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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80화
혼돈의 군주.
그것이 아테나가 그 정체불명의 존재를 일컫는 호칭이었다.
그리고 그 호칭을 듣는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파묻혀 있었던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보다 높은 곳에 군림하는 혼돈의 전당, 그곳에서도 2인자에 속하는 존재.’
혼돈의 자식들 중 2인자.
눈먼 아버지와 유일무이하게 대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직속부하.
문제는 그 존재의 이름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넘겨준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야 그 존재의 진명을 발음할 길이 없었으니까.
[해명하라고 했을 텐데?]
이안이 그 존재의 정체를 파악하는 한편, 혼돈의 군주는 아테나에게 매우 위협적인 물음을 던졌다.
한데 이상한 것이, 말을 할 때마다 목소리가 변한다. 마치 여러 존재가 이어서 말하는 것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또 변하길 반복했다.
그래서일까? 종잡을 수 없는 기괴함과 압도감이 한층 더해졌다.
[그, 그것이, 너무 많은 수행자들을 통제하다 보니 그만 실수…….]
[이상한 소리로군.]
목소리가 변하는 미상의 존재.
혼돈의 군주가 아테나의 말을 딱 잘랐다. 그러고는 의문을 표했다.
[통제란 변수와 불상사를 줄이는 수단일 터인데, 그렇다면 내 연구실에 접근한 이 벌레들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인 통제대상 아닌가?]
[그, 그게…… 그러니까, 하데스가 분명 이쪽은 안전하다고……!]
[아테나.]
[……하, 하문하십시오!]
[내 인내심이 궁금했다면 시기를 잘못 골랐어. 마침 화가 나던 참이거든. 말귀 못 알아 처먹고 우둔하신 우리 주인님 때문에 말이야.]
마침 화가 많이 나던 참이다.
그 한마디에 납작 엎드려 있던 아테나의 육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최상급 지배자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무리의 일원이 겁먹은 어린아이마냥 떨고 있다는 뜻이다.
[소, 소, 소, 소, 송구합……!]
[그래서 말인데.]
여전히 문 안쪽에서 목소리만 들려주던 혼돈의 군주가 반쯤 열린 문 바깥으로 한 팔을 쭉 뻗었다.
[연구에 필요한 재료를 조금 추출하도록 하지. 추출물이 만족스러우면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으니.]
동시에 어떤 심연의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와 아테나를 휘감았다.
그러고는 아테나의 전신으로부터 어떤 황금빛 기운을 빨아들이기에 이르렀으니, 이안의 눈에 그것은 바로 ‘생기’였다. 생명력 말이다.
[커, 커헉……!]
생기를 흡수당하면 흡수당할수록.
본디 젊고 아름다웠던 아테나의 외형이 점차 늙어갔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모습이 되어서야 비로소 멈췄는데, 혼돈의 군주는 그 결과가 썩 마음에 드는 듯 흡족하게 웃었다.
[이렇게 펄떡펄떡 뛰는 생명력이라니, 마음에 들어. 좋다. 이번 한 번은 눈감아주지. 그러나 두 번은 없다. 부디 명심했으면 좋겠군.]
[며, 명심…… 또 명심하도록 하겠나이다. 혼돈의 군주시여. 그리고……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순간에 백발노인으로 전락해 버린 아테나가 힘겹게 인사했다.
[아, 그리고 이번 일의 장본인들은 내 실험도구로 쓰도록 하지. 내 목소리를 들은 이상 살려둘 순 없는 노릇이니, 그리해도 되겠지?]
[무, 물론이옵니다. 편하신 대로 쓰시옵소서. 혼돈의 군주이시여.]
[좋군.]
처음보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 혼돈의 군주가 다시 한번 손짓하자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 조원 두 명, 그리고 이안의 육신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며 반쯤 열린 방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디 보자.]
처음으로 대면한 혼돈의 군주는 그 형체를 감히 묘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괴함의 절정이었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압도적인 ‘격’이.
아니, 격을 넘어서 어떤 심오한 광기와 절망이 엄습해 오는 존재.
혼돈의 군주는 그런 존재였다.
[이것들은…… 그다지 쓸모가 없겠군. 누더기 골렘 만들 때나 좀 쓰일까 말까 한 수준인데…… 으음, 하기야, 벌레 같은 놈들뿐이니.]
앞선 두 명의 조원은 혼돈의 군주에게 ‘쓸모없음’으로 분류되자마자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어떤 통 안에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이놈은…… 어라?]
다음 차례는 이안 페이지.
혹은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
그는 필사적으로 이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크로노스를 되돌리는 방법 뿐, 이안이 서둘러 재구축 마법을 준비하는 그때였다.
[너였구나, 이안 페이지.]
……뭐?
이안 페이지.
그 이름을 알아?
이 존재가 어떻게?
[그리 걱정할 필요 없다. 이 목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으니. 네놈과 이어져 있는 어느 명계의 버러지한테도 마찬가지고.]
그 존재.
혼돈의 군주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안의 정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하데스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만나는군. 이 또한 우리 우둔하고 눈먼 아버지의 뜻이신가?]
우둔하고 눈먼 아버지.
잠깐 자신의 주인을 떠올렸던 혼돈의 군주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그 멍청하고 게으르신 분께서 이런 설계를 하실 리 없지. 허면 그냥 운명인가?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여전히 목소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이안을 연구실 바닥에 살포시 내려주는 혼돈의 군주였다.
[들어라. 이안 페이지. 내 개인적으로 네놈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
“……무슨 기대 말입니까?”
이안이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마주한 상태로는 단 한마디 내뱉는 것조차 어려운 상대였으나, 이안은 가진바 모든 힘을 다 쥐어 짜내며 그 존재와 소통을 시도했다.
[오, 설마 내 앞에서 말을 할 줄이야. 버러지들만도 못한 격으로 어찌 그런…… 역시 범상치 않아.]
입을 여는 이안에게 진심으로 감탄한 혼돈의 군주가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미미한 호의와 호감마저 담기기 시작했다.
[허나, 주제를 넘었군. 네놈은 나한테 질문을 할 자격이 없어. 적어도 당장은 말이야. 그러니…….]
순간 이안의 눈앞에 캄캄해졌다.
빛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칠흑.
그 속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그만 돌아가라. 돌아가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록. 그걸 수백, 수천, 수만 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닿을지도 모르겠지. 나한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권한 앞에.]
이제는 목소리조차 희미해진다.
영혼이 어디론가 빨려드는 기분.
[……어쩌면 네놈이야말로 ■■■의 오랜 ■과 ■■■ ■■를 끊어낼 ■■■일지도 모르니.]
* * *
“으윽…….”
이안이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시계탑 지하가 아니었다.
밝은 빛, 맑은 공기, 푸른 하늘.
바깥이다. 그 말인즉, 시계탑의 지하 던전에서 탈출했다는 거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안의 주변을 둘러봤다. 잘 포장된 바닥 위에는 오직 이안과 아테나만이 보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등을 돌리고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만…… 통과한 건가?’
심지어 자력으로 통과한 것도 아니다. 분명 그 미지의 존재, 혼돈의 군주란 자가 여기로 보냈을 터.
‘나를 알고 있어. 그리고…… 분명 무어라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무어라 속삭인 기억은 난다. 무슨…… 네놈이야말로 뭘 어떻게 할…… 뭐라고 했더라?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떠올려도 그 뜻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 단언컨대 처음 겪는 일이다.
‘……모르겠군.’
머리가 아프다.
정말 깨질 것만 같다.
특히 그 마지막 속삭임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 아파졌으니, 일단은 그만 두는 편이 좋을성싶다.
‘우선 여덟 번째 과업부터 끝을 봐야겠는데, 말을 걸어봐야 하나?’
이안이 아테나의 동태를 슬쩍 살펴봤다. 여전히 미동조차 없다.
단순히 생기를 빼앗겨서 저러는 건지, 생기를 뺏긴 이후의 결과물에 충격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모르게 상심이 커보였다.
“흐음.”
잠시 고민에 빠졌던 이안.
이내 그가 아테나한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황금 사과 한 덩이를 꺼내 건넸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
“받으십쇼. 겪고 계신 문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드리는 겁니다.”
[…….]
백발노인으로 전락한 아테나.
그런 그녀에게 건네는 황금사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 오히려 넙죽 받아먹어야 할 판국이다.
[……고, 고맙다. 수행자여.]
“별말씀을.”
간단히 대꾸하며 옆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는 이안이었다.
“네 번째가 마지막이죠?”
[아, 그, 그렇다. 이제 조만간 시작될 예정이니 준비하고 있도록.]
“보아하니 저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저 혼자 하는 겁니까?”
[그, 그건 아니다. 어딘가 몸을 숨기고 쉬는 중인가 보군. 알다시피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 아니더냐?]
“아, 그랬군요. 혹시나 했습니다.”
몇 명 더 살아남았다?
저 지옥 같은 지하 던전에서?
과연 어떤 이들이 살아남았을까?
이쯤 되니 궁금하다. 오리온이 말했던 그 ‘숨겨진 강자’들일까?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이제는 익숙한 알림이 나타났다.
사실상 번외 과업의 진행 대부분을 담당했던 안내 메시지였다.
[번외 과업 진행에 차질이 생겨 대단히 죄송합니다. 마지막 번외 과업 진출자 중 일부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된 만큼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출자 중 일부에게 발생한 문제.
아마 그 일부에 이안도 속하겠지.
[그럼 마지막 번외 과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번외 과업.
그 시작이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잠깐.]
번외 과업의 정상적인 진행을 멈추는 이가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백발노인으로 전락한 아테나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억울해. 이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불안정한 목소리, 말투, 표정.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안광.
그녀가 이안이 건네준 황금사과를 손바닥 위에서 불태워 없앴다.
[다 네놈이…… 칼리두 와탕카 네놈이 그쪽으로 기어들어 갔기 때문이야. 왜 하필이면 거길 기어들어 가서 나한테 굴욕을 주는 거지?]
이런 궤변이 또 어디 있을까?
정신 나간 번외 과업을 만든 것도 본인이고, 난이도 어쩌고 하면서 중간에 바꾼 것도 본인이면서, 그걸 이렇게 남 탓으로 돌린다고?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래놓고는 뭐? 그깟 사과 하나 쥐여주면서 도움이 될 것 같아?]
“…….”
[네놈은 나를 욕보였다. 칼리두 와탕카!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마는, 우리 지배자들은 결코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한 수행자를 해칠 수 없어. 그것이 우리 시계탑의 신성한 율법이지.]
그랬다.
과업의 계시자 역할을 하는 최상급 지배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수행자를 직접 죽일 수 없다.
굳이 번외 과업까지 열어 눈엣가시 같았던 전직 수행자들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바로 거기 있었다.
[……따라서, 나를 욕보인 칼리두 와탕카에 관한 처분은 마지막 번외 과업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처분을 번외 과업에 일임한다.
아테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러분께서 수행하실 마지막 번외 과업은 ‘기여도 쟁탈전’입니다.]
[상대방의 기여도를 쟁탈하고 최종 순위에 이름을 올리십시오!]
[현재 종합 기여도 1위는 수행자 ‘칼리두 와탕카’입니다.]
[현 기여도 1위 칼리두 와탕카의 위치가 수행자들에게 공유됩니다.]