재배할 수 없다. 제아무리 사과에서 씨를 꺼내 심는다 해도 그게 사과나무로 자라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직 자연적으로만 발생하는 나무였으니, 신에 가까운 권능을 가진 지배자들조차 쉽게 얻을 수 없을 만큼 진귀한 열매가 되었던 거다.

    한데 이안은 그 황금 사과나무를 본인의 뜻대로, 정확히는 격과 마법의 조화로 싹을 틔워냈고, 결국 완벽한 황금 사과나무 한 그루를 탄생시켰으니, 이는 지배자들과 차별화된 이안만의 고유 권능이었다.

    ‘정확히는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아주 강력한 권능의 시작 말이야.’

    이안과 이안의 고향 땅을 구원해 줄 유일무이한 돌파구이자 열쇠.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는 않았다.

    지팡이도 그렇고, 권능도 그렇고.

    역시 이름 짓는 게 제일 어렵다.

    ‘그 힘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지배자의 격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절실함이 이안을 다시 한번 올림포스 신전으로.

    열한 번째 과업의 계시자 포세이돈의 석상 앞으로 이끌었다.

    이번 과업을 완수하면 앞으로 남은 건 마지막 열두 번째 과업뿐.

    첫 번째 목적 달성이 코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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