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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4화 (27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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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88화

    [이거, 내 본의 아니게 수행자의 의욕을 깎아 먹었군. 사과하도록 하지. 제대로 정리된 선물을 줬어야 했는데, 하필 그 징징이가 달라붙은 지팡이를 선물했으니…… 이거 전적으로 내 탓이로구먼? 허허.]

    헤파이스토스가 큰 실수를 했다며 이안에게 사과했다. 더불어 헤르메스를 ‘징징이’라 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쪽에서는 영감탱이, 이쪽에서는 징징이, 모르긴 몰라도 유치한 악연이 있나 보다.

    “아뇨,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께서 너무 집착하시는 바람에…….”

    [알지, 그 징징이 집착 보통이 아니라는 거. 그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게야. 오히려 당장 빼앗기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로군.]

    헤파이스토스가 이안의 오른쪽 손아귀에 여전히 쥐어져 있는 지팡이 케리케이온을 살피며 말했다.

    [에이, 그냥 줘버리라고. 대신 그거 빌미로 받아낼 건 확실히 받아내. 그놈한테 뭔가 베풀지 말라는 뜻이야. 은혜도 모르는 놈이니까.]

    그냥 줘버려라.

    허락이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건만, 몇 마디를 더 첨언하는 헤파이토스였다.

    [마침 잘됐어. 내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구상하던 작품이 있거든. 검도 있고, 도끼도 있고, 지팡이도 있는데…… 자네한테는 역시 지팡이가 어울리겠지?]

    “그 말씀은…….”

    [내 이번 기회에 케리케이온보다 훨씬 더 괜찮은 놈으로다가, 슈페리어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팡이로다가 한 자루 뚝딱 만들어줌세.]

    “……그게 정말이십니까?”

    솔깃하다.

    괜히 마음대로 지팡이를 넘겼다가는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찾아왔건만, 뜻밖의 행운이었다.

    [정말이지 그럼. 왜, 못 믿겠나?]

    “그럴 리가요. 단지…… 제가 감히 헤파이스토스 님의 작품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뭐? 내 작품을 소유할 자격? 으하하하하! 자네는 정말이지…… 혹시라도 최상급 지배자가 된다면 꼭 나한테 한 번 오게. 추천해 주고 싶은 지배 분야가 있거든.]

    헤파이스토스의 추천 지배 분야.

    어째서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겠습니까? 재료를 구해오라든지…….”

    [아, 마침 똑 떨어진 재료가 있기는 한데, 자네가 구해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아직은 수행자이니.]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가 쓸 지팡이의 재료 아닙니까?”

    [흐음, 그럼 뭐, 과업 진행하면서 겸사겸사 구해보든지. 그렇다고 또 무리하지는 하지 말고. 내가 나중에 시간 내서 다녀오면 되니까.]

    그리 말하며 공양그릇에 필요한 재료의 정보가 담긴 양피지 한 장을 전송시키는 헤파이스토스였다.

    [다시 말하지만, 자네한테는 꽤 위험할 수도 있어. 명심해 두게.]

    “네, 명심하겠습니다.”

    케리케이온보다 성능 좋은 지팡이라면 앞으로의 행보에 엄청난 도움이 될 터. 비록 시간이 촉박하긴 하나, 그럼에도 그 시간을 쪼개서 일부 투자할 가치가 있으리라.

    [자, 인사도 이만하면 충분히 나누었겠다, 앓고 있던 문제도 대충 해결이 되었겠다, 눈치 그만 보고 가시게. 공사가 다망하실 테니.]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이제 3번만 더 완수하면 끝인지라, 마음이 급한 게 티가 났나 보네요.”

    [그럴 만하지. 다 이해하네.]

    주변 동료 대다수에게 괴팍하다고 평가받는 헤파이스토스가 맞나 싶을 만큼 온화하고 자애롭다.

    그만큼 이안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일 터. 이러니 가능하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거다.

    그래야 언제든지 도움을 청할 테니까. 당장 케리케이온을 대신할 지팡이까지 새로 만들어준다잖아?

    [그래도 몸조심해. 앞으로 남은 3번이 진짜 위험할 테니까. 안 될 것 같으면 조금 쉬는 것도 방법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한 이안이 올림포스 신전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은 양피지 내용을 확인하더니, 이내 늑대의 땅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헤라클레스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 * *

    [아, 그 모자?]

    “네, 그 모자.”

    [가져가. 어차피 안 쓰니까.]

    “……그래도 됩니까?”

    [사실 한 번도 써본 적 없거든.]

    “…….”

    뭐지?

    이토록 싱겁게 끝난다고?

    이번에야말로 헤라클레스의 약속을 써먹으려했건만, 저 반응이 사실이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신비한 무구에 의존하는 타입도 아니고, 모자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야. 그때 당시에는 그냥 수행자였으니까, 지배자께서 뭔가 준다는데 넙죽 받았지.]

    “……그러셨군요.”

    이안과는 정반대다.

    이안은 신비한 무구의 도움을 받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니까.

    육체파와 마법파의 차이인가?

    “그냥 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덕분에 열 번째 과업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완수할 수 있겠네요.”

    [음? 벌써 열 번째 과업이라고?]

    “네.”

    [세월이 참 빠르구먼. 아니, 그대의 과업 완수 속도가 빠른 건가?]

    “둘 다 아니겠습니까?”

    [음, 확실히.]

    고개를 끄덕인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막사 구석진 곳에서 보관함을 끄집어냈다. 거기에는 늑대의 땅으로 파견되며 챙겨온 온갖 짐들이 대충 쑤셔 넣어져 있었는데, 설마 저기다가 그 모자를 넣어놓은 걸까? 그 엄청난 아티펙트를……?

    [여기 있군. 자, 여기 있으니 가져가든지 말든지. 근데 좀 웃기긴 하군.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안이 피식 웃으며 헤라클레스가 넘겨준 아티펙트 모자, ‘페타소스’를 받아 헤르메스에게 받아온 전용 보관함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뭐할 거냐? 바로 달려가서 과업부터 완수할 건가? 아니면 뭐 다른 볼일이라도 있나? 없으면 차나 한잔하고 가지. 저번에는 너무 휙 가버려서 기회가 없었으니.]

    차 한 잔이라니.

    덩치와 성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안이다. 그러고 보니 올리버도 차를 꽤 즐겼던 것 같은데…….

    이것도 육체파들 특징인가?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따로 볼일이 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남았으니 그 일부터 끝내야겠네요.”

    [볼일이라면, 어떤?]

    “음, 그러고 보니 헤라클레스 님은 저와 같은 수행자 출신이시니…… 혹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무엇을?]

    “잠깐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이안이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아온 양피지를 펼쳐 보이며 읊조렸다.

    “제 무기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입니다. 혹시 여기 적혀있는 재료들, 저 혼자 가서도 구할 만한 것들인지 궁금해서요. 어렵다면 나중으로 미루고 차나 한 잔 마시죠 뭐.”

    바로 헤파이스토스가 약속한 ‘케리케이온보다 좋은 지팡이’의 재료 정보가 담긴 양피지였으니…….

    [어디 보자, 하이모 산 최정상에서 튀폰의 부산물을…… 뭐야, 설마 이걸 너 혼자 구해오겠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헤라클레스였다.

    “어렵겠습니까?”

    [어렵다마다. 네놈, 설마 튀폰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괴물 아닙니까? 그 괴물이 묻힌 곳에서 자라나는 괴물들, 그놈들 잡아서 피고 가죽이고 싹 다 챙겨 가면 금방일 것 같긴 한데…….”

    [그러니 어렵다는 거다. 그 부산물조차 비현실적으로 강하거든.]

    헤파이스토스의 무수히 많은 공방 중 한곳이 지하 깊숙한 곳에 설치되어있는 커다란 산, 하이모.

    그곳은 아주 오래 전, 혼돈의 일족이 슈페리어 차원을 침공하기 전에 존재했던 도착 괴수들의 왕.

    ‘튀폰’이 묻힌 산이었다.

    [나 정도는 되어야 혼자 가서도 무난히 얻을 수 있을 거다. 그 양피지에 적혀 있는 재료들 말이지.]

    “그럼 함께 가시죠.”

    [……응?]

    “원래는 모자 돌려받을 때 쓰려고 했는데, 그냥 주셨으니 여기서 쓰겠습니다. 그 약속이요.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들어주시겠다는 약속.”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럼 헤라클레스를 이용해서 얻을 수밖에.

    ‘지팡이가 급하거든.’

    케리케이온은 이번 과업을 완수하는 즉시 돌려줘야 하니, 열한 번째 과업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새로운 지팡이부터 얻어야한다.

    ‘그만한 힘을 가진 지팡이 없이 열한 번째, 열두 번째 과업에 도전한다? 멍청한 짓이지. 티끌이라도 싹싹 긁어모아야 할 판국에 무슨.’

    갖출 수 있는 건 다 갖춘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요청 받은 재료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어려우면 헤파이스토스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고 하긴 했으나, 그건 너무 기약이 없잖아?

    [흐음, 하이모 산이라.]

    한편.

    이안의 말에 잠시 고민했던 헤라클레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지 않아도 몸뚱이가 근질거리던 참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사냥 한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전에 현장 일 몇 가지만 처리하고 올 건데, 기다려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금방 다녀오지. 차 한 잔 내어줄 테니 그거 마시면서 좀 쉬라고.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될 게야.]

    “내어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럼 일 천천히 보십시오.”

    그렇게 헤라클레스가 막사를 빠져나가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헤라클레스와 비슷한 덩치의 누군가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헤라클레스는 아니었다.

    그런데 낯이 익다.

    [안녕하세요. 수행자 님.]

    “……아, 예. 안녕하십니까?”

    [처음 뵈어요. 헤베라고 합니다.]

    헤라의 딸 헤베.

    헤라클레스를 짝사랑하던, 그리고 그 사실을 들키자마자 이안을 죽이려 들었던 무시무시한 여인.

    바로 그녀였다.

    [헤라클레스 님께서 제일 좋은 차와 찻잔을 내어드리라고 하셨는데, 수행자 님께 알맞은 크기의 찻잔이 없어서…… 송구스럽게도 이런 허름한 나무잔을 쓸 수밖에 없었답니다. 모쪼록 양해해 주셔요.]

    “……?”

    뭐야? 왜 이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혹 불편하시다면 지금 즉시 심장으로 가서 수행자님께 어울릴 만한 찻잔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아, 아뇨.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감사히 마시도록 하죠.”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일단 그렇다고 치자. 다른 은하의 악마까지 불러와서 싸웠으니, 그 여파로 기억에 오류가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문제는 저 태도다. 이안이 아는 그 존재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지배자로 변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가만, 그러고 보니 여기서 차를 내온다는 건…… 이제 헤라클레스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잖아?’

    그때 혼절해버린 헤베를 헤라클레스의 막사 앞에 던져놓고 도망간 것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그럼 이 태도는 헤라클레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종의 연기 내지 위장이라는 건가? 아니면 정말 헤라클레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자신의 성질머리까지 뜯어고친 걸까?’

    어느 쪽이든 놀랍다.

    그리고 대단하다. 진심으로.

    어떻게 이리 확 변할 수 있지?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연 시계탑에서 소문이 자자하신 수행자님 다우세요.]

    “하하, 뭐…….”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갈 테니 푹 쉬셔요.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고요. 참고로 저는 바로 옆 막사에서 지내는 중이랍니다.]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건 정말 미스터리다.

    아니, 사랑의 신비인가?

    ‘……모르겠다. 이건 진짜.’

    그로부터 잠시 후, 떠날 채비를 끝낸 헤라클레스가 돌아왔다.

    그 사내의 커다란 손에는 기간테스 사이즈에 딱 맞춘 초대형 5단 도시락 꾸러미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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