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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7화 (27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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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91화

    이번에는 정말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검붉은 촉수가 하이모 산의 바닥을 뚫고 솟아오르는 순간, 이안은 이미 판단을 끝냈다. 절대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를 되돌리자고.

    하지만.

    “……어?”

    이번에도 실패했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달랐다.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닌, 지금 당장은 되돌릴 필요가 없기에 멈췄을 뿐이다.

    [네놈은…… 뭐지……?]

    그건 이안이 묻고 싶은 말인데?

    이쯤 되면 진짜 모르겠거든.

    ‘나도 내가 누군지.’

    혼자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최상급 지배자들조차 옴짝달싹 못 하는 저 검붉은 촉수로부터 오직 이안 혼자만 자유롭다는 거다.

    이걸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어째서 내 증오가 닿지 않는 거지……? 네놈은 분명 저 버러지들과 동류일 터인데……?]

    아무리 시도해도 마찬가지다.

    오직 한 명, 이안 페이지에게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를 않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튀폰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내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힐 수밖에. 그 수작질이 끝날 때까지 갈기갈기 찢어주마.]

    물론 증오로 빚어진 모든 권능이 먹히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흉측한 손아귀를 꿈틀거리며 이안에게 다가갔으니, 이제는 정말 결단이 필요했다.

    ‘크로노스를 되돌리느냐, 다른 방법을 찾느냐, 그 갈림길에 섰군.’

    이번에야말로 시간을 되감을까?

    처음부터 시작하겠지만 안전하다.

    여태껏 쌓아 올린 기억과 정보로 하여금 빠르게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 감이기는 한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여기서 조금만 더 견디면, 오직 이번 시간대에서만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하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재료를 부탁받은 것도, 그 재료를 얻으러 헤라클레스와 함께 온 것도, 그 재료가 있는 곳에 튀폰이 되살아나 있는 것도, 무엇보다 그 괴물의 증오가 이안에게 닿지 않는다는 점까지.

    변수, 변수, 그리고 또 변수다.

    변수에 변수가 자꾸만 반복된다.

    경험상 이런 흐름의 끝에는 반드시 어떤 ‘절정’이 존재하곤 했다.

    ‘물론 그 절정이 파멸일지 환희일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끝에 뭐가 있는지는 확인을 해봐야겠어.’

    마음을 굳힌 이안.

    그가 자세를 고쳤다.

    다행히 놈은 권능을 쓰지 못한다.

    이안에게 전혀 통하지를 않으니 물리적인 공격으로만 일관해 올 터.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를…….

    [죽어라.]

    콰과과과과과과광 - !

    ……착각.

    그래, 착각이었다.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는 착각.

    그것은 오만이고, 패착이었다.

    “큭……!”

    고대의 괴수 튀폰.

    한때 올림포스 일족과 아스가르드 일족을 공포로 몰아넣은 존재.

    그는 강했다. 권능이 없어도, 그저 일신의 무력만으로도 엄청났다.

    만반의 준비를 다 했던 이안에게 후회라는 감정을 선물할 만큼.

    쾅! 콰광! 콰과과광 - !

    튀폰이 본격적으로 날뛰었다.

    목표는 오직 하나, 이안 페이지.

    지난 수만 년간 타르타로스에서 이 땅의 모든 지배자를 몰살하고자 갈고 닦은 권능이 통하지 않는 건 매우 당혹스러웠으나, 그렇다면 그냥 두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이면 된다는 심리가 확실히 느껴졌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포기해라. 어차피 네놈들한테 희망은 없어. 이번에는 너희들이 타르타로스의 가장 깊숙한 심연 속으로 처박힐 차례다!]

    어쩌면 좋을까?

    지금이라도 시간을 되돌릴까?

    아니면 크로미에게 부탁을 할까?

    그때 그 단탈리온이라는 악마의 한쪽 팔뚝이라도 강림시켜달라고?

    (어렵다.)

    “……왜죠?”

    (저 못생긴 괴물이 너무 강해. 그분의 팔 한쪽으로는 힘들어. 이번 기회에 범위를 넓혀보는 건…….)

    “거절하겠습니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고개를 휘휘 저은 이안이 계속해서 몸을 던졌다. 조금이라도 멈칫하는 순간 튀폰에게 당하고 만다.

    ‘당장 시간을 되돌릴 게 아니라면 뭐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도망치기만 해서는 변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어.’

    물론 통제할 수 있는 선에서.

    통제가 불가하면, 하여 크로노스조차 되감을 수 없게 된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까.

    ‘가능한 건 다 해보는 수밖에.’

    이안이 먼저 아공간 주머니에서 올드 가드의 갈빗대를 끄집어냈다.

    바닥에 묻히는 순간 이안의 명령을 듣는 올드 가드의 빈껍데기가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니, 튀폰을 성가시게 만들 정도는 될 거다.

    “크로미 님.”

    (오냐, 강림의 범위를 넓…….)

    “아뇨, 강림은 됐고, 그냥 크로미 님의 힘이나 좀 빌려주십쇼.”

    (이봐라, 계약자야. 내 힘만 빌려서는 저 괴물을 이길 수가…….)

    “없겠죠.”

    (그걸 알면서…….)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

    “지배자들 앞에서 당신네 주인님 힘자랑시킬 생각 없으니까 체념하시고요. 어서 힘이나 줘봐요.”

    (……아, 알겠다.)

    언제든 필요할 때 힘을 제공한다.

    계약사항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

    마도서 크로미의 사특한 힘이 계약자 이안 페이지를 휘감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한 이안이 튀폰의 촉수에 포박된 지배자들한테 외쳤다.

    “번외 과업으로 받았던 권능 사용권들, 지금 쓸 수 있는 건 모조리 쓸까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만약 지배자들이 직접 권능을 발휘해줘야 할 경우 지금 이 상태로는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이용권이라는 명칭처럼 이미 저장된 무언가를 불러내는 형식이라면?

    지금처럼 앞이 막막한 상황에서 가장 쓸모 있는 무기가 되어줄 터.

    [……가능하다. 나의 벼락은 언제나 저 하늘 너머에 머물고 있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후긴과 무닌은 신전을 지키고 있으니…….]

    제우스와 오딘을 시작으로 번외 과업 당시 받았던 권능 이용권 당사자들이 대부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좋습니다. 그럼.”

    이안이 양팔을 쭉 펼쳤다.

    그러자 번외 과업의 보상으로 받아 챙겨두었던 지배자들의 권능.

    바로 그 이용 권한을 형상화한 카드 모양의 푸른색 별자리가 눈앞에 일렬로 가지런히 펼쳐졌다.

    “시작해 보죠.”

    아테나가 실로 오래간만에 죽음의 공포를 느낄 만큼의 권능들.

    이안이 그 여러 권능에 자신의 마법까지 담아서 고대 괴수 튀폰을 향한 총공세에 나섰으니…….

    쿠궁! 쿵! 쿠구구구구궁 - !

    날카로운 벼락과 커다란 까마귀 두 마리, 태양으로부터 쏘아진 뜨거운 광선, 튀폰의 머리를 향하여 날아드는 망치,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유령 군대, 그리고 이안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의 마법까지.

    이안은 앞서 다짐했던 것처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냈다.

    통할지 말지를 떠나서, 지금은 이 변수의 끝을 보는 것이 먼저니까.

    [하하하! 살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구나. 그게 정녕 네놈이 보여줄 수 있는 전부란 말이더냐?]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

    이안은 결국 거듭된 변수의 끝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제 정말 남은 방법이 없다. 오직 크로노스를 되감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터.

    ‘……되돌리자. 당하기 전에.’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

    그 흐름을 되감는 재구축 마법.

    이미 한 번 되감았으니, 지금 또 되감는다면 두 번째가 되리라.

    “후욱……!”

    깊은 호흡과 더불어.

    이안이 본격적으로 크로노스의 거대한 흐름에 접촉하는 그때였다.

    “……그림자?”

    이안은 문득 발아래가 어두워졌음을 깨달았다. 어디 그뿐일까? 이안은 물론 튀폰과 지배자들이 밟고 있는 하이모 산맥 전체에 어떤 거대한 ‘그림자’가 내리깔렸다.

    “이게…… 뭐지?”

    자연스레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이 알 수 없는 그림자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본능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본능은 마찬가지로 이안뿐만이 아닌, 튀폰과 지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봤고, 모두가 동시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냐고?

    “……?”

    간단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존재.

    그런 존재가 모두의 머리 위에서 모든 것을 가만히,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아버지?]

    [아, 아버지시여……!]

    [아버지, 아버지시여……!]

    그리고 그 순간.

    튀폰의 증오로 촉수에 포박당한 지배자들이 ‘그 존재’를 향하여 한마디씩 웅얼거렸다. 심지어는 촉수의 방해에도 무릎을 꿇고자 노력하였으니, 이안은 저 존재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었다.

    ‘……눈먼 아버지.’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들을 응시하는 눈.

    동공을 중심으로 시뻘건 핏줄이 사방팔방 퍼져 나간 눈은 하이모 산의 하늘을 뒤덮고도 한참 더 남을 만큼 거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게…… 뭐지……?]

    그 거대한 눈의 등장에 튀폰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는 혼돈의 존재들보다 먼저 슈페리어 차원을 호령했던 괴수가 아닌가?

    저 존재를 알 턱이 없으리라.

    [……네놈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세계에…… 내 고향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재앙을…….]

    문제는 모르기만 한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모르는 걸 떠나서 경악의 단계로, 그리고 그 경악의 단계는 곧 공포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 이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어. 이대로는 이 땅에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을 수 없……!]

    튀폰의 횡설수설.

    그 결말은 참혹했다.

    콰득, 콰득, 콰드드드드득……!

    거대한 눈으로부터.

    정확히는 그 눈의 핏줄로부터 뻗어져 나온 시뻘건 핏줄기가 튀폰의 몸속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퍼걱!

    그야말로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모든 지배자를 단숨에 무력화시킬 정도로, 이안이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할 정도로 강대한 권능과 격을 가졌던 고대 괴수를 말이다.

    “…….”

    그 존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한참을 더 응시하고는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으니까.

    마치 신기루처럼, 천천히.

    그럼에도 누구 하나 말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만큼 조금 전의 그 광경이 충격적이었다는 뜻이겠지.

    툭!

    좀처럼 깨지지 않는 침묵.

    바로 그때 튀폰의 조각난 시체로부터 데굴데굴 굴러 와 이안의 발을 툭 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시뻘건 기운이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구체 형태의 물건이었다.

    “……뭐지?”

    이안이 별생각 없이, 그저 호기심으로 그 구체를 집어 드는 순간.

    [……잠깐, 그 물건은 즉시 내려놓도록 하여라. 수행자여.]

    길었던 침묵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올림포스 전당의 수장, 번개의 지배자 제우스였다.

    [그, 그래, 어서 내려놔. 그 구체는 튀폰의 격이 담긴 정수다. 수행자 따위가 만질 물건이 아니야.]

    아스가르드 전당의 수장 오딘 역시 제우스의 의견에 동조했다.

    또한 실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구체의 정체까지 알려줬다.

    ‘튀폰의 격이 담긴 정수……?’

    가만,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첫 번째 과업에서 아프로디테와 함께 티탄 일족 여인 에오스를 죽였을 때, 그녀 역시 격이 담긴 정수를 떨어뜨리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것은…….’

    지금 이안의 손아귀에 들어온 이 붉은 구체는 실로 어마어마한, 모든 지배자들을 압도했던 튀폰의 격이 응축되어있다는 뜻일 터.

    ‘……이거, 내가 먹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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