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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9화 (27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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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93화

    거기까지였다.

    이제 누구도 이안의 행보를 막지 못하였으니, 이는 제우스와 오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더 욕심부리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체면이 종잇장처럼 구겨질 테니까.

    [우리는 뜻을 모았네. 수행자여. 이제 그대의 판단대로 하시게나.]

    하데스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나중에 만나면 또 동업자 정신이 어쩌고 할 걸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도움이 되었다. 인정한다.

    “그럼 더 이상 반대하시는 분이 없는 걸로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바야흐로 막강한 고대괴수 튀폰의 격이, 그 증오로 얼룩진 시뻘건 아지랑이가 생기를 잃은 헤라클레스의 육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쿨럭……!]

    시작은 각혈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만신창이가 된 육신이 시퍼런 피를 잔뜩 토해냈다.

    낡은 피를 빼고 새 피를 만든다.

    다 죽어가는 몸을 회복하고 새로운 격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다.

    모름지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던가?

    콰득, 콰득, 콰드드드득……!

    물론 새 부대를 만드는 일은 피 한 번 빼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절차와 담금질이 남았으니, 두 번째는 바로 육신의 전반적인 재구성이었다.

    뼈와 내장이 뒤틀리고 근육과 피부가 찢어졌다가 회복됨이 수백, 수천 번씩 반복되기 시작했으니까.

    튀폰의 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그릇이 되는 담금질인데, 대부분 이 과정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마 이안이 결정체를 먹었다면 여기서 몸뚱이가 터져 버렸으리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물론 그 과정의 고통은 헤라클레스한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 미친 듯이 울부짖는 저 비명 소리가 증거였다.

    파스스스스스스……!

    괜히 이 과정을 담금질에 비유한 것이 아니라는 듯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열기가 헤라클레스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죽 뜨거우면 이안조차 한 발짝 물러나겠는가?

    번쩍!

    격에 어울리는 그릇이 되기 위하여 변형되고 담금질하기를 수차례.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튀폰의 격이 헤라클레스의 격과 융합되는 일만 남은 상황.

    감겨 있던 헤라클레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본연의 푸른 안광과 튀폰의 격으로부터 뿜어지는 시뻘건 안광이 한데 어우러져 혼탁한 색을 빚었는데, 그 두 가지 빛깔은 마치 주도권 싸움이라도 벌이듯 서로 잡아먹고자 혈안이었다.

    ‘……안 먹길 잘했네.’

    지켜보고 있자니 괴롭다.

    동시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 본인이었으면 이 과정, 절대로 버티지 못하였을 거라고. 작금의 수준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지배자의 격을 갖춘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은 조금…… 어렵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이쪽 세계에도 믿을 만한 존재가 있기는 있어서.

    만약 한 명도 없었더라면 이 엄청난 격을 고스란히 제우스나 오딘 같은 잠재적인 적들에게 넘겨야 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이안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는 그때였다. 한참을 고통받은 헤라클레스의 상태가 조금씩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가장 먼저 혼탁했던 안광이 본연의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고맙다.]

    곧 생사의 기로에서 돌아온 헤라클레스가 몸을 일으키며 천천히 읊조렸다. 한층 더 묵직하게 내리깔린 목소리, 사뭇 달라진 분위기.

    모르긴 몰라도 더는 예전의 그 헤라클레스가 아닌 것 같았다.

    [칼리두 와탕카.]

    그는 미세하게나마 끊어지지 않았던 의식 속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봤고, 그 덕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누구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했다.

    [내 이 은혜는 반드시, 두고두고 갚아나가도록 하지. 어차피 그대 덕에 여분으로 얻은 목숨이니까.]

    짧지만 강렬한 약속과 더불어.

    튀폰의 격 중 일부를 소화한 그가 촉수에 포박된 지배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뿐일까?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튀폰의 증오를 먹고 자란 촉수들을 흙으로 돌려보냈다.

    오직 튀폰의 격을 소유한 존재만이 보여줄 수 있는 권능이었다.

    [제우스 님, 오딘 님. 양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분으로 받은 목숨이니만큼 한평생 시계탑을 위하여, 그리고 제 생명의 은인이 되는 칼리두 와탕카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분골쇄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튀폰의 격을 노렸던 제우스와 오딘에게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칼리두 와탕카, 즉 이안에 관한 언급을 빼먹지 않았다.

    적당히 눈치를 봐서 생략할 법도 하건만, 그의 사전에 몸을 사리는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대의 영웅적인 행보에 합당한 보상이지. 그럼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다. 헤라클레스여.]

    그런 외골수적인 면모에도 제우스는 눈썹만 조금 씰룩거릴 뿐.

    지극히 평온한 반응만을 보였다.

    헤라클레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아직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단, 그대의 격에 변화가 생긴 만큼 새로 평가받을 의무가 있다. 시계탑의 명부는 물론 평의회 합류가 결정되는 중요한 절차이니, 모쪼록 돌아가는 즉시 행하였으면 좋겠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좋다. 채비하여 시계탑으로 오도록. 내 먼저 가서 준비할 터이니.]

    [곧 뵙겠습니다.]

    [음.]

    고개를 끄덕거린 제우스가 헤라클레스 다음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수행자여.]

    “하문하십시오. 제우스 님.”

    [그대와도 나눌 이야기가 꽤 많다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군. 조만간 호출할 터이니 기다리도록.]

    할 일이 많아졌다.

    헤라클레스의 달라진 격에 관한 문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튀폰이 부활한 배경과 갑작스레 등장한 눈먼 아버지 등 이래저래 확인하고 처리할 일이 수두룩했다.

    이러니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이안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음.]

    그렇게 모든 지배자가 슈페리어의 심장으로 돌아간 직후, 졸지에 둘만 덩그러니 남은 이안과 헤라클레스가 서로를 넌지시 바라봤다.

    [……다시 한번 인사하마. 진심으로 고맙다. 칼리두 와탕카. 그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인사는 됐고, 아까 하신 말씀이나 잘 지키세요. 여분으로 받은 목숨, 저를 위해 쓰겠다던 그거요.”

    [당연한 이야기다. 덕분에 충만해진 내 모든 격을 걸고 맹세하지.]

    아테나에 이어서 헤라클레스까지 자신의 격을 걸고 맹약을 맺었다.

    딱히 바라지는 않았다만, 알아서 해준다니 거부할 이유도 없으리라.

    “좋네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헤라클레스 님.”

    이안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동시에 헤라클레스를 훑으며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근데, 얼마나 강해지신 겁니까? 각 전당의 수장씩이나 되는 양반들도 저렇게까지 욕심을 부렸던 거 보면, 모르긴 몰라도 급 자체가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

    그것은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호기심이었다.

    [글쎄, 자세한 건 나도 확인을 해봐야 알겠다만, 적어도 당장 느껴지는 힘의 크기로 보자면…….]

    헤라클레스가 잠시 눈을 감고 달라진 격의 크기를 면밀히 살폈다.

    그러고는 잠시 후, 이안의 질문에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한 떨림이 동반된 목소리였다.

    [……한평생 닿고 싶어도 닿지 못했던 곳에 닿을지도 모르겠군.]

    닿고 싶어도 닿지 못했던 경지.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던 격.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비천한 수행자 출신으로는 절대 넘어설 수 없었던 태생적인 한계치.

    [최상급 지배자의 경지에.]

    * * *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더니만, 고작 한 번의 계획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벌써 몇 개야?]

    명계의 궁전, 그곳에서도 가장 깊숙한 지하 서재로부터 하데스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동석한 이들 말고는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까딱 잘못했다간 나까지 죽을 뻔했다고. 어떻게 생각해? 프란.]

    그 동석자 중 한 명은 바로 하데스의 부하가 된 프란 페이지였다.

    “글쎄요. 제가 아는 하데스 님이라면 안전장치를 수백 겹씩 준비해 놨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뭐, 그야 그렇긴 한데, 아무튼 위험했다고! 기껏 타르타로스까지 내려가서 그놈 하나 파악하지 못하고 뭐한 거야? 일을 맡겼으면 똑바로 해야지. 똑바로! 그냥 풀어주기만 하면 그걸로 끝인가?]

    “끝이죠. 풀어주고 오는 게 제가 받은 명령 전부였으니까요. 그놈이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 무얼 준비하고 있었는지, 그런 거 알아내란 말씀은 없지 않으셨습니까?”

    [하! 부자가 쌍으로 날 우습게 아는군. 한마디를 안 져. 한마디를.]

    “제 고향에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 여기도 있으려나요?”

    하데스 앞에서도 긴장하기는커녕 특유의 능글맞은 성격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프란이었다.

    둘의 대화로 미루어보건대, 아무래도 튀폰의 부활에는 하데스와 프란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여튼 아주 마음에 안 들어. 제우스와 오딘이 튀폰의 격을 독차지하는 게 싫어서, 무엇보다 네놈 아들이란 놈이 원하는 것 같기에 동조는 해줬다만, 솔직히 그냥 없애는 게 나을 뻔했어. 헤라클레스 그놈, 죽어서 명계로 떨어졌다면 정말 쓸모가 많았을 텐데…….]

    하데스가 진심으로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다시 생각해도 옳은 판단이었는지 영 긴가민가했다.

    [더군다나 평생 시계탑 꼭대기에 틀어박혀서 잠이나 주무시던 양반이 행차할 줄이야. 설마 뭘 좀 알고 왔나? 내 계획이라든지…….]

    “낸들 압니까? 저는 아직 그 아버지란 양반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본 적이 있어야지요.”

    [언제 봐도 참 기분 나쁘게 생겼어. 눈깔 괴물 주제에 풍기는 위압감이 아주 대단하다니까? 한 번씩 마주할 때마다 겁부터 덜컥 나는 게…… 자존심 상한단 말이지.]

    “하데스 님께서 두려움을 느낄 정도면…… 확실히 뭔가 있긴 있나 봅니다. 괜히 궁금해지는데요?”

    [아서라, 내 장담하는데 네놈은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정신이 나가버릴 거다. 죽을지도 모르고.]

    “그 정도입니까?”

    [그 이상이다.]

    “어휴, 살벌하네요.”

    과장된 표정과 몸짓.

    하데스 앞에서도 여유가 넘치는 프란의 눈빛이 일순간 번뜩거렸다.

    “……그런데 좀 이상하군요.”

    [음? 무엇이?]

    “정말 그런 괴물이 나타났다면 말입니다. 제 아들놈은 거기서 어떻게 버틴 걸까요? 꽤 강해졌다고는 해도, 아직 수행자일 뿐일 텐데.”

    [……!]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안 페이지, 그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공포에 떨지도 않았고, 정신이 나가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상황을 주도해 나갔지. 그건 단순하게 정신력이 좋다고, 참을성이 강하다고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야. 정말 눈먼 아버지와 마주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하데스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어쩌면 더 일찍부터 품었어야 할 의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품기는 했다. 그저 흐지부지 넘어갔을 뿐.

    ‘오직 눈먼 아버지에게만 허락된 크로노스의 접속 권한을 갖고 있으며, 그 존재와 처음 마주하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필멸자……?’

    ……이놈.

    정체가 뭐지?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데스한테 프란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인사했다. 덕분에 하데스도 당장 처리할 일이 떠오른 듯 같이 일어섰다.

    “저야 타르타로스에 처박아놓은 가짜나 좀 점검하러 가려는데, 하데스 님께서는 어디 가시게요?”

    [명계에 떨어졌어도 튀폰은 튀폰이잖아? 워낙 자아가 세서 말이야. 지금부터 꾸준히 복종시켜야지.]

    “아아, 바쁘시겠습니다.”

    [보람찬 일이지.]

    비록 몇 가지 의문과 변수가 남았을지언정, 이거 하난 확실했다.

    명계는 목적을 이루었다.

    본디 타르타로스 깊숙한 곳에 감금되어 있었던 튀폰의 영혼을 명계로 빼돌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비록 되살아난 튀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지배자들의 사망을 유도한다든지, 기타 그밖에 몇몇 계획들은 이안의 관여와 아버지의 등장, 생각보다 더 강했던 튀폰의 힘 등 여러 변수 탓에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럼에도 이만하면 꽤 그럴듯한 성공이 아닐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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