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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85화
“……옛날부터, 저희 마을에 큰 위협이 있을 때마다 익명으로 언질을 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쪽지를 통해서 주셨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그게 그분이 아니었나 싶군요. 설마 시계탑에도 저희 같은 것들을 생각해 주시는 분께서 계실 줄이야…….”
구체적인 임무는 그랬다.
이 거대한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추방자들을 몽땅 찾아 헤스티아의 은신처로 피신시킬 수 있는 방법.
바로 그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실행에 옮겨라.
“저도 놀랐습니다. 그냥 지배자도 아니고 올림포스의 12지배자, 그러니까 무려 최상급 지배자죠.”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 어마어마한 조력자는 기대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그런 명령을 받았다는 말에 추방자 마을의 촌장 ‘가르골’이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경계심이 서린 얼굴이다.
한평생 도망치고 숨어 살던 추방자들의 지도자 아닌가? 그런 이에게 최상급 지배자의 호의란 꿈에서도 본 적 없는 생소한 일일 터.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리라.
“문제는…… 그런 대단한 조력자께서 계시는데도 여전히 어렵다는 점이겠지요. 중간계의 손님께서 말씀하신 그 임무…… 모든 추방자들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방법 말입니다.”
하나 그럼에도.
최상급 지배자 중 한 명이 추방자들을 도와주고 있음에도 어렵다.
촌장 가르골은 그렇게 확신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은둔자입니다. 서로의 은신처를 공유할 만큼 넉넉한 처지가 아니다 보니…….”
이 땅에 추방자는 차고 넘친다.
솔직히 시계탑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백만 명 생포하는 거, 일도 아닐 거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 귀찮고 무의미하니까.
그러나 이제는 의미가 있다.
아버지께 바칠 인신공양이잖아?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으으으음…….”
촌장 아르골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였다.
솔직히 불가능할 것 같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를 이렇게나 도와주셨는데 갚지는 못할망정…….”
“괜찮습니다.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니까요. 그냥 혹시나 싶었을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진심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아무런 수확도 없을 거라는 걸.
아쉽긴 한데, 뭐 어쩌겠는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꼬맹이들이라도 한번 불러와 볼까요?”
“꼬맹이들은 갑자기 왜…….”
“아마 다른 지역 추방자들도 변장 주술만큼은 애용하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슈페리어의 심장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약이나 생필품을 사든.
장사로 자금을 벌어오든.
무얼 하든 심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니 변장 주술은 필수요소다.
변장 주술사가 없는 추방자 무리는 오랜 세월을 버티기 어려울 터.
“저는 변장 주술을 잘 모릅니다마는, 그 주술의 당사자들한테 물어보면 어떤 연결이라든지, 그런 것을 느끼지는 않을까 싶어서…….”
촌장의 말을 거기까지 들었을 때.
‘……가만?’
이안은 문득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려냈다. 어쩌면 이것이 해답에 가장 가까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 변장 주술의 모체는 하데스다. 물론 꼬맹이들은 하데스가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변장 주술의 원천을 받아오는 것 같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변장 주술이란 단지 하데스를 떠올리는 데 필요한 재료였을 뿐.
변장 주술이 중요한 건 아니다.
핵심은 하데스다. 정확히는 그가 다스리는 땅, 죽은 자들의 세계.
‘명계.’
간단한 논리다.
아홉 세계의 망자들은 모두 명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모두’에는 추방자들 역시 포함되어 있을 터.
‘목숨을 반쯤 내놓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자들이다. 최근까지도 명계에 떨어진 이들이 많겠지. 바로 그들을 통해서 알아내면 된다.’
생존한 동족들을 살리는 일이다.
잘만 설명하면, 신뢰만 얻는다면 어렵지 않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
“어떻게, 아이들을 불러올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촌장님 덕분에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거든요.”
“예……? 제, 제가 어떤…….”
“우선 확인부터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중에 뵙도록 하죠.”
이안이 지체 없이 움직였다.
목적은 바로 하데스와의 접촉.
당분간 만날 일 없겠거니 싶었는데, 설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 * *
[싫다.]
“……예?”
[내가 왜?]
“무슨…….”
[그냥 가만히 있으면 백만 명의 대군이 명계 휘하로 떨어지는 셈인데, 그걸 망칠 계획을 내가 왜 도와? 그것도 너처럼 동업자 정신이 없는 불량한 놈한테 말이지.]
“수행자 아니고 추방자입니다.”
[비록 약해빠진 추방자이기는 해도, 백만이란 숫자는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숫자가 아닐 텐데?]
“…….”
[하다못해 우리 명계의 탄광에서 노역을 시켜도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겠지. 그게 바로 백만 명이란 숫자이거늘, 그걸 포기하라고?]
다시 만난 하데스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읊조렸다.
진짜배기 수행자들을 놓친 분도 아직 채 가시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또 뭐? 백만 명의 예비 망자를 포기하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하데스 님 혹시 바보입니까?”
그러나 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 하데스를 설득할 논리쯤이야 충분했다. 어쩌면 하데스도 알면서 괜히 저러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다. 하데스쯤 되는 영민한 존재가 그걸 모를 리 없다.
[……뭐? 바보?]
“인신공양이잖아요? 그럼 그 백만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신공양을 받는 존재한테 귀속될 거 아닙니까? 평소처럼 명계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요.”
[…….]
“그러니 이건 명계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해죠.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명계로 떨어질 영혼들을 백만이나 빼앗기는 셈이니까요.”
[…….]
“제 말이 틀립니까? 틀리면 어디가 틀렸는지 설명해 주시죠.”
[…….]
틀리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옳다.
반박할 말이 없다.
물론 하데스도 안다.
인신공양과 명계의 대척점을.
근데 왜 모르는 척을 했느냐고?
그냥 퇴짜 한 번 놓고 싶었다.
저 동업자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업자의 부탁을 말이다.
[……네놈, 혹시 네놈 고향에서 인신공양을 해본 적이 있느냐?]
“아뇨,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근데 뭐 그리 잘 알아?]
“빤하잖아요? 시체도 아니고 살아 있는 생명을 바치라는데, 설마 그 살아 있는 백만 명 데리고 소꿉놀이나 할 리는 없죠. 분명 그 영혼으로 무언가 하려는 속셈이겠지.”
해본 적은 없어도 대충은 안다.
그 옛날 상아탑주 허버트가 그랬고, 이후 이안이 알아본바 흑마법에도 인신공양 개념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규모가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포인트는 ‘영혼’ 아니겠나?
[……틀린 말은 아니로군.]
“그러니 도와달라는 겁니다. 그냥 추방자 출신 망자 몇 분만 불러주십쇼. 알아내는 건 제가 할 테니.”
[뭐, 그거야 딱히 어려울 건 없는데…… 그게 정말 좋은 방법일까?]
“무슨 뜻입니까?”
[인신공양으로 바쳐질 백만 명의 추방자를 살리는 거 말이다.]
“과업이니 별수 없기도 하고, 썩 보기 좋은 일도 아니긴 하니까요.”
[흐으음…….]
하데스의 표정이 의뭉스러웠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얼굴.
물론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별 영향이 없을 테니…… 일단은 알겠다. 네놈의 부탁도 들어주지.]
그로부터 잠시 후.
하데스가 엄청난 수의 추방자 출신 망자들을 우르르 이끌고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이 상황 자체가 두려운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방자의 삶이란 언제나 두려움으로 가득했거든.
그 오랜 습성은 명계에 떨어지고 나서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도저히 병사로 키우기는 불가능한 이들이기에, 하데스는 이들을 아까 말했던 것처럼 명계의 지하 탄광 노역 현장에 전원 투입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행색들이 아주 지저분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럼 이야기 나눠라. 노역 시간이니 길게는 어렵고, 네놈 고향 기준으로 딱 한 시간 주도록 하마.]
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 안에 어떻게든 설득해서 추방자들의 은신처를 알아내야 할 터.
“……시간이 별로 없으니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이승에 남아 있는 여러분의 동족이 위험합니다.”
시작부터 꽤 세다.
추방자 출신 망자들의 흐리멍덩했던 눈가에 활기가 돌아올 만큼.
“여러분의 동족 백만 명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쓰겠다고 합니다. 저는 그 참사를 막아볼 생각이고요.”
백만, 동족, 인신공양.
그 세 가지면 충분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백만…… 백만 명이라니……!”
“시계탑 놈들은 우리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벌레도 그렇게까지는 학살하지 않는다고요!”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나요? 아니, 당신이 막을 수 있긴 하고요?”
“가능합니다.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계시는 추방자 분들의 정확한 위치만 파악할 수 있다면요.”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당신이 이승에 남은 동족들을 살리려는 건지, 아니면 인신공양에 필요한 동족들을 잡아가려는 건지…….”
“시계탑이 마음만 먹으면 숨어 있는 추방자들 찾는 거, 일도 아닙니다. 굳이 여러분 앞에서 존칭까지 써가며 부탁드릴 이유가 없죠.”
“…….”
“반면 저는 그 시계탑보다 먼저 찾아서 피신을 시켜야 하기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러니 믿으십시오.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안의 설득이 통한 걸까?
혹은 정말 방법이 없어서일까?
시계탑을 향한 분노와 더불어 이안에게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하는 추방자 출신 망자들이었으니, 이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슈페리어 차원 곳곳에 퍼져 있는 은신처 대부분을 파악해 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보답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이승에 남아계신 여러분의 동족들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위치를 파악했으니 다음 차례는 구조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이안의 영역이 아닌 헤스티아의 영역이다.
이 엄청난 수의 추방자들을 한곳으로 이동시킬 방법도,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작금의 이안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수행자 님, 고생이 참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게 맡기세요.]
곧장 헤스티아와 접선한 이안이 은신처의 위치를 넘겼고, 헤스티아 역시 시계탑보다 먼저 대대적인 추방자 피난 작전에 나섰으니…….
[일이 잘 마무리되면, 그때 아홉 번째 과업의 완수를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수행자께 그보다 확실하고 중요한 보상은 없을 테니까요.]
어려워 보였던 아홉 번째 과업.
생각보다 쉽게 끝날 것 같았다.
[그것이……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미리 예상을 해뒀어야 하는 일인데…….]
며칠 후 다시 만난 헤스티아의 입에서 ‘문제’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문제의 자세한 내용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추방자들을 찾지 못하면 자연스레 인신공양 계획부터 손볼 거라고 여겼는데…… 아니었어요. 제가 제 동료들을 너무…… 쉽게 봤습니다. 그럴 인사들이 아닌데…….]
난감함으로 가득한 목소리.
헤스티아가 말문을 이어갔다.
그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특히 이안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중간계, 중간계에서 공수해 오는 쪽으로 계획이 바뀌었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구성이 예정되어 있는 첫 번째 중간계에서요.]
첫 번째 중간계.
시계탑이 부르는 이름, 문드아일.
그곳은 이안 페이지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