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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72화 (27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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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86화

    ‘내 고향에서 백만 명을……?’

    그들을 지키고자 여기까지 온 건데, 그중 백만 명을 희생시킨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혹스럽지만 침착하자.

    ‘시간을 되돌릴까?’

    시간을 되돌리는 것.

    크로노스를 되감는 것.

    물론 방법이 되기는 한다.

    그리하면 추방자를 희생시킬 수 있고, 그들은 고향 땅의 사람들과 달리 이안과 아무런 연고도 없다.

    하지만.

    ‘……그게 옳은 선택일까?’

    선을 넘어가는 것.

    물론 각오는 되어 있다.

    괴물로 변해버릴 각오 말이다.

    하지만 그건 온갖 풍파를 견뎌내면서 자연스럽게, 천천히 되어가는 것이지,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아니다. 적어도 이안은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내 고향이겠지만, 당장은 방법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은 아직…… 괴물이 아니니까.’

    나는 아직 괴물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은 이안이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여전히 눈앞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헤스티아에게 물었다.

    “……해서, 그 인신공양의 정확한 시기가 언제입니까?”

    “아, 이번에는 추방자들을 생포하지 못한 관계로 시기가 조금 늦춰졌습니다. 대신 그만큼 바쳐야 할 인신공양의 숫자가 늘어났어요.”

    “얼마나 늘었죠?”

    “그게, 백만에서 오백만으로…….”

    “……제정신들이 아니네.”

    백만도 아니고 오백만?

    정말이지 미쳐버린 작자들.

    이안이 어금니를 뿌득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멸종시켜버리고 싶다. 부디 그럴 날이 오기를, 그런 힘을 갖게 되기를 빈다.

    “얼마나 늦춰졌습니까?”

    “그리 멀지는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눈먼 아버지께서는 이그드라실의 아홉 세계가 모두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공명하는 기간에만 눈을 뜨시고,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공양을 끝내야 하니…….”

    머릿속에 떠도는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따르면, 슈페리언들은 그날을 ‘아홉 세계의 공명’이라고 부른다.

    바로 그 공명의 날이 시작되고 끝나기 직전까지 남은 시간을 고향의 방식으로 치환시켜보자면…….

    ‘……반년.’

    천 년에 한 번 나타나는 현상.

    아홉 세계의 공명은 지금부터 약 30일이 남았으며, 150일가량을 지속하다가 끝이 난다.

    30일과 150일, 합이 180일.

    그러니 반년이라는 거다.

    물론 그 안에 오백만의 목숨을 확보해야 하니, 고향 사람들을 생포하는 것은 그보다 더 빠르겠지.

    “거기서 오백만을 잡아 오는 건 어떻게 한답니까? 자기네들이 직접? 아니면 휘하 지배자들을 시켜서?”

    “이미 재구성이 진행 중인 중간계라서, 파견을 나가 있는 분석관이 있다고 합니다. 우선은 그를 통해서 공수하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은 다행이다.

    그 분석관이라면 하데스의 심복으로 바꿔치기해놓았다고 들었다.

    하데스에게 말하면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무리 길게 잡아도 반년보다는 짧겠지. 시간이 촉박하다. 그 안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당장 떠오르는 묘수는 없다.

    그러나 무얼 해야 하는지는 안다.

    ‘반년 내로, 가능한 한 빠르게 나머지 세 개의 과업부터 완수한다.’

    하여 지배자의 격을 얻어낸다.

    손에 쥔 힘이 크면 클수록 방법의 범위와 가짓수가 많아지는 법.

    그러니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리고…….’

    이안이 눈앞에 저 여인.

    헤스티아를 힐끗 쳐다봤다.

    ‘이 지배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최상급 지배자 헤스티아.

    그녀는 분명 여타 지배자들하고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 시계탑에 소속된 지배자 아니던가? 무작정 믿긴 어렵다.

    ‘한 번…….’

    속마음을 슬쩍 떠볼까?

    그리 결심한 이안이 입술을 뗐다.

    확인해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헤스티아 님.”

    “말씀하세요. 수행자 님.”

    “헤스티아 님께서는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확히 어떤……?”

    “헤스티아 님께서 지키고자 하셨던 추방자들은 지켰습니다. 그러면 이제 중간계인들도 지켜주실 겁니까? 아니면 그냥 추방자들의 생존에 만족하고 방관하실 겁니까?”

    허를 찌르는 이안의 물음.

    헤스티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중간계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었거든요. 정말 아무런 생각도요.”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없다.

    솔직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다른 동료들이 중간계에서 여흥을 즐기니, 재구성을 하니, 뭘 어떻게 하니…… 그런 말들을 할 때에도 저는 항상 몇 발자국씩 물러나 있었거든요. 표현 그대로 다른 세상…… 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라고만 여겼으니까요.”

    “해서, 그들의 희생도 우리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십니까?”

    이안이 본론을 꺼냈다.

    가장 묻고 싶은 말이다.

    “……솔직히, 진짜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추방자들이 대상이었을 때보다는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이건 정말 솔직한 거다.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도 했다.

    이안 역시 둘 중 한쪽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무조건 추방자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것이지요. 어떻게 오백만이나 되는 목숨을…… 아무 죄도 없는 목숨을 희생시키겠어요?”

    “어차피 재구성이 예정된 중간계라고 들었습니다. 조만간 다 죽을 거 먼저 죽는 건데, 괜히 또 문제 일으켜서 엄한 생명 희생시키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물음을 던진다.

    처음 헤스티아가 이안의 속내를 떠보았듯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요. 추방자나 다른 중간계의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보다야 나은 방법이 아닐까, 말하자면 최후의 차선책 같은 느낌으로요.”

    차선책 중에서도 차선책.

    그쯤이면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그 고민으로 몇 날 며칠을 지새웠고, 어떤 결론 앞에 닿았다.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차선책은 결국 또 다른 차선책을 낳을 뿐이라고. 그렇게 계속 차선책을 택하다 보면, 아홉 세계에 남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결국에는 텅텅 비어버리게 되겠죠.”

    모든 세계가 텅텅 빈다. 그것은 결국 아홉 세계의 종말을 뜻한다.

    물론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방향성이지 걸리는 시간 따위가 아니었다.

    종말로 나아가는 방향을 헤스티아는 이해할 수도, 인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어떻게든 끊어내는 게 옳다고 봐요. 인신공양 자체를요. 솔직히 아버지께서 그 많은 영혼으로 무얼 하시는지도 모르겠고…….”

    거기까지 읊조린 헤스티아가 말문을 급히 멈췄다. 다른 건 몰라도 혼돈의 전당을 향한 의심, 그것만큼은 자중할 필요가 느껴졌으니까.

    “동감입니다.”

    그런 헤스티아의 발언에 이안이 공감을 표해줬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그녀는 비교적 선한 마음을.

    아니, 평범한 마음을 가졌다.

    다른 지배자들한테서는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함을.

    가까이 있는 것들을 멀리 있는 것들보다 더 소중하게 느끼는, 그럼에도 멀리 있는 것들의 불행에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끼는,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성정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있지.’

    다는 아니고.

    어느 정도는.

    “그럼 헤스티아 님께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방법을 찾으십시오. 말씀하신 것처럼 인신공양 자체를 완전히 끊어버릴 방법 말이죠.”

    결정했다.

    헤스티아와는 동맹이다.

    오직 최상급 지배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엄청나게 많을 터.

    적어도 이번 문제가 해결되기 직전까지는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저는 그동안 어떻게든 나머지 과업 3개를 완수하겠습니다. 지배자가 되어 힘을 보태드리도록 하죠.”

    이안의 말에 헤스티아가 조금은 의외인 듯 멈칫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결연한 눈빛을 보이며 끄덕거렸다.

    뜻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리라.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로부터 잠시 후.

    신전으로 돌아온 이안이 아홉 번째 과업의 완수를 인정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열 번째, 열한 번째, 그리고 마지막 열두 번째뿐.

    지배자의 격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크로미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제가 모르는 묘안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한번 물어나 봤다.

    자기 주인을 강림시키자고 할 게 빤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당장은 계약자의 생각이 옳다고 본다. 그 지배자의 격이라는 것부터 받는 것이 시급해 보이는군.)

    딱히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정상적인 답변이다.

    (계약자 정도면 그 지배자의 격이라는 것을 허락받자마자 상당한 입지가 생길 것 같은데, 그럼 시계탑 내에서 권한과 발언권도 생기지 않겠느냐? 우선은 그것부터 확보하는 것이 먼저이니라.)

    영겁의 세월을 살아온 마도서 네크로노미콘과 생각이 일치했다.

    덕분에 이안은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방향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았거든.

    (혹시 모르니 계약자의 고향에도 경고를 해두는 편이 좋을 게야. 여차하면 전쟁이니까. 알겠느냐?)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선 여기까지 온 김에 과업부터 받아놓고, 크로미 님 말씀대로 해야겠네요.”

    잠시 올림포스 신전 밖에서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다시금 신전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열 번째 과업의 석상 앞으로 향하였으니, 그 석상은 지금껏 만났던 여러 지배자와 달리 ‘어리다’라는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물론 아무리 어려도 나보다 최소 천 배는 더 늙었겠다마는…….’

    피식 웃은 이안이 공양그릇에 어떤 공양을 올릴지 고민하는 그때.

    [내 지팡이이이이이-!]

    놀랍게도 열 번째 과업의 계시자는 공양물조차 받지 않고 나타났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다면, 안광이 푸르지 않고 붉다는 점이다.

    저건 분명 적의를 느낄 때 나타나는 슈페리언의 특징일 텐데……?

    [감히 내 지팡이를 훔쳐간 수행자 놈이 바로 네놈이었구나?!]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케리케이온.

    헤파이스토스한테 받은 지팡이.

    원래 주인이 따로 있었다 했지?

    누구였더라?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따르면 그 이름이 아마…….

    ‘……헤르메스.’

    도둑, 여행자, 상인들.

    그리고 전령의 지배자.

    [이 도둑놈아-!]

    헤르메스가 빽 소리쳤다.

    이번에는 첫인상부터 망쳤다.

    하지만.

    “화내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뭐, 뭐라고?]

    “먼저 헤르메스 님, 맞으시죠?”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모든 여행자와 도둑, 그리고 상인들을 수호하시는 지배자라고 들었습니다. 이 또한 맞으시지요?”

    [이, 이놈이 근데…….]

    “그럼 오히려 칭찬해 주셔야죠.”

    [……엉?]

    “일개 수행자가 무려 헤르메스 님의 지팡이를 훔쳤는데, 도둑의 지배자로서 칭찬을 해주시는 게 옳다고 봅니다. 기대도 좀 했고요.”

    […….]

    예상치 못한 적반하장.

    그 당당함을 아득히 넘어선 뻔뻔함에 화가 잔뜩 났던 헤르메스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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