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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5화 (27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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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89화

    “그 꾸러미는 뭡니까?”

    [아, 하이모 산까지 가는 길이 꽤 멀거든. 가는 길에 먹으라고…….]

    “저한테 차 내어주신 분께서 말이죠? 헤베 님이라고 들었는데.”

    [……맞다. 이미 만나봤겠군. 평의회에서 임명한 개척 사업의 보조 감독관이지. 나와 같은 지배자고.]

    “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개척 사업의 보조 감독관이라.

    헤라가 의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민하는가 싶더니만, 끝내 헤라클레스를 사윗감으로 찍었나보다.

    [처음에는 평의회에서 보내기도 했고, 보조 감독관이라는 감투도 그렇고, 무엇보다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라는 점이 영 거슬렸는데, 막상 겪어보니 괜찮은 친구더군.]

    괜찮은 친구란다.

    도대체 어떤 점이?

    세뇌라도 당한 걸까?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무엇보다 아랫것들한테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더라고.]

    예의? 상냥? 함부로 하지 않아?

    이건 정말…… 놀랍네. 놀라워.

    이안이 알고 있는, 그리고 겪어본 헤베와 아예 다른 사람 얘기 같다.

    아무래도 그녀는 오랜 짝사랑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하여 정말 많은 것들을 바꿔버린 모양이리라.

    ‘나를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결심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일련의 노력들.

    그것만큼은 참 가상하다.

    물론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지배자들은 어떨까? 이쪽도 비슷한 말이 있을까?

    “그래서, 그냥 동료일 뿐이시다?”

    [당연하지.]

    “동료치고는 좀 과해 보이는데.”

    [음? 무엇이?]

    “그 도시락 말입니다.”

    [그, 그런 거 아니다.]

    “아니라면 죄송하고요.”

    […….]

    “근데 과한 건 인정하시죠?”

    [……그야, 뭐.]

    “가는 길에 좀 나눠주십쇼.”

    솔직히 잘해보라고는 못하겠다.

    그러기에는 헤베의 진짜 모습을.

    혹은 과거의 모습을 봤으니까.

    더군다나 헤라클레스는 이안에게 도움이 되는 지배자 아닌가?

    보기 드문 호인이다. 그런 이의 앞날에 함부로 훈수를 둘 순 없지.

    “그럼 언제 출발할까요?”

    [별거 없으면 바로 가지.]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거길 내가 모를 리 있나?]

    “앞장서십시오. 뒤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안과 헤라클레스의 동행은 몇날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되었다. 때로는 걷고, 때로는 뛰며, 중간 중간 약간의 휴식과 헤베에게 받아온 도시락도 까먹었다.

    보존 주술이 걸려있어 언제 어디서 먹어도 신선함이 일품이었다.

    “맛있네요.”

    [맛있지?]

    “네.”

    [그녀가 우리 개척 사업에 합류한 이후부터 인부들 배식 만족도가 엄청나게 올라갔어. 덕분에 능률도 좋아졌지. 처음에는 또 무슨 간섭을 하려고 자기 딸까지 보내나 싶었는데, 아니었나보더라고.]

    “그분…… 그러니까 해베 님께서 꽤 많은 업무를 담당하나봅니다.”

    [많이 담당하고 있긴 하지. 배식부터 현장 관리, 평의회와의 소통과 조율, 그리고 협상 같은…… 덕분에 내 일도 줄었고. 한가롭게 네놈 사냥까지 도와줄 만큼.]

    “말씀은 바로 하셔야죠. 저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냥 사냥이 하고 싶으셨던 거 아닙니까?”

    [어허, 반반이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부탁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무시했을 게야. 난 내가 싫은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거든.]

    “저는 마음에 드셨나보군요.”

    [중간계에서 온 벌레를 지금까지 살려두는 것으로 모자라서 돕는 중이다. 싫으면 이게 되겠느냐?]

    “음, 듣고 보니 그건 그러네요.”

    헤라클레스와도 많이 가까워졌다.

    여정 내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이제는 그의 커다란 어깨에 이안이 올라타 이동하는 수준까지 왔으니, 이쯤 되면 슈페리어 차원에서 가장 친한 이가 아닐까 싶다.

    ‘비록 이쪽 세계의 존재와 필요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앞날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내 계획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

    지금은 먼 훗날까지 고려할 때가 아니다. 모든 과업을 완수하여 지배자의 격을 얻어내는 것, 그리고 그 순간 이안에게 더 큰 힘을 선사해줄 지팡이부터 제작해놓는 것.

    ‘……또한 그 두 가지 힘으로 어떻게든 인신공양을 막아내는 것.’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고 달린다.

    그 이후에 발생할 모든 문제는 그때의 자신이 해결할 문제니까.

    이안이 다시 한 번 목표를 상기할 때쯤, 그를 어깨에 올려둔 헤라클레스의 발걸음이 마침내 거대한 화산, 하이모 산의 발치에 닿았다.

    “여깁니까?”

    [그래, 여기다.]

    “의외로 엄청 크진 않네요.”

    [손에 꼽히는 대산맥일 텐데?]

    “크긴 한데, 예전에 과업을 수행하면서 봤던…… 어디더라? 아무튼 프로메테우스가 꼭대기에 갇혀있던 그 산맥보다는 작아보여서요.”

    [코카서스를 말하는가보군.]

    “아, 맞아요. 코카서스.”

    [거긴 산악지대잖아? 당연히 산맥으로 분류되는 하이모 산보다야 커다랗겠지. 다만 이곳은 평범한 산이 아닌 화산이다. 언제 어디서 튀폰의 잔재가 튀어나올지 몰라.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말에 대꾸한 이안이 한손으로는 이제 인연이 얼마 남지 않은 지팡이 케리케이온을.

    나머지 한손으로는 헤라클레스에게 회수해놓은 모자 페타소스를 착용했다. 모자 특유의 넓은 챙과 기나긴 장발이 사뭇 잘 어울렸다.

    [모자는 왜……?]

    “도움 되는 건 다 해봐야죠.”

    [하지만 그건 네놈의 과업…….]

    “딱히 쓰지 말란 내용은 없었으니까요. 곱게 쓰고 돌려주면 됩니다.”

    […….]

    “만약에라도 흠집이 나거나 하면 뭐, 헤라클레스 님한테 처음 받았을 때부터 그랬다고 하겠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뻔뻔함.

    헤라클레스가 무어라고 반박하기 전에 재빨리 폴짝 내려 하이모 산의 초입 길로 향하는 이안이었다.

    “자, 그럼 가보실까요?”

    [조심해라. 산 전체가 튀폰의 잔재로 가득하니까. 그 고대괴수의 사체를 먹고 자란 구더기들, 피를 머금은 바위와 흙, 마기에 절여져 타락한 짐승과 식물들……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나 마찬가지거든.]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따르자면.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내내 헤라클레스가 했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튀폰이란 괴물은 아직 이 땅이 혼돈의 자식들에게 침략당하기 이전, 실로 까마득한 고대에 존재했던 토착괴수로서 그 힘이 올림포스족, 아스가르드족, 그리고 티탄족 지배자 전체를 합쳐도 이길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고 한다.

    ‘무려 그런 존재가 묻힌 땅에서 발생하는 괴물이니 강할 수밖에.’

    결국 기나긴 싸움 끝에 튀폰을 쓰러뜨렸지만, 그 사체가 묻힌 하이모 산은 혼돈의 자식들조차 손쓰기 어려울 만큼 오염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위험한 땅이리라.

    “헤라클레스 님만 믿겠습니다.”

    [아서라. 나도 여기서는 까딱했다간 한방에 골로 가기 십상이야.]

    겁을 주는 건지.

    아니면 진담인지.

    도통 모르겠다. 전자였으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니 후자일 가능성도 상당하다싶다.

    [그러니까 앞장서 걷지 말고 내 뒤에 서라. 그리 무방비로 있다가는 너도 한 방에 가는 수가…….]

    쿵!

    바로 그때.

    이안의 머리로 무언가 떨어졌다.

    그것은 하이모 산 중턱에서 뚝 떨어진 커다란 바위였는데, 누가 봐도 이안을 노린 것이 확실했다.

    [거봐라. 골로 간다니까?]

    “……아직 안 갔습니다.”

    [안 갔으면 뒤로 와. 여기서 어떻게 하면 내 사냥을 보조할 수 있을지나 궁리해보라고.]

    그리 읊조린 헤라클레스가 등에 메고 있던 거대 몽둥이를 꺼냈다.

    신비한 무구에 의지하는 편이 아니라더니, 저 몽둥이만큼은 정말이지 신비로운 외관을 갖고 있었다.

    “글쎄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오, 그러게 말이야. 설마 초입부터 환영식이 거할 줄은 몰랐군.]

    헤라클레스의 말이 옳았다.

    이곳 하이모 산은 사방이 적이다.

    조금 전에 뚝 떨어졌던 바위를 시작으로 온갖 종류의 살기와 불길한 기운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어디 나타나기만 했을까? 이안과 헤라클레스의 존재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스멀스멀 가까워지기에 이르렀으니, 아무래도 헤라클레스의 등 뒤에서 편히 보조할 궁리나 하고 있긴 어려울 것 같았다.

    [작전을 바꾸지.]

    “어떻게 말입니까?”

    [알아서 잘 살아남아.]

    “…….”

    [여기 적힌 재료 얻으려면 정상 근처까지는 올라가야 하거든?]

    “…….”

    [뒤쳐지기 않게 따라오도록.]

    “…….”

    [이상.]

    작전은 정말 거기까지였다.

    올리브 몽둥이 한 자루를 휘두르며 하이모 산 정상까지 달리기 시작하는 헤라클레스였으니, 이안은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아야만 했다.

    물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들을 자력으로 물리치면서 말이다.

    * * *

    “하아, 하아, 하아……!”

    [후욱! 훅! 후우욱……!]

    두 존재의 거친 숨소리가 하이모산 최정상 부근에서 들려왔다.

    물론 여기서 언제까지 숨을 고르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방으로부터 느껴졌으니까.

    튀폰의 잔해들이 보내오는 살기.

    혹은 특유의 끈적이는 불길함이.

    “얼마나 더 가야합니까?”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튀폰이 묻힌 최정상이거든.]

    거기서만 피는 꽃이 있단다.

    흔히 일컫기를 ‘튀폰의 눈물’.

    바로 그 꽃이 헤파이스토스가 건네준 양피지에 적혀있는 재료였다.

    [잘 들어. 꽃을 꺾는 순간 또 여기저기서 공격이 시작될 거다.]

    또 시작된다고?

    정말이지 첩첩산중이구먼.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휘휘 젓는 이안에게 헤라클레스가 첨언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상대했던 놈들보다 훨씬 강하고 수도 많지. 그러니 이번에도 작전은 똑같아.]

    “알아서 잘 살아남기?”

    [바로 맞췄군.]

    헤라클레스가 피식 웃으며 튀폰의 눈물이 피어나는 하이모 산 최정상 어느 분화구 근처로 향했다.

    이안 역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여기까지 올라오며 느낀 건데, 앞길을 헤라클레스가 뚫어주지 않았더라면 중턱도 못 올라올 뻔했다.

    역시 수행자는 수행자일 뿐.

    지배자의 격이 급하다.

    [……어?]

    그렇게 얼마나 더 올라갔을까?

    이안보다 먼저 분화구를 확인한 헤라클레스가 우두커니 멈췄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무슨 문제라도……?”

    [쉿.]

    심지어 말까지 막는다.

    뭘 봤기에 이러는 거야?

    [천천히 올라와서 저기를 봐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그 말에 조금 뒤쳐져있던 이안이 헤라클레스 바로 옆까지 올라왔다.

    이제야 눈에 보이는 하이모 산 최정상의 분화구, 피처럼 시뻘건 잎사귀가 참 인상적인 꽃 한 송이.

    그리고…….

    ‘……저게 뭐야?’

    커다란 분화구를 가득 채울 만큼.

    이안이 지금껏 봐온 그 어떤 존재보다 거대한 괴생물체 한 마리.

    그 괴물은 슈페리언의 상반신과 드래곤의 하반신을 가졌으며, 머리카락은 여타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뱀처럼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어디 그뿐일까? 등 뒤로는 박쥐의 것과 흡사한 날개 한 쌍이 돋아나 있었는데, 그 기괴한 모양새보다 더 압도적인 점은 ‘격’이었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오금이 저릿할 만큼 파괴적인 기세.

    그것은 겨우 괴물 따위한테서 느껴질 만한 격이 아니었으니…….

    [……튀폰?]

    헤라클레스의 경악에 찬 중얼거림으로부터 모든 의문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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