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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8화 (27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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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92화

무려 튀폰이 남긴 격이다.

전부를 차지할 순 없을지언정, 그 일부만 흡수해도 어마어마할 터.

어쩌면 단숨에 여기 모인 지배자 중 대부분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내가 튀폰의 증오에서 자유로웠던 까닭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만, 무슨 수로 튀폰이 되살아났는지, 어째서 눈먼 아버지가 여기에 나타난 건지는 알 도리가 없군.’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배자들 처지에서는 굉장히 중차대한 입장인데도 그랬다.

어째서냐고? 간단하다. 튀폰의 격이 담긴 정수, 이 구체가 문제다.

‘혹시라도 이 구체를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절실하다는 뜻이겠지. 고대의 괴수 튀폰이 되살아났고, 눈먼 아버지란 존재가 다녀갔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만큼.’

아주 오래전.

튀폰이 처음 죽었을 때.

그때는 이 격의 정수를 제우스와 오딘이 나누어 먹었으니, 여태껏 각 전당의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구체였다.

한데 그때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높은 격이 쌓인 결정체가 모두의 눈앞에 나타났다.

시계탑 내 서열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그런 물건이 말이다.

‘가만, 그런데 왜…….’

사실 평소였다면 전전긍긍할 것도 없다. 저들은 엄청난 힘을 가진 최상급 지배자 아닌가? 그냥 힘으로 빼앗고 먹어버리면 그만일 터.

문제는 촉수다. 튀폰의 증오를 먹고 자란 저 검붉은 촉수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었으니까.

‘하물며 아직도 저 수많은 지배자를 포박하고 있다. 이미 숙주가 죽었는데도 말이지. 그렇다는 건 아직 튀폰의 증오만큼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데…….’

설마 이 피처럼 검붉은 구체.

격의 결정체가 아직 남아 있어서?

‘결국 이 결정체가 사라져야 하는 건가? 누가 먹어치우든, 아예 없애버리든, 그밖에 다른 방법을 쓰든.’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하나다.

이안 자신이 먹어치우는 것.

그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고향을 지킬 힘을 얻는 것이고, 그 목적 때문에 과업을 완수하는 중이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겠지.

[자, 잠깐! 수행자여. 멈춰라.]

[우리가 튀폰의 격이 탐나서 이러는 줄 아느냐? 그걸 먹으면 네놈은 죽는다. 수행자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격이 아니거늘……!]

오호, 이것들 봐라?

이제 죽음으로 협박을 해?

눈에 빤히 보이는 수작이다.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이리라.

“궁금하네요. 정말 감당하지 못하고 죽을지, 아니면 소화해 낼지.”

[……수행자, 설마 지금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안의 말에 제우스가 답했다.

그는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만큼 완벽한 표정 연기를 보여줬다.

[나 원 어이가 없어서. 수행자 교육을 잘못했군. 우리 애들이었으면 저딴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텐데. 이봐, 칼리두 와탕카.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내려놔. 아니, 이쪽으로 가져와. 그럼 내 특별히 이번 일은 그냥 눈감아주도록 하지.]

반면 오딘은 말까지 더듬었던 처음과 달랐다. 지배자의 권위로 하여금 이안을 찍어 누르고자 했다.

“정말 제가 취할 수 없다면, 이 결정체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부터 알려주십시오. 그래야 드리든 말든 고민이라도 할 것 아닙니까?”

[그, 그야…….]

이안의 물음에 쉬이 대꾸하지 못한다. 서로 눈치만 살피기 바쁘다.

이럴 줄 알았다.

‘역시 내가 먹어야…….’

이안의 생각이 확고해지는 그때.

[수행자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누군가 황급히 끼어들며 말했다.

올림포스 전당의 최상급 지배자.

그나마 믿을 만한 헤스티아였다.

[저들의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랍니다. 수행자님께서는 아직 그 튀폰의 격을 감당할 수 없어요.]

“죽는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튀폰의 격이에요. 우리 지배자 중에도 감당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솔직히 극소수일 겁니다.]

“그렇군요.”

헤스티아의 말이라고 무조건 다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저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확실히, 여기서 죽으면 의미가 없다. 명계에 떨어지고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 그건 확인된 바가 없으니…….’

여기서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매우 크나큰 도박이다. 물론 이안은 지금껏 살아오며 수많은 도박 수를 던져봤으나, 그것들은 모두 이안의 계산상 확률이 높은 도박이었다.

‘지금 하고는 상황이 다르지.’

고민이 된다.

어찌하면 좋을까?

“헤스티아 님.”

[말씀하세요. 수행자님.]

“그럼 제가 이 구체에 담긴 격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보관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안전하게, 누구한테도 빼앗기지 않고 말이지요.”

정확히는 너희 지배자들한테 뺏기지 않을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없습니다. 튀폰의 격은 저희한테도 흔치 않은 기회인지라, 아마 이 포박이 약해지는 순간 너도나도 수행자님을 노릴 거예요. 그 튀폰의 결정체를 빼앗기 위해서 말이죠.]

헤스티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또한 지극히 솔직하기도 했다.

[헤스티아, 지금 무슨 소릴……!]

[도대체 무슨 짓인가? 설득하지는 못할망정 부추기다니……!]

[그러고도 그대가 시계탑 평의회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소?!]

[헤스티아, 부디 명심하시오. 우리 아스가르드는 이번 일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요.]

그녀의 솔직함은 동료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이는 곧 헤스티아의 말이 진실이란 증거이기도 했다.

‘이를 어쩐다?’

먹으면 죽는다.

먹지 않으면 빼앗긴다.

그럴 바에는 환심이라도 살까?

제우스한테 주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보아하니 간절해 보이는데.

“헤스티아 님, 죄송한데 한 가지만 더 여쭈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말씀해 보세요.]

“제가 만약 이걸 양도한다면, 누구한테 드리는 게 좋겠습니까?”

[……어려운 질문이군요.]

헤스티아가 고민에 빠졌다.

그리 길지 않은 고민이었다.

[솔직히 누구한테 양도하든, 수행자님께 좋을 건 없다고 봐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그럼 헤스티아 님은요?”

[네? 무슨…….]

“제가 이 결정체를 헤스티아 님께 드린다면, 다른 지배자분들과 다른 점이 있으시냐는 물음입니다.”

[……!]

이번만큼은 헤스티아도 쉬이 답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한테도 튀폰의 격을 취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당장 시계탑 내 서열이 폭등할 것이고, 그 높아진 서열로 할 수 있는 일 역시 참으로 많아질 터.

[모르긴 몰라도…… 다른 지배자들보다는 수행자를 더 챙겨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지배자치고 고마움을 아는 편에 속하거든요.]

자신의 장점을 어필한다.

그녀 역시 튀폰의 격이 탐났다.

과연 이안이 평가하기를 ‘가장 보통의 성향을 가진 지배자’다웠다.

[……하지만.]

“하지만?”

[저 혼자서는 수행자를 지켜 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 중 누군가한테 양도할 생각이시라면, 저보다는 제우스 님께 드리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그럼에도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어째서일까? 그 의중이 궁금하다.

[그래야 지배자들의 반발이 가장 적을 것이고, 수행자님께서 보복당할 확률도 낮아질 테니까요.]

누군가한테 넘기려거든 소속된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넘겨라. 그럼 아랫것들의 분노가 줄어들 터이니.

헤스티아의 조언을 요약하자면 그랬다. 매우 현실적이기도 했다.

“일리가 있네요. 동료분들 앞에서 이런 조언 해주시기 참 어려웠을 텐데,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지배자 중 이만큼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조언해 줄 이가 또 있을까?

적어도 지금껏 만난 이들 중에는 없을 거다.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음.”

잠시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마지막으로 손에 쥔 결정체를 바라봤다. 아쉽긴 한데, 별수 없다.

여기서 죽긴 싫으니까.

‘누구한테 줄지도 결정했고.’

사실 결심한 지는 제법 되었다.

헤스티아가 죽음을 경고했을 때 이미 정해놓았다. 아까부터 계속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거든.

다만 좀 더 동향을 살폈을 뿐.

‘내 결심은…….’

이안이 검붉은 촉수에 포박된 지배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이제 슬슬 튀폰의 촉수가 약해지고 있었으니, 조금만 더 지나면 촉수를 끊고 달려들 기세였다. 아무래도 이 이상의 여유는 어려울 것 같았다.

‘바로 이거다.’

이안이 등을 돌렸다.

지배자 중 누구한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물며 헤스티아조차 이안의 외면을 받아야만 했다.

어째서일까? 직접 먹으려고?

죽음을 각오하기라도 했을까?

“…….”

아니, 아니다.

이안은 튀폰의 격이 담긴 결정체를 직접 취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한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만신창이가 된 누군가의 곁에 앉았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목숨 걸고 시간을 벌어줬던, 하여 지금은 미약한 숨소리만 겨우 내뱉고 있는 헤라클레스였다.

그는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계속 내버려 뒀다가는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컸다.

“헤라클레스는 시계탑과 올림포스 전당의 지배자로서 여러분의 동료입니다. 튀폰의 부활을 가장 먼저 알아챘으며, 그 사실을 목숨 걸고 알렸죠. 저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 말하며 헤라클레스의 큼직한 턱을 붙잡았다. 입을 열어 무언가를 먹이기 위함이었다.

“참으로 영웅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는데, 그런 그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위대하고 고결하신 우리 지배자분들께서 그의 죽음을 외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여러분은 아직 튀폰의 촉수에서 자유롭지 않으시네요. 풀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고, 헤라클레스 님께서는 죽어가는 중이니…….”

이안이 헤라클레스에게 먹이고자 하는 것은 바로 튀폰의 결정체.

거기에는 근거가 있었다.

“제가 알기로 지배자의 죽음은 격이 다 소모되는 순간에 찾아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인즉, 소모된 격을 다시 채워 넣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아닙니까?”

누구도 쉬이 대꾸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사실이니까.

“저는 이 결정체로 여러분의 동료이자 영웅, 헤라클레스 님의 죽음을 막아볼까 합니다. 이대로 희생당하기에는 아까우신 분이니까요.”

또한 누구도 이안의 논리에 토를 달지 못했다. 여기서 토를 단다는 것은 곧 동료의 숭고한 희생을 외면하는 꼴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는 헤라클레스의 죽음이 정말 안타까워서가 아닌, 전적으로 체면의 문제였다. 시계탑의 모든 지배자가 지켜보는 순간 아니던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제우스 님.”

이안이 그 체면의 중심.

제우스에게 직접 물었다.

그가 허락하는 순간 모든 것이 정당해진다. 헤스티아의 조언처럼 결정체를 넘기지 않아도 말이다.

[…….]

찰나의 고뇌, 그리고 결단.

제우스가 나란히 서 있는 오딘을 바라봤다. 오딘 역시 제우스와 같은 생각인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수행자의 말이 옳다. 우리는 헤라클레스의 희생을 결단코 외면하지 않아. 그를 살리고 공을 치하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지.]

글쎄, 진심일까?

적어도 표정만큼은 진심이다.

과거의 그 상아탑주도 그랬고, 라그나르도 그랬고, 오랫동안 높은 위치에 군림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표정 연기가 참 예술인 것 같다.

[허나, 그런 이유로 튀폰의 격을 헤라클레스에게 허락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라는 것도 나의, 그리고 우리 시계탑의 판단이다. 따라서 튀폰의 격이 담긴 결정체는 나와 오딘, 각 전당의 수장이 취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지. 그 힘으로 포박을 풀고 즉시 상태부터 살핀다면, 헤라클레스의 죽음이야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경이롭다.

말투, 표정, 목소리 한 점 변치 않고 뻔뻔한 말들을 내뱉는다.

그 와중에 자신과 동급인 아스가르드의 수장 오딘을 자연스레 포섭함으로써 반발까지 차단해 냈다.

[자, 그러니 어서 그 결정체를 이쪽으로 가져와라. 내 그대에게도 추후 넉넉히 보상하여 헤스티아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할 터이니.]

제우스가 촉수의 틈바구니를 비집으며 한쪽 손을 힘겹게 뻗었다.

더 높은 격을 향한 제우스의 갈망은 가히 집착에 가까워 보였다.

[……그건 아니 될 말이지.]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제우스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나섰다. 그는 올림포스의 삼황이자 명계의 왕, 하데스였다.

[언제부터 자네의 개인적인 욕심이 우리 전체의 뜻이 되었지? 아직 아무런 상의도 한 적 없잖아?]

[하데스, 이건…….]

[저번에도 그러더니만, 설마 또 욕심을 부릴 줄이야. 나는 도저히 용납하기가 어렵군. 특정 지배자들이 더 높은 격을 독차지하는 이 불합리한 구조 말이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취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기껏해야 두 명이 다지. 그 이상으로 쪼갰다가는 아예 소멸을 해버리는…….]

[차라리 그게 낫지. 아예 없어지는 거. 그럼 누구도 갖지 못하잖아? 그거야말로 공평하겠구먼.]

[자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뭐, 사실 그 힘이 그냥 소멸하는 거야 아깝기는 하지. 하지만 헤라클레스를 살리는 데 쓰는 건 별로 아깝지 않을 것 같군. 저 수행자의 말처럼 영웅적인 행보를 보여줬잖아? 그만한 희생을 했으면 그만한 보상도 주어져야지. 별로 과해 보이지 않는걸? 딱 적절하다고.]

[…….]

하데스의 말에 제우스와 오딘을 제외한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살핀 하데스가 최후의 쐐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자네와 오딘이 우리보다 더 압도적인 격을 갖는 것보다는…… 그냥 헤라클레스가 우리와 동급이 되어서 새로운 무게추 역할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거든. 아마 다른 친구들도 동의할 거야. 믿지 못하겠으면 투표라도 한번 해볼까?]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제우스와 오딘이 튀폰의 격을 독차지하는 게 옳다고 여기는 친구, 거수하도록.]

[…….]

[아, 다들 꼴사납게 묶여 있어서 거수를 못 하지? 그럼 그냥 고개나 숙여봐. 알아서 체크할 테니까.]

갑자기 시작된 하데스의 투표.

그럼에도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일부 제우스와 오딘의 측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숙이지 않았다.

[그럼 반대로, 우리를 위해 희생한 동료이자 영웅을 살리는 데 쓰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친구들?]

이번에는 꽤 많은 지배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들도 헤라클레스의 희생을 치하할 생각보다는 그저 제우스와 오딘의 독주를 막고 싶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불공평하잖아? 서열의 횡포 그 자체다.

[자, 보았는가? 시계탑의 뜻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걸세. 자네의 독단과 욕심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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